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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척전>



 

전라도 남원에 한 소년이 있었으니, 이름은 최척이요 자는 백승이라 했다. 최척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서문밖 만복사 동쪽에서 아버지와 외로이 살고 있었다. 최척은 나이가 어렸지만 생각이 깊고 마음은 한없이 착했으며 벗과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부터 이런 충고를 했다.

네가 공부를 즐겨하지 않는다면 무뢰한밖에 더 되겠느냐. 도대체 너는 어떤 인물을 본받고자 하느냐? 지금 한창 난리가 일어나 고을마다 장정을 널리 뽑고 있다는 걸 너도 들어 알게다. 그런데 너는 오직 놀기에만 힘쓰니 어찌 이 늙은 애비를 기쁘게 할 수 있겠느냐? 이제 책을 마련해 줄 터인즉, 선비를 찾아가 배우도록 하려무나. 비록 과거급제하여 명성을 얻지는 못할지라도 전쟁터에는 끌려가지 않을 것이다. 저 성남에 정상사란 선비가 있다. 그와는 소싯적부터 친구여서 잘 아는 사이다. 그는 면학에 힘써 문장이 능하니, 초학자를 가르침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도록 해라.

최척은 당일로 정상사를 찾아갔다. 그는 간곡히 가르침을 청했다. 그래서 정상사는 끝내 거절을 못하고 문하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가 공부를 시작한 지도 몇 달이 지났다. 이미 학문은 크게 진전을 보았다. 동네사람들은 소년의 총명함을 칭찬해 마지 않았다. 최척이 글을 배울 때면 한 소녀가 숨어들어 글읽는 소리를 몰래 엿듣곤 했다. 나이는 열 일고여덟쯤 되었을까. 새까만 윤기 어린 머리를 가진 그림같이 아름다운 소녀였다.

어느 날이었다. 정상사가 식사를 하느라고 글방을 비워 최척 혼자서 글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창틈으로 조그만 쪽지가 들어왔다. 최척은 이상히 여겨 그것을 주워서 펴보았다. 그 쪽지에는 <시경>에 있는 표유매의 마지막 장이 씌여 있었다. 그는 이 글을 읽자 마음이 마냥 들떠서 억제할 수 없었다. 언제 밤이 오려나 몹시 기다려졌다. 그러다가 공부하는 사람이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쏟아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럴수록 마음은 달아올랐다. 이윽고 스승이 글방으로 나오는 기미를 알고 그는 쪽지를 소매 속에 숨겼다. 최척은 공부를 다 하고 글방을 나섰다. 문밖에 지켜 서 있던 푸른 옷을 입은 계집아이가 뒤를 따라오며, 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했다. 최척은 계집아이를 보자 쪽지 생각이 났다. 그가 집으로 가는 길에 자세히 물으니, 계집아이가 대답했다.

저는 이 낭자의 시녀인 춘생이라 하옵니다. 낭자께서 저를 보내시며 낭군님에게 청하여 화답의 시를 받아 가지고 오라고 하시었사와요.

최척은 이 계집아이가 의심쩍어 하며 물었다.

낭자는 정씨집안 사람이 아니냐? 어째서 이 낭자라고 하느냐?

계집아이는 시원스레 대답했다.

저의 낭자께서 원래 서울 숭례문밖 청파동에서 살고 있었어요. 아버지신 이경신 어른은 일찍 돌아가셔 어머니 심씨 홀로 딸을 데리고 살고 있답니다. 이름은 옥영이라 하옵는데, 오늘 낮 창 너머로 시를 던져준 사람이 바로 저의 낭자이옵니다. 지난해 난리를 피해 강화에서 배를 타고 나주로 피난 나왔습니다. 올 가을에 거기서 다시 여기 정씨댁으로 옮겨왔답니다. 과년한 딸걱정 때문이랍니다. 외사촌뻘되는 정상사에게 혼사를 부탁하기 위해서였사옵니다.

최척은 부친을 뵙고 청혼을 해보도록 간청했으나, 부친은 잘라 말했다.

그들은 화족이니 반드시 부자가 아니면 혼인하러 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집은 빈한해서 응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최척은 몸이 달아 재삼 부친을 졸라댔다. 마침내 부친이 말했다.

네가 굳이 원한다면 내 한번 청혼을 해보긴 하겠다만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느니라.

이튿날이었다. 최공은 정상사를 찾아갔다. 아들의 혼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정상사는 말해 주었다.

