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
옛날 옛적에 장군 화운이라는 사람이 태평부에서 죽을 때에 그의 부인 곡씨도 남편을 좇아 죽으매 어린 아이는 물속에 던져 버리더라.
그러나, 웬 일인지 이 아이는 이렛동안이나 물속에 있다가 죽지 않고 살아 나왔으니 어찌 천명이 아니리요.
화운의 칠대손 욱이 여양후 벼슬로 명나라 세종황제가정십삼년 시절에 과거하여 벼슬이 형부상서에 이르고 이십삼년에 길양을 쳐서 파멸한 공으로 여양후가 되었는데 화욱은 위인이 방정엄숙하고 정사에 연달하므로 천자를 그를 중히 여기시고, 벼슬을 돋우시와 병부상서 도찰원 도어사를 삼으시고, 협서군무사를 총득케 하시더라.
이때 화욱의 서울집이 경성 만세교 남쪽에 있었는데 원비심씨는 공부시랑 심학의 딸이요, 차비 요씨는 태자소부 요관의 딸이요, 삼비 정씨는 이부시랑 정웅의 딸이더라. 심씨를 말을 잘하고 자색이 절등하되, 마음이 매우 사납고 게다가 그 여자의 아들 춘이란 놈이 품격이 매우 범용한 자여서 공은 심씨를 그다지 사랑하지 아니하더라.
정부인은 숙덕이 있고, 요부인은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버렸는데 요부인은 임종 때에 그 여자의 소산인 딸 하나를 정부인에게 부탁했고, 정부인은 이 딸을 잘 보호하고 교훈 하기를 친 소생이나 다름없이 하는지라, 화욱은 이 때문에 더구나 정부인을 애중히 여기더라.
가정 이십오년 봄에 화욱은 묘한 꿈을 꾸었는데 옥기린이 품에 든 것이더라. 과연 이달부터 태기가 있기 시작한 정부인은 잉태 십삭에 사내 아이를 낳았으니, 아이는 골격이 대단하고 울음소리가 또한 웅장한 기남자여서 공은 이 아이를 기뻐하고 매우 기특히 여기더라.
이때 화욱의 누이가 있었으며 누이는 태상경 성염의 아내였고, 성염은 일찍 과거하여 처남과 한 집에 살았으며, 이 성염이란 자가 위인이 현명강직하고, 집안 다스림이 또한 법도 있어서 화욱은 이 매부를 섬기기를 엄형과 같이 하더라. 집안 일을 죄다 그에게 맡겨 버리고 그의 말을 잘 들었으며 또 성염의 아들 준이란 놈이 기이한 재주가 있어서 화욱은 그의 면학을 주장하고, 공부를 권장하기까지 하더라.
원비 심씨는 남편이 자기 소생은 사랑치 아니하고, 정씨 소생만 사랑하는 지라 언제나 은근히 이를 질투했으므로 엄숙한 남편과 또 현명강직한 성부인 내외가 두려워서 감히 어쩌하지도 못하고 있더라.
정씨의 소생은 어느덧 세 살이 되었고, 그렇건만 벌써부터 이 아이는 용모가 풍영쇄락하고 자질이 남에게 뛰어나, 한 가지 말과 한 가지 일이 그때마다 남을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이 없더라. 정씨는 언제나 효경을 읽고 있었는데, 이럴 때면 이 아이는 어미의 책상 옆에 단정히 앉았다가 어미의 글 읽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그것을 외워 그 글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더라. 뿐만 아니라 이 천재적인 소년은 다른 모든 범절이 다 이와같이 신통하고 대견한 것이더라. 뿐만 아니라 이 천재적인 소년은 다른 모든 범절이 다 이와 같이 신통하고 대견한 것이더라. 따라서 아버지의 칭찬과 만족은 이만저만이 아니더라. 화욱은 언제나 아들을 자랑하며 이렇게 말하더라.
“우리 문호를 흥기할 자는 바로 이 아이로다!”
화욱은 아들의 이름을 진이라 하고, 자를 형옥이라 하였고, 그의 귀여움은 온통 이 진에게 쏠린 듯하더라.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떠 버린 요씨의 딸이 또한 자질이 절묘하고 재화(才華)가 영발하더라. 이름은 빙선이라 하였고 자는 태강이라 하였으며, 화욱은 이 딸 역시 매우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바였더라.
진은 태강소저와 언제나 같이 글과 글씨를 공부하더라. 아홉 살 때에는 벌써부터 어려운 시서와 논맹(論孟)을 외게 되었고,
글을 잘 지어 그 언어가 청장하고 의미가 또한 심원하니, 이를 본 사람은 누구나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더라. 화욱의 사랑은 점점 깊어질 뿐이더라.
하루는 화욱이 조회를 파하고 나오자 정부인의 침실로 들어갔고, 부인은 남편을 공손히 맞이하여 그의 얼굴을 보았는데, 전에 없던 근심의 빛이 그의 미간에 무섭게 서려 있더라. 정부인은 당황해서 옷깃을 여미고,
“상공께서 무슨 까닭으로 그토록 기우 불평하나이까?”
하고 놀라서 묻기로,
“황상이 극히 인명하시되, 엄숭이 한번 정사를 잡으매 국사 날로 그릇되는지라.”
하고 남편은 잠시 있다가 조용히 입을 떼니라.
“어사 남표가 상소논핵하다가 도리어 절역에 귀양가니 어찌 가석치 아니하리요!”
그렇게 말하는 남편의 근심이 너무도 깊은 듯해서, 정부인은 그 근심이 자기에게도 옮경서 대답할 바를 모르고 있더라.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어린 아들이 이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며, “<사전>에 이르되, ‘체동재동하니 막지감지라’ 하였으니, 이는 소인이었으매, 감히 거역치 못함을 이른 말이라. 이제 남어사가 소인의 허물을 배척하다가 스스로 화를 당하니, 정히 군자는 기미를 살펴 벼슬을 버리고 갈 때니라.”
이토록 대견한 말을 어린 놈의 입에서 듣자, 화욱은 기쁘고 사랑스러워 어찌할 줄을 모를 정도였더라. 그는 아내를 돌아보며 이렇게 만족한 듯이 말하더라.
“아이의 소견이 실로 어른도 미치지 못할 배라, 어찌 기특타 아니하리요!”
이때 마침 성부인이 들어오기에 화욱은 이 숙덕한 누이에게 오늘의 일을 대강 설화하고, 아들의 자랑을 해 보이더라. 성부인은 감동해서 사랑스러운 공자의 등을 어루만져 주며 이를기를, “이는 화씨 문중의 복성이로다.”
하고 칭찬하더라.
화욱은 부인과 향리로 돌아갈 주의를 정하고, 표를 올려 행복을 빌더라. 천자는 그의 재덕을 아끼시와 하조하여 말리려하시매, 원래부터 화욱을 꺼려오던 엄숭은 천자를 권하여 그의 소청을 듣게 하더라. 이래서 천자는 인수를 거두시고, 그에게 금은채단을 특별히 후하게 사급하시더라.
화욱은 사은하고, 행리를 수습하여 소흥부로 돌아갔고, 이 해에 그의 장자 춘의 혼사를 정하였는데 신부는 병부상서 임준의 딸이더라. 자색은 비록 절미치 못하다 해도 덕행이 있어서, 화욱은 며느리를 다행으로 여기더라. 그러나 아들춘은 여전히 범용하고 불락해서 그의 마음에 들지 아니하더라.
소흥은 지형이 기이하고 북에 음산이 있므매 서에 상위있고 동남으로 가산기봉이 연이어 있는지라. 예로부터 천하 명승지로 이름 있는 곳이더라. 화욱은 이러한 곳에 산을 깍아 대(臺)를 만들고 물을 끌어 못을 팠더라. 주란화각(朱欗畵閣)이 참치조표하며 기화이목(奇花異木)이 울밀총무한데, 난학이 공중에 놀고 미륵이 뜰에서 왕래하며 맑은 취미가 스스로 넉넉한지라 그는 두 아들과 한 생질(甥姪)로 소요유락하니, 마음이 한가하여 만세 꿈 같은지라, 매양 이르되, 나의 말년 행락은 다 내 아들 진이 준 바로다 하더라.
이때 심씨는 정당 충성루에서 거처하고, 성부인은 취하당에서 거처하였고, 동편 수선루에는 정부인이 거쳐하고, 서편 설매당은 임소저가 거처하였으며, 녹영당은 성부인의 아들 준의 아내 오씨가 거쳐하고, 그 왼편 홍매당은 태강소저가 거처하고, 한송정 죽우당은 두 아들이 있게 하고 화욱 자신은 스스로 백화헌에 거처하고 성생은 쌍취정에서 기거하며 공부하더라.
다음해 봄도 따뜻해진 3월달의 어느 날, 화욱은 아들과 생질의 세 놈을 데리고 후원에 있는 상춘정에 올랐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전망되는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며 저마다 시를 지어 보라고 하더라.
세 놈이 쾌락하고, 제각기 머리를 짜내어 시를 지어 바쳤으니. 우선 화욱은 성생의 글을 보았으되,
“뜻이 침후(沈厚) 온중하니, 참으로 군자의 글이로다.”
하고, 그는 감동해서 말하더라. 다음은 춘의 글을 보았으나 그는 이것을 다 보지 않고 벌컥 화를 내며, 내동댕이쳐 버리더라.
“소자 무상하여 내 집을 망하리로다.”
이와 같이 분격의 음성이 아버지의 입에서 떨어지자 춘은 황겁결에 갓을 벗고 땅에 내리더라. 방금 군자의 글이라고 해서 칭찬을 받았던 성춘이란 놈이 외숙 앞에 나와 이렇게 용서를 빌더라.
“일시 지은 글이 득실이 있기 쉬우니, 불만함이 있은들 어찌 성교 여차하시니이까?”
“잘하고 못함을 꾸짖음이 아니라 글 뜻이 경천하고 부정하고 음란하니, 이 자식이 장차 내 집을 어지러이 하리로다.”
하고 화욱은 여전히 화를 내며 꾸짖더라. 끝으로 그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귀염둥이 진의 글을 보니, 그 글은 이렇게 되어 있더라.
버들이 삼사하여 푸른 그림자 비쳤는데
화한 바람이 가벼이 깁창으로 들어오더라.
원아은 금당물에 대하여 목욕하고
호접은 옥섬들 끝에 쌍으로 놀더라.
종려의 푸른 잎새는 봉의 꼬리 길었는데
다시 새 시럽을 만들어 포도를 울렸더라.
난간머리의 앵무새 봄말을 전하니
시녀 향을 머금고 벽도화(碧桃花)로 지나도다.
화욱은 이러한 아들의 글을 감탄해서 몇 번인가 고쳐 읽다가 조카 성준에게 보라고 주더라. 성생 역시 감격해서 몇 번이가 되풀이 읽고 격찬하더라.
“시재 무르녹고 감열(感悅)하며 맑고 건장하여 성당 유풍이 있으니 시인의 재주로는 더할 길이 없을까 하나이다.”
화욱은 조카의 이런 칭찬에 더욱 기뻐하더라.
“이 아이가 겨우 강보를 면하였을 때에 식견(識見)이 사람에 지나더니, 이제 글재주가 또 이러하여 이 글 두 머리가 다 왕공부귀의 기상이 있으니, 내 집을 흥할 자는 진이요, 내 집을 망할자는 춘이로다.”
하고 그는 말하더라. 그리고 이번에는 춘을 향해서 또 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니라.
“우리 문호 대대 충효 법가로 세상이 흠탄(欽歎)하거늘, 네 이제 음란한 뜻으로 부형 앞에서 방탕함이 이 같으니, 진실로 해괴한지라. 차후는 일동일정(一同一靜)을 네 아우에게 배우고, 화씨 종사를 네 손에 망하게 말라.”
화춘은 부끄럽고 겁이 나서 아무 말도 못하고 아버지 앞을 물러가더라. 이날 밤, 그는 어머니 심씨에게 이런 일을 고하기를,
“소자 모친의 사랑하심을 입어 학업을 폐하였사오니, 대인의 꾸지람은 감심(甘心)하려니와 엄교(嚴敎)를 내리시와 화씨 종사를 네 손에 망치겠다 하시니, 사람의 자식이 되어 어찌 마음이 슬프지 않으리이까? 또 진이가 비록 자질이 기이하고 동지유법하나, 대인이 소자로 하여금 그 애에게 무릎을 꿇어 매사를 배우라 하시니, 천하에 형이 아우에게 배우는 자가 또 어디 있으리이까?”
심씨의 분노는 말이 아니더라. 그러지 않아도 남편의 편파적인 애정과 정부인에 대한 질투와 증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아들의 이러한 고자질로 해서 그 여자의 분격은 바야흐로 극도에 달하더라. 그래서 심씨는 마침내 입에서 불을 토해내듯 이렇게 말하더라.
“상공이 원래 정가요녀와 간사한 자식 진에서 고혹(蠱惑)하여 우리를 초개(草芥)같이 여기니, 내 차라리 머리를 부수어 죽을지언정 그들에게 굴복하여 욕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이렇듯 무서운 저주가 그 여자의 입에서 나온 이후로, 심씨 모자는 정씨 모자와 결정적인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되어버리더라. 그들의 원망은 한이 없었고, 또 태강소저도 겸해서 그들의 적이 되어 버리더라. 아무튼 정가의 정자만 보더라도 그들을 씹어서 없애고 싶을 정도로 정가 모자의 주변마저 싹 쓸어버리고 싶은 것이더라.
성부인이 이런 눈치를 채고 겉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나, 진과 소저의 평생을 걱정하여 매우 슬퍼하더라. 그 여자는 어느 쪽이냐하면, 정씨 모자를 좋아하였고, 그것은 그들이 화욱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뚜렷한 이유에서이기도 한 것이더라. 이러한 가정 내의 묘한 관계는 그대로 계속되어, 그렁저렁 여러 해가 지나서, 하루는 여전히 행지패려(行之悖戾)하고 언어무상한 춘을 향해서, 그의 아내 임소저는 이렇게 충고하기를,
“군자 법문에 생강하여 명교(名敎)를 알 것이어늘, 근일에 말씀이 혹 윤상을 핍박하고, 뜻과 행동이 불미하시니, 첩이 비록 어리고 어두우나 그윽히 한심한지라 사람마다 어진 부형 있음이 즐겁거늘, 이제 존구(尊舅)의 성덕과 성공모의 지행은 다 군자의 아는바라. 고인이 말하되, 삼 가운데 있는 쑥대는 붙들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곧아진다 하니, 첩이 실로 군자의 행실 없음을 애닯아 하는지라. 정전교의 덕행과 소공자의 품격을 의심하시니, 첩은 도리어 한함을 마지않나이다.”
젊은 아내의 이토록 간곡한 충고조차 화춘은 청이불문(聽而不聞)이더라. 그는 어머니와 단짝이 되어 여전히 정씨 모자를 미워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창피를 주기도 하더라. 남편의 이러한 태도를 덕행 높은 임소저는 매우 슬퍼하였고, 스스로 명도기박(命途奇薄)함을 한하며, 남편의 불현함을 슬퍼하여 행복이나 즐거움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이 때의 화욱은 한가하기 짝이 없었으니 마음을 언제나 산수간에 붙여서 천하사를 심두에 두지 아니하고, 매양 고서(古書)를 보다가 국가의 존망과 군신의 득실한 구절에 이르러서는 자못 강개(慷慨)한 눈물이 옷깃을 적시곤 하더라.
하룬가는, 그는 동자에게 거문고와 주효(酒肴)를 들게 하고 두 아들과 성준을 데리고 동산 북쪽 작은 산에 올랐는데, 때는 가을이라, 그는 단풍 시내와 국화 언덕에서 혹 거문고를 뜯고 술을 마시며 혹 글을 읊고 회포를 펴기도 하니라. 그는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이 아들들과 오래오래 놀고 있더라.
그러자 홀연 귀인 하나가 갈건야복(葛巾野服)으로 나타나매, 화욱은 대단히 놀라 처음 순간에는 그것이 누군지 알지 못하였으나, 이 곧 이부시랑 윤혁이라는 것을 알아보자, 그의 놀라움은 더욱 반가움의 감정으로 변하더라.
“존형이 어찌 이렇듯 서서 보며, 알은 체도 아니하나뇨?”
하고, 그는 반가와서 어쩔 줄을 모르며 일어서서 읍하고 그렇게 말하더라. 시랑은 웃으면서 그제야 서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곳에서 화욱에게로 걸어와,
“선동이 영형(令兄)의 곁에 있으므로 망연히 보기를 탐하여 주저하였노라.”
하고 그는 기쁜 듯이 입을 떼고, 또 화진의 손을 잡고 묻기를,
“이는 영형의 아들이오니까?”
“그러하도다.”
이부시랑 윤혁은 감격해서 바라보고, 또 성준과 화춘을 가리키며,
“저 두 수재도 다 형의 슬하뇨?”
하고 묻더라.
“하나는 소제의 아자요, 하나는 소제의 매형 성태상의 아들이니라.”
“태상은 백온이 아니뇨?”
“그렇도다.”
“영존 대인을 이별한 지 이미 십구년이라. 청산녹수에 어느 날 탄식치 아니하리요!”
하고 윤혁은 성준의 손을 잡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해서 말하더라.
그런 후, 그는 화욱과 나란히 앉아, 그 동안 경험에 온 각자의 적조한 회포를 풀기 시작하며 말하되,
“형이 조정을 하직한 후 국사 날로 그릇되매, 소제도 또한 몸을 빌어 고향에 돌아와 적이 평안함을 얻으나 매양 왕실을 생각하면 눈물 흐름을 깨닫지 못하나니, 형의 소회 제와 어찌 다르리요.”
하고 윤혁이 먼저 말하더라.
이 말로 비로소 화욱은 상대방이 벼슬을 버린 것을 알았으매 더구나 감개가 무량한 듯하더라.
“산동은 이곳서 천 여 리라. 아지 못하겠노라. 무슨 일로 이렇듯 멀리 오셨노?”
하고, 윤혁은 대답하더라. 화욱은 그를 청하여 제 집의 백화헌으로 돌아와 주식을 대접하였으며 여기서도 서로의 이야기는 한없이 계속되더라. 윤혁은 화진의 인물에 매우 감탄한 듯하더라. 그는 어린 화진을 칭찬하며 화욱에게 또 이렇게 말하더라.
"영랑이 이미 정혼함이 있나뇨?"
"아직 정한 곳이 없노라."
그러자 윤혁은 잠시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듯이 상대방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입을 떼어 말하기를,
"소제 나이 40에 이르도록 슬하에 한낱 자식이 없더니, 하늘이 어여삐 여기시어 일태에 자식을 쌍득하니, 지금 나이 12세라. 그다지 범용치 않기로 저의 배필을 정코자 하되 합의한 곳이 없더니, 아자는 진평중의 딸과 정혼하였고, 여아는 천하를 주유하여 아름다운 사위를 널리 구하더니, 금일 다행히 영랑을 만나 보게 되는 어찌 천행이 아니리요. 아지 못하겠노라. 형의 의향이 어떠하뇨?"
"아자의 나이 약관에 이르되, 궁향벽처에 청하여 어진 규수를 얻지 못하여 주야 초심하더니, 형이 돈아를 더럽다 아니하시고 동상을 허하시니, 어찌 감사함을 금치 않으리요."
하고, 화욱은 즉석에서 기쁜 듯이 허락해 버리더라. 화진은 불려 들어와 이 장래 장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장인은 또 사위의 손을 잡고 한동안 기쁨과 찬미와 애정을 금하지 못하더라. 그러자 그는 또 말하기를,
"소제 구구한 정회 있으니, 혹시 들어 주시리이까?"
"무슨 정회이온지 어서 말씀하오시라."
하고 화욱은 재촉하니.
"저즘께 남자평이 악주로 귀양하다가 수적을 만나 가중 상하가 모두 해를 입고 홀로 화를 면하였는지라. 소제 거두어 의녀로 정하여 이제 산동에 있으니, 나이 또한 여아와 동갑이요. 그 재품은 비록 예전 숙녀라도 미치지 못할까 하노라."
"슬프다! 자평이 필경 독한 해를 입었도다!"
하고, 화욱은 북바쳐 오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없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듣지도 못하고 슬픈 듯이 이렇게 외치기를,
"성상이 한낱 엄숭을 위하사, 그릇 직신을 죽이시되, 노신이 일찍 벼슬이 보도하는 위에 있어 마침내 일이 이에 미치게 하였더니, 더욱 죽을 죄를 면치 못하리로다.
"소제의 여아는……."
하고, 윤혁은 자기의 이야기를 계속하니라.
"남씨의 자양한 색덕을 사랑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정경을 측은히 여겨 잠시 서로 떠나지 않아 화복길흉을 같이 하려 하고, 소제 역시 생각건대 저와 같은 아름다운 배필을 구하여 적이 자평의 수중 원혼을 위로할까 하나, 천하에 어찌 다시 영윤과 같은 자를 얻으리요. 이제 영랑의 상을 보니, 준수하여 반드시 귀히 될지라. 족히 두 아내를 거느릴지니, 원컨대 형의 소제의 양녀를 한가지로 맞아 소제로 하여금 망우에게 낯이 있게 하고, 버금 여아의 원을 좇게 함이 어떠하뇨?"
화욱은 이러한 윤혁의 요구도 들어 주더라.
남자평의 불행한 딸이라니, 더구나 그러한 특별한 요구를 아니 들을 수도 없는 일이더라. 이렇게 해서 화진의 배필은 한꺼번에 둘이나 간단히 결정되더라. 지금 같으면 매우 곤란한 이야기이나, 만고의 성군으로 존경을 받는 세종 대왕조차도 부인이 열 손가락을 죄다 꼽아야 될 정도였으니, 당시의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
윤혁은 장래가 유망한 천재 사위를 이토록 손쉽게 얻어 놓고 화욱과 두어 날을 같이 보냈고, 그런 중에도 서로는 사돈의 예의를 정중히 갖추고, 화진과는 벌써부터 사위이니 장인이니 부르면서, 서로는 대단한 친절과 애정과 존경을 쏟기 시작하더라. 눈꼴사납다고 할 정도로 그것은 지극히 애정에 쌓인 것이더라. 돌아갈 때 그는 사돈에게 말하기를,
"소제, 형의 후은을 입어 두 딸을 영랑에게 맡겼으니 마음이 족한지라. 그러나 길이 머니, 소식이 쉽지 못할지라. 혼인을 정하고, 영랑의 신물을 받아 돌아가서 두 딸에게 주고자 하노라."
화욱은 그렇게 대답하고, 아들을 시켜서 홍옥 팔찌와 청옥 패물을 상자에서 내어 윤 사랑에게 전하라 분부터라.
"이 물건이 소제의 세전지물이니, 영애 양인에게 나누어 주소서"
하고, 그는 아들의 손에서 기쁜 듯이 신물을 받아 드는 윤혁을 지켜보며, 미소를 띠고 말하더라.
윤혁이 만족해서 돌아간 이 날 밤, 화욱은 부중으로 돌아와 성 부인과 정 부인을 만났더라. 그리하여 이 두 여자에게 아들의 정혼한 이야기를 설명해서 들려주더라. 그러자 성 부인이 먼저 말하기를,
"가군이 계실 때에 항상 윤 사랑의 위인을 일컬었으니, 이제 그 딸이 반드시 덕성이 있음을 알 것이요, 또 남 어사는 맑은 이름, 곧은 절개가 있으니, 그 딸이 어찌 심상하리요."
정부인은 아무 말도 없었으며, 이 숙덕 높은 총명한 부인은 잠시 그대로 묵묵히 앉아 있는 듯했으나, 마침내 이런 말을 하더라.
"이제 태강이 또한 비녀 꼽기에 이르렀거늘, 상공이 구혼할 뜻이 없고, 먼저 진이의 혼사를 정하시니, 첩의 마음이 미안하고, 또 첩이 순녀 이래로 정신이 혼미하니, 차생의 불구함을 스스로 알 것이요. 매양 요 부인의 임종시 부탁을 행각하면 두려워하건대 지하에 돌아가 서로 대할 낯이 없을까 하나이다."
눈앞에 닥친 아들의 행복을 제쳐놓고 그 기쁨에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이토록 남의 소생에게 대해서 먼저 근심한다고 하는 것은, 어쨌든 그 여자의 관후한 덕의 소치가 아닐 수 없더라. 화욱은 감격 때문에 성 부인도 감격하고, 아내를 더욱 존경하고 싶어진 화욱은 즉시 몇몇 매파를 동원하여 신랑감을 찾기 시작하더라.
그러자 그 중 한 사람이 유 광록의 아들 성양을 추천해 왔고, 군자지풍이 있다는 것이더라. 화욱은 원래 유 광록의 청덕을 알고 또 동향인지라 이를 기뻐하고, 성준을 시켜서 가 보도록 했으며, 성준은 갔다가 유성양의 단아 정직한 인물됨을 고했다. 화욱도 반가워하며 즉시 통혼하니, 상대방 유 광록 역시 화 소저의 요저 숙녀됨을 기뻐하고 쾌히 허혼하더라.
성혼은 다음 해 봄으로 정했고, 정 부인은 소원 성취가 된 듯이 이를 대단히 기뻐하더라. 아들의 혼사보다 그 여자는 더욱 기뻐하고 있는 것이더라.
그러나 이 해 11월에 화욱 내외는 홀연 득병하여 날로 위중하니라. 화진과 태강 소저의 슬픔은 말이 아니더라. 그들은 크게 슬퍼하여 옷과 띠를 끌지 않고 주야로 목욕재계하여 하늘게 기도하고만 있더라.
그러나 화욱 내외의 천명이 이미 진한 데야 어찌하랴. 그들의 정성이 아무리 열렬하다 하더라도 백약도 무효한 부모의 불행은 어찌할 수가 없더라. 부인이 이미 길지 못할 줄 알고, 이에 소저의 옥수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더라.
"선부인의 부탁을 받아 하나도 성사한 것이 없고, 한갓 너에게 슬픔을 끼쳤을 뿐이니, 지하에 돌아가 무슨 낯으로 부인을 대하리오. 다만 너는 몸 가지기를 정숙히 하여 다른 날 군자를 잘 섬기며, 덕과 복을 심어 유자유녀하여 나와 선부인으로 하여금 지하에서 웃음을 머금게 하라.
정 부인이 죽은 후 불행은 또다시 겹쳐, 불과 3일 만에 화욱이 눈을 감으면서 자녀의 장래를 단 하나 신뢰할 수 있는 성 부인에게 맡겨 두니라.
공자 남매는 경각에 천붕지통을 당하게 되어 부르짖어 울기를 마지 아니하며, 여러 번 기절하는지라. 성 부인이 일변 붙들어 보호하고 아들 준으로 하여금 예로써 장사를 마친 후 가정사를 다스릴 새, 위엄과 덕이 병행하여 공의 생시나 조금도 다름이 없더라.
유 광록이 공의 부고를 듣고 추연히 탄식하고, 아들에게 말하기를,
'향자에 화공이 내 집에 구혼함에 내 허락함은 진실로 화공의 덕의를 사모함이더니 이제 화공이 비록 기세하였으나 언약을 배반치 못하리니, 너는 장가에 자주 가 반자지의를 다하라."
유생이 수명하고, 매일 화부에 이르러 공자의 과애함을 위로하고 정의 관곡하니, 화 공자 또한 유생의 유신함을 감격하여, 정의가 더욱 친밀하더라.
슬프다! 덕이 사람을 감화함은 본디 피차가 없거늘, 홀로 화춘에게 미쳐서는 어떠한 심사임을 알지 못하겠노라. 화춘이 부친을 대신하여 가사를 총섭하면서부터 포악함이 날로 심하여 약한 누이와 병든 아우를 잡기를 불유여력하고 비복을 악형으로 다스려 위엄을 세우니, 집안 사람이 두려워 감히 성 부인께 고해 바치지 못하되, 춘이 성부인을 두려워 크게 장난하지는 못하더라.
하루는 성태상의 아우 성위가 벼슬을 하직하고, 동성 고택으로 돌아와 성부인을 청하니, 부인이 행할새 임소저더러 말하기를,
“동성이 불과 백리라. 내 행함에 불과 수일이면 돌아올 것이로되, 그 동안 진아 남매를 그대에게 부탁하오니, 힘써 보호하라.”
하고, 또 그 여자는 춘을 불러 이르기를,
“<시전>에 이르되, 무릇 사람은 형제같은 이 없다 하였으니, 이제 진아 남매의 목숨이 실낱 같아 조석을 보전키 어려운지라. 동기된 자 어찌 살을 베어 먹이며, 그 명을 대신코자 하는 마음이 없으리요.”
언파(言罷)에 성부인이 삼연히 낙루하니, 춘도 또한 얼굴이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더라. 성부인이 간 후로부터, 심씨는 팔을 뽐내어 진아 남매를 꾸짖으며 욕하고 사납기 시랑(豺狼) 같은지라. 정당 시녀 계향이란 년이 심씨의 뜻을 받들어 말을 전달하기에 분주하게 쏘다니더라. 하루는 요부인의 유모 취선이가 태강소저를 대하여 통곡하며 말하기를,
“선노야와 선부인의 성덕으로 이미 기세하시고, 공자 남매의 위태함이 조석에 급한지라, 노신이 먼저 죽어 보지 말고자 하나이다.”
소저는 눈물을 머금고 말이 없으니, 취선은 또 울면서 말하기를,
“정부인이 한번 집을 떠나신 후로 수선루 시녀 혹독한 형벌을 받은 자가 무수하고, 또 그 나은 자도 숨을 나직이 쉬어 그물에 걸린 토끼와 같사오니, 슬프다! 집 부인이 무슨 일을 악하게 하셨기에 사후 혼령이 이다지도 편치 못하신고. 어찌 애닯지 아니하리꼬!”
소저 또한 답이 없더라. 이때 난향이란 년이 창 밑에 엎드려 취선의 이런 말을 엿듣고, 즉시 심씨에게 고해 바쳤고, 심씨는 크게 노하여 난향과 계향으로 하여금 취선과 소저를 끌어오라 하여, 발을 구르며 꾸짖기를,
“너희 둘이 부동(符同)하여 정실 어미를 죽이고 맏아들 지위를 탈취코자 모의하는도다!” 시랑 같은 소리를 지르니, 소저는 정신 아득하여 말이 없고 다만 눈물이 비 오듯 하니, 심씨 또한 공자를 불러 당하(堂下)에 꿇리고, 철편으로 난간을 두드려 부수듯 하여 소리를 지르더라.
“천한 자식은 듣거라! 너희 남매가 성부인을 자세(藉勢)하고 선군께 참소(讒訴)하여 적장(嫡長)을 앗아 웅거(雄據)코자 하더니, 하늘이 악인을 돕지 아니하사 너희들 뜻대로 아니 되었거늘, 또 이제 네 요악한 누이와 흉특한 종년으로 더불어 불측한 일을 행하려 하는다!”
