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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이번주 독서토론에 다룰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의 책. 나에게는 저자도 생소하고, 이 책 자체도 기존에 들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책을 폈었다. 주제는 '한 인간의 인생',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또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때로는 그 영향이 아주 커서, 마치 나비효과처럼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평에서 사람들은 이 책의 분량이 짧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걸 읽었는데 다 읽은 뒤에 다시 한 번 더 읽게 되기 때문에 두배의 분량이라는 이야기. 실제로 마지막 반전을 접하게 되면, 그 동안 쭉 읽던 이야기, 깊은 생각 하지 않고 주인공의 서술 방식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마지막에가서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접하게 된다. 가장 큰 주제는 역시나 '사랑' 이었다. 모든 문제가 그와 그녀가 '사랑'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사랑' 은 인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개입되기도 하고, 비단 문학뿐 아니라 모든 예술, 학문에서도 중요한 요소. 인간에게 있어서 어쩌면 가장 커다란 가치는 '사랑' 이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어른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구절.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내가 하는 고민도 그들은 이미 우리와 같은 시기를 거치면 했었던 고민일 것이다. 젊은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구닥다리식 사고방식이 맘에 들지 않겠지만, 생각해보면 어른들 역시도 그때는 그러한 그들의 입장에서 어른들의 모습이 답답하다고, 이런 불신과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우리 역시도 살아가면서 10, 20년이 지나고나면 그런 모습이 되어 있게 되는 걸까? 또는 어른이 되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에게 그 당시에 고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내 말을 들으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걸까? 내 생각에는 앞으로 내가 어떤 경험을 하면서 어른이 될지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어른들의 모습이 되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없으나, 충분히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또 아이들 역시도 어른들의 그러한 말들이 괜히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좋겠지만 나 역시도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저 이러한 것들 역시 어른이 되어가는,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생각.

 




  젊은 나이에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성관계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최근 들었던 이야기 중 성관계는 그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고, 서로 바라보고, 손잡고, 거리를 걷고, 영화를 보고 하는, 그런 것들 중 하나이지 너무 거기에 빠져들게되면 안된다고. 그런 경우에는 그 성관계를 제외한 나머지를 그 사람에게서 찾으라고. 목적이 그것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였다. 소설에서 주인공처럼 그 나이때에 그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뜬금없이 와닿았던 구절이다. 베로니카의 말인데, "그래도 이젠 우린 대학생이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해, 안 그렇니?" 맞는 말이다. 요즘 가장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이것이다. 나 나름대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때가 많다. 가령 책을 읽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기 전에 다른 이의 리뷰를 찾아보고 그것을 읽으면서 거기에 따라가게 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나 뿐 아니라 많은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 네가 느끼는 것, 네 진심만 말하면 돼." 위에서와 같은 맥락이었던 것 같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서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 진심을 이야기 하라는 말.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가 만약 바란 적이 없는 그 선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결정대로 행동을 취할 윤리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는 것. 


  소설에서 주인공의 친구인 에이드리언은, 주인공이 여자친구 베로니카와 헤어진 직후, 둘은 사귀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유언에서 위와 같은 말을 남긴다. 소설 안에서 철학적이고 우수한 학생이었던 그가 남긴 자살의 합리화라고 보면 될 것 같다. 





  2부에서 주인공은 나이를 먹은 뒤 은퇴하고 삶을 되돌아보며 소소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간다. 문득 사람은 일을 하지 않으면 게을러진다고 했던 아르바이트 사장님의 말이 생각나서 인상깊었다.





  주인공은 과거 선생님에게 배운 것과 달리 나이를 먹은 뒤, 역사에 대해서 재고하게 된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가깝다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역사는 여전히 승자들의 거짓말? 승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그 역사의 범위가 한 개인인지, 아니면 집단, 혹은 국가인지에 따라 또 다시 생각 해보아야할 것이지만.





  주인공은 사무변호사와 같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덧 자신의 말투도 그와 같아진다는 말을 하는데, 어, 이건 정말 그런것 같다. 나도 몇 번 경험해본적이 있다. 뭐 휴대전화 고객센터와 통화를 하더라도 이런 경우가 있다. 또 뭔가 농담에도 이런 경우가 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가 않는다. 패스..





 살아갈 날이 줄어들수록 헛되이 살고 싶지 않게 된다는거. 이것은 비단 황혼을 맞은 노인의 이야기 뿐 아니라 지금도 시시각각 늙어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늙어가고 있으니까. 주인공의 말처럼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주인공은 베로니카(과거 여자친구)의 오빠에게 부탁을 하면서, 그를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일부분 뿐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버리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존중해야하며,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인게 아닐까. 한 가지 면을 가지고 그 사람을 단정하는 것. 매우 위험한 생각인 것 같다. 





배우면 배울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학문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실질적으로 이해한다는 맥락에서 '배우는' 것. 옳은 말인 것 같다. 예를 들어볼까. 자전거를 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자전거를 처음 타면 다들 얼마 못가 넘어지고 만다. 하지만 계속해서 조언을 듣고, 타다보면 어느새 두려움은 없어지고 도움 없이도 신나게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느 정도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것은 다른 많은 곳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평균치. 평균. 말이 평균이지만, 인생의 의미를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지 않을까. 여러 사람을 조사해서 이렇게 평균이라는 값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각 개인, 개인에게는 평균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는 그이고 나는 나니까. 평균이라는 잣대로 도매금으로 넘겨버리는 이런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불편하다.





  곧 타게 될 비행기가 걸어서 모퉁이의 가게에 가는 것보다 위험할지 모르니 그에 대비해 남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으려는 것. 필자도 얼마 뒤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약 4개월간 생활하게 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뭔가 지인들에게 알리고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내 모습을 보니 여기서 주인공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남들에게 '좋은 기억' 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그들이 내가 없는 사이 나를 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가까이 있는 지금도 서로 만나기 쉽지 않은데,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나를 기억 해주었으면 싶다.





  노인도, 사랑에 빠지고 힘들어하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무슨 다른 인종이라도 되는 것처럼 멀리하는 그런 소식을 종종 접하면 하게 되는 생각이다. 노인이 합당한 대접을 받는 나라, 젊은 시절 충분히 일을 하고, 세금을 낸 사람이 말년에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다 갈 수 있는 복지. 그런 복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작은 바람이다. 





  옛날에는 정말 편지를 주고 받고 그 시간을 어떻게 기다렸을까. 책에서는 이메일을 언급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실시간으로 글자를 가지고 대화하는 세상이다.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정말 불편할 것 같다.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와서, 주인공은 다시 만난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의 아들에 대해서 완전히 잘 못 짚게 된다. 결말은 이 소설의 진정한 재미? 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으나,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글쎄, 어찌되었든 잘못된 것은 에이드리언이었다. 과거 친구의 연인과 사랑에 빠진 것. 그것만 가지고 직접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으나, 결국 그는 주인공이 원인을 조금 제공하기는 하였으나 결정을 내린 것은 그 자신이며 결국 그렇게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에이드리언이 너무나 곧은 인물로 그려져서 더욱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이 안타깝고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수 많은 평론가들의 말처럼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일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이런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저자 줄리언 반스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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