나에게 사촌동생이 와 있긴 하다네. 서울에서 난을 피해 내 집에 와있지. 그 딸은 재색과 행실이 아주 뛰어나 내가 신랑감을 널리 구하고 있는 참일세. 자네 아들의 재주가 뛰어나고 또한 준수하니 신랑감으로는 적합하다고 생각되나 집안이 가난한 것이 한일세 그려. 그러나 한번 누이와 상의해 가부간에 알려줌세 그려.

최공이 돌아와 상사와 나눈 이야기를 해 주었다. 최척은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정상사는 최공을 보낸 다음 안으로 들어가 심씨와 상의했다.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제가 집을 버리고 피난을 나와 외롭고 위태로와도 의탁할 곳이 없잖아요. 다만 딸 하나밖에 없으니 부자집으로 출가시키기를 원해요. 가난한 집의 아들은 비록 그 마음이 아무리 어질다 하더라도 원치 않아요.

그날 밤이었다. 옥영은 어머니와 함께 잠자리에 들어 최척의 말을 할까 망설이며 눈치를 살폈다. 옥영이 눈물을 흘리니 어머니가 알고 먼저 말을 꺼냈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려무나.

옥영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을 붉혔으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어머님이 사위감을 고르시는데 부자집만 바라고 있으니,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님의 그 뜻을 저인들 어찌 모르겠어요. 부자집인데다 사위감이 어질다면 오죽이나 좋겠어요. 그러나 생활은 부유하더라도 남편이 변변치 못하다면, 그 넉넉한 살림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이 아니옵니까. 저는 집안이 부자라하더라도 남편될 사람이 어질지 못한다 하면 그런 집으로는 시집을 가지 않겠어요.

너 그게 무슨 당돌한 소리냐?

당돌한 말이 아니옵고 제 의견을 말했을 뿐이어요. 제가 알기로는 최척이라는 사람이 아저씨댁에 와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품이 충후하고 성실하와 단연코 경박한 탕자는 아닌 듯 합니다. 그런 분을 남편으로 섬긴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어요. 더구나 가난한 것은 선비로서 떳떳한 길이 아니옵니까. 저는 원래부터 불의로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는 것은 원치 아니합니다. 부디 그 댁으로 혼사를 정해 주시어요. 이런 말은 처녀로서 드릴 말씀이 아닌 줄 아옵니다만, 혼사는 일생에 가장 중대한 일이옵기에 감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씀드리옵니다. 만일에 부자집으로 출가를 했다하더라도 남편이 어질지 못하여 일생을 그르친다면 어찌할 것이옵니까. 이것은 깨진 병이요, 물들인 실이어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옵니다. 제아무리 가슴 아파하며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옵니다. 더구나 이 몸은 남의 집에 얹혀 살며 거기다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잖아요. 그리고 적병이 이웃 고을까지 쳐들어 온 이런 다급한 시기에 정말 충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장모를 잘 받들어 모시겠어요?

심씨는 딸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튿날 심씨는 정상사와 마주앉아 말했다.

제가 지난 밤 동안 곰곰 생각해 보았어요. 최랑은 비록 가난하지만 훌륭한 선비인 것 같아요.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 인력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출가시키기 보단, 차라리 잘 아는 처지인 최랑으로 사위를 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요.

누이가 그렇게 원한다면 내 반드시 성사시켜 줌세. 최생은 가난하나 그 사람됨이 옥과 같네. 비록 서울 넓은 바닥에서 구한다 하더라도 그만한 사람은 드물 거여. 앞으로 뜻을 이루어 학업이 대성한다면 우물 안의 개구리는 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게.

그날로 매파를 보냈다. 사주를 써 약혼했다. 내친걸음에 9월 보름날로 혼인날까지 받아두었다. 부모보다도 당사자들이 크게 기뻐했다. 혼인날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마음 태우고 있었다. 얼마동안의 세월이 흘렀다. 남원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의병장은 참봉을 지냈던 변사정이었다. 이 의병들이 영남으로 진격할 때였다. 최척은 활을 잘 쏠 뿐만 아니라 말타는 재주가 비상하다 하여 의병으로 뽑혔다. 최척은 진중에서 고민하다 못해 병이 들었다. 결혼 날은 하루하루 다가왔다. 그는 의병장을 찾아가 휴가를 신청했다. 의병장은 말했다. 이때가 어느 때라고 감히 결혼한다고 휴가를 달라는고. 상감께서도 몽진하셔 풀밭진흙 속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계셔. 신자된 도리로서 마땅히 총칼을 들어 적을 무찔러야 함이 옳은 일이 아닌고. 하물며 너는 아직도 장가들 나이가 아니잖느냐. 왜적을 격파하고 난 연후에 장가들어도 늦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는 내색도 하지 말라.