공자는 통고하며 꿇어 엎드린 채 말하기를,
"사람이 세상에 나매 오륜이 중하옵고, 오륜 가운데 부자 더욱 중하오니, 부친과 모친은 일체시라. 부친이 기세하신 후 다만 어머님만 바라고 있삽거늘, 소자 비록 무상하오나 어찌 이런 하교(下敎)를 하시나이까? 이것이 다 소자의 불초(不肖)한 탓이어니와 누님이 비록 취선으로 더불어 수작이 있삽더라도 사정을 서로 말씀함이 본디 죄가 아니옵고, 말이 원망에 가까움은 죄가 취선에게 있사오니, 누님의 알 바 아니오며 또 누님은 정혼한 규수라. 남자의 몸과 다르오니, 못된 이름을 씌움은 더욱 불민(不敏)한 일이오니, 바로옵건대 모친은 넓으신 마음으로 용서하시옵소서!”
하고, 그는 여전히 통곡해 마지아니하더라.
소저는 또한 정신을 차려 옷깃을 여미고, 울면서 그제야 말하기를,
“큰동생과 작은동생은 같은 골육이라 어찌 정이 다르오며, 부친과 두 모친이 다 기세하시고 다만 적모(嫡母)님만 계시오니, 자식의 마음에는 만세나 향수(享壽)하시기를 축원하올 터이어늘 어찌 꿈에나 모친을 모해하려 하오리까? 오늘 하교는 만만 부당하오이다.”
그러자 심씨는 크게 노하여, 철편을 들고 소저를 향하여 달려들거늘, 공자 방성대곡(放聲大哭)하고 임소저는 심씨의 손을 붙들고 울면서 애걸하니, 심씨는 더욱 노하여 공자를 끌어 내치라하고, 임소저를 꾸짖어 소리치기를,
“너는 또한 악한당이 되어 나를 속이고자 하난다?”
이때, 비복들이 황황히 중문 밖에 모여들어 통곡하기 시작하니, 이쪽으로 마침 오던 유생이 이러한 비복들의 수상함을 보고, 괴이히 여겨 묻고자 할 때, 마침 공자가 나오거늘 살펴보니, 옷이 미어지고 머리털이 어지러운지라, 유생이 크게 놀라 그 연고를 묻더라.
화공자는 창피해서 대답하려 하지 않았고, 유생은 그러나 그 표정만을 보고서도 무슨 변이 있음을 짐작하고, 춘을 보고자 하여 여막(廬幕)에 이르니 춘이 없는지라, 시자에게 그의 간 곳을 묻되,
“공자는 송정(松亭)에서 낮잠을 자시나이다.”
하고, 시자는 대답하더라.
유생은 송정으로 가보니, 화춘이 과연 여기서 잠들어 두건(頭巾)과 수칠을 다 벗어 버렸거늘, 유생은 탄식하며 혼자 말하기를,
“도척(盜跖)과 유하혜(柳下惠)는 세상에 흔치 아니하거늘, 어찌 이 집에 또 이런 형제가 있을 줄 알았으리요!”
그는 발로 차서 화춘을 깨워 일세워 놓고 이렇게 소리치니라.
“그대 집에 변한이 있으니 빨리 가보라!”
춘은 놀라서 그 까닭을 묻더라.
“들어가 보면 자연 알리라.”
화춘은 급히 내당으로 뛰어 들어가니, 심씨는 이때 계향으로 하여금 소저를 난타하며, 취선은 당하에 엎디어 기식(氣息)이 엄엄(奄奄)해 있더라. 심씨는 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뼉을 치며 뛰놀아 소저와 취선의 이야기를 더욱 살을 붙여서 설명하고, 아들을 격동시켜 놓더라.
“진아 남매가 그런 마음을 품은 줄은 소자 이미 알았사오나, 저희 남매 성고모와 부동하니, 가히 졸연히 처치하지 못할 것이요, 아까 유생이 이 일을 알고 사색이 좋지 못하니, 성고모가 미구(未久)에 돌아오면 반드시 대변이 날 것이리라. 아직 덮어 두었다가 후일을 기다리심이 어떠하리이까?” 하고, 아들이 말하더라.
“성가 늙은 과부가 내 집에 웅거하여 의사 흉흉(洶洶)하니, 반드시 우리 모자를 죽이고 말 것이리라. 내 비록 잔열(孱劣)하나 이 늙은 과부와 한번 사생을 결단할 것이요, 또 유생은 다른 집 자식으로 어찌 남의 가간사(家間事)를 간섭하리요. 이는 진이와 동심하여 나의 덕 되지 못함을 드러냄이라. 내 이 분을 풀지 못하면 네 앞에서 죽으리라!”
어머니의 성난 대답이 이러하자 화춘의 마음도 대번에 끓어 올랐으니, 그는 즉시 악을 발하며, 공자를 잡아들여 혹독히 매질하기 시작하였고, 매질 20여 장에 이르매, 진이란 놈이 그만 혼절(昏絶)하는지라. 심씨는 이를 끌어내어 중당에다 가두어 버리더라. 이때 임소저는 급히 자기 유모에게 두어 가지 약을 주어 공자를 보내 구호할새, 그 여자는 하늘에 애닯게 빌어 말하기를,
“황천이 만일 화씨를 망치려 아니하려거든, 첩으로 공자의 명을 대신케 하옵소서.”
하고, 야심토록 슬피 우니 밤중에 공자는 과연 희생하니라.
4, 5일이 지나매, 성부인이 편지로써 소저와 공자에게 안부를 탐지하니 화춘이 두려워 공자로 친히 답장케 하고자 하여 공자의 처소에 이르니, 이때 공자는 갇힌 뒤로는 한번도 가형(家兄)의 얼굴을 못 보아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정하지 못하다가 천만 의외에 가형을 보매, 기쁜 눈물이 비 오듯 하며 일어나 사죄하니, 화춘의 악독으로도 감동치 않을 수가 없을 정도 더라.
5, 6일 후 성부인이 돌아와서, 심씨와 인사를 마친 후 임소저를 보고 성부인이 말하기를,
“내 여기 온지 이숙하되, 진아 남매를 못 보니 어찌된 일인고?”
임소저는 황황 무언하고, 춘은 두려워 역시 대답치 못하고 있더라. 성부인은 더욱 의심이 나서 시비로 하여금 소저와 공자를 불러오게 하니, 이때 어느새 춘이란 놈이 공자를 이미 옛 처소에 옮겨 두고 심씨에게는 은휘(隱諱)하고 있을 때이니라.
소저는 분부를 듣고 즉시 와서 성부인을 뵈오매, 그 옥안이 참담하여 그전 모양이 없으니, 부인이 또 공자를 찾았으나 시비의 회보(回報)는 이러하더라.
“공자는 풍한(風寒)에 상하와 조섭하느라고 나와 뵈옵지를 못하나이다.”
성부인을 듣고 기색이 엄절(嚴切)하여 화춘 놈을 노려보더라. 춘은 부인의 이러한 눈에 황황급급하거늘, 심씨는 일이탄로된 것을 알고, 먼저 이쪽에서 부인을 경동코자 하여 일부러 대성통곡을 하여 말하기를,
“부인이 진아 남매에게 혹하여 매사를 우리 모자만 의심하니 첩이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다!”
하고, 그 여자는 칼을 들어 스스로 찌르는 형상을 하니, 춘과 두 소저가 급히 달려들어 이것을 말리려고 애를 쓰더라. 그러면 그럴수록 심씨는 더욱 발악하는 것이었으나, 성부인은 이미 그 여자의 간사한 마음을 알아보고, 안색을 씩씩히 하고 냉소하더라.
“그대 마음이 착하면 내 어찌 이리하리요.”
하고, 성부인은 자기 아들 성준에게 시비를 시켜 진이를 데려오라고 급한 명령을 하니, 부인은 이러한 공자를 보고 실색하여 그의 신상(身上)을 더듬어 보려 하니 공자는 고모의 손을 막고 이렇게 말하더라.
“소자 애회중 독감으로 자약 거동이 파리하고, 다른 상처는 없사오니, 고모는 어찌 이다지도 번뇌하시나이까?”
그러나 부인은 공자의 신상에 피육이 낭자함을 보고 분연히 좌우를 명하여 춘을 내려다 꿇리고, 큰소리로 꾸짖기를,
“네 불초하고 패려하여, 망부의 기친 동기를 해하니, 이는 짐승이라도 차마 못 할 바라! 네 부친의 죽은 영혼이 분을 머금고 슬픔을 품을 것이라. 임종시에 진아 남매를 내게 부탁하였거늘, 내 이것을 보전치 못하게 되니, 무슨 면목으로 지하데 돌아가 죽은 아우를 대하리요. 이제 너를 다스려 매맞음이 아푼 줄 알게 하리라!”
이렇게 자기 아들이 엎드려 수죄하는 말을 들으매, 놀란 혼이 몸에 붙지 않고 심씨 기운이 꺾이고 담이 떨어져 감히 말을 못하니, 이것을 보고 화진이 급히 당하로 내려가 머리를 두드리며 체읍(涕泣)하더라. 성준이 또 꿇어 엎드리며 성난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춘의 죄가 비록 무상하오나, 몸에 상복이 있사오니 죄를 용서하소서.”
성부인은 진아의 정상을 가긍히 여기고, 또 임소저의 낯을 보아 부득이 그만두고, 공자의 손을 잡고 통곡하며 춘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사람이 세상에 처하매, 부모를 섬기다가 부모 기세한 후 형제 의탁하나니, 너는 형제 불화하여 스스로 칼을 잡으려 하니, 어찌 애닯지 않으리요. 성인이 말씀하기를 뉘 허물이 없으리요마는 고침이 귀하다 하시니, 이제 내 마음을 고칠진대 전에 착한 것보다 더 나으리라. 너는 모름지기 개심(改心) 수덕하라!
춘이 황공하여 감히 다른 말을 못하니. 춘의 모자는 이후로 성부인을 기탄(忌憚)하여 감히 악심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더라.
광음이 유수 같이 어느덧 3상을 마치니, 춘이 상주(喪主)를 벗은 후 즉시 의복을 화려히 하니, 진아 남매는 부모 잃은 설움을 끝끝내 잊지 못하는 것이더라. 성부인이 가사를 임소저에게 맡기니, 소저는 가사를 다스리매, 성부이의 명령을 순종하여 매사를 법도 있게 하니, 가중이 흠연하기 짝이 없더라. 이때, 유부에서 심씨가 사납고 잔인함을 알고 날마다 근심하더니, 상주를 벗으매, 즉시 길일을 택하여 유생의 예의를 갖추어 화소저를 맞이하니, 성부인은 기쁘고 또 슬퍼하여 뜰에 내려 소저를 보낼새, 손을 잡고 경계하면서 이와 같이 이르더라.
“군자를 순종하고, 구고를 봉양하여 좋은 소문이 내 귀에 들리게 하라.”
소저는 명을 받은 후, 절하고 떠나서 유부에 이르러 시부모를 뵈옵는 예를 마치매, 유공이 소저를 향하여 추연 탄식하며 이같이 말하더라.
“영대인의 넓은 도량과 높은 덕의로 수복(壽福)을 오래 누리지 못하셨으니, 나라를 위하여 슬퍼하노라!”
소저 역시 낯빛이 변하고 구슬 같은 눈물이 두 뺨에 굴러내려 해당화가 이슬에 젖은 듯하니, 유공 내외는 혈혈무의(孑孑無依)함을 잔입이 여겨 사랑함이 비할 곳이 없더라. 또, 유생이 매양 화부에 나아가 소공자 진과 서로 친밀히 사귈 뿐이요, 춘은 한 번도 찾지 아니하니, 이것을 보고 춘은 앙앙불락하더라.
춘에게 두 벗이 있었으니, 하나는 범환이란 자인데, 주색(酒色)에 방탕하여 남의 처첩을 도적하기를 좋아하고, 또 하나는 장평이란 자인데, 그 아비가 죽어도 분상(奔喪)치 아니하고 경향에 주류하여 바둑 장기와 노름으로 재물을 빼앗기를 일삼더니, 일찍이 두 사람이 춘의 우둔하교 어리석음을 보고 자주 왕래하여 친밀하매 스스로 막역지교(莫逆之交)라 일컫고, 주야로 술 마시고 음담패설(淫談悖說)하기를 일삼더라.
하룬가는 춘이 홀연 한숨을 쉬고, 불편한 기색이 있거는 범환이란 놈이 춘의 자를 불러 말하기를,
“경옥은 재상가의 귀공자로 재물이 산 같으니 만세 족할 것이어늘, 앙앙불락함은 어찌된 일이뇨?”
하니, 춘이 주저하다가 말하기를,
“내 평생 소원은 미인을 집에 두고 즐김이어늘, 내 아내 임씨는 자색이 없고 또 사이 불화하니, 심중이 불평하여 미녀 가인을 얻고자 하니, 이때까지 얻지 못하더니 월전(月前)에 우연히 서편 동산에 거닐다가 이웃집 담 아래서 한 옥 같은 미인이 꽃을 꺾어 손에 들고 배회함을 보매, 기운이 저상하고 심혼이 비월한지라, 옥패를 던지니 그 여자는 슬쩍 웃고 들어가거늘, 내 담을 넘어가니, 그 여자 초하에 앉아 있다가 일어 맞는지라. 근본을 물은즉 이르되 성은 조요 명은 월행인데, 본디 사족으로 아비가 장사(長沙) 땅으로 가다가 절강(浙江)에서 죽으매. 병든 어미와 수노와 생활한다 하거늘, 춘정을 못 이겨 운우지락(雲雨之樂)을 이루고 부실(副室) 삼기를 언약하였으나, 고모 성부인이 엄하여 감히 개구치 못하노라.”
범환이 웃으면서,
“경옥은 졸한 선비로다! 대장부 스스로 집을 주장할 거싱어늘, 어찌 다른 집 과부를 두려워하리요.”
장평도 웃으면서,
“경옥이 얼굴은 심히 어여쁘되, 한 늙은 콜콜한 과부에게 매였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하고 양인이 손뼉쳐 크게 웃으니, 머리를 숙이고 말이 없다가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집 형편은 자네들이 알 바 아니라!”
이런 이후, 춘은 조월행에게 점점 침혹(沈惑)하되, 성부인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비밀리에 하니, 범•장 양인밖에는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더라. 이 해 여름에 성부인을 공자더러 말하기를,
“네 나이 장성하고, 아름다운 기약이 늦어 가니 산동에 가서 윤공의 지극한 뜻을 저버리지 말라.”
공자는 내심에 헤오되, ‘내 한 몸도 위태하고 어렵거늘 어찌 두 아내를 거느리리요’ 하고, 그래서 사세 난처한지라, 그는 소리를 나직이 하고 이렇게 말하더라,
“소질이 실가(實家)의 생각이 없음이 아니로되, 3년 거상에 기혈이 모손(耗損)하고 정신이 아득하여 운무중 사람 같사오니, 어린 소견에는 수년을 기다려 몸이 완실한 후에 취처(聚處)하려 하나이다.”
성부인이 이렇게 말하는 공자의 뜻을 알아보고 추연 탄식하며 말하기를,
“네 말이 유리(有理)하나, 네 부친 생리에 정령히 윤공과 언약하되, 3년 후에 성례하리라 하였고 이제 3년이 되었으며, 소식이 없으면 윤공이 그간 사정은 모르고 의심할지라, 내 이제 아자로 하여금 행장을 다스리라 하였으니 너는 한가지로 하라.”
공자는 할 수 없이 수명 후, 성준을 따라 산동을 향해 가니라.
윤시랑이 황성에서 벼슬할 때에 남어사로 이웃하여 서로 막역지교가 되었으되, 두 집에 모두 혈속이 없어 만나면 서로 탄식하더니, 윤공이 순천 부윤이 되었을 때, 부인 조씨가 일몽을 얻으니, 그 꿈에 쌍별이 떨어져 품에 들거늘, 심중에 기이하게 여기더니, 그날부터 잉태하여 부인은 배가 불룩해져 1자1녀를 쌍태하매, 자녀의 기이함이 한 쌍의 명주와 같은지라, 공의 내외는 황홀 기애하여 여야의 이름은 옥화, 자는 홍염이라고 하고, 아들의 이름은 여옥, 자는 장원이라 이름하니, 이때 남어사 부인 한씨도 또한 기몽을 얻고 윤부인과 똑같이 이날 밤 아이를 배어 1녀를 낳으니 명광이 집에 비치는지라, 남공이 크게 기뻐하여 이름을 채봉이라 하고 자는 광애라 하니라.
이로부터 두 집에는 화기가 융융하는 것이고, 각각 8,9세가 지나매, 홍염소저와 장원공자는 언어동지가 서로 같아서 공자가 혹 소저의 옷을 바꿔 입고 나오면 부모도 알기 어려울 정도였으나, 남소저는 용모가 기이할 뿐만 아니라 시서를 능히 외며 여공에 못할것이 없고, 또 면복이 청수하여 일점 티끌이 없으니, 부인이 아끼고 보호하여 복과 명을 빌기를 일삼되, 남공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더라. 하룬가는 부인이 소저로 더불어 후원에 나가 꽃을 구경하더니, 홀연 시비 춘앵이 여쭈되,
“서촉에 있는 이괴란 여승이 권선을 가지고 왔나이다.”
하므로, 부인은 즉시 소저로 더불어 중당에 돌아와 시비로 하여금 그 여승을 맞아들인, 이괴 몸에 청나삼을 입고 백팔염주를 드리우고 손에는 금으로 꾸민 권자를 가지고 뜰에서 배례하더라.
부인이 명하여 자리를 주고 온 뜻을 물으니, 이괴 합장하고 하는 말이,
“빈도는 성도 화학산 자현암 중으로 법명은 청원이오며, 연전에 산적이 암자를 불지르고 재물을 탈취하여 가오매, 관음대사의 금상과 그림 그린 족자 다 불에 탔사오니, 빈도 발원하여 장차 암자를 중수하고 금상을 고쳐 만들새, 이제 거의 되었사오나 그림 족자를 가장 어려운지라, 당금에 명화 많사오나 이는 다 남자라 관음은 다른 부처와 다르오니, 반드시 여자의 그림을 써야 할 것이므로, 빈도 사방으로 주류하되, 그럴 만한 사람을 만자지 못하와 근심하나이다.”
부인이 소저를 돌아보며 슬며시 미소지으며,
“내 소시에 보월암에서 관음화상을 보았더니 금일까지 눈에 익은지라, 이제 div은 재주로써 대사의 마음을 위로코자 하노니, 어떠하뇨?”
이괴는 크게 기뼈하여 급히 몸을 일세워 말하더라.
“부인 말씀이 이러시니, 산문의 영행이로소이다!”
어머니 옆에 앉아 있던 소저는 이런 말을 듣고 급히 이렇게 말하기를,
“불가하여이다! 이는 불가의 큰일이라. 창졸(倉卒)에 그리지 못하리니,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드린 후에 그림이 옳을까 하나이다.”
“네 말이 옳도다.”
어머니는 감격해서 말하더라.
이괴는 소저를 첨망(瞻望)하고 그 말이 정당함을 기이히 여겨 부인에게 묻기를,
“소저 방년(芳年) 얼마나 하니이꼬?”
“아홉 살이로다.”
그래서 더구나 감동한 이괴는 보기를 오래 하다가 홀현 변색하거늘, 부인이 내심에 경아하나 그 말이 상서럽지 못할까 저어하여, 자세히 묻지도 못하더라. 다과를 내어다가 먹이니, 이괴는 부인에게 이런 말을 하니라.
“부인은 금일부터 목욕재계하소서! 빈도는 7일 후에 다시 와서 뵈오리이다.”
하고 이괴는 기약하고 돌다가더라. 7일 후에 이괴가 왔을 때, 부인은 이괴를 맞아 별당으로 들아거사 짚자리를 펴고 침향(枕向)을 피우고 소저가 친히 금박과 단청을 받들어 부인이 한목 생초에다 붓을 두르니, 오운이 영롱한지라. 그리기를 마채매, 벽상에 그것을 거니 관음이 완연히 살은 듯하거늘, 합창배례하고 무수히 칭사하더라. 부인은 또 황금과 비단을 많이 주어 시주하니, 이괴는 만복을 일컬으며 그림첩을 거둬 가지고 돌아가니라.
남공이 예부낭중으로 어사에 옮아 있더니, 이때 엄숭의 위엄과 권세가 조야에 진동한지라, 자란에게 3천관 은을 받고 조정에 권하여 대사도를 시키고 잡류와 부동하여 당을 이루고 일세에 횡행하니 남어사는 국사를 근심하여 글을 올려서 엄숭의 이러한 죄상을 탄핵하고 부중에 돌아와 부인을 대하여 엄숭의 농원함을 이르고 이로 말미암아 상소함을 이른대, 부인은 놀라서 말하기를,
“엄숭은 당세에 총신(寵臣)이라, 어찌 상공의 글로써 절제함이 되리이꼬? 도리어 개문에 대화(大禍)가 미칠까 하나이다.”
“신하되어 옳은 일에죽음은 떳떳한 일이라!”
하고 어사는 아무스럽지 않은 듯이 말하더라. 이때 천자가 남어사의 글을 보시고 대신을 모함한다 하시며 형벌로 다스리려 하실새, 화서 양공의 간언(諫言)을 좇아 그를 박주에 안치하시니, 남씨의 부중 상하가 모두 망극하여 공이 죽으리라 하였더니, 공이 죽기를 면하고 정배(定配)한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소저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여 장차 적소(謫所)로 발행하게 되었을 때, 윤시랑이 달여와 이별하며 말하기를,
“박주는 경사에서 5천 700여 리라. 멀리 강호를 건너매 안위를 알 길이 없고, 형이 자질과 형제 없고, 다만 딸 하나뿐이라. 한가지로 사지에 감이 심히 무익하니, 따님은 이에 머물러 두면 소제가 마땅히 진심 보호하여 후사를 잇게 하리라.”
남어사는 이러한 친구의 간곡한 정에 감동하여 허락코자 하나, 부인과 소저는 서로 덜어지지 아니하려 하므로 공이 마침내 일행을 데리고 함께 발행하여, 8월에 성문산에 이르러 좌수역에서 배를 탈새, 돛을 가볍게 달고, 순풍을 만나 순식간에 금사주에 지나니, 이때 동정호에 연기가 쇠진하고 군산에 달이 돋아오느지라, 문득 붉은 수건을 슨 장정 8,9명이 작은 배를 저어 남공이 탄 배를 따르거늘 공이 의심함을 마지아니하더니, 그 배는 점점 가까이 오며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 배에 뛰어올라 칼을 번득이는지라 공이 크게 노라 엄숭의 소위인줄 알매, 필연 면하지 못할 줄 알고, 부인으로 더불어 물에 몸을 던지니, 슬프다!
소인의 화얼의 궁극함이 이렇듯 심하도다, 이때, 일행이 다도적의 화를 입어 몰사하고, 홀로 시비 계앵이 소저를 안고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어 통곡하니, 도적의 무리는 불쌍히 여겨 강 언덕에 던져 버리고 날으듯이 가 버리니라. 그런데, 이때 촉(蜀)나라 청성산 운수동 곽선공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 곳에서 수도하더니, 하룬가는 가동더러 이를기를,
“오늘 밤에 동정호에서 원통히 죽을 자가 있으리니 내 마땅히 구제하리라.”
하고 이 신기한 도사는 가동 수인을 데리고 작은 배를 빨리 저어 악양 청초호에 이르매, 달빛을 따라 두 송장이 물에 떠오르는지라, 급히 돛대를 내려 건져서 봉창 아래에다 뉘어 노으니, 물이 구멍마다 흐르더라. 식경 후에 남공이 머리를 들어 곽선공에게 사례하며 말하더라.
“소생 남표는 죄를 조정에 얻어 박주로 귀양가다가 도적ㅇ르 만나 수중 원혼이 되었더니, 천만 의외에 선생을 만나 구제하심을 입사오니, 하늘 같은 은덕을 어찌 갚으리이까?”
“이는 일시 연분이니, 어찌 과도(過度)히 말하리요.”
하고 곽선공을 점잖게 대답하더라. 부인이 또한 정신을 차려서 좌우를 살펴보니, 딸이 보이지 않는지라 애연히 부르짖어 통곡하며 기절하니, 어사 역시 감비하여 구호하매, 부인이 다시 정신을 차려 서로 붙들고 또한 애곡하니라.
곽선공이 역시 비감(悲感)하여 남공 내외를 위로해 주더라.
하늘이 발자 어사는 곽선공에게 말하기를,
“소생 부부는 마땅히 몸을 문하에 의탁하여 정성을 다할 것이로되, 국가의 죄인인고로 부득이 하직하올지라. 이제로 선안을 한번 이별하면 산천이 길을 막으니, 또 어느 때에 다시 뵈오리이까?”
“인간 만사는 막비천장이오니, 어찌 인력으로 미치리요. 지난 일은 말할 것 없으니 마땅히 천명을 순수하여, 너부와 한가지로 군산에 돌아가 때를 기다리면 10년 후에는 길운을 만나리다.”
하고 곽선공은 역시 웃으며 점잖게 권고하더라. 어사는 선공의 풍채를 자세히 살피니, 과연 학발(鶴髮)이 이마를 덮고, 눈이 샛별 같으며 기우가 또한 헌앙(軒昻)하거늘, 심중에 헤오되,
‘부귀는 사람의 명를 재촉하는 기틀이라. 어찌 두렵지 않으리오!’
하고 이에 선공을 따라가기를 허락한대, 선공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어사로 더불어 돛대를 돌리어 청선산으로 들어가더라.
산에 이르니, 이 산은 자고로 신선이 노는 곳이라 푸른 기린과 사슴이며 보배풀과 기이한 나무가 곳곳에 있으니 선공이 구름 가운데 수간 초옥(數間草屋)을 이루매, 정결함이 그림과 같더라.
어사는 이에서 부인으로 더불어 세월을 한가지로 보낼새, 시시로 여아를 생각하고 그 때마다 눈물이 마를 때가 없더라. 그러면 남소저는 어떻게 되었는가? 소저는 동정호의 언덕에서 슬프게 울다가 몸을 강중에 던지려 하거늘, 계앵이 붙들고 애원하기를
“노야와 부인의 혼백을 위로할 자가 없고, 다만 남씨 혈속이 소저 하나뿐이라. 마땅히 설움을 억제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모의 원수 갚기를 생각할 것이어늘, 어찌 몸을 가벼이 버리려 하나이까?”
“내 9세 유아로 어찌 원수를 갚으며, 또한 강호 만리에 종적(蹤迹)이 외로우니. 비록 살고 싶으나 어찌 살 수 있으리요.” 하고, 남소저는 울며 말하는 것이더라. 이때 밤이 깊고 달빛이 명랑한데, 옥패 소리가 쟁쟁하며 멀리서 점점 가까이 오더니, 문득 한 선녀가 단장을 선명히 하고 손에 백옥잔을 들고 천연히 나와 읍하고 말하기를,
“첩은 용왕님의 명을 받자와 화상국 부인을 받들어 위로하나이다! 부인이 전생의 업원(業冤)으로 비록 일시 액운이 있으나, 10년 후이면 마땅히 부모를 만나 행복이 무궁하리니 귀체를 보중하시고, 무익한 슬픔을 말으소서.”
하고 선녀는 인하여 백옥잔에 감로수를 가득 부어 권하기로,
“긴긴 밤에 기갈이 있을 듯하여 용왕께서 이 선약을 보낸 것이오니, 부인은 한번 마시면 수일을 굶어도 배고프지 아니하고 즉시 신기(身氣)가 쾌차하리이다.”
소저는 옥잔을 받아 이내 마시지 아니하거늘, 계앵이가 옆에 있다가 말하기를,
“용왕께서 소저의 액경을 민망히 여기사 선약을 내리오시니, 성의를 가히 저버리지 못할지라. 청컨대, 소저는 한번 마시사 목을 적시소서.”
소저는 그제야 마지못하여 잔을 들어 마시니, 기이한 향취가 입에 가득하고 정신이 상쾌한지라, 소저 울며 선녀에게 말하기를,
“소첩의 죄악이 지중하여 이런 흉변을 당하였거늘, 용왕께서 성덕을 드리우사 가르침이 정녕하시니, 첩이 비록 죽어도 그 은덕을 갚사올 길이 없사오며 또 첩의 부모는 도적을 만나 수중에 몸을 던져 죽음이 분명하시거늘 어느 때 다시 만날 날이 있사오리까?”
“부인은 염려치 말으소서! 충신 열사는 그리 허허히 죽지 않사오니, 자연 붙들어 구할 사람이 있으리다.”
소저는 이러한 선녀 말을 듣고 오히려 믿지 아니하는지라, 계앵이가 또 옆에서 이해시키는 역할을 맡고 말하기를,
“선녀는 필경 우리를 속이는도다.”
하고, 그 여자는 우선 선녀에게 침 하나를 놓아 보니라.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용왕께서 이르시되, 남공의 충성은 하늘이 살피시므로 신선이 이미 배를 대고 구하였다고 하더이다.”
계앵은 자기의 역할에 금이 간 것을 알았고, 그래서 선녀의 말을 듣고 오히려 자신부터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지라, 선녀가 소저를 몇 번이고 위로해 주더라. 그런 후 선녀는 홀연 하직을 고하거늘, 계앵은 끝으로 소저에게 이렇게 말하더라.
“노신이 일찍 들자오니, 동정호에 자고로 신선이 있으매, 혹시 노야의 부인이 환생(還生)하신가 하나이다.”
소저는 선녀를 보내고, 또 이런 말을 듣자 탄식을 하며 말하기를,
“선녀의 말로써 헤아리건대 부모가 남의 구함을 입어 계시나, 내 일찍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아니하다가 이제 일조에 이별을 당하고 정령한 소식이 망연하니 내 어찌 참고 견디리요. 또 부모가 환생하여 계실지라도 이 불초여식으로 말미암아 간장을 태우시리니, 두루 생각하매 죽어서 모르고자 하노라!”
하고, 소저는 애곡함을 마지않더라. 이윽고 강촌에서 닭이 울고 동방이 환하게 밝아오는지라, 소저는 계앵더러 말하기를,
“어젯밤 일은 허탄(虛誕)하고 망령되어 가히 믿지 못하나, 또한 기이한지라. 잠깐 성명을 보존하였다가 타일 혹 부모의 얼굴을 뵈옵고자 하되 이곳은 이목(耳目)이 번다(煩多)하니, 반드시 욕보기 쉬운지라 깊이 바위 틈에 숨어 그림자를 피함만 같지 못하다.”
하고, 둘이서 머리를 내려 낯을 가리고, 산간 오솔길로 더듬어 들어가니라. 이쯤 되고 보니, 아, 슬프다! 소저는 부귀가에 생장하여 일찍 섬돌에도 내려섬이 없다가, 고봉준령(高峰峻嶺)의 석벽(石壁)을 어찌 행하리요. 50보를 못 가서 발이 부르트고 행보(行步)를 옮길 수 없으니, 노주(奴主)가 서로 손을 이끌고 수풀 사이에서 울더니, 홀연 용모가 청수한 할머니 하나가 죽장(竹杖)을 짚고 앞을 지나가다가 소저를 보고 큰길을 가리켜 준 후에 말하기를,
“저리로 10리만 가면 파릉 쌍계촌에 진가 성을 가진 큰 집이 있으니, 그 집 딸이 그대로 더불어 인연이 있으니, 그 집에 나아가 의탁하면 불구에 마땅히 구할 사람이 있으리라.”
하고, 이 신기한 할멈은 문득 간 데가 없더라. 계앵이 놀라하고, 소저 또한 이상하게 여기며 말을 하기를,
“신인의 가르침이 여차(如此)하니, 마땅히 천명을 순수하리라!”
두 여자는 파릉으로 향하더라. 서로는 가면서 붙들고 촌촌 전진하니, 이때 계앵이가 나이 13세라 태도가 요조 선명하니, 행인들이 두 소녀의 기이한 거동을 보고 서로 돌아보며 놀람을 마지아니하더라.
노주 두 사람은 쌍계촌에 이르러서, 거기서 소저는 임하에 은신하고, 계앵에게 이렇게 말하더라.
“내 규중(閨中) 처녀의 몸으로 평생에 알지 못하는 집을 급히 나아가지 못할지라, 너는 시험하여 진씨의 집을 찾아가서 탐지(探知)하되, 그 이름은 뉘이며, 벼슬은 무엇임을 물어 보아, 만일 내 집과 친척이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도로에서 죽을지언정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소저는 또 수중의 옥지환을 빼어 주며 말하기를,
“이는 우리 집 세전지보(世傳之寶)라. 모친이 항상 이 옥품과 진주의 기이함을 일컬으시던 것이니, 너는 이것을 가지고 매매하는 체하고 찾아 들어가면 혹시 그 집 소저를 볼 도리가 있을 것이니, 너의 총명으로 한번 보면 가히 그 성품을 알리라.”
계앵은 수명하고 진씨의 집을 찾더니라. 진씨의 집은 고을 안 남쪽에 큰 집이 하나 있거늘, 마을 사람더러 물으니 이렇게 대답해 주더라.
“이는 진상공 댁이라.”
하거늘, 계앵이 또 저 집 주인이 외임(外任)으로 계시다 하니 부인과 소저가 또한 따라갔을지라, 알지 못하겠노라. 집 지키는 사람은 뉘뇨 하고 묻더라.
“전년에 진노야가 대제독으로 산서에 출진하시되, 제독은 가권(家眷)을 데리고 가는 벼슬이 아닌고로, 부인과 소저는 머물고 가지 아니하였나니라.”
“그 집 소저 나이는 얼마나 되었으며, 그 외 사나이도 있느냐?”
“소저의 나이는 모르고, 다만 한낱 공자 있으되, 회남 숙부댁에 가서 글 배우고 돌아오지 아니한 지 3년이오. 그 밖에 다른 남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노라.”
계앵은 듣기를 다하고 심중에 헤오되, ‘진공이 이미 큰 벼슬을 하고 우리 노야와 척분(戚分)이 있으면 필연 통래(通來)하였을 것이어늘, 내가 세상을 안 이후로 진씨 관인이 우리 부중에 왕래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지라, 결단코 내외 족당(族黨)은 아닐 것이요, 우리 소저가 예법으로써 몸을 가지시나 만리 타향에서 어찌 친척의 집만 가리리요. 아무러나 내 집에 가서 동정을 살펴 보리라’ 하고 그 여자는 진부로 들어가니라.
이때 진도독 부인 오씨는 아홉 살밖에 아니 되는 딸을 두었으니, 이름은 채경이라. 안색이 옥 같고 덕행이 현숙하므로, 부인이 총애하여 매양 좋은 그릇과 패물을 만나면 값의 다소를 불문하고 사서 주더니, 이날 시비요영이란 년이 옥환 한 쌍을 가지고 들어와서 소저에게 이렇게 말하더라.
“차물이 비록 조그마하나, 옥품이 기묘하여 가희 우리 소저와 흡사하여이다.”
소저는 크게 기뻐하여 쥐고, 놓으려 하지 않는 것 같더라.
“뉘 집 소저가 기근(饑饉)을 견디지 못하여 손에 끼었던 보물을 파는고? 내 마땅히 모친께 고하고, 값을 세 배나 주어서 그 아끼는 마음을 위로하리라.”
“소저는 다만 이 옥환의 기이한 것만 보시고, 그 옥환을 파는 주인의 더욱 기이함을 아지 못하도다.”
“그 사람의 모양이 어떠하더뇨?”
“그 사람의 나이는 13세나 되고 몸에 청의를 입었으며 제 스스로 남의 집 사환(使喚)이라 하나, 그 자태와 행동은 드문 규수라도 미치지 못할까 싶더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부인이 나와서 옥환을 보고 역시 매우 놀라더라.
“옥은 곤사의 백옥이요 구슬은 바다 밑의 경주라. 겨울에 끼면 차지 아니하고 밤에 비치면 명광이 있나니, 이는 심상(尋常)한 집 보배가 아니라.”
하고, 부인은 자기의 견식(見識)을 자랑하며, 이것을 팔러 온 사람을 부르라고 시비에게 분
부하더라.
요영이란 년이 계앵을 데리고 한가지로 들어오니, 부인과 소저는 바라보고 크게 기이하게 여기더라. 계앵이가 나아가 부인에게 배례하자, 부인은 뜰에다 자리를 만들어 주고 묻기를,
“네 용모를 보니 부귀한 집의 시녀어늘, 무슨 곡절로 옥환을 가지고 분주히 팔려 하는다?”
계앵은 이런 동안에도 자기의 임무를 척척 해내고 있었고, 눈을 들어 살피매 부인은 과연 성덕이 안모(顔貌)에 나타나고 소저는 또한 온화하고 정숙한지라, 계앵은 심중에 기뻐하며 만족한 듯이 이렇게 대답하더라.
“소비는 남어사 댁의 시비옵더니, 노야가 나라에 죄를 얻어 악주로 귀양가다가 수적을 만나, 노야와 부인은 강중에 던진 바 되고 행중 제인이 다 죽었으되, 홀로 아홉 살 먹은 소저만이 요행으로 면사(免死)하여 노상에 방황할 새, 외로운 약질이 살길이 없는 지라 속에 끼었던 옥지환을 팔아 하루라도 목숨을 보전하려 하나이다.”
계앵은 그렇게 대답하고 눈물을 줄줄 흘리더라. 이 말에 부인은 참연(慘然)하여 말이 없고, 소저는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남소저의 정경을 들으매, 소녀는 자연 심간(心肝)이 서늘하고 아픔을 깨닫지 못하온지라, 제 9세 여아로 궁천지통을 품고 또한 의지할 데 없으니, 원컨대 모친이 성덕을 내리시와 가중에 거두어 두시고 소녀와 같이 양육하시면 남씨의 내외가 지하에서도 감동하올 줄을 아오이다.”
부인은 어린 땅의 등을 어루만져 주며,
“네 현심이 여차하니, 내 어찌 듣지 아니하리요.”
하고, 부인은 계앵더러 그 소저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되,
“이 앞 숲 사이에 있나이다.”
하고 계앵이 대답하니라. 부인은 즉시 시비를 명하여 교자를 가지고 계앵을 따라가 남소저를 맞아 오라고 이르고, 또 요영으로 하여금 소정에게 전달하여 말하기를,
“귀 소저가 변란을 만나 불행하게도 도로에 유리(流籬)한다 하매, 노신이 특별히 받들어 맞으려 하노라.”
이때에 남소저는 계앵을 보내 놓고 소식을 기다리더니, 이윽고 계앵이가 5,6명이나 되는 차환(叉鬟)으로 더불어 교자를 거느리고 오거늘, 소저는 내심에 생각하기를,
‘진씨 과인이 내 척분인가 보다. 그렇지 않으면 교자와 시바가 어찌 오리요?’
계앵이가 요영으로 더불어 소저 앞에 와서 요영이가 소저에게 부인의 말을 전하고 같이 가기를 청하자, 소저는 곁눈으로 계앵을 보니, 계앵이 그 뜻을 알아보고 말하기를,
“이는 진도독 노야 댁이라. 비록 우리 댁과 친척이 아니오나, 그 댁의 노야는 임소에 가서 계시고 공자는 회남에 가서 공부하시고 다만 부인과 소저만 계시는데, 그 인품과 성덕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케 하더이다. 소저는 조금도 염려 말으소서.”
이와 아울러 진소저의 말을 설명해서 들려 주자, 소저는 자기의 신세를 생각해서 할 수 없고, 게다가 또 그 집에 남자가 없다 함을 다행히 여겨 의연히 교자에 올라 진부로 향하더라.
요영이란 년이 먼저 부중에 돌아와 남소저가 온다는 것을 고하자, 오씨 부인과 소저는 크게 기뻐하여 자리를 중당에다 베풀고 기다리더니, 이윽고 남소저가 이르렀음을 고하거늘, 부인과 소저가 맞아들여 당에 올리니, 남소저가 자리에 나아가 부인에게 절을 올리더라. 부인이 소저로 더불어 조상(弔喪)할새, 부인이 나아가 남소저를 붙들어 위로하며 말하되,
“노신이 아까 귀댁 비자(婢子)로 하여 그대의 봉변함을 들으매 불승비감이러니, 여아가 그대를 한번 만나 볼 것을 지극히 원하므로 비자 요영으로 하여금 청한 바라. 다행히 누사에 왕림하여 꽃다운 얼굴을 대하매, 노신과 여아의 원이 족하도다!”
남소저는 눈물을 거두고 다시 일어나 절을 하고, 거기에 대답해서 말하기를,
“소자는 팔자가 기구하여 만리 타향에서 봉천지통을 당하고, 혈혈단신이 일개 비자를 데리고 전전 유리하와 지향을 몰라 망극할 따름이옵더니, 천만의외로 거두심을 입사오니, 그 은혜는 백골난망이로소이다!”
하고 실성통곡하더니, 부인이 재삼 위로하며 눈을 들어 살피매, 요조한 태도와 현숙한 언동이 비애 초췌한 중에도 여실히 나타나는지라, 부인과 소저는 탄복함을 마지않더라.
이렇게 해서 진소저는 남소저를 인도하여 자기의 참방에 들어가니, 비단 병풍과 수놓은 족자를 걷고 흰 돗자리를 펼쳐서 미죽(穈粥)을 친히 잡아 권하니, 아직도 10세도 차지 못한 소아로 예절을 잡음이 이러하니 어찌 기특하다 아니하리요.
이로부터 남소저는 계앵으로 더불어 진부에 머물새, 일신은 편하나 때때로 부모를 생각하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더라. 하루는 부인이 소저로 더불어 담화하다가 내외 척당(戚黨)을 물으니, 남소저는 금릉 공주의 외손된다 하거늘, 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그러면 그대는 노신에게 재종질녀(再從姪女)되도다. 노신의 외왕모(外王母)는 운양공주요, 운양공주는 곧 금릉에게 고모 되시는지라, 우리는 이렇게 상봉함이 어찌 우연타 하리요.”
“소질이 타향에서 천붕지통을 당하고 사고무친이옵더니, 이제 숙모에게 의지하매 어찌 만행이 아니리이까?”
하고 소저 역시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 이로부터 부인의 모녀는 남소저를 대접하기를 골육이나 다름없이 하고, 10여 일이 지난 후 홀연 문전이 분주하며 비복이 여쭈되,
“호광순무사 윤노야가 오시나이다.”
하고 아뢰더라. 부인이 크게 기뻐하더니, 남소저는 부인 앞에 있다가 진소저를 향하여 묻기를,
“산동 윤시랑이 아니시나?”
진소저는 두 빰이 붉어지며 머리를 숙이고 묵묵히 말이 없거늘, 부인이 웃으려 말하기를,
“과연 산동 윤시랑이니, 노신에게 내종 형이 되나, 윤시랑의 아들 여옥과 여아의 정통하였으므로 부끄러워 대답하지 못함이라. 그런데 현질은 어찌 윤시랑의 행적을 아나뇨?”
남소저는 추연히 낯빛을 고치고 눈물이 낯을 가리며 이렇게 말하기를,
“망친이 황성에 계실 때에 윤시랑이 대인과 집을 격린(隔隣)하여 교제 친밀하고 정의가 또한 골육 같은지라, 소질이 윤시랑 내외를 뵈었사오니, 오히려 지금까지 그 안면을 기억하나이다.”
말을 마치자 이때 이미 윤시랑이 부문에 이르렀는지라, 두 소저는 협실(陜室)로 피하고, 부인이 시랑을 맞아 서로 인사를 마치매, 시랑이 채경소저를 불러 옥수를 잡무고한히 귀여워하며 또 편지 한 장을 내어 부인에게 전하며 말하기를,
“내 올 때에 능주현을 지났는데, 평중이 마침 이르러 날로 더불어 조용히 수일을 한담할새, 평중이 이르되, 내 귀가할 기한이 아직 멀었고, 돈아가 또한 회람에 있으니 집에 주장할 자가 없고, 요사이 해적이 자심하여 강서의 모든 고을을 노략하다 하니, 강서는 나의 집에서 멀지 아니한지라 깊이 근심하노라 하더니, 글월 가운데 그 뜻이 있는가 하노라.”
하니 부인이 글을 보기를 마치고,
“종이에 가득한 말이 전부 이 뜻이오!”
하고 말하기를,
“또, 윤형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가자고 하니, 이번 행차에 만일 그곳을 지나거든 경아도 더불어 길을 차려 뒤를 따라 한가지로 제남으로 가서 서로 의지케 하라 하였는지라, 소매가 강호에 외로이 처하여 주야로 심신이 편치 못하더니, 이제 거기고 더불어 동행하오면 진실로 다행하거니와 거기서는 바야흐로 천관 중심을 띠고 무슨 연고로 고향으로 가시려 하나이까?”
“근일에 나의 친구 남어사가 간신의 해를 입어 귀양하고 임윤과 윤서 두사람도 또한 상소하다가 내침을 입었으니, 국사는 날로 글러먹어 엄숭 부자의 손에 처결하게 되어 가는지라, 이로써 화상서와 서소보 등 모든 재상이 다 물러가매 나도 세상일에 뜻이 없어 월전에 이미 가속을 제남으로 보내고 나도 같이 가려하였더니, 의외에 남순(南巡)하라는 명을 받들어 마지못하여 부월(斧鉞)을 잡고 왔으나 조정에 돌아가면 즉시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노라.”
"오빠는 남어사가 수중에 액사함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내 벌써 자평의 이런 화가 미칠 줄 짐작하였거니와 하늘도 어찌 이다지도 무심하신고? 아지 못하겠노라! 이 말을 뉘게 들었나뇨?”
하고 그는 놀라서 묻더라. 부인이 남소저의 말을 일일이 고하니, 윤시랑이 즉시 남소저를 부르매, 남소저는 눈물을 머금고 들어와서 시랑께 절하고 통곡하더라.
윤시랑이 위로하여 울음을 금하고, 이에 소저의 옥수를 잡고 추연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니라.
“노부는 나약하여 능히 영존(令尊)대인으로 더불어 한가지로 직절(直節)을 지켜 죽지 못하고 지금껏 살아 있으니, 유명에 부끄러움과 저버림이 많도다. 그러나 내 마땅히 영존 대인의 영혼을 한번 위로하리라!”
소저는 시랑의 말을 듣고 눈물을 비 오듯 올리며 능히 말을 이루지 못하더라. 윤시랑은 즉시 좌우를 명하여 제전(祭典)을 준비해 가지고 소저로 더불어 한가지로 금사탄 언덕에 이르니, 큰 강이 가로 흐르고 있을 뿐이더라.
소저는 강물에 임하니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실성통곡하니, 강물이 소저를 위하여 오열하는 듯하더라. 윤시랑이 소저로 더불어 강두에 서서 초혼(招魂)할새, 시랑은 어사의 혼을 부르고 소저는 부인의 혼을 불러 제전을 베풀고 비읍(悲泣)하다가, 시랑이 소저를 위로하며 돌아와 진부에서 수일을 머무르고 발행할새, 오씨부인이 두 소저를 데리고 시랑의 뒤를 따라 행하여 개봉부에 이르매, 시랑이 근신한 창두로 부인의 행거를 호송하여 제남으로 향하고, 시랑 자신은 광평을 진무하고 돌아와 궐하(闕下)에 복명(伏命)하고, 즉일로 상소하여 고향으로 돌아감을 빌더라. 그 청이 간곡하여 천자도 이것을 허락하시니라.
원래 윤시랑의 고책은 산등 제남부 역성현에 있으니, 이는 청주의 제일 명승지라, 강산의 절승함과 인물 누각의 화려함이 있고, 윤부는 그중에도 더욱 갑제(甲第) 주문으로 유명하더라.
이 해 가을에 윤시랑의 부인 조씨는 벌써 소저 남매를 데리고 먼저 돌아와 가사를 다스리고 시랑을 기다리더니, 홀연 시랑이 남으로 순행한다는 기별을 듣고 그것을 매우 근심하더니, 가인이 파릉에 있는 진도독의 부인이 온다고 고하거늘, 부인은 크게 기뻐하여 이를 맞이하니라.
좌정한 후, 진소저와 남소저가 조씨 부인에게 배례하니 부인은 진소저를 어루만져 별래 수년에 이같이 숙성함을 일컫고 또 남소저가 소복으로 오부인 옆에 붙어 있은 것을 보고 악연(愕然)하여, 오부인에게 이렇게 묻더라.
“차애는 남어사의 여야 채봉과 흡사하도다!”
오부인이 소저의 말을 전하니, 조부인이 참연(慘然)하여 소저를 잡고 읍체(泣涕) 여우하고 소저는 자리에 엎디어 호곡(號哭)하니, 이는 차마 그대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더라.
오부인이 소저를 붙들고 조부인에게 모녀지의를 행케 하고 조부인 곁에 모시게 하니, 조부인이 홍염소저와 공자를 불러 오부인께 절하고 또 남소저와 서로 볼새 형제 남매지예로 하더라.
윤소저는 남소저의 정상을 궁칙히 여기더니, 형제되매 좌석을 가까이 하고 정을 기울여 사랑하며, 공자는 남소저를 위로하고 남매지정을 후히 하더라. 이날 밤, 세 소저는 한가지로 침소에 돌아와 서로 사랑함이 골육에 비길 수 있는 것이어서 조부인은 매우 이들을 애중해 마지않더라.
그 후 월여에 윤시랑이 돌아오니, 조부인이 행역(行役)의 괴로움을 위로하고 남어서와 항부인의 사정을 말할새, 시랑 내외는 눈물을 머금고 차탄(嗟歎)함을 친척에게 더하니, 남소저는 감은 각골하여 효봉하는 정성이 간폐에 사무치는 것이더라.
이러구러 겨울이 지나고 다음해 8월에 기일이 이르거늘, 소저는 계앵으로 더불어 친히 찬물(饌物)을 장만하여 제사하고, 광음이 홀홀하여 삼상을 마치매 새로운 비통지심은 불가형언(不可形言)이러다. 이때, 윤소저와 남소저의 나이는 각각 똑같은 12세라. 시랑이 매양 경향 친구들을 만나면 문득 아름다운 신랑을 구하되, 마침내 뜻에 합한 곳이 없으니, 그는 탄식을 구하며 말하기를,
“내 두 딸로써 당세의 대군자께 맡겨 저희 신세를 쾌활케 하려 하되, 뜻에 마땅한 곳이 없어 근심하노라.”
그러자 두어 달을 보낸 뒤에 윤시랑이 부인에게 말하기를,
“내 마땅히 사해를 돌아 좋은 사위를 얻으리라.”
하고, 그는 드디어 천리 놀새를 타고 종자 수인으로 표연히 길을 떠나 절강으로 향하더라.
이때, 윤공자는 간간히 매제 침방에서 진소저를 대하매, 그 용모를 사랑하고 기꺼이 언어도 참예하나, 진소저는 냉엄하여 대답하지 않으니라. 하룬가는 공자가 부인의 침소로 들어가니, 오부인이 또 그곳에 있는지라, 진소저는 남소저로 더불어 바둑을 두거늘, 남소저의 바둑법을 보니 신묘한지라, 공자는 가까이 나아가서 남소저를 향하여 말하기를,
“우형이 능히 바둑법을 아나 능치 못하니 배우리라.”
남소저는 사양하다가 드디어 대국하여 공자가 연하여 세 판을 지니 두 부인이 남소저를 크게 칭찬하고, 윤소저는 공자를 희롱하여 말하기를,
“네 항상 유연자득하여 천하 일로써 어렵지 않다 하더니 이제 한낱 여자에게 곤한 바 되니, 이후에도 능히 큰 말을 하려는가?”
“남 누이는 일마다 신기하니, 진실로 세상 사람은 아니어니 누이와 진매는 소제 두렵지 아니하도다.”
“패군지장(敗軍之將)이 오히려 용맹을 발하도다!”
하고 윤소저는 웃으며 공박하니라.
공자는 오부인을 보고 말하기를,
“진매가 소질을 대하여 언어를 상접(相接)치 아니하오니, 한 집에 있는 정의가 아니라 원컨대, 숙모는 풀어 일으키사, 차후로는 다시 냉담한 빛이 없게 하시고 또 진매의 바둑법을 보니 진실로 소질의 적수라. 소질과 한번 대국하고자 하되, 소질의 청으로는 들을 리 없사오니, 원컨대 숙모는 권하소서.”
오부인이 이러한 공자의 언사를 사랑하여, 소저로 하여금 대국케 하니 소저는 부끄럼을 이기지 못하나, 모면할 수가 없어서 대국하니, 공자는 희기(喜氣)동탁하여, 소매를 높이 걷어붙이고 형세가 풍우 같으니, 대마가 죽게 되매, 공자는 물으기를 구하여 소저의 소매를 잡고 힐난(詰難)하기 시작하더라. 그러자 소저는 기국(碁局)을 믿고 말하기를,
“오빠가 위력으로 하니, 소매는 그 추루(醜陋)함을 겨루지 못하리로다!”
“진퇴자는 불승이라.”
하고 공자는 웃으며 말하더라, 부인 두 여자는 이것을 보고 우스워서 절도하고, 소저 두 계집애는 해연히 여기더라. 이날 밤 세 소저는 침소로 돌아와서 윤소저가 먼저 남소저더러 말하기를,
“장원은 가히 풍류남아요, 단정한 군자라 못 하리로다!”
하고 웃으니, 진소저는 부끄러워 아예 아무 말도 못 하더라. 하루는 윤시랑이 절강으로부터 돌아와 희색이 만안하여 부인에게 말히기를,
“내가 금번에 좋은 사위를 얻었으니, 이로 말미암아 음식이 달고 잠이 편하리로다. 여양후의 둘째 아들 화진은 금년이 13세인데, 실로 대현군자(大賢君子)라. 그 이름이 장차 천하에 진동하리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요!”
하고, 그는 또 두 소저를 돌아보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너희 형제는 우애가 지극하여, 한 사람을 좇고자 하는 뜻이 있으매, 노부는 이미 대현군자를 얻었는지라, 비록 눈을 감으나 여한이 없으리로다!”
하고, 주머니에서 그는 홍옥 비녀를 내어 윤소저를 주고, 또 청옥 원패를 내어 남소저에게 주더라.
“이는 다 화가의 신물이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잘 간수하여두라.”
두 소저는 그것을 받아가지고 침소로 돌아와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하기를 마지 않더라. 그러자 계앵이란 년이 정당에서 돌아와 찬연히 기쁜 눈물을 뿌리며 말하기를.
“선녀의 말이 과연 맹랑치 아니하여이다.”
“8년을 지내고 부모를 만난 후에야 가히 믿으리라.”
하고 남소저는 말하더라, 윤소저는 이러한 문답에 의아한 마음을 풀 수가 없더라.
“현매(賢妹)를 만난 이후, 노주가 서로 비밀한 말이 없더니, 이제 무슨 비밀을 말하고ㅓ, 날 돌려놓느뇨?”
“황당하고 허탕한 말은 귀로 들을지언정, 입으로는 가히 발설치 못하리라.”
하고 남소저는 대답하고, 또 계앵에게 말하기를,
“일은, 비록 허망하나, 형을 기임이 옳지 못한지라. 너는 말을 세세히 설명해서 들려 올리라.”
계앵은 선녀 하던 말고 전후에 지낸 설화를 일일이 죄다 설파(說破)하니,윤소저는 청파에 놀라며 기이히 여겨 감동해서 말하기를,
“그러면 현매의 양당이 필경 무사하시도다. 현매의 지극한 효도로 어찌 하늘인들 무심하리요.”
이런 후 윤시랑 부부는 두 소저와 공자의 혼구(婚具)를 다스려 차례로 성례시키려 하매, 세월이 덧없음을 한하는 것이라.
그 후 어느 날. 공자는 두 소저로 더불어 오부인 곁에 있더니, 문득 시랑이 걱정한 빛을 띠고 밖에서 달려 들어오며 말하기를,
“천하에 의외의 일도 많도다! 진평중이 본디 청렴결백(淸廉潔白) 하거늘, 이 어찌 놀랄 일이 아니랴!”
“상공이 어디서 들어 계시니이까?”
하고 부인이 크게 놀라서 묻더라. 시랑이 그 집의 하인이 왔다는 것을 말하자, 오부인이 듣고 앙천 탄식하고 즉일로 치행하여 서울로 갈새, 조부인이 소저를 데리고 감이 무익하매 이곳에 두고 가라고 청하자, 소저는 울면서 말하기를,
“엄친이 대화중에 계시거늘, 소질이 비록 여자이오나 어찌 차마 평안히 있으리이꼬!”
이에 세 소저는 손을 잡고 서로 이별할새, 눈물이 옷깃을 적시더라. 오부인이 소저로 더불어 길을 재촉하여 황성에 나아가매, 공이 이미 옥중에 있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소저는 천지 망극하여 호통 수차에 기절하여 인사를 모를 정도였더라.
그전에 진공이 병부에 있을 때, 엄숭의 수양아들 조문화가 진소저의 아름다움을 듣고 구혼하거늘, 공이 준절(峻節)한 말로 거절하여 물리치니, 문화는 대로하여 엄숭을 부촉(咐囑)하여 공을 내쳐 노안부 재독을 삼으니라.
그러자 이에 이르러 양석으로 하여금 천자에게 무함하되, 공이 태원전 3천 여 만 냥을 도적질해 먹었다 하니 천자는 크게 노하사, 진공을 잡아올려 옥에 가두니, 조문화는 오부인과 소저가 본댁에 있다는 말을 듣고, 오부인의 종형되는 오남중에게 말하기를,
“진평중이 비록 사지에 들었으나 진실로 내 한 말이면 족척(族戚) 구하리니, 진평중이 나를 업수이 여겨 혼사를 박절히 막았거니와, 이제 나는 혐의를 두지 아니하고 덕으로써 원수를 갚으려 하노라. 그대는 평중과 인척(姻戚) 간이라 하니, 만일 평중으로 하여금 살아서 옥문을 나오려 하거든, 내 말을 평중의 딸에게 전하라. 제 만일 효녀의 마음이 있을진대 반드시 그 거처를 알리라.”
오남중이라는 자는 원래가 권세에 붙는 자라. 이 말을 듣자 대번에 그리 하마 하고, 즉시 돌아와 오부인께 사실을 전하니, 오부인은 크게 노하여 꾸짖더라.
“도적이 감히 내 여아를 모욕하는다?”
하고 그 여자는 분기가 발발하되, 소저는 안색이 여상(如常)하여 조용히 모친에게 고하기를,
“옛적 효녀는 관비(館婢)됨을 자원하여 그 아비의 사죄를 면한 여자도 있고 또한 몸을 팔아 그 아비의 영장을 같이한 여자도 있었으니 이제 소녀의 일신이 다 부모의 주신 바라. 부친이 이제 사지에 계시거늘, 자식된 자 마땅히 부모의 목숨을 위할진대 어찌 제 몸의 영욕을 의논하리이까!”
부인은 소저의 절개가 빙옥 같은 줄로 알았더니 이런 말을 듣자 막연히 말이 없다가, 울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니라.
“내 어찌 네 마음을 의심하리요마는, 딸을 죽여 아비 살리기를 구하는 마음이 어떻다 하겠느뇨? 너는 스스로 생각하여 하라.”
소저는 조금도 어려운 빛이 없이 오낭중을 대하여 쾌히 허락하니, 낭중이 크게 기뻐하여 돌아가 이대로 조문화에게 전할 때, 문화는 크게 기뻐하여 돌아가 이대로 조문화에게 전할때, 문화는 크게 기뻐서 청천에 오를 듯 하여 다음날 다시 엄숭을 달래더라.
엄숭은 천자에게 주달(奏達)하고 진공을 감사 정배(定配)하여 운남 땅에 귀양 보내니, 진공이 옥문에서 나오매, 오부인과 소저는 서로 붙들고 통곡하니라. 공이 개연장탄하며 말하기를,
“내 능히 기미를 살펴서 일찍 물러가지를 못하고 이런 곤욕을 받으니, 수원숙우(愁怨孰尤) 하리요! 연이나 내 능히 살기를 바라지 못하였더니, 성상이 특별히 용대(容貸)하시니, 진실로 성은이 망극하도다!”
부인이 조문화의 말을 전하자, 공은 청파에 노발이 충천하여 이렇게 소리치니라.
“차라리 죽을지언정 어찌 차마 간적(奸賊)과 결친하리요! 그리고, 또 내 여야는 3세 적부터 윤랑으로 더불어 청혼하였으니, 대장부가 어찌 자식을 팔아 목숨을 구하리요!”
소저는 소리를 나직이 말하기를.
“사세가 급박하와 소녀는 경솔히 허락하였으나 방편이 있사오니, 원컨대 부친은 소녀로써 염려를 삼지 말으소서.”
언파에 의기가 가역하거늘, 공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함을 이기지 못하다가 인하여 가만히 생각하되,‘내 여아는 어려서부터 담략(膽略)이 과인하더니, 이제 그 말이 이러하니, 분명 기이한 꾀가 있어서 정절을 온전히 하리니, 내 또한 그 뜻을 좇아 보리라’하고 이에 그 계교를 딸에게 물으니,
“여차여차하고 하나이다.”
하고 소저는 설명하니라.
“내 여아로 하여금 변복(變服) 하고 사방에 유리(遊離)하게 하니, 이는 사람이 차마 못할 바로다! 운남 700리를 아녀자의 몸으로 어찌 가리요. 모름지기 회남으로 보내서 운아로 더불어 서로 의지하게 하리라.”