이렇듯 엄하게 책망하며 끝내 허락해 주지 않았다. 최척은 종군한 뒤로 혼인날이 박두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옥영은 혼인날을 헛되이 보냈다. 그녀는 하루하루 수심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옥영의 이웃에 양성을 가진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 자는 옥영의 아름다운 미모며 착한 마음씨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약혼자인 최척이 출정하여 돌아오지 않음을 틈타 구혼을 했다. 몰래 보화를 정가로 들여보냈고, 매파를 충동질했다. 매파는 최생이라는 자는 빈곤하기 그지없나이다. 날이면 날마다 때 걱정을 하니 부친 봉양하기에도 어렵습니다. 항상 남한테서 쌀을 꾸어오는 처지라 합니다. 그런 처지에 아내를 얻는다면, 그 어려움이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요. 더구나 최생이란 자는 전장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그 생사를 알 수 없지 않는가요. 그런데 비해, 양씨는 원래부터 한다한 부자가 아닌가요. 그의 아들 또한 어질어 최생만 못잖으니, 아주 금슬 좋은 부부가 될 것이 뻔하지요하며, 성가시게 보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격으로, 심씨는 마음이 소롯이 기울어졌다. 끝내 승낙을 하고 말았다. 결혼 날짜도 열흘 앞세워 정하기까지 하였다. 옥영은 이를 알았다. 그날 밤, 옥영이는 어머니와 마주하자 단연코 반대하여 말했다.

최랑이 오지 못한 것은 그 몸이 의병장에게 매인 때문이어요. 고의로 약속을 저버린 것이 아니온데, 최랑을 기다리지도 아니하고 스스로 파혼하는 불의를 저는 원하지 않사옵니다. 만약 딸의 뜻을 꺾고자 한다면 저는 당장 죽어버리겠어요. 어머니마저 이 마음을 몰라주는데, 어찌 하늘인들 알아줄 리 있겠어요?

심씨는 너는 어찌 제 고집만 부리느냐. 응당 남의 딸이 되었으면 부모의 처분만 기다려야 할 것이 아니냐. 감히 어느 앞이라고 시집가는 것까지 간섭을 하려 드느냐하고 딸을 몹시 책망했다. 밤이 깊었다. 심씨는 잠결에 이상한 숨소리를 들었다.

놀라 깨어났다. 옆에 누워 자던 딸이 없었다. 당황하여 급히 찾아나섰다. 옥영은 창 밑에 엎어져 있었다. 수건으로 목을 졸라맨 것이었다. 이미 손발은 싸늘하게 식었고, 가느다란 숨소리만 가쁘게 들렸다. 이것마저 점점 희미해지더니 뚝 끊어지고 말았다.

심씨는 통곡했다. 부랴부랴 목을 맨 수건을 풀었다. 손길은 마냥 떨렸다. 이때 춘생이 깨어나서 불을 밝혔다. 그녀도 주저앉아 통곡했다. 급히 서둘러 물 몇 모금을 입을 벌리고 흘려넣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간은 흘렀다. 이윽고 가느다란 숨결이 되살아났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너나없이 달려와 구완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였다. 심씨는 양가와의 혼사문제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심씨는 양가와의 혼사문제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발 없는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다. 최공의 귀에도 이 사실이 들어왔다. 그는 그 사실을 아들에게 알렸다. 그 무렵, 최척은 병으로 몸져 누워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서신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병세는 다급해졌다. 의병장도 이를 알고 최척을 불렀다. 곧 귀가 조치를 취해 주었다. 최척이 집으로 돌아온 지도 수일이 지났다. 그렇게 위독하던 병세도 씻은 듯이 나았다. 마침내 그날, 섣달 초사흘이 다가왔다.

최척은 정상사의 집으로 가 옥영과 혼례를 치렀다. 두 사람의 기쁨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최척은 아내와 장모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에 들어서기도 전이었다. 친척들이 몰려와 신부의 아름다움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웃사람들도 어진 아내를 데려왔다고 부러워들 했다. 옥영은 시집온 지 삼일도 채 안 되어 시집일을 열심히 했다. 베틀에 올라 베를 짰다. 들로 나가 김을 맸다. 그녀는 지성으로 시아버지를 공경했고 남편을 정성스레 섬겼다. 윗사람들을 공손히 받들었고 아랫사람들에게는 극히 자상했다. 그녀는 인정과 사랑을 골고루 베풀었다. 원근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양홍의 아내며 포선의 며느리도 이보다는 못했을 것이라고들 했다.