하고 공은 탄색하며 말하더라. 부인은, 처음에는 소조가 장차 몸을 죽여서 절을 밝히리라 하여 간장이 베어 내는 듯하더니, 이제야 그 흉중에 계교가 있음을 듣고 대견하여 또한 탄식하며, 소저의 등을 재삼 어루만져 주니라.
“생사이별에 관산이 만리라, 눈물이 어찌 흐르지 아니하리요,”
공이 부인으로 더불어 발행한 후, 소저는 침소에 돌아와 누워서 주야로 호곡하더니, 이때 조문화가 짐짓 혼인하기를 재촉하거늘, 소저는 유모로 하여금 말을 전하여 이렇게 말하기를,
“부모를 새로 이별하매 정희 망극하니, 마땅히 수십 일을 참아 마음이 진정된 후에야 가히 성례하리라.”
유모가 돌아가 소저의 말을 전하니, 문화의 아들이 즐겨함을 마지아니하는지라. 문화 또한 기다려 볼 생각으로 말하기를,
“인정이 그럴 듯하니 제 말을 좇아 할 것이요, 또 제 이미 독에 든 쥐가 되었으니, 완완히 한들 어디로 가리요!”
4,5일 후에 그는 시비로 하여금 소저에게 가보라고 하였으나, 시비가 가니 소저는 구름 같은 머리로 낯을 가리고 침금에 싸여 신음 하다가, 미미한 소리로 유랑을 불러 말하기를,
“내 심란하던 차에 풍한에 감상하여 바야흐로 조리하고 빨리 쾌차하오면 부모 살리신 은혜를 갚고자 하오나니, 그러나 외인이 자주 왕래하면 내 마음이 심히 불편하도다.”
시비가 돌아가 이대로 고하자, 문회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
“제가 진실로 효도스럽고 덕을 아는 자로다. 이제 마땅히 제 뜻을 맞추어 저로 하여금 성가스럼이 없게 하여라.”
이로부터 비록 사람을 문 밖에 보내어 안부를 물으나, 다시는 망령되이 들어가지 말라고 하였으니, 말하자면 그는 상대방에 대해서 완전히 신뢰를 갖기 시작한 것이더라.
소저는 10여 일 지난 뒤에 아버지의 행차가 이미 멀리 갔으리라 믿고, 유모와 시비 운섬 등으로 더불어 밤에 가벼운 행장(行裝)을 차려 모두가 남복을 하고, 일필(一匹) 청마를 몰아 회남으로 향하더라.
이튿날 문화의 집사람이 와서 보니 빈집이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지라 크게 놀라 동리 사람들더러 물으니, 누가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인가. 아무도 안다는 사람이 없자 문화의 집 사람은 무료(無聊)히 돌아와 이러한 사실을 죄다 주인에게 고하니라.
그러자 조문화 부자는 눈이 멀개지고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보며 한참 동안 말을 못 하다가, 사람으로 하여금 급히 오낭중을 부르니, 낭중이 전도하여 오거늘 문화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지러이 꾸짖어 가로되,
“네가 감히 우리 부자를 속이나뇨?”
오낭중은 영문을 몰라 크게 놀라며 이렇게 말하니라.
“준공은 이 무슨 말씀이니이꼬?”
“진가년이 도주하였으니, 어찌 너의 조화 아니리요?”
오낭중은 그제서야 크게 놀라 황겁하여, 하늘을 우러러 맹세하면서 말하기를,
“소생은 실로 아지 못하오나, 마땅히 진심갈력(塵心竭力)하여 찾아보리니, 원컨대 존공은 분을 그치소서,”
그러니 문화의 아들은 혀를 차며, 아비를 원망하기를 마지않더라.
“만일 당초에 급급히 성례하거나, 비복을 많이 보내어 그 집을 호휘하였더면 반드시 오늘과 같은 걱정이 없사올 것을. 대인의 경계심이 너무도 늦되어 일개 아녀자에게 속은 바 되니, 불가사문어타인이로소이다.”
조문화는 또 뉘우치고 한함이 골똘하여 다시 오낭중을 꾸짖기 시작하니, 그의 원한은 어차피 오낭중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니라.
“진가년을 찾아 들이지 아니하면 네 결단코 센머리를 보전치 못하리라! 급히 가서 찾아오라!”
오낭중은 황망히 대답도 못 하고 집으로 돌아와 머리를 치고 가슴을 두드리며 말하기를,
“내 불길한 진녀의 연고로써 권문에 성낸 바 디어, 욕을 만단으로 받으니, 이 무슨 액화인고!”
그는 즉시 가동 수인으로 하여금 운남 대로를 밟아 달리더라. 원래 진공의 아우 진형수라는 자는 성품이 높고 행실이 조촐하여, 회남 운몽에 숨어서 살고 있었으니, 진공은 그에게 아들을 보내어 글을 배우게 하니, 그 아들의 이름은 창운일러라. 진공이 지난번 옥에 들어갈 때, 집사람더러 이렇게 이르기를,
“내가 권세 있는 간신에게 어김이 많으니, 그 화를 가히 알지라. 창운이가 만일 오면 필경 화를 당하리니, 부자가 함께 죽으면 이는 종사(宗嗣)가 그침이라. 나 죽은 후에야 비로소 창운에게 통지하되, 산중에서 목숨을 보존하였다가 타일에 원수를 갚고 헛되이 죽게 말라.”
이 때문에 더구나 창운은 아버지의 변고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더라. 이때에 소저는 영청현으로부터 곧장 운몽산으로 향해서 가고 있었으나, 길이 산동을 지나가는지라. 소저는 스스로 윤시랑 내외의 4,5년 무애하던 은혜와 공자의 오매 사모하던 정경을 생각하매, 자연 눈물이 옷깃을 적시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내심 혼잣말로,
‘박명한 여자로 부모에게 화를 끼치고, 궁전지통을 품어 이미 천하의 죄인이 된지라. 요행 신명이 굽어 불쌍히 여기사, 엄친(嚴親)이 겨우 대율지화를 면하였으나, 만리 원정에 돌아올 날이 없으니, 부모가 이 세상을 하직하시는 날에는 나도 인하여 명을 결단하여 내 죄를 씻고 내 원을 미치리라. 실가지도(室家之道)는 비록 대륜이라 하나 부모에 비하면 오히려 경종이 있으니, 이 마음이 이미 정한지라. 가히 깨치지 못하리니, 슬프다! 윤랑으로 더불어 이생에서는 그만 말지라. 인정이 마땅히 윤숙부 내외와 두 언니들에게 영결(永訣)할 것이로되, 그곳은 한번 들어가면 반드시 허다한 난처한 사단이 없지 않을 것이니, 백 가지로 생각하나 정을 버리고 의를 온전히 하는 것만 같지 못한지라. 그러나 윤랑은 다정한 자라. 필경 나로 말미암아 마음을 부질없이 허비하며 그 아내 둘 기약을 어길 것이니, 내 한갓 윤랑의 마장이 될지라. 박명한 사람이 사사건건이 이러하니, 전생에 무슨 죄악이 얼마나 많건대 이러한고?’
때문에 소저는 몸은 고슴도치에 놀란 새 같고 마음은 갈구리에 맞은 고기 같으니, 행하면 반드시 걸음이 더디고 앉으면 반드시 울음을 일삼게 되더라.
행한 지 10여 일에 겨우 평원역을 지나 객점에서 노새를 먹이더니, 홀연 일위 명관이 한 교자를 호위하여 앞을 지나 옆 주점으로 들어가거늘, 이에 운섬이 원래 여자의 몸으로 변복한 것을 잊어버리고 울틈으로 엿보이니, 두 교자가 일시에 말을 구르며 두 부인이 연보를 옮겨 당에 오르는데, 앞선 이는 나이 이 팔쯤 되어 보이고 봉관화상에 체모가 웅장하고, 뒤에 선 이는 난이가 겨우 비녀 꼽기에 이르지 못하고, 처녀의 복색으로 뒤를 따라 당에 오르매, 안색이 요조하여 태양이 처음으로 부상에 오른 듯하니, 그 고운 자태와 정숙한 거동이 윤∙남 두 소저와 방불한지라 운섬이 한번 보매, 마음이 소스라치고 정신이 황홀하여 급히 돌아와 소저에게 말하기를,
“소비 항상 이르기를 색덕이 천하에 오직 윤∙남 두 소저와 우리 소저뿐인가 하였다니, 아까 행차중 한소저의 풍광을 보오니, 요조한 자태가 마땅히 윤∙남 두 소저와 방불하더이다.”
“세간에 어찌 윤∙남 두 언니와 같은 이가 있으리요?”
“공평하게 평할 것 같으면 윤∙남 두 소저에게 비하면 오히려 나올지언정 못함은 없을까 하나이다.”
하고, 운섬은 대답하더라. 진소저는 원래 운섬의 식감이 정명한 줄 아는고로 마음에 흠모하더니, 이윽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윤부의 은혜를 받음이 심히 후하고, 또 윤랑의 금석 같은 신의가 나에게 권권하는지라, 내 비록 여자나 어찌 마음에 감동치 않으리요. 이제 내 한번 회남으로 가서 운남으로 전향한 즉 형영(形影)이 역격(逆擊)하고 소식이 둔절하리니, 윤랑은 당상에 양친이 있고 다른 동기가 없으매, 그 형세가 마침내 타문 규수를 구하고 말 것이니, 만일 범상한 여자가 그 문에 들어갈진대 윤랑의 풍류와 운치가 소색할지며, 또한 윤∙남 두 소저의 절세한 색덕으로 어찌 욕되게 어깨를 서로 겨루고자 하리요. 아깝도다! 어쩌면 이 점중에 든 여자를 내가 윤랑께 천거할 수 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한 바이라.”
하고, 그 여자는 계속 그 꾀를 생각하는데 전념하는 것이더라. 이러구러 점심이 들어오자, 차마 먹지 못하고, 홀연 한 꾀를 생각하여 분연히 일어서며 그 여자는 이런 말을 하더라.
“사람이 세상에 나매, 지기를 위하여 죽는 이도 있나니 내 어찌 일시 부끄러움으로 윤랑을 위하여 죽은 배필을 얻으매, 중매됨을 혐의하리요.”
소저는 결심을 하자, 즉시 나귀에 올라 운섬 등으로 더불어 오던 길로 다시 찾아 나아가 백편교에 이르러 나귀에서 내려 다시 위에 앉았더니, 조금 지나고 그 명관이 채교를 영호하여 오다가 노상에서 보니, 일위 미소년이 오건 주삼으로 시냇물가에 무심히 앉아 손으로 벽도화를 꺾으면 추파를 던져 돌아오는지라. 그 명관이 크게 놀라 이윽히 보다가 표연히 말에서 내려 소저를 향하여 읍하고 묻기를,
“수재는 어느 곳으로 향하고자 하여 이에 앉았나요?”
소저는 일어서서 읍하고,
“생은 바야흐로 회남으로 향하더니, 마침 이 다리를 지나매 도화가 심히 아름다워 구경을 탐하여 머물렀나이다.”
명관이 먼저 성명을 통하되,
“나는 제주 사람이니, 성은 백이요, 명은 경이요, 자는 성규니, 원컨대 수재의 성명을 듣고자 하노라.”
“학생은 산동역성 사람으로, 성은 윤이요, 명은 여옥이요, 자는 장원이라. 족하(足下)를 뵈오니, 일찍 청운에 올라 계시니 아지 못하겠노라. 무슨 벼슬에 거하시니이꼬?”
“복이 춘간에 등과하여 한림 편수에 거하였나이다.”
하고, 대답한 다음 그는 또 소저에게 묻기를,
“장원이 역성에 거하였은즉, 혹시 윤시랑과 친되시나이까?”
“시랑은 하생의 엄천이로소이다.”
백한림이 이미 소저의 아름다운 용모를 흠모하던 차에 윤시랑의 아녀됨을 듣고 마음에 크게 기뻐하여 드디어 한가지로 고금을 담론하매, 소저의 문장 언론이 강하를 튼 것 같은지라 한림이 동용흠탄(動容欽歎)하여, 무릎이 꿇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이렇게 말하기를,
“옛적에 정본이 맹자로 더불어 노상에서 만나 일산을 기울이고 담화하였나니, 복이 이제 장원의 문장을 보니, 어찌 고인만 같지 못하리요!”
소저가 공수 결사하자 한림이 또 묻기를,
“장원이 이제 방년이 몇이나 되었으며, 일찍 아름다운 인연을 정함이 있나이까?”
“학생의 천한 나이는 13세이요, 일찍 진도독의 여식과 정혼하였으니, 그 집이 악주로 귀양가매, 소식이 둔절한지라 타문에 구혼코자 하되, 아직 적당한 곳이 없나이다.”
“복이 그윽히 간청할 일이 있나니, 장원은 외람히 여기지 아니리이까?”
“명교를 내리시매, 어찌 감히 봉승(奉承)치 아니하리이까?”
“복이 한 누이 있어 바야흐로 경사로 향하더니, 연치 장원으로 더불어 상적하고(相適)하고 그 재덕이 족히 군자의 배필이 될 만하니, 장원이 비록 경사에서 놀아 숙녀를 구하나, 두렵건대 나의 매제의 위에 거할 자 쉽지 아니하리니, 원컨대 장원은 나의 문미함으로써 물리치지 말지어다.”
“부모가 재가(在家)하시니, 혼인 대사는 학생이 감히 자정치 못할 배라. 족하는 황성에 이른 후, 시험하여 가친께 통혼하신 즉, 가부간 응답이 계시리이다.”
“장원의 말씀이 정히 당연하나, 주장은 존당이 계시거니와 취사는 장원에게 있나니, 바라건대 장원은 오늘날 지극한 뜻을 저버리지 말지라.”
“명교대로 하리이다.”
백한림이 크게 기뻐하여 다시 소저와 담소미미하여 서로 손을 차마 나누지 못하는지라, 소저는 일어서서 읍하고 돌아가기를 고하며 말하기를,
“일색이 장차 저물고, 앞길이 또한 멀므로 총거(怱據)하여 온토(穩討)함을 다하지 못하나니, 타일 황성에서 마땅히 존안을 다시 뵈오리이다.”
한림이 창연(悵然)히 작별하고 각각 길을 나눠 행할새, 진소저는 여러 날 만에 회남에 이르러 숙부와 창운을 보고 부친의 화액(禍厄) 만나심을 전하여 서로 통곡하니, 차사는 말하기를,
“운남이 전원하여 너희 남매는 가히 행치 못하리니, 너희들은 과려(過慮)치 말고 이곳에 있으라. 내 홀로 가서 형장을 보호하리라.
“부친이 가실 때에 말씀이 또한 숙부님 말씀과 같사오나 돌아보건대 부친의 화액 만나심은 다 소질의 죄이오니, 소질이 부모 슬하에 명을 바쳐 흉중에 있는 지통(至痛)을 펴고자 원하옵나이다.”
차사는 마지못하여 소저와 공자를 데리고 한가지로 행하나니라. 그런데 이때 윤시랑 부중에서는 오부인과 진소저가 발행한 후 소식이 없어 몹시 걱정하고 지내더니, 문득 진소저가 조문화에게 허혼하고 진공이 면사하였다는 말을 듣고, 부중 제인이 모두 착악(錯愕)하여 서로 돌아보아 진소저의 무신(無信)함을 개탄하되, 오직 윤․ 남 양소저는 눈물을 흘리며 탄식만 하더라.
“효자 진매여!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고, 윤소저는 혼잣말처럼 크게 외치더라. 남소저는 침음양구(沈吟良久)에 말하되,
“진매는 도량이 과인하고 복이 만면하니, 결단코 원통히 요사(夭死)할 기상이 아니매, 반드시 무슨 기특한 일이 있으리라.”
하고 두 소저는, 인하여 윤사랑에게 고하고, 급히 가동을 황성으로 보내서 소식을 탐문할새, 월여에 가동이 돌아와 회보하되,
“진부의 부중이 공허하였기로 이웃 사람들더러 물은즉 울면 서 가로되, 저 집 소저는 하늘로 올라갔는지 땅으로 들어갔는지, 찾던 사람은 많으나 아는 이는 전혀 없노라고 하기로, 두루 방문하나 마침내 성식이 망연하여 알 길이 없더이다.”
라고 말하더라. 윤․ 남 양 소저는 슬퍼하고, 노복 들이 서로 돌아보며 그 연고를 몰라 하더니, 수십 여 일이 지난 후에 홀연 일개 창두가 이르러 회남 진처사 댁에서 왔노라고 소저의 서간을 윤․ 남 양 소저에게 드리라 하거늘, 양 소저 재빨리 받아 떼어 보니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더라.
‘양위 언니께 고하옵나니, 차회라! 여자가 세상에 나매 본디 다행치 아니하거늘, 하물며 소매와 같이 화액을 받는 자 또 어디에 있사오리까? 소매는 비록 살을 베어 피를 뿌릴지라도 부모의 이미 상한 살을 다시 낫게 하지 못하리니, 슬프다! 소매는 천지로 더불어 무궁한 한이 있는지라. 일로 좇아 하늘께 맹세하고 마음에 결단하여 살아도 또한 부모를 좇으며 죽어도 또한 부모를 좇으려니와, 그러나 지극한 설움과 그윽한 원한이 어찌 그침이 있으리이까? 차회라, 옹향각에서 매화를 꺽던 일과 농취정에서 글 짓던 일은 어제 같거늘, 홀연 천애(天涯)에 윤락(淪落)하니, 가슴이 막힌 것 같은지라. 슬프다! 숙부모께서 머리를 어루만져 기출(己出)같이 애휼(愛恤)하시던 은혜와 우리 언니들의 유애하던 정은 오직 후생에나 갚기를 바라나니, 간장이 끊어지고 기운이 막히어 다 아뢰지 못하나이다.’
또 하나 별지에는 이렇게 씌었으니,
‘소매는 평원역 객점에서 한림 백경의 매씨를 만나매, 춘섬이 친히 그 용모를 보고 백녀는 진실로 금세에 희한한 인물이라 일컬으니, 원컨대 언니는 유심불망하시와 숙부모께 고하옵고, 소매의 연고로써 오래 시찬지모를 비우지 말으소서. 소매는 일시 부끄러운 혐의를 피치 아니하고, 이미 변목하였는고로 백경으로 더불어 백련교 위에서 잠깐 서로 수작하매, 소매는 오빠의 성명을 빌어 약속이 정녕하였으니, 일후에 백한림이 반드시 통혼하는 일이 있거든 마땅히 잘 주선하소서. 소매는 차생(此生)은 그만이오니, 어찌 다시 바람옴이 있사오리까? 부원하노니, 언니는 깊이 헤아리사 소매로써 외람(猥濫)하다 말으소서.’
윤․ 남 양 소저는 이것을 읽고 나자, 눈물이 낯을 덮어 능히 다 읽지 못하더니, 별지에 스인 말을 보고 침음양구에 장탄식을 하며 말하기를,
“슬프다! 이 사람의 심덕(心德)이 여차하니, 어찌 마침내 천복을 누리지 않으리요.”
이에 윤부의 상하가 다 이 글을 보고 눈물을 뿌려 진소저를 생각하고 차악비탁하여, 또 남소저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경복(敬服)해 마지아니하더라.
이때에 윤공자는 진소저의 소식을 듣고, 부모 앞에서는 안색을 강작(强作)하여 희열한 빛이 있으나 촉물 감상하여 두 소매에 눈물이 마를 때가 없으니, 양 소저는 매양 근심만 하더라.
하룬가는 두 소저가 부인을 모시고 정당에 있더니, 공자가 밖으로부터 달려 들어오며 어머니에게 여쭙기를,
“한림 백경이라 하는 자가 1봉 정서를 소자에게 부쳤사온데 그 글에 하였으되, 백련교의 분수지후로 어느 날 어느 때에 어찌 장원을 잊으리요 하며, 또 대인께 글월을 올려 나를 대현군자라 칭찬하고 혼인하기를 간청하였사온데, 이 백련교에서 이별하였다 하는 것은 아지 못할 말이요, 일찍 허혼하였으니, 부모께 고하고 택일 성례하자 함은 더구나 망연부지로소이다.”
“그러면 서찰이 그릇 전함이 아니랴?”
하고 부인도 의아해하더라. 그러나 두 소저는 이미 진소저의 별지를 보고 그 묘책을 알았으므로 서로 보며 웃기를 마지않더라.
이 때 윤시랑이 들어오자 부인이 묻기를,
“여옥의 말을 듣건데 백한림이 통혼하자고 한다 하니, 백한림은 어떠한 사람이오니까?”
“내가 일찍 그 부친과 친한지라, 서중에서 구의(舊誼)를 일컫고, 또 피봉(皮封)에 제남 전임 이부시랑 윤대인 좌하라 썼으니, 어찌 분명치 아니하리요.”
“그런즉, 여옥에게 부친 글이 어찌 맹랑치 아니리이까?”
“이는 가장 괴이토다.”
하고, 윤시랑은 말하고 인하여 침음장사하다가 이에 공자로 하여금 지도를 내어오라 하여서 안상(案上)에 펴놓고 보더니 말하기를,
“백련교는 평원역 북쪽 이리허에 있으니, 이곳이 경성에서 회남으로 가는 길이라, 필연 진가 여자가 변복하고 회남으로 갈 때에 백한림을 백련교서 만나 서로 수작하다가 여옥의 성명을 빌어 씀이로다.”
윤 ․ 남 두 소저는 곁에 있다가 앞으로 나와 설명하기를,
“지난번 진씨의 서중에 두어 줄 별지가 있어서 여차여차 일렀사오나, 소녀 등이 하도 허황하고 기막힌 일이 되어서 부친께 여쭙지 못하였삽더니, 이제 듣자오매, 백가에서 사람을 보내어 청혼하였다 하오니, 진씨는 방가위지(方可謂之) 여장부라 하리로소이다.”
윤시랑은 소저로 하여금 진녀의 서찰과 별지를 가져오라 하여 보기를 마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불쌍타! 진녀야. 기특하다! 진녀야. 제 어찌 내 집을 아주 영결코자 하느냐? 천리인들 반드시 그렇지 아니하리로다!”
부인이 또한 장탄양구에 말하기를,
“진녀는 회심치 않은즉, 상공은 장차 여옥을 어떻게 처치하려 하시나이까?”
하고 묻더라.
“비록 태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마르더라도, 여옥이 어찌 진녀를 져버리고, 타문에 취처하리요? 먼저 진녀를 취한 후에 다시 형편을 보아 백녀를 취케 하리라.”
공자는 이 말을 듣고 다행히 여기더라. 윤시랑은 외당으로 나와 백한림에게 답서를 닦아 보냈으나 공자는 회답을 하지 않더라.
이 때문에 윤시랑은 진녀의 액경을 더욱 가긍히 여겨 장탄불이하더니, 하루는 황성의 고우로 인하여 화상서의 죽음을 듣고 사랑이 허위를 베풀고 침문 밖에 나와 통곡하니, 윤ㆍ남 양 소저는 화복(華服) 패식을 벗고 담담 소복으로 10년을 지난 후, 이 해 6월에 성준이 화공자로 더불어 이르렀거늘, 성북 별장으로 맞이하여 쉬게 하더라. 윤시랑은 화공자의 손을 잡고 연연유체하여 말하기를,
“선공이 몸이 비록 강호상에 계시나 상해 마음은 묘당지상에 있으니, 이는 천하의 근심은 먼저하고 천하의 즐김은 나중이라. 황전이 돕지 아니하사 홀연히 세상을 떠나시니, 일세 창생이 장차 뉘를 의지하리요!”
화공자는 다만 수루(愁淚) 창연하는지라, 시랑은 계속해서,
“현서는 숙석지언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천리 밖에 언약을 밟으니. 노부는 불승감격하노라.”
하고, 인하여 그는 성생으로 더불어 종일 담론(談論)하다 돌아가고 윤공자 여옥이가 나와서 화공자를 보니. 세상에 빛나는 봉과 같고 바람에 흔들리는 옥수와 같은지라, 한마디 말이 간담을 비치며 서로 막역지교를 맺으니, 그 덕행을 이른즉 염유와 중궁이 서로 우열이 없고, 그 문장을 의논한즉, 두자미와 이태백이 각각 장단이 있는지라, 이것으로 보면 화공자는 음식의 맛도 모르고, 윤공자는 또한 화공자가 없으면 앉아도 돛을 잊으며 행하매, 반드시 손을 잡고, 누우면 반드시 상을 연하는지라 성생이 또한 윤공자를 사랑하여 말하기를,
“장원은 장자방의 지모(智謀)가 있고, 이적선의 풍류를 겸하였도다.”
윤시랑의 길일을 택하매, 그것은 7월 상순이라. 육례(六禮)를 부중에서 생할새, 화공자는 옥대금포를 입고 금안 백마를 타고 부중에 이르니, 관광하는 자가 책책칭선(嘖嘖稱善)하되, 천사 신선이 하강(下降)하였다고 하는 것이더라.
이날 취막이 하늘에 닿고 홍장이 땅을 덮었으며, 제남자사와 도독과 태수 등이 장보(將寶)를 들이며 향당(鄕黨) 종족이 아관박대(峨冠博帶)로 벌려 섰는데, 홍장문면이 쌍쌍 전도하여 정당에 오르며 운루에 내릴새, 윤ㆍ남 두 소저는 칠보 봉관으로 동하수곡지삼을 입고, 자예금주지상을 끌으매, 단단 주선은 추월을 흔들었고, 쟁쟁 패옥은 난봉을 울리는데, 진퇴배례가 옹용(雍容)하는지라, 공자는 추파를 잠깐 들매, 희색이 은은하니, 시랑 내외의 기뻐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하해가 얕고 태산이 낮을 정도였더라.
이날 밤 화공자는 윤소저의 침소인 응향각에 들어가 일야(一夜)를 온숙(穩宿)하고, 다음날 밤은 남소저의 침소인 농취당에 들어가서 역시 재미있는 하룻밤을 온숙하니, 1 군자에 양 숙녀의 하해 감은 은온이 금실우지하며 종고낙지하여 관저지덕에 비할 정도였더라. 성생이 웃으며 공자를 희롱하기를,
“형옥이 동방화촉(洞房華燭)에 호흥이 쌍발하니, 이때에 능히 축우당 냉금을 생각할소냐!”
“냉금 온금이 다 때가 있나니, 분복(分福)을 좇아 평안할 따름이라! 단사표음(簞食瓢飮)으로 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하여도 내 또한 평안할 것이요, 금루옥찬에 시첩(侍妾)이 수백 인이라 할지라도 또한 평안하리니, 어찌 기쁘며 슬픔이 그 가운데 있으리요.”
하고 화공자는 응수하더라.
“화형은 가위 낙천지명지군자로다.”
하고 윤공자가 옆에서 웃으며 말하더라. 그리고 그는 또 말하기를,
“소제의 학력이 곧지 못하여 심두에 일단 계루(係累)한 일이 있으매, 엉키고 맺히어 능히 풀지 못하고, 아무리 잊고자 하여도 스스로 잊을 길이 없사오니, 어찌하면 이 병을 고칠소냐?”
“장원의 재주로써 맹자 호연장을 숙독하여, 의를 모아 화기를 기르면 차등 개체지심은 자연 소멸하리로다.”
화공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윤공자는 황연히 크게 깨달아 드디어 진소저를 사모하는 정을 잊어버리고 안색이 부영하여 화기가 애연하니, 두 소저까지도 괴이히 여기는 것이니라. 10여일이 지나매, 화공자는 권실을 거느리고 본부로 돌아갔고, 이때 윤시랑 내외의 송녀지희와 두 소저의 이친지정은 천지심명을 감동케 할 정도더라.
행거를 이미 갖추사 복부의 길을 재촉하고, 시녀는 새벽을 고하니, 두 소저는 눈물을 머금고 양친에게 배결하니 윤시랑이 위로하여 말하기를,
“여자의 유행은 원부모 형제다. 너희 등은 모름지기 마음을 마땅히 섬길 바에 극진히 하고, 속절없이 부모로써 상심치 말라. 우리 내외의 나이가 아직 그렇게 늙지 아니하였고 또 화군형옥이 조만간에 필경 크게 귀하리니, 그때는 경성에서 다시 만나리라.”
부인은 화생의 손을 잡고 말하더라.
“노첩이 우둔하여 두 딸을 일찍 교훈치 못하였으므로 여아 등의 예의를 들은 배 없으니, 다만 바라건대 현서는 어여삐 여기사 용서할지어다.”
공자는 이러한 장인 장모의 지극한 말을 들으매, 스스로 탄식함을 마지않더라. 윤공자는 두 소저를 따라 며칠 동행하다가 다시 돌아올 새, 서로 손을 잡고 차마 그대로 갈라지기가 어려운 듯하더라.
한편, 화부에서는 성부인이 화공자가 돌아올 날을 고대하오니 문득 창두가 달려 들어와 고하되,
“소공자 행차가 신성히 이르렀나이다!”
하자, 성부인은 크게 기뻐하여 시녀 열 쌍으로 하여금 신부의 행거를 10리 밖에 나가서 맞이하라고 분부하더라.
임소저는 친히 비복 등을 거느리고, 신방을 쇄소(刷掃)하고, 병장(屛帳)을 포설(鋪設)할새, 화소저가 이 말을 듣고 유부에게 달려와 금석을 생각하며, 희비가 교접하는 것이었으니, 공자가 두 신부로 더불어 부중에 이르러 먼저 가묘에 배알(拜謁)할새, 성생이 끓어앉아 독축(讀祝)하매 공자는 부복오열하여 능히 일지 못하고, 성부인 이하 모든 사람의 탄성 음읍(飮泣)하되, 올로 대공자 화춘만은 얼굴을 다스리고 일호도 비척할 기색이 없으니, 윤부의 시녀들이 이것을 보고 모두 괴이히 여기는 것이더라. 예를 마치매, 폐백을 드릴새, 심씨는 강잉(强仍) 하여 광삼을 떨치고 성부인으로 더불어 자리를 연하여 예를 받을새, 두 신부
를 보니 그 아름답고 정숙한 얼굴이 평생에 처음 보는 배라. 시랑의 마음과 독사의 간장이 자연 움직이어 눈꼴이 마르지 않고 기색이 자로 변하는 것이더라. 성부인은 두 신부의 손을 잡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아깝다! 군등의 화용(花容)숙덕을 망제(亡弟)와 정부인이 보지 못하였도다.”
일모 파연(罷宴)하자, 인하여 화소저는 윤소저를 인도하여 비춘당으로 가니, 이는 윤소저의 침소요, 임소저는 남소저를 인도하여 봉귀정으로 가니, 이는 남소저의 신방인 것이니라.
슬프다! 화소저는 소공자로 더불어 한가지로 정부인의 품에서 자라났으매, 조천지통(終天之痛)이 골수에 맺히고, 슬픔이 오매불망(寤寐不忘)하는지라, 차시(此時)를 당하여 옛일을 생각하매, 구원이 영격함을 슬피하니, 좌우 시비들이 저마다 위로하여 주더라. 이때에 조정에서 과거를 베풀어 인재를 뽑으니. 화공자는 성생과 유생으로 더불어 함께 과장에 나아갈새, 성생이 웃으며 말하더라.
“이제 과장에 나아가매, 형옥이가 마땅히 장원랑이 되리니 그대 등은 두고보라.”
“만사는 다 천정(天定)이라. 어찌 인력으로 하리요. 오배는 다만 진심갈력하여 그 결과를 볼 따름이니라.”
하고 화공자는 말하더라.
“성형은 어찌 말이 그다지도 급하뇨. 주나라 목황 때에 팔 준마가 세상에 함께 나매, 각각 일행만리하였으니, 내 한 걸음을 더 나아가 형옥의 앞에 거하리라.”
하고 이번에는 유생이 웃으면서 덧붙이니, “그대의 말이 어찌 겸양치 아니뇨? 자고로 용문에 두 장원이 없느니라.”
하고 성생이 대꾸하자, 세 천재들은 껄껄걸 웃더라. 이때에 3인이 황성에 이르니, 과거일이 이미 임박하였거늘, 각각 시지(試紙)를 갖추어 가지고 궁정에 들어가서 책문(策問)을 대답하매, 천자는 전상(殿上)에 어좌(御座)히시 친히 꼬누실새, 3공자가 일시에 대책하였더니, 천자는 친히 시권을 잡으시고 한림학사로 하여금 차례로 탁방(坼榜)하여 이름을 부를새, 한림이 높은 목소리로 크게 부르며 말하기를,
“장원은 절강인 화진인데, 나이는 16세요, 부는 여양휴 욱이라.”하고, 그는 본인을 급히 불러 (殿陛)에 오르라 재촉하더라, 공자는 듣고 태연부동하니, 성생이 웃으며 유생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그대 능히 형옥 앞에 달렸느냐?”
유생은 웃고 손사(遜辭)하더라. 이날 급제 30인을 뽑으시매, 유생과 성생이 역시 참방(參榜) 하였다. 영웅전에서 신원을 진퇴하시고 각각 금포 채화를 반사(頒賜)하실새, 장원을 쌍개 청동으로 어악(御樂)을 더으시고, 화장원을 인견하사, 크게 기뻐하여 칭잔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짐이 여앙후를 잃은 후로 마음이 상해 슬프더니, 그 아들이 여차하니, 인재봉주는 자래로 범상히 아니토다!”
그런 후 천자는 인하여 어주를 주시고 유가(遊街) 3일 후에 장원으로 한림하사 하이시고 성생과 유생의 양인으로 병부원외랑을 하시니, 양인이 병부상서 오봉이라는 자를 가보고 말하기를,
“소생 등이 집이 절강에 있으매, 객지 생활이 어렵삽고 또 학술이 공소(空疏)한지라, 원컨대 동남쪽 한 고을을 얻어서 수년 독서하여지이다 .”
오상서는 천자에게 아뢰어 성원으로 하여금 복건 성정현 태수를 하이고, 유원으로 귀양부 통찬을 제수하니, 이때에 신원들이 다 승상 엄승에게 가서 배알회되, 화생은 홀로 가시 아니하니 숭이 심하에 혐의(嫌疑)하는 것이였으며, 한림이 상소하여 수언 말미를 청하온데, 천자는 윤허(允許)하사 말씀하시더라.
“경은 돌아가 노친을 모셔 오라.”
한림은 사은 후 퇴조하여 즉시 셩생과 유생의 양 태수로 더불어 소홍 본부에 돌아오니, 성부인이 크게 기뻐하여 자질 등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너희들이 무부 유아로 조년(早年) 입신함이 여차하여 망부로 지하에서 웃음을 머금게 하니, 어찌 감탄치 않으리요.”
성부인이 구 소저를 불러 봉관하리와 명부직첩을 주고 드디어 부중에 대연을 배성하고 유광록 부자를 청하니, 소홍지부가 또한 풍악 기물을 가져왔는지라, 성태수와 화한림이 청삼 계획로 화상서의 사당에 배알할 새, 한림이 슬프게 통곡하여 그 소리 밖에 아니 들리는지라, 슬프다! 즐거워도 부모를 사모하고 슬퍼도 부로를 사모하다니, 효자를 슬픔이 어느 날에 그치리요.
심씨 모자는 심복(心服)이 구통하여 문을 닫고 나오지 아니하니, 임소저는 친히 미찬(美饌)을 차려드리는 정경이 가긍하니, 성부인이 칭선불이하는 것이더라. 성태수는 장차 치행(治行)부임할 새, 성부인은 아들에게 말하기를,
“춘의 모자는 불순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매, 내가 곧 없으면 진의 부처가 가히 보전치 못하리니, 너는 모름지기 요현부로 더불어 부임케 하라. 내 차마 망제의 유탁(遺託)을 저버리지 못하리로다.”
성태수는 울며 말하기를,
“소자의 금일 영화는 다만 모친을 위하옴이라. 소자는 전성지록을 얻었으매, 하루도 봉친(奉親)을 못 하온즉, 소자의 마음이 어떠하오리이꼬? 또 형옥이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청운에 올랐사오니, 마땅히 두 제수로 더불어 상경하올 것이매, 심숙모는 결단코 따라가지 아니하리니, 혹 불미한 일이 있을지라도 임수는 인명하고 지혜 있는 부인이라 반드시 능히 보호하리니, 복원(伏願) 모친은 너무 염려치 말으소서.”
성부인이 불평하여 응하지 아니하니, 한림이 또한 성부인을 강권(强勸)하매, 비로소 부인이 허락하니, 슬프다! 호하의 화액(禍厄)이 이로 좇아 망극하니 이 어찌 조물의 시기함이 아니리요.
성태수와 유태수가 발행하는 날에 요소저와 화소저는 윤․남양 소저의 손을 잡고 눈물이 옷깃을 적시며, 부인이 임소저를 향하여 부탁이 신신하니, 비록 목석이라도 동심(動心)하고 귀신이라도 또한 감읍(感泣)할 일이더라. 차후로 심씨는 비로소 숨을 시원히 내쉬고 등의 가시를 벗은 것 같아서 이날부터 춘으로 더불어 꾀를 내어 말하니라.
“전일 정부인은 어질고 아름다워 인심을 많이 얻고 또 기록한 자식을 두었는고로, 권세가 날로 중하고 가자 상하가 우리 모자를 보기를 초개같이 하더니, 이제 진의 양 처가의 재덕이 정부인에 지나고 진이 또한 영귀함이 여차하니, 향당과 종촉이 추앙하며 노복이 복주(伏奏)함이 전일보다 배숭한지라, 진이 만일 화성에 올라가서 위로 천자의 총애를 받고 아래로 동관(同官)의 조력을 얻은즉, 용이 여의주를 얻고 범이 바람을 탐과 같아서 능히 제어치 못하리니, 마땅히 이에 머물러 두고 곤박(困迫)함만 같지 못하니라.”
“그 말씀 마땅하여이다.”
하고 이들은 맞장구를 치더라. 하루는 화춘이가 한림에게 말하기를,
“선군이 계실 때에는 세태 평안하되, 오히려 퇴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시매, 너도 또한 그때에 선군을 권하였거늘, 이제 국사가 날로 어지러워 위망(危亡)을 가히 서서 볼 것이어늘, 네 양양자득(揚揚自得)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어찌 헤아림이뇨?”
“형장의 경교 여차하시니, 소재는 감히 명심 봉행치 아니리이까?”
하고, 한림은 겸손하게 말한 다음, 즉시 상소를 닦아서 벼슬을 사양하고 노모를 봉양한다는 것을 청할새, 사의 간곡하니, 상이 긍칙히 여기사 특별히 일년 말미를 주시니, 한림이 이로부터 죽우당에 홀로 처하여 시서로써 스스로 즐기더라.
심씨는 계향 등으로 하여금 무근지설(無根之說)을 지어내어 망칙한 욕설로 무한히 곤책하고, 또 썩은 밥과 쓴 나물의 차마 먹지 못할 음식을 주되, 한림이 조금도 어려운 빛이 없으며, 심씨는 또 침선 방적과 수놓기며, 제반 고역되는 일을 다 윤․남 두 부인에게 맡기니, 양인이 천생 신재로 응답이 여류하매, 비록 심씨의 대악으로도 그 허물을 적발할 길이 없더라.
이때에 춘이 어머니에게 고하고 조씨 여자를 맞아들일새, 밖으로는 범환과 장평이 막빈이 되고, 안으로는 심씨가 스스로 주장이 되어 현고지례를 행하고, 춘이 제 장중에 있는 금수보배를 다 주어 굉장하게 꾸미매, 능라지상과 난사지행이 사람의 눈을 쏘고 코를 찌르되, 그 얼굴을 보면 간교히 웃고 꼬리쳐서 탕자의 마음을 고혹케 하는 한 음부에 지나지 않더라.
이날 밤 화춘은 조씨 여자로 더불어 동숙하매, 그 더러운 행실과 음탕한 소리를 기탄없이 드러내매, 시녀 등이 이 소리를 듣고 아니 해악하는 자가 없을 정도였으니, 동녘담 밑에서 옥패를 줍던 일이 비로소 탄로되니, 심씨는 크게 부끄러워 은휘(隱諱) 불발하더라.
조씨 여자는 우물 밑의 개구리라. 제 스스로 경성경국하는 만고 절색으로 자처하여 서시를 멸시하고 양귀비를 비웃더니, 한번 윤소저와 남소저를 본 뒤로는 낙담 탈기하여 제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매, 거울이 너무 공평한 것을 원망하더라.
심씨와 같은 흉흉으로도 남의 집 하나쯤 망치기에 족하려만 하물며 조녀와 같은 요첩을 더하였으니, 화씨의 가문은 가히 알만한 일이더라. 조씨 여자는 임소저를 몰아내고자 하여 주야로 춘에게 참소하니 춘은 마침내 이렇게 말하니라.
“임씨의 죄는 족히 내가 짐작하되 형옥이기 필경 말을 할 것이요, 또 임씨의 성품이 강령하니, 무슨 괴변이 생길까 두려워하노라.”
조녀가 박장대소하며 말하기를,
"상공은 형이요, 한림은 아우라. 형이 아우 아내를 내치는데 아우가 어찌 감히 간섭하며 또 설혹 임녀가 스스로 죽는다 하더라도 상공께 해됨이 없거늘, 상공이 한 추부를 저어하여 장중에 있는 일을 결단치 못하니, 첩은 그윽히 상공을 위하여 애석히 여기나이다."
하고 남편에게 말하더라. 화춘이 오히려 머뭇거리기를 마지아니하더니, 하루는 범한과 장평과 더불어 서로 의논하여 꾀를 결단한 후, 죽우당에 이르러〈사기〉한 권을 빼어 보는 체하다가 책을 덮고 한림더러 묻기를,
"옛적에 한나라 무제는 진황후의 투기함을 능히 알고 폐하였으니, 그 임군의 일이 어떠하뇨?"
한림은 형의 흉계를 알지 못하고, 바른 대로 대답하여 말하기를,
"남자는 양덕이요 여자는 음덕인고로 양덕이 음덕을 이긴 연후에야 가도가 정해지니, 한무제는 본디 호색지심으로 그 결발지처를 폐한 것이지마는 여자의 투기는 칠거지악이기에 이로써 내쳤나이다."
춘이 대희하여 뛰어 들어가서 심씨에게 말하기를,
"임녀의 죄악은 소자가 이미 절통히 알고 있는 바로되, 지금까지 참고 내치지 아니함은 성 고모의 총애하심이 너무도 편벽되고, 또 형옥이 임녀의 편당인 연고러니, 이제 형옥의 말이 여차하고 또 성 고모는 복건에 가고 없으니, 이 때를 타서 임녀를 내치고 조녀로 정실을 삼으려 하나이다."
성씨는 놀라서,
"임부의 죄는 불과 가부를 침석에 들이지 않는 것뿐이니 어찌 투기가 있으리요. 또 나의 정들음이 굳으니 가히 요동치 못하리라."
하고 결연히 대답하더라. 춘이 재삼 간청했으나, 심씨는 종시 듣지 않으려 하더라. 조씨 여자는 시녀 난수라는 년으로 하여금 범한을 사통하여 모주로 삼고, 또 계행 등과 결탁하여 악하고 더러운 물건을 심씨의 침소이 많이 묻고, 또한 계행 등으로 하여금 그 흉물을 파내는 체하여 심씨에게 말하기를,
"임씨의 소위라!"
심씨는 그제서야 대로하여 임 소저를 꾸짖고 부외에 내치니, 비복 등이 실성 호읍하며 윤 부인과 남 부인이 앙천방탕하고, 한림이 갓을 벗고 맨발로 계하에서 통곡하니, 심씨는 또 대로하며 말하니라.
"임녀의 죄악이 위나라 황후보다 더한지라! 공연히 장부를 거절하여 침석에 용납지 아니하니, 경옥이 이미 궁형지인이 아닌 즉 어찌 통분치 않으며, 또 조녀가 들어온 후로 임녀의 투기는 날로 심하여 천고에 없는 요악지변이 나의 침방에까지 미치니, 어찌 참고 내치지 아니하리요!"
한림이 애읍하고 간하고, 머리를 땅에 부딪쳐서 유혈이 낭자 한지라, 심씨가 꾸짖으며 소리치기를,
"내가 내 며느리를 내치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고, 창두로 하여금 한림을 떠밀어 내치니, 한림이 백화헌 뜰에서 통곡함을 마지아니하더니, 이 때에 범한이란 놈이 당상에 앉아 있다가 황망히 내려와서 꿇어 엎드리고 묻되,
"상공은 무슨 사정입니까?"
한림은 비분 중에 이 말을 듣고 노기가 대발하여, 건장한 창두로 하여금 수십 바퀴를 끌어 휘두르고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 같은 적자가 감히 재상가의 가법을 탁란함이 이에 미치나뇨!"
범한은 기운이 촉급하매, 입만 벙긋거리고 능히 말을 못하거늘 또 수십 번을 끌어 부문 밖에 아예 내쳐 버리더라.
이 날 임 소저가 집을 걸어나와 장차 교자에 오를새, 상서의 사당을 돌아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재배하며 하직하고, 개연히 교자에 오르매, 유모와 시비 등이 울며 뒤를 따르더라.
이 때 화부의 부중 사람이 심씨 모자와 조 부인 외에는 눈물을 아니 흘리는 자가 없었고, 이 때에 임 소저의 오라비 임윤이 벼슬을 삭탈 당하고 하남 본댁에 와 있으매, 소저는 하남으로 돌아가니라.
화춘이 크게 위의를 베풀고 종족을 모아 장차 조녀를 세워서 정실을 삼으려 하거늘, 한림이 통곡하며 충고하기를,
"제나라 환공의 맹세에 가로되, 첩으로써 정실을 삼지 말라 하셨으니, 이제 형장이 연고 없이 현처를 내치고 미천한 여자로써 외람되어 조선 향화를 받들게 하니, 욕됨이 이보다 더함이 없으리로소이다."
"너는 양처가 있거늘, 내가 홀로 일처로 두지 못하랴!"
하고, 화춘은 성을 벌컥 내며 소리를 지르더라.
그가 마침내 조녀를 정실로 삼으니, 조씨 여자는 양양자득하여 행동거지가 표홀망칙하여 치마 끝에 바람이 나며, 우둔한 지아비를 농락하여 간특한 교태와 발연한 노색으로 희희낙락하니 화춘은 분주 승명하여 발이 땅에 붙지 않는지라, 비복 등이 도리어 부끄러워하고 일일이 임소저를 사모하니라.
이러므로 부중이 해이하여 기강이 바이 없더라.
하루는 조 부인이 돌연 비춘당에 들어가니, 남 부인이 마침 자리에 있는지라. 조 부인은 윤 부인을 향하여 이렇게 말을 하니라.
"첩이 들으니, 이 집에 세전하는 두 가지 보물이 있어서 반드시 종부를 주는 것인데, 선존 구고께오서 임녀는 불초하다 하시어 주지 않으시고 백화헌 상자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부인 자매에게 나눠 주었다 하니, 이제 자네들은 차부의 몸으로서 외람히 종가 세전지물을 가짐이 명실에 합당치 못하고 사리에 틀린지라. 임녀가 인륜을 어지러이 하여 가도가 망칙할 때에는 명실과 사체를 의논할 방 아니려니와 이제인즉 가내가 청명하고 만사가 법도 있으매, 종부와 차부의 절엄함이 천지 같거늘, 종가의 세전지물이 실로 부인의 신상에는 불길하도소이다."
"원래 여차하던가? 첩 등은 실로 알지 못하였나니,그 보물 이름이 무엇이라 하더이까?"
하고, 윤 부인이 청파에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그렇게 묻더라.
"하나는 이름이 홍옥차니, 선조께서 금릉을 치실 때에 순정 마황후 고씨 부인께서 주신 바요, 또 하나는 이름이 청옥패니, 고조 동국공이 남방을 평정하실 때에 교지왕이 드린 패물 중에서 제일 중보라. 이러므로 대대로 전하여 반드시 유덕유모한 종부에게 전하여 오더니, 덕이 아름다우신 우리 존고에게 전하지 않고, 그릇 자네 등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어찌 애닯지 않으리요."
윤 부인은 즉시 상자를 열고 홍옥차를 내어 주며 말하되,
"명교가 당연하도다!"
조 부인이 받아 가지고 두세 번 완롱하매, 희색이 만면하거늘, 남 부인은 정색단좌하여 묵연히 말이 없고 시종 내어 줄 뜻이 없으니, 조 부인은 앙앙하여 홍옥차만 가지고 나가 버리더라.
남 소저가 윤 부인더러 말하기를,
"이 두 옥보는 아등의 신물이어늘, 군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어찌 경솔히 타인을 주시나이까?"
"군자도 오히려 능히 스스로 보전치 못하려든, 하물며 우리를 염려하며, 우리도 능히 보전치 못하는데 하물며 보물을 염려하랴. 시전에 하였으되, 혁혁종주를 포사멸지라 하였으니, 정히 이를 이름이로다!"
하고, 윤 부인이 의젓하게 대답하니라.
며칠 후, 조 부인이 정당에서 임 소저의 허물을 말하매, 윤 부인은 청이불문하고 남 부인은 불승분개하여 정색하여 말하기를,
"낭자는 장부의 은총을 믿고 말씀이 너무 무례하니 고인이 일렀으되 난초가 불붙으매 혜초가 탄식하고 토끼가 죽으매 여우가 슬퍼한다 하였나니, 낭자는 홀로 백두 궁녀의 반 첩여 조롱하던 말을 듣지 못하였으냐!"
이 말을 듣고 조 부인이 악연실색하자, 심씨가 대로하여 남 부인을 꾸짖더라.
"조 소저는 명위가 그전과 다르거늘, 너희들이 어찌 감히 낭자라 부르리요!"
남 부인은 자리를 옮겨.
"입에 익은 말을 갑자기 고치지 못하고 엄교를 범하였사오니 황송하오이다."
하며 사죄하더라.
슬프다! 남부인은 성품이 모나고 엄하여 부친의 풍절(風節)이 있는고로, 언어 당당하여 윤부인의 굴수인욕함만 같지 못하여 화를 받음이 더욱 참혹하더라. 하루는 심씨가 두 부인으로 하여금 자기 앞에서 수를 놓게 하더니, 홀연 한림의 유모 계화가 밖에서 부리나케 울며 둘어와 이르되,
“조정이 우리 상공의 벼슬직첩을 삭탈시키고 남부인을 내려 소실로 삼았으므로, 지금 고을 아전이 와서 직첩을 거두나이다!”
하고 울면서 말하더라. 그러나 이 말을 듣고 조부인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남부인을 향하여 말하기를,
“낭자의 교만한 주머니 끈이 끊어졌으니, 이제도 분복(分福)에 없는 청오패를 내어놓지 못할소냐?”
남부인 조금도 안색을 변치 않고, 수놓기를 하니 윤부인은 분한 눈물을 금치 못하는 것이더라. 화춘이 들어와서 말하기를,
“조정 관원들이 형옥의 불처 무상함을 천자께 탄핵하여 벼슬을 면직시키고, 또 남수는 죄에 죽은 자의 여식으로 재상가의 자부가 되매, 마땅치 못하다 하여 내려서 소실을 삼았나이다.”
아들의 이런 말을 듣고, 심씨는 속으로 매우 기뻐하더라.
‘진이가 귀함만 믿고 교만함이 심하더니, 그 패함이 마땅하도다.’
지난번 범환이란 놈이 한림에게 곤박(困迫)을 당한 후, 원입골수하고 조부인이 또한 한림 내외를 분히 여겨, 드디어 범환으로 안팎에서 서로 응하여 음해할 계교를 모의하더니, 범환이 홀연 황성으로 올라가서 오래 소식이 없더라.
이때 화춘은 막연히 알지 못하고, 한림을 책하여 말하기를,
“범종의 절종함은 너의 무례함을 노함이라.”
이때 언무경이 엄숭에게 자세하여 탐남 음독하니, 현인군자는 그 독한 어금니에 걸리지 않는 자가 없는지라, 범환이 명첩(名帖)을 들어 뵈옴을 청한대 무경이 보지 아니하거늘, 범환이 이에 조부인이 준 백금 80냥과 대추 열매를 가지고 가서 무경의 처 경씨에게 드리니, 그제야 무경이 범환을 불러들여서 조용히 묻되,
“군이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나를 와서 만나 봄이 무슨 뜻이뇨?”
범환이 이에 한림의 불효함이 여차여차하다 하고, 또 말하기를,
“화진이 죄인 남표의 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며, 항상 나라를 원망하고 엄승상 가사도에게 비나이다.”
“화진의 죄상은 실로 가살이어니와, 군에게 아무 관계 없거늘, 어찌 이다지 발분(發憤)하나뇨?”
하고 무경은 웃으며 짐짓 묻더라.
“그러하오나, 소인은….”
“아, 알았도다! 내 마땅히 처치함이 있으리니, 군은 물러가서 기다림이 가하니라.”
범환이 배사(拜謝)하고 나와 수일을 기다려도 아무런 동정이 없으매, 조부인의 금은 보배로써 행뢰(行賂)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니 어시에 무경이 엄숭에게 이 사연을 고한대 엄숭이 원래 한림을 미워하던 차라, 또 남어사의 여색을 아내 삼았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발연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친히 소초를 불러 언무경을 주고 이튿날 조참(朝參)에 주달케 하니, 상이 남파(男波)에 박연하사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화진이 어찌 이런 행실이 있으리요!”
그러나 엄숭이가 옆에 있다가 아뢰기를,
“신이 이미 들었사오매, 허언이 아니오이다.”
하고 그는 인하여 극력 무함하니, 상이 부득이 그의 말을 좇으사 드디어 화진은 벼슬을 깎이고, 남부인은 소실로 떨어져 버리더라.
이로부터 남부인은 청의를 입고 심씨 앞에서 사환이 되고 조부인은 청옥패를 앗아 가지고 붕귀정을 폐하여 잠그고, 때때로 흉악한 말과 혹독한 매질로 곤욕이 자심(滋甚)하되, 남부인은 이것을 천명이라 하여 마음을 태연히 가지는 것이더라.
하루는 윤부인이 마침 남부인을 유벽(幽僻)한 곳에서 만나 실성분읍하거늘, 남부인은 윤부인을 달래며 말하여 이르기를,
“언니의 하해같이 넓은 도량으로 어찌 이만한 소사를 참지 못하시나뇨? 우리가 이 집에 들어옴이 불가의 이른바 업원이라. 천명을 좇아 있다가 명이 진하면 돌아갈 것이어늘, 어찌 구구히 영욕으로써 거리끼리까? 또 우리 형제가 군자를 받든 이후로 군자의 액경을 만남이 하루도 몇 번이오되, 군자는 일찍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허물하는 빛이 없거늘, 우리들이 비록 여자이오나, 어찌 마음이 흠탄(欽歎)치 아니하리요!“
윤부인은 손을 잡고 더욱 체읍하더라.
“현매는 능히 사람의 참지 못할 곤욕을 참음이 여차하고 또 말이 이렇듯 정대(正大)하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요. 그러나 우리 부모는 우리들 형제를 양육하매, 사랑이 흘러 바다를 이루고 정이 모여 산이 되었으매, 밥을 혹 덜 먹어도 놀라 물으시고 잠을 혹 늦게 깨어도 나와 보시며, 이 집으로 보내실 때에 눈물을 뿌리사 차마 이별치 못하시는지라. 이제 생각건대, 부모의 마음에 반드시 우리들이 무슨 병이나 없이 잘 있는가 하니리니, 우리들이 불초 무상하여 부모의 이러하신 은혜를 갚지 못하고 구고의 애휼지은(愛恤之恩)을 모르고 범의 아가리에 떨어져 위태함이 호흡지간에 있으되, 현매는 참혹한 독을 받음이 더욱 심하니, 어찌 비분이 아니리요!”
남부인은 역시 눈물을 뿌리며, 서로는 더 말없이 돌아가니라.
이때, 조부인은 벽 틈으로 이러한 두 부인의 말을 낱낱이 엿듣고, 이것을 심씨에게 가서 일러바치니, 심씨는 크게 노하여 꾸짖기를,
“윤․ 남 양녀는 서로 체결(締結)하여 옥하 사람으로 정당을 원망하는가?”
이래서 윤부인은 복원소각에 가두고 남부인은 매처 중당 행각에 가두고, 이 두부인의 시비 등은 다 부외로 내치니, 계앵이 남부인의 치마를 잡고 통곡하며 땅에 엎어져서 일어나지를 못하니, 조부인은 무섭게 호령하기를,
“네 천비가 죽고자 하느냐!”
계양이 머리를 들고 씩 웃어 주니라.
“죽음을 내 어찌 두려워하리요! 내가 비록 천하나, 동장 아래 옥패 줍는 행실은 본받지 아니하리라.”
조부인은 낮빛이 새파래져서 계앵을 어지러이 두드려 끌어 내치고, 심씨가 또한 꾸짖더라. 내외문을 잠궈 한림으로 하여금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하며, 혹 음식을 끊이는 일도 있어서 곤박이 말이 아니더라. 하루는 조부인이 난향으로 하여금 미죽을 가져다가 남부인에게 보내며 말하기를,
“이 죽은 심부인께서 보내신 배라. 너는 다시 들어오지 못하리니, 모름지기 이 죽을 마시고 일찌감치 죽을지어다!”
남부인이 죽을 보매, 빛이 푸르고도 누른지라. 죽그릇을 들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 구차히 살고자 하느니 차라리 죽어서 모르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고, 그 여자는 인하여 죽그릇을 들어 마시니, 난향년이 이를 보고 즉시 들어와 이것을 조부인에게 보고하자 조부인은 크게 기뻐하여 뛰쳐나와, 난향으로 하여금 조부인은 발을 떼어 죽은 시신을 말아 싼 후, 심복 노자 막동을 불러 돈 100냥을 주며, 분부하기를,
“너 이 발을 짊어지고 가서 강중에 던지고 오되, 삼가 입밖에 말을 내지 마라!”
막동은 발릉 지고 복원 뒷문으로 나가매, 밤이 이미 삼경이라 100보를 가지 못하고 막동이 혼연 정신이 산란하여 길을 돌아 공교히 산곡중으로 들어가더니, 그만 이목(耳目)이 아득하여 지척을 분별치 못하는 것이더라.
촉중 화악산 자현암에 있는 여승 청원이 일찍 남어사 집에 와서 관음화상을 받아갔더니, 이때 철원이가 일몽을 얻으니, 관음보살이 환약 세 개를 주며 말하기를,
“모월 모일 밤에 남부인 채봉이 비명횡사(非命橫死) 할 것이니, 네 그날 밤에 삼경이 되거든 이 약을 가지고 소흥부 보림사 소나무 앞에 가서 남부인을 구하라.”
청원이 깨어 보니, 과연 환약이 세 개가 곁에 있는지라. 즉시 석장(錫杖) 단가로 쫓아와서 보림사 명주암에 이르니, 이곳은 화부 복원 밖이라.
이때 윤․ 남 부인의 시비 등이 조부인에게 쫓기어 이 암중에 와서 숨어 있는지라. 각각 자기 주인을 생각하고 서로 말하며, 눈물을 흘려 하늘에 부르짖거늘, 청원이 모르는 체하고 묻지 아니하다가, 이날 밤에 청원이 계앵과 쌍섬더러 말하기를,
“그대의 주인이 곤백이 심한지라. 내 마땅히 구하고자 하노니, 그대들은 나를 따라오라.”
하고, 여승은 즉기 동구를 향하여 달리더라. 쌍검들은 크게 의혹하여 청원을 따라간즉, 남곡 상송하에 이르러 청원이 문득 머무르며 가지 아니하고 손짓하여 가로되,
“이곳이니이다!”
하더니, 홀연 한 대한이 등에 큰 발을 묶어 지고 오다가 길가에 짐을 벗어 놓고 돌을 베고 누우며 인하여 잠이 들거늘, 청원이 가까이 가서 그 발을 어루만지며, 계앵으로 하여금 치어들라 하니, 계앵은 놀랍고 다리가 떨려서 능히 들지 못하더라. 청원은 애닯아 하며 이르되,
“만일 늦으면 구치 못하리라. 빨리 들라!”
하니, 계앵이가 이러한 청원의 말을 듣고 비로소 부인이 그리된 줄 알고 놀라 울면서 땅에 엎어지거늘, 청원이 급히 붙들며 말하기를,
“그대가 이리 할 때가 아니라!”
하고 여승은 스스로 그 발을 들고 보니, 부인의 안색이 조금도 변치 아니하고 가슴에 온기마저 있거늘, 청원은 크게 기뻐하여 즉시 낭중에서 환약을 내어 먼저 한 개를 온수에 갈아 입에 흘려 넣으니, 부인은 눈을 떠보고 숨을 내쉬며 돌아눕거늘, 또 한 개를 온수에 차서 흘려 넣으니, 부인은 독한 물을 토하고 스스로 정신을 차리며 일어나 앉는지라, 청원은 기뻐하며 말하기를,
“부인은 안심하소서!”
“존사는 어떠한 사람이건대 이미 끊어진 목숨을 구하시나이까?”
하고 소생한 부인이 말하더라.
“부인은 능히 빈도의 얼굴을 기억하시리이까?”
부인이 이윽히 보다가,
“7년 전에 관음화상을 받으로 왔던 대사가 아니시오니까?”
하고 물으니,
“부인은 과연 알아보시도다! 그때 빈도가 부인을 뵈오매, 미목이 청수하시고 화려하사, 자못 진세(塵世) 사람 같지 아니하시고, 또한 실 같은 흐린 기운이 천정에 끼었으매, 이 액을 만나실 줄 알았사오나, 오는 액은 어려우매, 우매 사생이 다 명이 있는지라, 말하여 유익함이 없사오매, 말씀하지 아니하였사오며, 부인이 수중용왕의 덕을 입사와 백신이 호휘하였으매, 요얼(妖孼)이 감히 범치 못하리로소이다!”
부인은 탄식하며 동정호 금사탄의 참화를 말하고, 인하여 말하되,
“내가 능히 부모를 따라 죽지 아닌고로 황천이 반드시 나의 불효를 미워하사 오늘날 화액을 또 내리오심인가 하노라. 대사가 부질없이 자비심을 드리워 죽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세상에 고생케 하시니, 이는 은혜가 아니요, 도리어 원이로소이다.!”
“부인이 천명을 아지 못하나이다. 자고로 성현이 먼저 곤액을 겪은 후에야 그 도를 통하였나니, 그러므로 우리 세존의 설산지고와 공부자의 진차지액이 다 그러하심이라. 이제 부인이 총명자혜로 이 고난을 만나 이 소문이 없은즉, 후세에 부인의 유물를 알 리 없을지니, 그러므로 황천이 부인의 덕화를 천하에 나타내심이라. 석상에 오동나무가 있음을 보지 못하였나이까? 설풍이 불며 법상이 어리어, 그 가지와 줄기가 질기고 딱딱하므로 깎아서 거문고를 만들면 금석이 그 소리를 아나니, 이른바 마음을 통하고 성품을 참는 자는 다만 낭자뿐만 아니라, 부인도 또한 그러하니이다.”
하고, 인하여 여승은 관음보살의 현몽하시던 말을 전하고 또 가로되,
“부인이 아직도 또한 수년 재액이 있어서 불가로 더불어 인연이 있사오니, 이제 빈도와 한가지로 돌아가 관음보살을 의지하여 수년만 지나며 자연 복록(福祿)이 무궁하고, 재앙이 영영 물러가리이다.”
하더라.
부인은 탄식하고 쾌히 허락지 아니타가 그날 밤에 일몽을 얻으니, 관음보살이 현몽하사, 징조를 보이고 다음날 남부인이 계앵으로 더불어 남복으로 갈아입고, 청원을 따라 촉중으로 들어 간 것이니라.
이날, 막동이 잠에서 깨어 보니, 날은 환히 밝았고 시냇물은 영영히 흐르거늘, 사면을 돌아보고 방황 주저하다가 도리어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내 어찌 이곳에 왔으며, 내가 가지고 온 송장은 어디고 갔는고? 아, 참으로 신기하고뇨! 이것이 과연 꿈이 아니요, 도깨비가 나를 희롱함이로다. 조씨년이 이미 악한 일로써 나를 부렸으니, 내 어찌 정도로써 고하리요!”
그는 부중으로 돌아와 거짓 숨을 헐떡이며, 조부인에게 설명하기를,
“소복이 그 발을 지고 산을 넘고 시내를 건너 별빛이 창망한 가운데 산 중턱을 올라 석상에 서서보니, 그 아래 만길이나 깊은 못이 있으며 푸른 물빛이 천천하거늘, 소복이 그 발에다가 큰 돌을 안겨서, 긴 노끈으로 단단히 동이고 언덕에서 힘을 다하여 내리굴리니, 물 속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풍덩하더이다.”
조부인은 이런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큰 잔에 술을 가득히 부어 먹이니, 난향이란 년이 또한 손벽을 치고 웃으며 들어가 심씨에게 말하기를,
“가소롭고 또 가소롭도다! 남씨년이 항상 예절이 높은 체하고 매양 유모 없이 당에 내리는 이를 보면 정녀가 아니라고 하고 촉불 없이 행하는 자를 보면 음부라 하더니, 이제 수삭을 공방에 있더니, 잡념이 크게 발하여 심야 삼경에 담을 넘어 도주하였나이다. 서방 생각으로 못 견디나 보오이다.”
이 때 화춘은 학질을 얻어 외당에 누웠더니, 심씨가 급히 나가서 아들을 보고 말하기를,
“큰일이 났도다!”
춘은 앓는 중에 이런 말을 듣고 무슨 일인지 몰라 크게 놀라더니, 인하여 난향년의 말을 듣고 어머니를 나무라며 말하기를,
“남씨가 도주한 것이 무슨 큰일이니꼬?”
“만일 윤시랑이 그 딸을 찾아보러 와서 집에 없으면, 우리더러 죽였다 하리니, 이 일을 어찌하리요?”
화춘이 그제야 크게 놀라 황겁하니, 심씨의 조급요망함과 퉁의 황겁함이 대개 이러하더라.
처음에 화춘은 조부인을 취난정에 있게 하매, 외당과 원절한지라, 춘이 왕래하기 불편하다 하여 조부인을 만류정으로 옮겨 처하게 하니, 만류정은 외당과 작은 문을 격한지라 서로 무상 출입하매, 난향이란 년이 이미 범환과 사통하고 조부인 역시 그와 더불어 간통하고 지내더니, 춘이 병든 이후로 조부인은 범환과 낭자히 음행(淫行)하매, 가인이 혹 아는 자가 있어도 감히 말을 못 하더라. 하루는 조부인이 범환의 배를 가리키며 이렇게 수작하더라.
“이 뱃속에 만가지 계교가 들었으매, 이렇게 큰 것이 마땅하도다!”
“내 뱃속에 진평의 육출기계가 있으니, 이미 쓴 것이 셋이요, 안 쓴 것이 셋이니라.”
“쓴 계교를 듣고자 하노라.”
“경옥을 달래어 그 풍만한 살덩이와 재물을 물같이 쓰니, 한 가지요, 화진과 모해하여 진정을 아주 망쳤으니, 두 가지요, 어리석은 지아비를 속여 그 아내를 앗았으니, 세 가지니라.”
“쓰지 않은 계교를 또 듣고자 하노라.”
“하나는 화진을 죽이고, 둘은 화춘을 마저 죽이고, 셋은 이 집 금보를 몰수히 취하여 가지고 낭자로 더불어 조각배를 타고 오호에 놀고자 하노라.”
조부인은 거짓 놀라며, 범환의 배를 치면서 말하기를,
“어찌 그리 심히 하리요? 그러나, 화진은 무슨 계교로써 죽이려 하느뇨? 듣고자 하노라.”
“내 벗에 유금이라 하는 자가 있으니, 검술을 잘하는지라 이 사람을 한번 부리면 화진을 가히 없앨 것이요, 인하여 화춘을 얽어 그 아우와 제수를 죽인 죄를 관가에 고한즉, 춘이 제 어찌 죽기를 면하리요.”
조부인은 웃고 말이 없더니, 수일 후에 범환이 또 그 여자를 숨에 안아 주고 나서 말하기를,
“작야(昨夜)에 유금이 비수를 끼고 몸을 감춰 죽우당으로 들어가더니, 죽우당 지계 밖에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음아질타(噾啞叱咤) 하는 소리를 하기로 마음이 자연 공겁(空劫) 하기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노라.”
“어떤 담 큰 사람인고?”
하고 조부인이 크게 놀라 말하니라.
“그 집 귀신인 듯싶으나, 가히 아지 못하리로다.”
범환 또 오래 생각하다가 조부인에게 말하되,
“낭자는 능히 윤・남 양씨의 필적을 얻을 수 있느냐?”
“그년들이 본디 한 많게 들어앉아 글씨를 쓰는 일이 없고 또 음명하기를 좋아 아니하나 어찌 필적이 있으리요. 그러나 그년들의 상자를 뒤져 보리라.”
하고, 조부인은 즉시 남부인의 방에 들어가서 연갑이며, 경대함・농붙이를 죄다 뒤졌으나, 필적이 될 만한 것은 없고, 다만 한 권 서책이 있어서 그것을 가지고 나오더라. 범환이 보니, 정히 등사한 ≪효경(孝經)≫ 일부요, 끝에 썼으되, 11세 시에 농취정에서 쓰노라 하였거늘, 범환이 능히 남씨의 필적인 줄 알지 못하며 조부인더러 묻기로,
“전일 남씨가 윤비에 있을 때에 그 기처하던 당호를 알 수 있을까?”
“그년들의 비자(婢子)등도 죄다 입을 봉하고 사사로이 말을 일제히 하지 아니하니, 어찌 윤부의 당호를 알리요?”
“내 탐지할 도리가 있노라.”
하고, 그는 즉시 외당으로 나와 화춘을 보고 말하기를,
“군이 윤시랑의 집 농취정을 아느뇨?”
“내 아나니, 형이 어찌하여 묻나뇨?”
하고 화춘은 대답하니,
“윤시랑이 농취정을 지었음은 그 첩의 이름이 취교라, 취교를 농락한다 하여 농취정이라 하였다는 것이 아니나뇨?”
“그 말을 누가 전하더뇨? 이 실로 허무맹랑지설이로다. 농취란 말이 근본이 있으니, 전일에 성형이 글로 형옥을 희롱하여 가로되, 농취당중에 봉의 날개가 연하였고 응향각리에 꽃심을 접하였다 하니, 대개 남씨의 이름은 봉자요, 윤씨의 이름은 화자인지라. 나의 들은 바로는 농취정은 남씨의 신방 당호요, 취교 농락한다는 말은 금시 초문이로다.”
“만일 그러한즉 내 과연 그릇 들었도다!”
하고, 범환은 즉시 나와 이날 밤 계향으로 더불어 묘책을 정할새, 심중에 스스로 기뻐서 말하기를,
“화가의 소자가 비록 목숨이 강철 같은들, 제 어찌 이 계교에 벗어날 것이리요!”
인하여 그는 거짓 윤부인이 화한림으로 더불어 상의하여 심씨 모자를 모살(謀殺) 하는 글을 만들어, 가만히 계향년을 주며 당부하여 심씨 침방의 창 밖에 들이치라 하고 또 유금을 들여보내어 심씨를 찔러 죽일 일을 신신 부탁하니, 유금이 허락하고 화씨 부중에 이를새, 이때 한림이 죽우당에 갇힌 이후부터 주야로 부모를 부르며 체읍하더니, 하루는 한림이 꿈에 상서와 정부인이 침변(枕邊)에 와서 앉으며 이로되,
“이제 대액이 당도하였으니 너는 부디 조심하라.”
하거늘, 한림이 놀라 깨어나니 남가일몽이더라. 이날 미명(未明)에 부중이 진도하며, 이런 말이 들이는데,
“정당에 자객이 들었다!”
한림은 이런 말을 듣고 놀라,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더라. 화춘은 옷을 주워 입고 황망히 들어가니, 심씨는 혼비백산(魂飛魄散)하요 자빠지고, 난향년은 죽어서 심씨 앞에 뻗어 버렸더라.
화춘은 이러한 광경을 보고 크게 놀라 실색하여 말이 없더니, 이때 계향이가 창 밖에서 일개 금낭(錦囊)을 얻으매, 춘은 그것을 뺏다시피 해서 끌러보았다. 윤부인이 한림으로 더불어 심씨를 모살하려는 서찰이라, 춘이 보고 심히 놀라서 말하기를,
“내 이러할 줄 알았노라.”
“역자가 그 어미를 죽이려 하니, 이 어찌 누설치 아니리요!”
하고 심씨도 그것을 보고 크게 놀라 말하더라.
인하여 그 여자는 춘으로 하여금 장초(章草)를 쓰게할새. 이 때 범환이 바야흐로 조부인을 품 안고 누웠더니, 시비 난주란 년이 들어와 정당에 자객이 든 일과 난향이 흉검에 쓰러졌다는 말을 하자, 범환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 뜻은 본디 노물(老物) 심씨에게 있더니, 유생이 그릇 난향을 죽였도다!”
하고, 그는 인하여 조부인의 육체를 슬며시 밀어제쳐 옷을 입고 일어나 나가 버리더라. 이때, 화춘은 장초를 가지고 친히 정하려 하거늘, 범환이 춘을 보고 가로되,
“형의 집에 어찌 변괴가 이렇듯 잦나뇨?”
하고 묻더라.
“가운(家運)이 불길하여 변괴가 백출(百出)하니, 나의 팔자가 기괴하도다.”
하고 화춘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하더라. 인하여 장초를 내어 보내니, 범환이 보고 붓을 잡아 수천 여 언을 더 써 넣었으매, 궁참 극독함이 사람이 차마 보지 못할 정도더라.
차시에 범환이 그 고장을 정서(正書)하여 가지고 갔다. 먼저 소흥 태수 최행이란 자가 한림이 급제하였을 때에 화부 연석에서 한번 보고 그 덕을 사모하여 지금까지 잊지 못하더니, 천만 의외에 고장을 보고 크게 놀라서 말하되,
“이 사람이 어찌 이러할 리가 있으리요!”
하고, 그는 관차(官差)를 놓아 잡아오게 하였더니, 이윽고 한림이 관차를 따라 채수부로 오니라. 최태수가 사연을 물은 즉, 한림이 대답하기를,
“진실로 이런 일이 있나니, 죄상이 누설한 후에는 죽을 따름이라, 어찌 살기를 바라리요!”
최태수는 민망하여 자저하더니, 이때에 범환이 중계에 섰더가 여성(厲聲) 대호하여 이르기를,
“죄인이 제 스스로 자복(自服)하였으니, 마땅히 법을 행할 따름이어늘, 어찌 자저하여 죄인으로써 변개(變改)케 하느뇨?”
“너 같은 천인이 어찌 화가 일에 간섭하느뇨?”
하고 태수는 호령하고, 인하여 범환을 끌어내치라고 명령하더라.
한림을 그런 다음 하옥하였고, 이때에 범환이 낭중에서 은자를 내어 옥졸(獄卒)을 나눠주고 한림을 죽이려 꾀하더니, 화한림의 유모 계화가 심씨에게 쫓긴 바 되어 도로(道路)에서 방황하다가 소흥 사람 유이숙의 아내 되매, 이숙이 계화를 심히 사랑하는지라, 이날 계화가 한림의 변고를 들어 알고 통곡하며, 자결코자 하거늘, 이숙이 말하기를,
“내가 한번 가서 한림을 보면 선악(善惡)을 알리라!”
이숙은 즉시 옥중으로 들어가서 한림을 보고 돌아와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함림의 용모를 보니, 천하에 다시없는 인의군자(仁義君子)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어찌 이러한 사람을 구치 아니하리요!”
하고, 그는 인하여 은전을 많이 뿌려서 행례(行禮)를 하고 제화는 스스로 옥중 공궤(供饋)를 조석으로 극진히 할새, 이때 이숙은 친히 옥문 밖에 앉아 온갖 음식을 맛보아 드리니, 범환의 은자를 쓴 것은 다 쓸데없는 것이 되더니라.
이때 최태수는 화한림의 옥수(獄囚)를 오래 결정치 못하더니, 마침 도어사 하춘해가 황명을 받들어 절강을 순무(巡憮)하고 경사(京師)로 돌아올 새, 도중 소흥을 지나더니, 최태수는 하어사를 맞아 좌정한 후에 화한림의 옥사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하기를,
“폐읍(敝邑)에 의심된 옥사가 하나 있으되, 소관이 몽매(蒙昧)하와 능히 자단(自斷)치 못하오니, 원컨대 명공은 명백히 처결할 도리를 가르치소서.”
그는 이와 겸하여 심씨의 고장을 내어보이더라. 하어사는 겨우 두어 줄 이것을 보다가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며 말하기를,
“소위 화진은 장원급제로 한림학사가 아니니이까?”
“그 사람이로소이다!”
“향자(向者)에 언무경이 차인(此人)을 불효로 논핵할새, 우리들이 원억(寃抑)한 줄로 알았더니, 이제 이 고장을 보니 과연 화진을 흉악한 자로다! 마땅히 왕법으로 처단하리라!”
하고 어사는 인하여 화한림을 끌어내다가 계하에 나입(拿入)한 후, 곤장을 가지고 문초(問招)하더라. 그러면서 그는 좌인을 자세히 살피니, 옥 같은 얼굴에 삼연히 눈물이 어리어 원억한 기색이 언사에 나타나매, 사람의 마음을 감동테 하는지라. 어사는 참연히 동요하고 말하기를,
“이는 진실로 성인군자로다!”
그는 또 태수를 돌아보고 하명(下命)하기를,
“이 사람을 각별 보호하라.”
이날 밤 어사는 글을 만들어 하인 왕겸을 주고 조용히 말하기를,
“네 옥중에 들어가서 한림에게 이것을 드려라.”
왕겸이 받아가지고 옥중으로 들어갈새, 왕겸은 의기(義氣)가 있는 남자라 하어사의 직절(直節)을 사모하여 비록 그의 사환이 되었으나, 평생에 원하기를 천하 호걸지사(豪傑之士)와 현인군자를 얻어 몸을 의탁하리라 하더니, 이에 하어사의 수서(手書)를 가지고 옥중에 들어가 한림을 주니, 한림이 하어사의 수서를 보고 말하기를,
“어사는 나의 일을 알고 이같이 후대(厚待)하시니, 은혜 백골난망이로다 슬프다! 내 명이 궁박(窮迫)하니 어찌 이런 사람으로써 어깨를 겨누어 명군을 섬겨 보리요! 하대인이 이런 죽을 죄인을 권권(拳拳)하여 이처럼 가르치시니. 내 비록 우둔하나, 어찌 감격치 아니하리요. 그러나 죄인의 죄명이 다른 죄와 달라 강상(綱常)을 범하였으니, 어찌 용납하리요. 그대는 돌아가서 어사께 고하되, 죽기를 기다리나이다 하라.
이런 말을 듣고, 왕겸은 돌아와 어상에게 그대로 고하였다. 어사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화진은 진실로 효자로다! 차인이 죽음에 다다라 마음을 동치 아니하니, 이는 인의가 쌍전한 사람이라!
하고, 그를 인하여 왕겸더러 이르기를,
네가 평생에 의를 좋아하여 천하영웅과 성인군자 좇기를 원하더니, 한림은 대현군자이니, 네 가서 보호하라!
왕겸은 혼연히 허락하고 옥중으로 가매, 하어사는 행거를 재촉하여 경사로 행할 새, 태수더러 당부하여 가로되,
“이 옥사는 가히 졸연(捽然)히 처단치 못하리니, 내가 황상께 주달하여 처단할지라. 그대는 모름지기 죄인을 잘 보호하라!” 하고 이날 떠나더라.
이때 범환은 한림을 모살할 뜻이 있으나, 유이숙이 옥문을 주야로 수직(守直)하는 고로 감히 행치 못하고, 심중에 착급(着急)하여 즉시 경사로 되올라가 엄숭에게 청뢰 하니. 엄숭은 영을 소홍 태수에게 내려서 죄인 화진을 경사로 올리라 하니. 이에 유이숙과 왕겸이 한림을 옹위하여 길에 오르고 계화는 노변에서 통곡 배별(拜別)할새, 한림이 말을 머무르고 누수(淚水)를 뿌려 위로하니. 노상에 왕래하는 자는 찬탄하지 않는 자가 없더라.
한림이 왕성에 이르매, 엄숭은 심씨의 고장으로써 천자에게 주달하온데, 천자는 통쾌하시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화욱의 아들이 이러할 줄 어찌 알았으리요!”
하고, 천자는 법관으로 하여금 즉일로 행형(行刑)하라 하시니. 이때 하춘해가 출반(出班)하여 아뢰기를,
“신이 황명을 받자와 소흥부를 지날 새, 태수 최행이 이 옥사로써 신에게 말하오매, 신이 또한 분하와 죽일 뜻이 있삽더니. 그러다가 화진의 용모와 기색을 살펴보오니. 진실로 인효군자(仁孝君子)라, 이런 흉행(兇行)을 만만 자행치 아니하온 듯 하오며, 또 신이 듣자하니 화진은 심씨의 기출(己出)이 아니 온즉, 의모의자(義母義子)지간에는 매양 악착한 변이 있는지라, 이제 우리 성상의 애휼지덕(愛恤之德)으로써 어찌 살인지사에 삼가히 살피지 아니시고, 한 조각 고장만으로써 즉시 처결(處決)하시오리까? 복원성상은 화진의 행형하심을 거두시고 신의 주달을 생각하사, 효자에게 억울한 한이 없게 하옵소서.”
이런 말로 천자가 유에 미결(未決)하시니. 엄숭이 나와 아뢰기를,
“말과 얼굴로 사람을 취함은 성인도 실수하였사오니, 이제 춘해는 한갓 화진의 언모(言貌)만 취하고 진평의 내행은 살피지 못하니 진실로 가히 우습사오며, 또 죄인이 자복하였사오니. 무슨 원한이 있겠사오리까?”
“승상이 그르도다!”
하고 분격한 하어사는 소리치며,
“진형의 아짐이 도적하였단 말은 불과 강관 등의 일시 참소라! 승상이 진평에게 진실로 그런 일이 있는 줄로 아니 사기를 배움이 어찌 그리도 오활(汙闊)하뇨? 화진의 죄를 자복함이 또한 효성에서 그러함이라. 옛적에 민손을 불효라 하여 고관(告官)하매 민손이 죄를 감수하고 계모에게로 들려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그는 어이하여 그러하였나이까?”
엄숭이 얼굴을 발갛게 붉히며 말이 없자, 하어사는 또 천자에게 아뢰지를,
“신이 폐하의 은혜를 받자오매, 항상 간뢰도지하옵기를 원하옵더니. 이제 만일 화진을 살리시오면 마땅히 폐하의 은혜를 갚음이라. 만일 화진의 옥사 이후에 실정이 되오면 신이 화진으로써 머리를 겨누어 형육을 받아 금일 망언하온 죄를 사례하리이다!”
하고, 그는 눈물까지 주룩주룩 비 오듯 쏟더라. 이때, 태학사(太學士)서사가 아뢰기를,
“춘해의 적심(赤心)보국은 신등의 아는 배오니. 복원 폐하는 그 우직함을 용서하소서!”
천자는 병부상서 정필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춘해의 말이 또한 가상하지라, 경은 모름지기 엄핵(嚴覈)하여 실정을 얻은 후 다시 아뢰라!"
하시니. 모든 사람이 퇴출(退出)할새, 하어사는 정장서로 더불어 말을 같이하여 행할 새, 정상서는 하어사의 처형이라 하어사가 정상서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일개 무죄지인(無罪之人)을 죽임도 오히려 차마 못 할 일이어니와, 하물며 군자를 죽임이 옳지 아니하니. 형은 모름지기 처결을 급히 하지 말고, 수일 천연하여 그 끝이 절로 드러남을 기다릴지라.”
“형의 말이 옳도다!” 하고, 정상서는 매양 좌기(坐起)를 베풀매, 화한림의 면목만 보고 좌기를 피하니. 이때 엄숭이 날마다 위엄과 공갈이 혹독하되. 상서는 이에 조금도 마음을 동치 아니하는 것이더라.
이때, 화춘의 집은 가사가 대단하고 변괴가 백출하여 백화헌앞에 있는 천년 고목이 스스로 말라 죽고 만류정 아래에서는 구미호(九尾狐)가 슬프게 울고 상서의 사당서에서는 백주에 곡성이 들리는지라, 화출이 우구(憂懼)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거늘 장평이 알고 스스로 이런 말을 하니라.
“내가 정히 득의지추(得意之秋)로다!”
하루는 장평이 밖에서 들어오며 수색이 만연하니, 회춘이 그 까닭을 묻기를,
“장평이 무슨 일로 수색이 만면하뇨?”
“내가 근심하는 바는 경옥을 염려함이니라.”
“무슨 일이뇨? 듣고자 하노라.”
“경옥은 우미(愚迷)한 용부(庸夫)로다.”
하고 장평은 단정해서 대답해 놓고, 인하여 범환의 전후 행흉(行凶)한 사연과 조부인과 잠통(潛通)한 일을 세세히 죄다 말하니, 회춘이 청필에 피를 토하며 쓰러져 버리더라.
장평은 약물로 이를 구호하녀 겨우 소생(蘇生)하였으나, 화춘은 여전히 안색이 잿빛 같은지라, 장평은 그런데도 자기의 용무를 계속하더라.
“사실이 지차(只此)하니 무가내하(無可奈何)라. 내 이제 일단 묘게 있으되, 내 경옥의 마음을 알거니와 본디 나약하여 능히 이 계교를 행치 못할까 하노라.”
“그 계교를 듣기를 원하노라.”
하고 화춘은 힘없이 말하더라.
“내 들으니, 엄숭상 아들 태상경 이세번이 상처하고, 바야흐로 천하미색을 구한다 하니, 만을 진의 처 윤씨로써 엄태상에게 드린즉, 태상 부자는 반드시 경옥에게 마음이 극직할지라. 이 옥사는 자연 신속할 것이요, 또 백근 3천 냥과 명주 보옥이며, 산호 ․ 호반지속으로써 엄승상의 총첩 홍씨에게 드린즉, 가히 웅주거목(雄州巨牧)을 얻을 것이니, 오직 경옥은 재삼 생각하여 행할지어다!”
“주옥 보배는 아깝지 않건만, 다만 윤부인의 일은 내가 차마 행치 못하리로다.”
장형은 소매를 떨치며 일어서더라.
“내가 진실로 경옥이가 이 계교를 행치 못할 줄 의심하였는지라!”
하며 걸어가니라. 화춘은 일어나 그를 붙잡아 세우며,
“내 진실로 우매란 사람이라! 장형은 너무 조급히 굴지 마라. 내 윤부인을 아낌이 아니라. 다만 두려워하는 것은 윤씨가 듣지 아니하고 스스로 죽을까 이를 염려하노라.”
“이는 또 묘제가 있느니…….”
하고 장편은 마지못하는 듯 웃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더라.
“경옥과 대무인만 홀로 아시고, 조부인과 그 이하는 다 은휘하여 누설치 말고, 경옥이 거짓 한 장 교지(矯旨)를 만들어 윤씨가 있는 곳에 보내어 이르되, 황성에서 날라왔다 하고, 또 조보(朝報)를 보니, 한림이 예부시랑을 승차(陞差)하여 죽일로 봉명하고 남경 능침(陵寢)에 봉심(奉審)하러 간다 이르고, 또 대부인이 윤씨를 불러 옛 침소에 두고 의복 음식을 후하게 대접하고, 또 행장을 차려 온 집안이 모두 황성으로 간다 하면, 윤씨가 믿든 말든 제 아무리 따라가지 않을 수 없으리니. 황성에 이르기만 하거든, 내가 마땅히 윤씨가 차고 가는 교자를 겁탈하여 엄승상의 부중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윤씨가 한번 풍류호색에 떨어진즉, 제가 비록 철석 간장이라고 스스로 보전치 못하여 반드시 몸을 허할지라!”
화춘은 너무나 치밀한 계교에 감격해서 다만 입을 떡 벌리더라, 이때 시동(侍童)만회하는 놈이 창 밖에서 이런 말을 듣고 제 어미 유향에게 고하였다. 유향은 이미 죽은 정부인의 시비이라. 그래서 더구나 불승비분하던 유향은 마침 볼일이 있어서 성중에 들어왔다가, 계화의 집에 와서 이 말을 전하며 서로 탄식하고 유체(流涕)하여, 최후로 이런 말을 하니,
“어찌 반연하여 윤부인께 이 말을 전할꼬?”
그러자 마침 문 밖에서 박탁지성(剝啄之聲)이 나거늘, 문틈으로 내다보니 홀연 윤부인의 행차가 이른지라, 서로는 크게 놀라 소스라쳐 일어나서,
“이 어찌하여 윤부인의 행차가 이곳에 이르렀는가? 하회(下回)를 볼지니라.”
이전에 산등의 윤동자가 경사에서 과거를 본다는 말을 듣고 부천하게 고하길,
“경사에게 설과한다 하오니, 소자는 관광도 겸하여 누이를 찾아보고자 하나이다.”
하고 말한즉, 윤시랑 내외는 허락해 주더라. 그래서 공자는 동복(僮僕)한 사람과 청려 한 필을 몰아 경사로 향할새, 여러 날만에 화부 근처에 다다라 어느 주막에 들어서 화부의 소식을 탐지한즉, 화한림은 경사로 잡혀 올라가고 남부인은 부지거처(不知去處)로 한번 간 뒤에 지금까지 전혀 소식을 알지 못하고, 윤부인은 후원에 갇히었다 하거늘, 윤공자는 크게 놀라 차악하여 화부의 후원에 가서 윤뷰인이 갇혀 있는 곳을 찾을새, 마침 문 지키는 군사가 없는고로 가만가만 안으로 들어가서 시비를 부르니, 시비가 나와 보고 깜짝 놀라 빨리 들어가서 윤부인에게 공자가 왔다는 것을 고하니라.
윤부인이 이 말을 듣고 일변 슬프고 일변 반가와 급히 청하여 서로 볼새, 반김을 마지아니하여 부모의 안부를 문답하더니, 시비가 들어와 장평의 흉계를 고한대 윤부인이 들으시고 아연실색(啞然失色)하여 말이 없는지라 공자가 말하기를,
“누님은 마땅히 소제와 의복을 바꾸어 입고 급히 계화의 집으로 피하소서. 소제가 마땅히 누님을 대신하여 가리이다.”
하고 의복 바꾸기를 재촉하니, 윤부인이 눈물을 머금고 슬픈 심사를 억제치 못하여 말하기를,
“천금 같은 너를 사지에 보내고, 내 어찌 홀로 살기를 구하리요! 너는 빨리 나가거라!”
하는지라, 윤공자는 울면서 대답하기를.
“ 내가 몰랐으면 모르려니와 알고야 어찌 누님의 사지에 가는 것을 보고만 있으리요!”
하고, 그는 간절히 권고하고 또 이렇게 말하더라.
“나는 남자라 아무리 하여도 관계치 않거니와 누님은 여자라, 어찌 엄가에게 욕을 당하도록 하리요. 누님은 조금도 염려치 마시고, 바삐 의복을 바꾸사이다!”
재촉하니, 윤부인이 마지못하여 의복을 서로 바꾸어 입고 총총히 후원문을 나와 계화의 집으로 가니라. 유향등이 윤부인을 맞이하여 차경차희하여 한임의 화액과 부인의 액화를 위로하며, 다시 장평의 흉계를 세세히고하니,윤부인이 이미 시비의 전어로 알았으나 다시금 놀랍기 측량할 수가 없을 정도더라.
윤부인이 마침 공자가 이르러 대신함을 이르니, 유향 등이 이 말을 듣고 일변 놀랍고 일변 탁복해 마지않는 것이더라 이때 화춘은 내당에 들어가 심씨를 보고 장평의 계교를 말하니, 심씨는 이 말을 듣고 경사로 가기를 권하매, 조부인이 이를 알고 후원에 가서 윤부인을 보고 일장 곤박을 주고자 하여 들어가니, 윤공자는 조부인이 들어옴을 보고 안석(安席)에 의지하여 연연부동하니, 조부인이 크게 노하여 꾸짖기를,
“자네가 장차 엄태상의 총첩이 되는 연고로, 이렇듯 교만하뇨?”
공자는 거짓 놀라며, 그 소매를 잡아 말하기를.
“네 필부(匹婦)의 천첩(賤妾)으로, 어찌 감히 재상의 정실을 모욕하느냐?”
조부인은 소매를 떨치며 발악하거늘, 공자는 그 머리를 끌어 잡아당기며 , 한손으로 뺨을 냅다 후려치니, 그 소리가 댓족을 쪼개는 것과 같더라. 조부인은 눈에서 불이 번쩍 이려, 정신이 아득하여 능히 말을 못 하거늘, 공자는 웃음을 참고 또 이렇게 말을 하더라
“ 이 작지 아니한 일이라, 마땅히 나가서 정당에 고하여 처단하리라”
하고, 그 여자의 며살을 잡고 정당 계하에 이르니, 조부인은 황망히 애걸하더라 . 공자는 이렇게 조부인을 집어던지고, 침실로 돌아오니 시비등이 해연(駭然)히 여기니라.
수일 후, 심시 모자는 조부인만 머무르게 하고 경사로 향할 새, 윤공자는 태연히 교자에 오르니, 심씨 모자는 그윽히 기뻐하며 황성에 다다르니, 장평 놈이 과연 성문 밖에서 대령하였다가 공자가 탄 교자에 오르니, 심씨 모자는 그윽히 기뻐하며 황성에 다다르니, 장평 놈이 과연 성문 밖에서 대령하였다가 공자가 탄 교자를 바로 엄승상 부중으로 몰아가거늘, 시비가 울며 따라가니, 장평이 꾸짖어 따르지 못하게 하더라. 공자는 가마안에서 혼자 웃으며 말하기를.
“ 이런 놈들이 비록 북산에 그물을 높이 쳤으나, 이제 사해를 덮는 날개에 어찌하리요!”
조금 있다가 보니 주문(朱門) 이 높고 분장이 들렀는데, 흉상 시녀 10여쌍이 좌우로 배열하여 맞아들이거늘, 공자는 중문에 이르러 교자에서 내려 들어갈세, 연보(蓮步)를 옮기매 패옥이 쟁쟁하니, 엄부의 모든 부녀들이 보고 칭찬 흠복(欽服)하며, 엄숭의 아들 세 번은 정신이 미탕하여 신을 거꾸로 신고 전도에 나와서 맞거늘, 공자는 침방에 들어와 살펴보니, 산호책장과 연옥문갑이 찬란휘항하여 수정궁에 들어옴과 같고, 시녀 등이 혹 세수도 받들고, 혹 기분도 베풀어 단장을 재촉하니, 공자는 속으로 웃음이 나와 견딜 수가 없을 정도더라. “ 내 양박(涼薄)한 얼굴과 더러운 몸으로 와람히 군자의 간책 하심을 입었으니, 어찌 다시 지분(脂粉)을 가져 용모를 의식하여 장부의 심목을 현혹케 하리오!”
세 번이나 창 밖에서 이 말을 엿듣고 흠모하는 마음이 미칠듯 하여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니, 공자는 일어나 아연히 피석(避席)한대, 세 번 웃음을 머금고 손을 들어 읍하여 말하기를, “만생이 낭자의 꽃다운 이름을 오래 사모하여 남은 향기를 한번 접함을 원하오되, 약수봉사에 아름다운 인연이 묘연하더니, 다행이 장생의 창조지신을 인연하여 낭자의 백옥같은 용모를 오늘날 뵈오니, 동작대 봄바람이 거주 주랑의 웃음을 비치치 아니하리로다.”
공자는 거짓 슬픈 빛을 지으며 옷깃을 여미고, 조용히 거로되,
“첩이 청락 월궁의 부끄럼과 녹주금곡의 절을 모름이니로되, 규합지중에서 이런 침뱉고 더러운 행실을 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상고 앞에 낯을 드는 것은 실로 심중에 숨은 설움과 그윽한 원한이 있어서 차마 죽지 못함이니, 첩의 지아비 화진은 모친 섬김을 지극히 요도하고 가형을 위함이 매우 공경하매, 첩이 감히 아호하여 쇠를 가리켜 금이라 일컫지 못할지라. 비록 대순이 갱생하고 민손이 불사라도 반드시 화진에서 지나지 못할 것이니, 그 원인이 이러하거늘, 인간세간에 드문 액경을 만남은 그 근본을 궁구하건대, 다 심씨 모자와 범환, 장평의 악독한 손이 서로 부동하여 장난함이니라. 조정이 능히 흑백을 분별치 못하고 심씨의 1장 모소(某所)를 가지고 화진의 단안을 삼으니, 진의 원동함이 장차 5월 서리가 내릴지라. 첩이 그윽히 양 계성 아내 조씨의 일을 본받아서 천문에 피를 뿌리려 지아비의 원통함을 밝히고자 하오나, 생각건대 첩은 이미 심씨로 더불어 고부의 이름이 있으매 지아비를 구하고 저 시어미를 함지에 넣음을 옳지 못하고, 또 시어미를 위하여 먼저 차문에 몸을 던져 화가와 의를 끊은 후에 자기의 의로써 화진의 명을 구하려 하오니, 상공은 굽어 살피소서. 첩을 듣자하오매, 이제 천자가 믿어 하시는 노승상과 상공만한 이가 없다하오니, 능히 화진의 애매한 죽음을 구하사 원통함을 천지간에 밝히시오면 첩이 마땅히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부숴지더라도 상공의 은혜를 갚을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면 첩의 품속에 세치 칼이 있사오니, 맹세코 상공 앞에서 죽사와 유명간의 저버리는 혼이 되지 아니하리라!”
하고 말을 마치자, 그의 눈에서는 강개한 눈물이 말과 함께 비오듯이 흘러내리더라. 세 번은 원래 심약한 소인이라. 화진을 살리기를 허락하고 말하기를
“그대는 가위 여장부로다! 만생이 비록 우미하나, 어찌 감동치 않으리요. 마땅히 가친께 고하고 천자께 주달하여 화진을 구하리니. 미인은 안심할지어다.”
이때 시비가 주찬을 가지고 나오거늘, 공자는 일호의 수삽(羞澀)하는 태도도 없이 연하여 술잔을 기울이니, 옥안에 주기가 잠깐 오르매, 태도가 더욱 배승한지라, 세 번은 내심으로 더욱 황홀해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
이때 엄승이 1녀를 두었으니, 이름은 월화라 하였는데 자태가 아름답고 성품이 영오(穎悟)하매, 숭이 심히 애중하더니, 이 월화가 윤부인을 보려고 창 밖에서 엿볼새, 그 술을 먹는 것을 보고, 더욱 더러히 여겨 말하기를,
“이 사람이 비록 용모가 아름다우나 행실이 여차하니, 2부를 좇음이 마땅하도다.”
이러구러 날이 저물매, 시녀는 동방에다 촉을 밝히고 공자는 촉하에 단정히 앉았으니, 백태천염이 찬란하여 월궁선녀가 요지에 내린 듯한지라 세 번이 미칠 듯하여 들어가서 은수를 잡으니, 궁자는 손을 뿌리치고 정색하매, 살기가 냉엄하여 추상열일(秋霜烈日) 같은지라,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하기를,
“첩이 비록 사세 위급하여 이에 왔사오나, 본디 재상가의 천금 귀녀이어늘, 무례함이 어찌 이 같으뇨? 장공이 화진의 원한을 쾌설(快雪) 하여 첩의 심회를 위로한 후에, 인하여 종목을 모으고 예로써 맞은즉, 첩이 비록 탕화(湯火)를 밟더라도 사양치 않으려니와, 만일 화진으로 하여금 옥문에서 내지를 못하고 한갓 일시 사욕으로 첩을 핍박코자 하면, 첩이 비록 나약한 여자오나, 한번 죽기를 어찌 두려워하리이까?”
세 번은 물려 앉으며 창연히 탄식하면서 답하기를,
“그대의 진심이 여차하니, 실로 다시 범하기 어려우나, 이같이 좋은 밤을 어이 헛되이 지내리요!”
공자는 냉소하고 대답치 않더라. 그러자 시녀가 금침(衾枕)을 포설(鋪設)하매, 세번이 의대(衣帶)를 끄르고 이불 속에 들어가 동침하기를 만단 요구하되, 공자는 응연부동하고 준절히 물리치니, 세 번이 앙앙불락하여 밤새도록 한잠을 이루지도 못하거늘, 공자는 심중에 웃으면서 이와 같이 혼잣말로,
‘내 공연히 일장 가소지사를 지어, 이런 해괴한 거동을 다 본다!’
동방이 미명하여 세번이 일어나 소세(梳洗)하고 관복을 입고 나가더니, 정오에 돌아와서 말하기를,
“금일 가친이 화진의 일을 어전(御殿)에 주달하려 하시더니, 마침 황상이 어좌에 안 나시어 아뢰지 못하고 명일을 기다리노라.”
한 다음 그는 또 말하기를,
“그대 작야(昨夜)에 나를 괴로이 여겨 편히 자지 못하고 밤을 세웠으매, 약질이 번거하여 몸이 존상할까 두렵노라. 금야에는 마땅히 외당에 나가서 잘 것이니, 그대는 안심하고 편히 잘지어다.”
공자는 미소하고 대답하지 아니하더니 시비가 급한 말로 이르기를,
“홍부인이 소저로 더불어 오시나이다!”
하거늘, 세반이 공자더러 말하기를,
“홍부인은 가친의 후취(後娶) 부인 이시고, 소저는 나의 계매라.”
공자는 일어서서 그들을 맞이해 들여 절하고 뵈올새, 그 소저의 재용이 절미(絶美)하고 언어 영민(英敏)함을 보매, 공자는 이 소저와 더불어 말할 새, 어여뿐 소리와 찬연한 웃음이 탐탐하여 크게 사랑하는지라, 세 번은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소저에게 말하기를,
“신인이 나와는 l처 숙친(熟親)치 못하매 냉락함이 심하더니, 이제 너를 보매 언사 자약하여 그칠 줄 모르니, 이른바 동성상응(同聲相應) 하고 동기상구(同氣相求)라 함이 실로 허언이 아니로다! 금일은 네 신인으로 더불어 종일 담소하라.”
인하여 그는 나가 버리고 홍부인도 또한 소저를 두고 가니, 월화는 윤공자와 더불어 성대하여 담소하매, 공자는 심중에 이런 말을 하더라.
‘나의 변복하고 사람을 속임이 비록 부득이한 일이나 실로 군자의 도리가 아니요, 하물며 재상가 규중처자로 더불어 암실지중에서 접실 관관함이랴?’
하더니 이윽고 또 웃으며 말하기를,
‘이 집사람이 다 나의 변복한 줄은 아지 못하고, 다만 날로써 우리 누이로 아는지라. 내 세 번으로 더불어 이미 무릎을 접하여 서로 수작하였으니, 내한번 돌아간 후,누이의 누명을 밝히기 어려운지라 내 마땅히 이 여자로 더불어 한번 희롱하여, 내몸이 누이가 아님을 알게 하리라.’
하고, 그는 다시 자리를 옮겨 월화와 가까이 앉으며, 언소 자약하여 혹 옥수도 잡고, 혹 운화도 어루만져 완연히 풍류호객이 미녀 가인을 희롱하는 것만 같으니, 소저는 면색 불열하여 그 과히 음란함을 더럽게 여기나, 종시 남자인 줄은 의심치 못하는 것이더라.
이날 밤,공자는 월화로 더불어 금침을 한가지로 하려 하되, 월화는 그 방탕함을 싫어하여 청탁하고 물러가더라. 이튿날 세번이가 또 들어와서 공자를 보고 묻기를,
“미인이 거야(去夜)에는 편히 잤을 듯하도다!”
“설움이 마음에 있고, 또 소저도 가버려 혼자 자매, 종야토록 경경 불매하였나이다.”
“연즉, 금야에는 마땅히 소매로 하여금 한가지로 자게 할 것이려니와 미인의 수심은 반드시 화진의 연고인가 싶으니 금일 황상이 봉천전에 어좌하실 것이매, 가친이 이미 예궐(詣闕) 하셨고 내 또 들어가니 화진의 일은 편각(片刻)에 가히 출장이 되리로다.”
“상공은 빨리 가시어 기회를 잃지 말으소서”
세번이 나가더니 저녁에 돌아와 가로되,
“화진이 살기는 살았으나, 다만 그 원통함을 쾌설치 못하였도다.”
하고 말하더라.
“어찌된 연고오니까?”
“황상이 주강(晝講) 을 마치시고 형부상서 정필을 부르사 물어 가로되, ‘화진의 옥사가 우금(于今) 연타(延拖)함은 어찌된 일인고’ 하시니, 정필이 주하여 가로되, ‘옥사는 의심된 일이 많사오매 즉시 결단치 못하옵고, 우금 연타하옴은 그윽이 폐하의 호생지덕 (好生之德)을 바람이로소이다’ 하니, 상이 노하사 가로되, ‘진의 좌상이 심씨 고장에 나타나고 또 제가 자복하였으매, 마땅히 왕법을 행할 것이어늘, 특히 도어사의 고집으로 인하여 한번 문책을 더하고자 함이더니, 형부가 능히 직책을 받들지 못하니 심히 해괴하도다’ 하실 때에 가친이 여쭈오되, ‘신이 처음에는 이 옥사를 심녀의 고장에 빙자하와 결단코자 하였삽더니, 추후 물론을 듣사온즉 화진을 많이 원통하다 하오매, 신이 비로소 하춘해의 말이 허전이 아닌 줄 알았나이다’ 하시거늘, 이때에 내 명백히 아뢰고자 하되, 가친이 일찍 춘해로 더불어 이 옥사로 하여 다툰 일이 있는고로 세세히 주달치 못하고 다만 대강 아뢰도, ‘진의 8대조 화운이 왕사로서 태평부에서 죽었사오매, 태조 황제가 어여삐 여기사 단서 7권을 주시며 가로되, 화운의 자손을 죽이려 하시나이까?’ 하니 상이 깨달으사 가로되, ‘경의 말이 과연 공심에서 나온 바이니, 일로써 족히 화진의 애매함을 알리로다. 그러나, 풍화소관 (風化所關)에 가히 그저 두지는 못하리라’ 하시매, 내 물러나와 정필에게 당부하여 배소(配所)를 성도로 정하였으니 성도는 촉치 서편이라, 풍토가 청미(淸味)하니 불행 중 다행이로다!“
공자는 이런 설명을 듣고 일어서서 절하며,
“노승상의 여천대덕과 상공의 극진한 주선으로 첩의 가부 잔명을 보존케 되었사오니, 그 은혜는 첩의 몸이 죽도록 갚기를 도모하리이다!”
“내 이미 군의 청을 들었으니, 금야에는 군이 또한 나의 청을 들을소냐?”
하고 세 번은 기뻐서 말하더라.
“이 소청은 어렵지 아니한지라, 상공이 길일을 택하여 육례를 갖추고 첩을 100냥으로 맞으시면 첩이 비록 불민하오나, 어찌 감히 금실지락(琴瑟之樂)을 사양하오리까?”
“군의 고집이 너무 심하도다! 내 이미 일관으로 택일한즉 길일이 오히려 4,5일은 격한지라. 내 지난밤에 홀로 외당에서 자매, 전전반칙 (輾轉反則)하여 능히 한잠을 이루지 못하매, 두상에 백발이 종종 나는지라. 이제 또 수일을 허송한즉, 엄세번은 마땅히 황천지객(黃泉之客)이 되리로다!”
“상공이 첩의 두 지아비 섬김을 보고 첩의 절행이 더럽다 하시고 업수이 여기심이 여차하니, 첩이 무슨 낯으로 상공의 건즐(巾櫛)을 받으오리까?”
세 번은 이러한 공자의 기색이 준절함을 보고, 강박(强迫)하기 어려운 줄 알고, 이에 웃고 사과하며 말하기를,
“내 다만 희롱함이요, 참말이 아니로다!”
하고, 그는 즉시 월화를 불러 이르기를,
“신인이 너를 사랑하니, 네 신인과 동침하여 그 고적한 회포를 위로하라.”
세 번이 나간 후 뒤에 남은 월화는 심히 불평하나, 오빠의 명을 거스리지 못하여 시녀로 하여금 자기의 금침을 가져오니, 공자는 월화로 더불어 촉하(燭下)에 서로 앉아 월화의 나상을 제쳐 무릎을 대고 환소희락하며 이런 말을 내기 시작하니라.
“쌍란이 자웅(雌雄)이 아니로되 목을 서로 걸고, 몸을 서로 대어 사랑함은 그 용모가 서로 어여쁨을 아름다이 여김이라. 내 소저로 더불어 동시 여자로도, 즐거운 정이 부부지간과 못함이 없으니, 아깝도다! 속에 사양치 아니 하였으리로다!”
월화는 이런 말을 듣고 홍광이 어리여 공자를 숙시(熟視)하며 묵묵히 말이 없고, 각각 취침하더니, 야반(夜半)에 월화가 놀라 깨어 보니, 문득 한 남자가 자기의 몸을 끌어안고 누웠거늘 월화는 마음이 떨리고 땀이 나서 능히 말을 못 하매, 공자가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화한림 부인이 아니요, 산동 윤여옥이로다. 그대의 오빠가 불미한 심사로써 사람의 누이를 뺏고자 하다가 도리어 제 누이로 하여금 사람에게 욕을 보게 하니 어찌 조물이 무심하리요. 그러나 그대의 화용미절(花容美節)이 한번 세상에 빠져나며, 천하의 재랑이 또한 나에게 더할 자 없으리니, 오늘밤 동침은 어찌 하늘이 주신 인연이 아니리!”
월화는 훌쩍훌쩍 울면서,
“첩이 몸을 삼가히 가지지 못하여 한번 공자의 수중에 떨어지매, 죽을지라도 이 한을 풀지 못하리라! 그러나 첩은 규중 처녀라, 차마 행로지오를 받지 않겠사오니 군자는 머물러 다른 날 화촉의 언약으로써 기다리고 비례(非禮)로써 서로 범하지 마소서!”
공자는 그 여자의 육체에서 손을 떼고 일어나 앉았다.
“나의 이러함은 낙을 탐함이 아니라. 슬프다! 우러러 하늘이 부끄럽고 엎디어 땅이 부끄러우니, 오늘 밤에 이 거조(擧措)는 마땅히 종신지한(終身之恨)이 되리로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월화의 이불에서 나와 자기 자리로 옮겨 가니라. 이 때문에 월화는 도리어 감격해 마지않았다.
‘이는 의인군자로다.’
하고 월화는 일어나 의상(衣裳)을 매고 상위에 앉거늘, 공자는 이에 헤오되,
‘이여인은 비록 요조(窈窕)한, 내 차마 엄숭의 사위는 되지 못할 것이요. 제가 만일 나를 위하여 수절한즉, 필경 처지가 어렵도다!’
월화도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그 매씨를 대신하여 능히 호혈(虎穴)에 들어오니, 그 담이 크고 지략이 많은 줄 알리로다! 내 집의 금문이 여러 겹이요, 철원이 여러 길이며, 호휘하는 군사와 문 지키는 나졸일 무수한, 제 만일 승천입지(昇天入地)하는 술이 없은즉, 능히 몸을 벗어나서 가지 못할지라. 내 금일로부터 윤씨집 사람이 되었으니, 만약 일시 수삽한 태를 가져 그 위태함을 앉아 보고 구하지 아니한즉 나의 백년대사가 그릇될 뿐 아니라, 만일 종적이 탄로된즉 대화(大禍)는 장차 측량치 못하리라!’
그래서 그 여자는 소리를 나직히 하여서 상대방에게 묻기를,
“공자의 종적이 극히 위태하니 가히 이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리니, 아지 못하겠노라. 무슨 계교로써 탈신(脫身)하려 하시나뇨?”
“내가 화부에서 올 때에 남복을 한 벌 함중에 몰래 감추어 가지고 온 것이 지금 침변에 있으니, 내 이 옷을 입고 달아나고자 하노라.”
하고 공자는 서슴없이 답하더라.
“낭군의 계교는 우활(迂闊)하도다! 이곳에서 외담문까지 나가자면 일곱 개의 금쇄문이 있으며, 또 오빠의 거처하는 사랑을 지나가게 되오니, 그 계교는 낮에도 행치 못할 것이요, 또 내 집 비복이 주야로 왕래하여 연속부절(連續不絶)하거늘, 문득 남자가 내당에서 뛰어나온즉 뉘 놀라 붇지 아니리요!”
공자는 비로소 깨닫고 놀라며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도다! 연즉, 어찌하면 나갈 수 있으리요? 또 내가 올 때에 비자의 남루한 의복을 가져왔으니 이것을 입고 동두 구면으로 나가면 가히 벗어나리로다.”
“이 꾀는 조금 나으나 오히려 만전지책(萬全之策)이 아니라, 용모와 복색을 더럽게 하나, 몸 태도야 어찌 속이리요. 내 집에 영리한 종이 많으니 한 사람이라도 의사(疑辭)를 낸즉, 대화가 미칠지니라.”
하고 월화는 웃으면서 말하더라.
“그러면 나는 앉아 죽을 따름이로다.”
“공자의 귀중하신 몸으로 첩의 홍점을 보존하여 부모 앞에 낯을 들게 하였음을 내 감사하노니, 어찌 보은할 마음이 없으리요. 낭군의 탈신할 묘책을 첩이 심중에 묵량(黙諒)하였으나, 낭군이 한번 가신 후 능히 첩을 생각하기를 이 낭군에 향하는 점과 같이 하시려오? 첩의 부모가 귀함이 너무 성하여 위엄을 쓰기를 좋아하니, 천하 사람들이 죄다 원망하는지라. 이제 군이 정직 강개하므로 탐권낙세(貪權樂歲)하는 집의 사위가 되기를 원치 아니하실지라. 또한 첩이 바라지 못할 배나, 첩이 14세의 규중 처자로 종적이 후정에 나지 아니하여 몸가지기를 얼음같이 하고 몸 사랑하기를 옥같이 하더니, 이제 공자가 몸을 더럽히니 첩이 어찌 부끄럽고 분하여 죽을 마음이 없으리요마는, 공자가 대덕을 드리오사 부형의 누로써 버리지 아니하시면, 비복의 이불을 개고 수건을 빠는 소임이라도 감심(甘心)할 것이어니와, 만일 그렇지 아니하시면 첩이 마땅히 공방을 지켜 마침내 망문지부(望門之婦)가 될 따름이라!”
이런 말이 여자의 입에서 나오자, 공자는 청파에 매우 경탄하여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더라.
‘엄숭의 간악함으로ㅅ 어지 이런 딸을 낳았는고? 제가 나를 살리고자 하니, 내 어찌 은혜를 저버리리요!’
하고, 드디어 서로는 간담(肝膽)을 토하여 가약을 머무르고 새벽이 되매, 몸을 일으켜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 뭉치 열쇠를 가지고 나와서, 그 여자는 공자더러 말하기를,
“남복을 가지고 나를 따라오소서.”
하며, 드디어 화원 소문으로부터 열쇠를 맞추어 문을 열새, 다섯 문을 지나 후원문에 이르러서는, 공자에게 또 말하기를,
“이 문 밖에 사통오달(四通五達)한 길이 있으니, 이리로 나가시고, 바라노니 낭군은 타일 기약을 잊지 말으소서!”
공자는 그 은혜를 감격하여 집수유체(執手流涕)하고 정의가 은근하여 차마 이별하지 못하더니, 공자는 마침내 의복을 개책하고, 담을 넘어 화한림의 하처를 찾아가서 한림을 보고 집수장탄하며 말하기를,
“자로고 현인군자는 액경을 만나 자가 부지기수로되 형과 같이 원억한 자는 또 어디에 있으리요!”
“장원이 멀리서 모처럼 왔거늘, 나의 원억을 어찌 아나뇨?”
하고, 화진은 아무스럽지 않은 듯 입을 떼면서 말하더라.
“자연 아노라.”
한림은 또한 자기가 옥문을 벗어나오게 된 것을 전혀 모르고, 그 까닭을 도리어 괴이히 여기고 있더라.
그래서 공자가 엄 세 번의 말을 전하자 한림은 변색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이때, 쌍섬이 와서 한림을 찾아보고 소홍에서 왔노라 하며 남부인과 윤부인의 일을 울며 고하고, 윤공자도 남부인이 죽었다가 다시 회생하였다는 마을 비로소 듣고 일희일비하여 쌍루종형하거늘, 한림은 이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차탄하며 혼잣말로,
‘다른 사람 남매는 저러하거늘, 우리 형체는 어찌 이러한고!’
윤공자는 엄부에서 혹 뒤를 좇을까 염려하고, 한림과 이별하여 경사로 빠져 나가니라. 이튿날, 한림이 장차 적소(謫所)로 향해 갈 때, 유이숙과 왕겸이 다 같이 따라가며, 또 하어사가 와서 송별해 주더라. 어사는 한림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하늘이 장차 대인을 내리시매, 반드시 먼저 그 몸과 마음을 곤고케 하시나니, 원컨대 위국보신하여 하늘이 옥성하시는 뜻을 저버리지 말지어다!”
이때 왕겸의 어머니가 아들을 보내며 말하기를,
“한림을 잘 보호하고, 중로에서 돌아옴을 생각지 말라! 내가 남자 되어 그를 딸치 못함을 한하노라!”
한편, 범환이란 놈은 한림의 출옥함을 듣고 크게 놀라, 이에 죄인을 압령(押領)해 가는 아전 이소와 배삼에게 가만히 은자를 후급하고, 또 독약을 주며 말하기를,
“한림을 중로에서 독살하라!”
그러나 유이숙이 한림을 모시고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왕겸이 또한 하어사의 명을 받아 친히 음식을 간검(看儉)하매, 이소와 배삼 등이 하수(下手)할 틈이 없더니, 황주 화산역에 이르러 유이숙와 왕겸이 똑같이 홀연히 병들어 누우매, 한림이 친히 구완하더니, 이소가 배삼으로 더불어 꾀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범생의 은자를 많이 받았으니, 화진을 어찌하면 죽으리요?”
그러자 홀연 장사가 몸에 녹금전포를 입고 종자 4,5인이 손에 창검을 들고 들어와 한림을 향해 읍하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무슨 죄명으로 어느 땅에 귀양가느뇨?”
“죄인이 윤기를 간범(干犯)하였더니, 외람히 천은을 입어 잔명을 보존하여 촉중으로 귀양가나이다. ”
하고 한림은 답하더라.
“그대의 용모를 보매 죄명과 방불(彷佛)치 아니하매, 어찌 말이 태과(太過)하시뇨?”
한데,
“나는 모친을 받듦을 능히 효하지 못하고, 형을 섬기기를 능히 공순치 못한고로 죄를 하늘게 얻었으매, 만번 죽음이 오히려 마땅하나이다.”
“연즉, 선생이 소홍부 화한림이 아니시니까?”
하고 그 장사는 놀라며 물으니,
“장군이 어찌 죄인을 알으시나이까?”
“복은 서안부 조총병의 휘하 부장 유성희라는 자로 자는 세창이옵더니, 전일의 주장의 명을 받아 경성에 올라갔을 때에 선생의 옥사 말씀을 들었사오매, 선생이 군자이신 줄을 아나이다!”
하고, 장사는 인사여 종자를 명하여 이소와 배삼 등을 불러 앞에 앉히고, 여성(厲聲)하며 묻기를,
“너희들의 이른바 범생이란 자는 어떤 사람인고?”
“이 어찌된 말씀이니까?”
하고, 두 아전은 공포를 느껴 서로 돌아보며 대답하더라. 유성희는 칼을 들고 눈을 부릅뜨며 소리치기를,
“천축이 감히 나를 속이느냐?”
아전들이 황겁하여 능히 대답하지 못하거늘, 한림이 대신 말하기를,
“저 사람들은 형부 압리이어늘, 장군이 무슨 말씀을 들었건대 책문하심이 이에 미치시뇨?”
“복이 평생에 의를 중히 여기고, 사람의 급함을 알면 구하기를 좋아하더니, 아까 곁방에서 수군거리는 말을 들으니, 심담(心膽)이 서늘함을 깨닫지 못하여 칼을 잡고 왔나이다.”
하고, 그는 인하여 종자(從者)로 하여금 이소아 배삼을 긴긴히 결박하고, 칼을 들어 목을 겨누어 호령하기를,
“너희들이 형부 압리로서 죄인이나 호송하여 갈 것이어늘, 네 죄인과 무슨 원수로 감히 남의 뇌촉을 받고 사람의 생명을 살해코자 하니, 너희는 강도보다 더 심한지라. 내 마땅히 너희 머리를 끊어 경사로 보내리니, 네 바로 고하면 혹 살려니와, 불언(不言)인즉 꼭 찍으리라!”
이 아전놈은 할 수 없이 벌벌 떨면서 실정을 토설(吐說)하거늘, 유성희는 한림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선생도 범환과 무슨 원수 있나이까?”
“있나이다.”
“저 병든 왕과 유 양인은 누구오니까?”
“왕겸은 하어사의 겸인이요. 유이숙은 나의 동향사람이니, 내가 소흥으로부터 길을 떠나 지금까지 명맥을 보전함은 다 저 양인의 힘입니다.”
유성희는 그들의 병침으로 걸어가 집수 위로하며 말하기를,
“그대들이 영웅을 도탄지중에서 건지니, 눈 없는 자이면 어찌 그러하리요!”
하고, 그는 인하여 이소와 배삼의 결박을 풀어 주고 말하기를,
“하류 천인이 금은을 탐내어 의를 잊음이 고이치 아니한 일이로다!”
하고, 그는 칼을 던지며 또 말하기를,
“이 칼의 값이 천금이니, 너희들은 이 칼을 가지고 돌아간즉, 족히 범환의 금을 갚으리라. 차후는 다시 그러한 마음을 두지 말라.”
이소와 배삼은 부복(俯伏)사과하더라. 이때, 유성희는 한림으로 더불어 고금치란지사와 치민용병지술을 문답하매, 장사는 더욱 한림을 경복(敬服)하여 말하더라.
“선생은 때를 만나지 못함이로다!”
왕겸과 유이숙의 병이 나으매, 한림은 유성희와 이별하고 길에 올라 촉중으로 갈새, 이소와 배삼이 한림을 보호하여 촉중에 이르도록 진심갈력하더라.
그런데 윤공자는 어찌되었는가. 윤공자가 엄부에서 나오던 날 세번은 그의 방에 들어가 보니 신인이 없는지라, 그는 악연(愕然)하여 눈물이 날 듯하여 월화더러 물어 보았더니, 월화는 월화대로 또한 모르노라 하니라. 그래서 세변은 미칠 듯하여 말하기를,
“장평이 나를 속임이라!”
하고, 그는 즉시 장평을 잡아다가 그 연고를 물으니, 장평은,
“소생은 분명히 윤씨를 바쳤거늘, 상공이 잃어 계시니, 상공의 잘못한 탓이라. 소생의 죄는 아니로소이다.”
세번은 이런 대답을 듣고 어색하여 장평을 놓아 보내고 분연(忿然) 크게 노해서 말하기를,
“그 여자가 화전을 위하고 나를 희롱함이니 내 반드시 그 여자를 잡아 설치(雪恥)하리로다!”
“불가하다!”
하고 옆에서 듣고 있던 엄숭이가 결연히 반대하더라.
“네가 미인과 동처일야(同處一夜)하면서도 감히 범치 못하였으니 어림이 심하고, 또 남의 아내를 탈취(奪取)함이 본디 아름다운 일이 아니매, 마땅히 엎어 두고 가히 전파치 못할 것이요. 근래 황상이 서계를 택용(擇用)하시매 나의 권세는 날로 글러가고, 하춘해와 사강 등이 날마다 나를 논박하니, 이제 이런 불미지사를 분분히 자아내어 화를 스스로 돌아오게 하리요!”
아버지의 이러한 교훈을 듣고, 세번은 감히 윤씨의 거처를 찾지를 못하더라. 이때 홍씨는 월화의 기색을 보니, 윤씨가 간 후로는 날마다 안색에 수심이 있거늘, 홍씨는 월화에게 이런 말을 하니라.
“네 윤씨가 도주한 후로 얼굴이 수척하니, 어찌된 일이뇨?”
월화는 마침내 어머니를 속일 수가 없어서 실정을 고하니, 홍씨는 크게 놀라 딸의 팔을 끌어 옷을 제쳐서 홍점을 보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윤랑은 의인군자로다!”
하고, 그 여자는 인하여 엄숭에게 이 사실을 고하니라.
“윤랑이 의기가 여차하니, 반드시 여아를 저버리지 아니하리로다!”
하고, 남편도 딸의 안전에 만족을 하며 말하니라. 윤공자가 이때 성서 불사에서 은신하고 있다가 과거일자를 기다리더니, 다음해 2월에 장원급제하여 쌍개어악으로 엄부에 이르니, 숭은 크게 기뻐하나 오직 세번만은 암연히 넋을 잃고 고개를 숙이어 묵묵무언(黙黙無言)이더라. 공자는 웃으며 세번더러 말하기를,
“향자에 족하의 높은 은혜를 입어 매형으로써 좋은 땅에 배소를 얻게 하였으니, 이 감사한 말씀을 어찌 다 하리이까?”
세번은 수참(羞慚)하여 말이 없고, 엄숭은 짐짓 모르는 체하여 말하기를,
“이는 정상서의 공이니, 돈아의 힘이 어찌 미치었으리요.”
하고 인하여 그는 주찬을 내어오게 하거늘 공자는 잔을 들어 마시고 이내 하직을 고하니, 엄숭이 특별히 공자의 손을 잡고 월화의 혼사를 말하거늘 공자는 웃으며 답하되,
“이 일은 소생이 이미 영애와 상약(相約)하였으니, 합하(閤下)는 염려치 말으소서.”
엄숭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니라. 수일 후, 공자는 한림학사로 춘방(春坊) 우서자 벼슬을 겸하여 좌학사 백경으로 더불어 한가지로 춘방에 입직(入直)하매, 박학사는 윤학사의 얼굴을 대하여 의아하기를 오래 하더니 문득 묻기를,
“형이 자를 장원이라 하나이까?”
“그러하나이다.”
“형이 백년교에서 서로 만나던 일을 생각하시나이까?”
“5년 전 일을 어찌 모르리이까!”
“형이 그 동안 진씨와 성친하였나이까?”
“진씨의 소식은 유명이 격함과 같으니, 어찌 성친하였으리까? 작년에 형이 서찰로 물어 계시나, 소제는 마침 병들었으므로 능히 수답(酬答)치 못하였으니, 형은 반드시 소제로써 무진타 책하셨으리로다. 그 후에 세월이 노변하였으니, 아지 못하겠도다! 현매의 도요길기를 어느 곳에 정하셨나이까?”
“장원이 어찌 이런 말을 하시나뇨? 내 장원과 언약이 정평하거늘 어찌 장원의 회보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내 먼저 배반하리이까?”
하고 백하사는 변색하며 말하니라.
“형이 노차(路次)에서 서로 만나 초초히 언약함을 지금까지 신을 지키며 여차하시니, 진실로 감격하나이다. 그러나 소제는 진씨로 더불어 일실에 생장하매 요상농매지정이 있는지라, 이제 진씨가 화액이 있다고 언약을 저버리지 못할 터이매, 그대가친 답서 중에 마땅히 운남 진씨의 소식을 가다려 다시 의논하노라 하심이 정히 이 연고니이다.”
“그러면, 백련교에서 수작할 때에 형이 어찌 진씨를 믿지 못하여 다른 혼처를 구하려 하노라 하셨나뇨?”
윤학사는 그 말이 어긋남을 알고 다시 대답이 없고, 다만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이는 진씨의 말이오! 소제의 한 말은 아니로소이다!”
하고 그는 계속해서, 할 수 없이 진씨가 변복하고 화남으로 가던 말을 세세히 전하니, 백학사는 그제야 놀라며 또 손바닥을 치면서 웃더라.
“내 진실로 형의 안면이 전에 보던 이와 부동함을 의혹하였으나, 성명 향관이 상합(相合)하고 풍신(風神)이 방불하며 연치가 또한 틀리지 아니하니, 내 어찌 믿지 아니리요. 차희라! 진씨는 만고의 정염이요 숙녀니 형이 오래 사모하여 잊지 못함이 또한 마땅하도다. 조문화는 이미 패하고 엄숭의 권세는 날로 쇠하매, 진공의 사명이 조만에 있으리니 형의 아름다운 인연이 머지 아니하도다. 형이 풍류남자로 일찍 용문(龍門)에 올라 금마 옥당에 명위 융성하리니, 두 부인을 둠이 방해롭지 아니할지라. 형이 이미 진씨를 친영(親迎)한 후, 또한 소매를 생각하시오리까?”
“명교를 봉승(奉承)하리이다!”
하고 윤학사는 대답하더라.
이 해 가을에 백학사는 문연각(文淵閣) 수찬(修撰)으로 승직하매 소를 올려 진공의 원망함을 주달하니, 상이 깨달으사 즉시 진공을 석방한 후 공부상서로 부르시거늘, 진공 내외는 공자와 소저를 데리고 수삭 만에 경사에 득달하매, 윤시랑이 또한 윤부인으로 더불어 경사에 돌아와 두 집이 서로 치하하며 택일하여 육례를 갖추어 향거옥륜으로써 진․백 양 소저를 한날에 맞이하니라.
윤부인은 이때 진소저를 보고 남부인을 더욱 생각하여 눈물이 마를 날이 없더라. 화한림은 성도 배소에 이른 후 왕겸에게 말하기를,
“내가 무사히 이에 왔으니, 너는 가히 돌아갈지어다.”
“소인이 결발지초로부터 하어사댁 문하에 중사하옵다가, 이제 상공을 모신 후로 영욕이 무심하고 새상이 불관하여 상공께 지휘받음을 스스로 다행히 여기오며, 또 노모는 이별시에 부탁이 있사오니 소인이 어찌 상공을 버리고 차마 홀로 돌아가리이까?”
하고, 왕겸은 눈물을 흘리며 애결해서 말하니라. 이후로 한림은 왕겸과 유이숭의 두 사람으로 더불어 봉우지의를 맺고, 노주지정을 겸하여 지내더라. 이때, 한림이 죽장망혜(竹杖芒鞋)로 갈건을 제껴 쓰고 두루 방황하더니, 문득 경물을 보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만을 모친과 형장의 즐기시는 마음을 얻은즉, 비록 이제 죽어도 한이 없을 것이로다.”
하고, 그는 부귀지사와 처자지락은 모두 부운같은지라 이러므로 몸이 촉중에 있는 지 수년이로되, 남부인 거처를 생각에 두지 않고 있더라.
하루는 완화계를 거닐새, 임정 벽간에 소인묵객(騷人墨客)의 제영(題詠)한 시문을 차례로 보다가 그중 한 글에 썼으되, 청성산의 남자평은 제하노라 하고, 그 연구(聯句)에 하였으되, 칭복역에서 한퇴지의 조주 눈물이 마르지 않고, 흰 눈은 길이 두 공부의 딸을 생각게 하도다 하였거늘, 한림이 재삼 음영(吟詠)하매 만편이 다 처창비원(淒愴悲願) 한 뜻이라. 이에 크게 놀라서 말하기를,
“이 분명 우리 악장(岳丈) 남어사의 글이로다! 두 공의 딸이 있어서 그 고운 안색이 흰 눈보다 낫다 하였고, 한퇴지는 조주에 귀양갔을 제 그 딸이 칭복역에서 죽었나니, 세간에 어찌 남자평이 둘이 있어서 그 정경이 이와 같으리요. 슬프다! 어찌 남공을 만나 보고 그 여식이 촉중에 살아 있음을 전하리요.”
하고 초창(悄愴) 배회할 즈음에 홀유 유산(遊山)하는 객자가 수인 수풀을 밖으로 달려 나오거늘, 한림이 맞이하여 좌정 후, 인하여 남공의 시를 가리켜 말하기를,
“첨형 중에 혹시 이 사람의 거하는 동학을 아나이까?”
그 중에 한 사람이,
“거년 춘에 이 사람이 운수동 곽선공으로 더불어 이곳에 와서 놀다가 이 글을 지었으니, 곽선공을 찾아 물으면 가히 알리이다.”
하고 답하더라. 한림은 이 말을 듣고 돌아와 이튿날 청성산 운수동을 향할새, 이때 남어사의 내외는 그 여아를 생각하지 아니하는 날이 없으되, 세월에 오래이고 심회 적이 너그럽더니, 하루는 선공이 어사더러 말하기를,
“공이 액운이 장차 진하매, 영령의 옥랑이 금일 마땅히 이르리라.”
어사는 청파에 반신반의하더니, 얼마 안 되어 과연 동자가 들어와 고하기를,
“문 밖에 일위 공자가 와서 선생과 남대인께 뵈옴을 청하나니다!”
선공이 동자로 하여금 맞아들여 예필 좌정 후, 선공이 한림을 향하여 말하기를,
“폐거가 누추하거늘 귀인이 왕림하시니, 다사다사(多謝多謝)로소이다!”
“소생은 서로 누인으로 종적이 비천하온지라 외람히 선생의 고풍을 사모하와 감히 문하에 배알하오니, 더욱 황송무지로소이다!”
하고, 한림은 공수(拱手)하고 대답하니라.
“족하는 천자의 사부요 국가의 동량(棟樑)이라. 보건대. 나같은 산야간 무용필부는 감히 망령되이 높은 체하리이까?”
한림은 선공의 신체가 허앙하여 무리에 뛰어난 학 같으며, 어사는 포의갈건으로 쌍루 떨어뜨림을 보고, 한림은 그제야 어사에게 말을 건네기를,
“대인이 임자년에 악주로 적거(謫居) 하시던 남어사 아니시니까?”
하고 물으니 선공이,
“과연 그러하거니와 족하는 어찌 아느뇨?”
한림은 벌떡 일어서서 절부터 올리며,
“소생은 여양후 화공의 불초자 진이로소이다. 소생이 두 아내를 두었사온대, 기일은 윤중회의 친녀요 기이는 윤공의 양녀 남씨오니, 윤공이 이르시되, 남씨는 내 친구 남모의 딸이라 하여 계시니, 소생이 곧 대인의 외생이 되나이다.”
어사는 청파에 기쁜 놀라움을 나타내며 한림의 손을 잡고,
“그러면 내 딸이 지금 살아 있단 말인가?”
한림의 이에 대한 설명이 있자, 어사는 다시 침울해지며 눈물만 흘릴 따름이더라.
이때에 어사부인 한씨가 천만뜻밖에도 사위가 왔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황홀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더니, 어사가 한림을 데리고 내당으로 들어가자 한부인이 맞는지라, 한림은 부인에게 절부터 올리더라. 부인은 눈물을 뿌리며 말하기를,
“노신이 여아를 잃은 후로는 인세지락이 없어 주야로 탄식할 뿐이러니, 이제 군자의 말을 들으니, 당초 여아를 잃던 때에서 열 배나 더한지라. 다만 묻노니, 지금은 여아가 어디에 있으며 군자의 봉자옥골을 보매 또한 슬픔이 낯에 가득하니, 무슨 죄명으로 만리에 참적하였는가?”
“가운이 불행하여 요첩(妖妾)이 난가(亂家)하니 , 이는 다 소생 부부의 명이 기박함이라. 인하여 남소저가 조녀의 액을 만나매 청원의 구한 바 되어 남복을 입고 촉으로 들어왔사아, 그 종적을 알수 없나이다.”
하고 추연해 하니라. 그리고 한림은 그 동안의 사연을 죄다 전하니, 한부인은 실성 유체할 뿐이더라. 이에 어사가 한림에게 말하기를,
“소위 청원은 어느 산 어느 절에 살며, 여아의 입촉함을 보고 전하는 자는 뉘뇨?”
“윤부 비자 쌍섬이 노상에서 울며 전하매, 이 정히 창졸간에 심사가 비창하므로 능히 자세히 묻지 못하였나이다.”
“9년 전에 청원이 내 집에 왔을 때에 , 촉중 어느 산에 산다는 것을 들었으나, 내 화란지여에 심신이 산란하여 망연히 그 산명을 기억치 못하도다. 그때 청원이 여아의 용모를 보고 악연함이 있으되, 내 묻지 못함이 애닯도다!”
하고 부인이 눈물을 멈추고 말하니라.
“여아가 이미 촉중에 들어왔다 하고 군이 또 나를 찾으니, 이는 하늘이 우리 부녀와 그대 부부로 하여금 함께 모으고자 하심이니, 그대 능히 노부와 함께 산천을 발섭(跋涉)하고 촉중을 주류(周流)하여 찾아보려 하는다?”
하고 어사가 말하니,
“소생도 이 뜻이 없지 아니하오나, 다만 죄지은 몸으로 멀리 가지 못하리로소이다.”
“그대 사세가 그러하니, 노부 홀로 가리로다.”
이날 밤 어사는 한림을 데리고 외당으로 나와 촉을 돋우고 말을 할새, 어사는 사위에게 말하기를,
“현사(賢士)는 어찌 노부의 소식을 듣고, 찾아왔나뇨?”
한림이 두로정의 그을 보고, 또 놀러온 유생의 말을 듣고 찾아온 사연을 설명하니라.
“곽선공은 선인이로다! 향자에 나를 권하여 글을 지어 정자에 쓰라 하고 이르되, 명년에 반드시 이 글을 보고 찾아올 사람이 있으리라 하더니, 이제 과연 허언이 아님을 알리로다.!”
하고 어사는 신기히 여기더라. 한림이 돌아가려 하거늘 어사는 선공에게 묻기를,
“화군의 얼굴을 보시매, 액운이 몇 배나 남았나이까?”
“은진인이 있으니, 노부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진인은 뉘시니이꼬?”
“은진인은 신선이요, 화군의 전생 친구니라.”
한림이 이런 선공의 말을 듣고 허탈히 여기며 양공에게 하직을 고하니, 양공이 서운해 하나 하릴없이 잘 가라 당부하고 서로 여기서 이별하니라.
이 때 한림이 동문을 나올새, 10여 리를 행하여 한 곳에 당도하매, 홀연 절벽이 앞을 막고 운무가 자욱한지라. 한림이 길 잃었음을 깨닫고 슬퍼하며 사면을 돌아보매, 서북 충암사에 한 노인이 있으되 창안 희발에 의관이 심히 점잖은지라, 한림이 그 앞에 나아가 읍하여 말하기를,
“소생이 진세 천종으로 우연히 명산에 이르렀다가 길을 잃어 동서를 분별치 못하오니, 원컨대 선생은 돌아갈 길을 가르치소서!”
“상선은 별래 무양(無恙)하시나이까?”
하고, 노인은 의외로 공손히 일어서서 대답하더라. 한림이 놀라니,
“소생은 일개 진세 인간이라. 선생은 어찌 상선이라 하나뇨?”
“그대가 청진한 상계를 떠나온 지 이미 오래고, 불미한 진세에서 풍상(風霜) 곤액을 많이 겪었으매, 정신이 혼탁하여 마땅히 전생 일을 아끼지 못하리로다.”
하고 노인은 인하여 환약 한 개를 주며 말하되,
“이 약을 먹으면 곧 가히 스스로 알리라!”
“소생이 이미 인간사람이 되었으니 망령되어 천상일을 안즉 몸에 유익함이 없삽고 한갓 심회만 어지러워지며, 또 설사 이 약을 먹고 신선이 된다 하더라도 소생이 편모와 고형이 있으니 어찌 차마 버리고 홀로 가리이까?”
“착하다! 정말 효자의 말이로다!”
하고 노인은 인하여 말하기를,
“군의 모친과 형이 회개할 날이 불원하였도다.”
“소생의 평생 원하는 바는 형제간 우애하는 것이로소이다.”
하고 한림은 반가운 듯이 말하더라.
“슬프고 고된 것은 이미 다 진하고, 즐거운 날이 장차 가까워 오리라.”
하고 , 노인은 이제는 한림으로 더불어 석상에 앉아 친절하게 말을 계속하며,
“군은 천상지사를 원하지 아니하니, 인간사나 의논함이 가하도다.” 하고 노인은 이에 태공의 육도(六度)를 내어 한림을 주며 또 계속하기를.
“군이 급히 힘쓸 일은 이 글에 있나니, 군이 비록 이왕에 이글을 섭렵(涉獵)하였으나 그 조발을 맛봄에 지나지 못한지라. 용병함은 위태하니, 가히 자세히 강습하지 아니치 못하리로다.”
노인은 석상에 책을 펴 놓고 호리를 분석하매, 그 정묘 극직함이 비할 데 없더라. 한림은 원래 영오(穎悟)한 천재라 하나를 들으면 능히 열을 통하니, 노인이 의연히 웃고 또한 작은 족자 한 축을 내어주며, 그 그림 가운데 산천의 원근 광협을 가르치고 또 붉은 부작(符作) 한 장을 주며 말하되,
“이는 태상노군의 요괴를 제어사는 부작이니. 군이 가지면 마땅히 쓸 곳이 있으리라!”
또 노인은 음양 오행지묘를 의논하더니, 경설이 비비하고 해운이 애매하매 어두운 빛이 수풀에 내리며, 저녁 새들이 돌아감을 다투더니, 아이오! 명월이 동령에 오르고 옥로(玉露)가 옷을 적시는지라. 노인이 한림으로 더불어 암간 초옥에 들어가 자리를 쓸고 누울새, 한림이 곤비(困憊)하여 잠들었다가 깨어 보니 홍일(紅日)이 벌써 높이 솟았고, 송풍(松風)이 슬슬하는 것 같더라. 노인은 말하기를,
“국사가 바야흐로 급하니, 군은 빨리 돌아갈지어다!”
한림은 노인이 준 족자와 부작과 육도를 가지고 그에게 배사하며,
“3산이 적막하고 10주가 묘망(渺茫)한지라. 천상 인간이 한번 격하면 다시 영향을 반접지 못하리니, 원컨대 선생의 존호를 들어지이다.”
“군이 대몽을 한번 깬즉, 마땅히 스스로 나를 알리로다!”
한림이 일어서서 재배하고 겨우 두어 걸음을 옮기매, 문득 노인과 초옥이 보이지 않더라. 한림은 망연차탄하고 망망히 돌아와 보니, 작일의 황국 단풍은 간 데 없고 금일의 두견 천국이 만개한지라. 이때 왕겸이 문에 나와 바라보더니, 뛰놀며 크게 외워 이렇게 소리치더라.
“상공이 오시도다!”
유이숙이 방 안에서 이 말을 듣고 역시 맨발로 뛰어나오며 말하기를,
“상공께서 어느 곳에 가서 노셨관대 해가 바꿔지도록 돌아오시지 아니하셨나이까? 소인 등이 세 번이나 청성산에 가옵고 남어사 노야께서 두 번이나 오시되 상고의 소식을 듣지 못하와 답답해하시며, 소인 등이 또한 심산궁곡에서 혹시 호표의 환이나 만나지 않으신가 하와 여러 가지 생각을 다 하였나이다!” 하고, 그는 또 왕겸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그대는 급히 관부에 들어가 유장군께 고하라!”
“유세창이 어찌 이곳에 왔다 하뇨?”
하고 한림은 놀라서 묻더라.
“유장군 말씀이 조정에 지금 대사가 있어서, 상공으로써 광남부종사를 하여 계시매, 황칙을 받자와 내려왔노라 하더이다.”
유장군이 본관지부로 더불어 말혁을 날려오거늘 한림이 급히 당에 내리매, 장군이 말에서 내려 한림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선생은 어찌 사람을 놀래심이 여차하시뇨? 만일 금명일간을 지내었던들, 소생이 거의 발광하여 죽을 뻔하였도다!”
한림이 지부를 향하여 사례하며 말하기를,
“죄인이 마땅히 배소를 멀리 떠나지 못할 것이로되, 우연히 산중 고우를 찾다가 길을 잃어 낭패하고 세월만 보내었사오니, 무란하온 죄를 가히 면치 못하리로소이다.”
하더라.
그는 다시 유장군을 대하여 말하기를,
“아까 유이숙의 대강 전하는 말을 들었거니와 세창의 오신 연고를 미처 자세히 묻지 못하였도다.”
“연전에 해적 선산해가 경아를 크게 노략하고 만화 등 모든 고을을 함몰하고 자칭 화천왕이라 하니, 남방이 소요하여 백성이 다 분찬하매, 조정에서 크게 근심하사 우리 주장 조총병으로써 광남부 경략사를 제수하여 남방을 진무하라 하였더니, 거년 겨울에 산해가 과연 인람해구로 쳐들어오매 연해주군이 망풍 분찬하는지라, 조총병이 광서총병 척계광으로 더불어 협력하여 부주성을 지킬새 또 적세가 창궐하매 조공이 근심하여 날더러, ‘친히 경사에 올라가 적세가 호대함을 아뢰라’ 하기로 내가 황성에 올라가서 각도를 보고 ‘적군의 형편을 말할새 산해는 해도중에 간흘한 도적이라 변화 출몰하니, 조경략이 무용은 없지 아니하나 다만 문략이 부족한고로 지금까지 남방을 평정히 못하오니, 운주 결승하려니와 불연즉, 비록 100만 군사가 있을지라도 쓸데없을지라’ 하니 서공이 가로되, ‘금세에 어찌 그런 사람을 얻을 수 있으리요’ 하거늘, 내 가로되, ‘하늘이 재주를 내시매 고금이 없나니, 합하는 다만 보시지 못함이라. 어찌 금세인들 그런 사람이 없사오리까?’ 하온즉 서공이 냉소하여 가로되, ‘군은 그런 사람을 더러 보았나뇨?’ 하기로, 소장이 선생이 금세에 장자방이나 다름없음을 말한즉, 서공이 가로되, ‘제 비록 무장가 자손이나, 아직 연천하여 백면서생에 벗어나지 못하리니, 군의 말이 너무 과하도다’ 하거늘, 내가 개연히 웃어 가로되, ‘주유는 나이 16세에 강동 대도독이 되고, 장량·진평은 다 백면서생으로 한고조를 도와 천하를 취하였는지라. 진실로 합하의 말씀같이 연천하고 백면서생을 버린즉, 주유와 장량·진평이 다 초택에서 늙었으리이다.’ 서공이 묵묵히 말이 없더니 마침 도어사 하공이 들어오매, 서공이 내가 하던 말로써 하공께 물은대 하공이 크게 기뻐하여 가로되, ‘화모는 부귀할 기상이 있으니, 합하는 국가를 위하여 한번 써 보소서’ 한 대 서공이 깨달아 즉일로 탑전에 주달하오매 황상이 침음하시고 불윤하사 가로되, ‘화모는 문사라 어찌 능히 도적을 치리요’ 하신대, 한림학사 윤영옥이 출반하여 주하여 가로되, ‘화모는 신의 매부니 어찌 그 사람의 지략을 모르리까? 화모로 하여금 한번 보내오면 남방을 평정하올까 하나이다.’ 황상이 크게 기뻐하사 허락하시니, 즉일 성지를 받들어 주야 배도하여 19일 만에 이곳에 득달하와 들으니, 선생이 나가신지 이미 8삭이라 하오니, 생각하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만일 선생이 금명간에 오시지 아니하였던들, 나는 거의 죽을 뻔하였나이다.”
“내 어찌 감히 이와 같은 중임을 감당하오리까!”
하고, 한림은 그의 말을 죄다 듣고 나서 감동하여 말하니라.
“선생은 어찌 시속 사람의 겸사하는 태도를 하시나이까? 대장부가 세사에 나매 반드시 입신양명하여 유방백세함이 떳떳하리니, 부귀를 면키 어려움이 화액을 피하기 어려움과 같은지라. 때가 오면 행하고 운이 가면 그칠지니, 그러하므로 옛적 성인도 여세추이 하셨나이다.”
“내가 계창을 화산역에서 만남도 천명이요, 계창을 따라 부주성에 감도 명이며, 또 도적을 파하여 국은을 갚음도 명이요, 남방을 평정치 못하고 몸이 죽음도 명이니, 천만사가 도시 명이라! 어찌 하늘이 명하신 바를 벗어나리요. 내 마땅히 명대로 행하리라.”
이에 지부가 치행하여 발정할새, 왕겸과 유이숭 양 인이 또한 따라 나서더라. 이전에 화춘이 윤부인을 따라 경성에 이르니, 범환이 보고 묻기를,
“경옥이가 졸연히 옴은 무슨 일이뇨?”
“집에 재난이 많기로 피하고자 왔노라!”
하고 화춘은 머리를 긁적긁적 긁으면서 대답하더라. 범환은 이런 대답을 듣고 발연히 노하여 일어나니 화춘이가 이것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남씨의 죽음과 형옥의 화액이 모두 너희 음란한 남녀의 소위라! 내 마땅히 너희 두 사람의 고기를 찢어 남씨의 원혼을 위로하고, 형옥의 원통함을 쾌설치 못함을 한하노라!”
범환은 낯빛이 흙같이 되어 총총히 나가더니, 그 길로 소홍으로 내려와 조부인을 보고 이 사연을 말한대, 조부인은 이를 북북 갈며 소리치기를,
“낭군은 속히 계교를 내어 설분케 하라!”
하고, 그 여자는 장평이 윤부인을 엄부에 몰아놓는 계교를 일일이 이르니, 범환은 듣기를 다 하고 크게 놀라서 말하기를,
“나의 계교를 행코자 함이 다만 이 일뿐이러니, 장평이 이미 먼저 행하였으니, 우리가 행한 일이 다 그릇되었도다! 향자에 엄승상 부자가 졸연히 화진을 구하매, 내 심히 고이히 여겼더니, 과연 차사가 있음이로다! 하고 그는 인하여 또 조부인에게 말하기를, “삼십육계(三六計) 중에 줏자가 위상이라 하더니, 이제 우리의 계교가 이미 글렀으니 달아남만 같지 못하다.” 하고, 이날 밤 범환은 조부인과 난수로 더불어 화부의 금은보배를 죄다 도적하여 가지고 달아나니, 가인은 아지 못하되 오직 계향만이 알더라.
장평이 윤부인을 세번에게 드리고 스스로 마음에 해오되, “좋은 벼슬을 가히 얻으리로다.” 하고 좋아서 날뛰며 화춘의 백금 3천냥과 각종 보화를 엄숭의 첩 홍씨에게 드린다 칭하고, 다 제 주머니에 넣으며 웃으며 하는 말이,
“내가 윤부인 하나만 하여도 족히 태수를 얻으리니, 그러면 이 보화로써 요대 10만관하고 기학 상양주하리로다!” 하며 그는 의기양양하더니,
세 번이가 윤씨를 잃고 장평을 불러 책망하니 장편은 창황 실심(失心)하여 돌아와서 울고자 하다가 다시 웃으면서 말하기를,
“호관이 불여다득전이라! 이제 태수 할 계교는 비록 틀렸으나 금전은 흔하게 쓸 터이니 넉넉하도다!” 하고, 그는 즉시 화부로 돌아와 화부 길흉의 헛된 말로써 어리고 무지한 심씨 모자를 달래어 속여, 공연히 화부의 금은 옥패를 취하기만 마지아니하더라.
그러자, 홀연 어사 중승 윤여옥이 순천부로 하여금 방을 붙여 범환・ 장평의 두 놈을 잡으라 하니, 장편이 크게 놀라 얼굴빛을 변하여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화가의 일이 발각됨이로다! 이제 금은 보배를 많이 적치(積置)하여 두었으니, 이것을 버리고 차마 어디로 가리요? 이때를 타서 마땅히 몸을 세워 사중 구생함을 본받음만 같지 못하다.”
하고 그는 인하여 고장을 쓰되, 화한림의 출천대효는 우순징자의 뛰를 따를 것이요, 화춘의 흉악무도는 도척(盜跖)의 앞을 설 것이며, 심씨의 간악함과 조녀・범환의 간음죄상을 극히 논핵하고 이 고장을 가지고 어사 대하에 나아가 내밀면서 말하기를,
“소생의 성명은 범환이옵는데 본래 화진과 지기지우라, 화진이 천만 애매한 무소(誣訴)를 망극히 받음을 보매, 불승 분한하여 감히 친히 보고 들은 바로써 이에 폭백(暴白)하나이다.”
이때 어사 임윤과 사강과 중승 백경과 윤여옥 등이 다 당상에 모여 있더니, 어사와 중승이 그 고장을 보고 분연히 일어나며 호령하기를,
“우리들이 화가 효자의 원억함을 들은 지 오래로되, 근본이 골육지간에 났으매 입증키 어려워 풍화를 평정치 못하였더니, 이제 한생의 고소는 우리가 듣던 바와 열 배나 더한지라. 이것을 버려두면 인륜이 투패하리니, 마땅히 천패(天牌)에 주달하고 춘과 같은 적자로써 신수이처케 하리로다!“
“화춘은 나의 매부라. 나는 가히 이 의논에 참례치 못하리로다.”
하고 임어사가 탄식하며 말하니라. 인하여 그는 윤중승에게 이렇게 말을 하니,
“내 일찍 들으니, 형옥은 군자라. 그 벗을 취함이 반드시 당전할 것이어늘, 이제 범환의 위인을 보니 모자 불량하고 언어 간특(姦慝)하니, 반복소인(反覆小人)이 이때를 타서 이익을 요구함이 아니랴?”
“범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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