최척은 옥영을 아내로 맞이한 후 부족함이 없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사람과 혼인을 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살림도 나날이 넉넉해져갔다. 이래서 아기자기한 세월은 흘러갔다. 그러나 최척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늘 걱정이 됐다. 생각다 못해 매달 초하루가 되면 부부 동반해서 만복사로 올라가 자식 하나 점지해 달라고 빌었다.

이듬해는 갑오년이었다. 이 해도 정초에 만복사로 올라가 불공을 지성으로 드렸다.

그날 밤이었다. 부인의 꿈속에 부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만복사의 부처로다. 내가 그대들의 지극한 정성에 크게 감동됐다. 그래서 기남자를 점지해 줄 것인즉, 이후 부인의 몸에는 태기가 있을 것이로다

과연 그달로부터 태기가 있었다. 만삭이 되어 순산하니 아들이었다. 등에는 손바닥만한 붉은 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몽석이라 지었다.

최척은 피리를 썩 잘 불었다. 그는 달밝은 밤이나 꽃피는 아침나절에 피리를 불었다. 그가 피리를 불 때면 저무는 봄날하며 아름다운 밤으로 미풍이 간들어지게 살랑거렸고, 밝은 달은 빛을 더해 현란하게 비쳤다. 바람에 나는 꽃잎은 옷에 나앉았고, 그윽한 향기가 코끝에 맴돌았다. 그러면 술독에서 빚어 놓은 술을 퍼 잔 가득히 부어 마셨다. 취기가 한껏 돌면 책상에 기댄 채 피리를 불었다. 그 피리소리는 간들어지게 울려퍼져 멀리까지 번졌다.

옥영은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첩은 오래 전부터 아녀자들이 시를 읊는 것을 못마땅해 했었지요. 그렇지만 이런 정경에 이르러선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요최척이 어디 부인이 한 수 읊어보오하니 옥영은 칠언절귀 한 수를 읊었다.

 

왕자진이 피리를 주미 달도 내려와 들으려 하네.

푸른 난조 나는 것을 막아나보리.

푸른 하늘은 바다와 같고 이슬은 차기만 한데,

봉래산 가는 길은 안개와 놀에 싸여 찾을 수가 없네.

 

최척은 이제까지 시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 부인이 읊은 시를 듣고 크게 놀랐다. 너무나 감동해 시흥이 절로 솟았다. 화답의 시를 읊었다.

 

요대는 멀고도 아득한데, 새벽 구름은 붉게 물들었네.

이제도 남은 소리 공산을 채우니 달이 떨어지네.

난조 날개 한 피리소리 아직도 다함 없는데,

뜰에 가득한 꽃 그림자 향기로운 바람에 흔들리네

 

읊기를 마치자 옥영은 몹시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지레 짐작하고 눈물을 뿌리며 말했다.

세상살이에는 불의의 변고가 많사옵니다. 좋은 일에는 반드시 마가 끼어들기 마련이옵고 헤어지고 만남이 무상할 것이오니, 어찌 마음이 슬퍼지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최척은 부인의 눈물을 소매로 훔쳐주며 위로했다.

굴신과 영허는 천도의 상리요, 길흉과 회린은 인사의 당연함이라 하지 않소. 설혹 타고난 운명을 변경할 수야 없다손 치더라도, 얽매여 살 필요가 어디 있겠소. 그러니 너무 슬퍼하거나 근심하지 마오. 옛사람이 말하되 길한 말만 하고 흉한 말은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듯이, 부질없는 마음을 써 이 즐거운 마음을 상하게 할 것가지야 없지 않으오

이로부터 부부의 사랑은 나날이 깊어갔다. 이들 부부는 지음이라고 자처하면서 하루도 떨어져 있는 일이 없었다.

정유년 팔월이었다. 왜적이 남원고을로 쳐들어와 성을 함락시켰다. 사람들은 뿔불이 흩어져 산 속으로 피난했다. 최척의 가솔은 지리산 연곡 깊숙이 피난했다. 난리통이라 인심이 흉흉했다. 어디서 무슨 변을 당할지 몰랐다. 최척은 옥영더러 남장을 하라고 일렀다. 남북을 입으니 아무도 여자인 줄 짐작 못했다.

산속으로 피난온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이미 가져온 양식은 동이 났다 .식솔이 굶주리게 되었다.

최척은 장정 서너 명과 작당하여 산속을 벗어났다. 양식을 구하는 길에 적세를 살피면서 구례까지 갔었다. 그곳에서 갑자기 적병을 만났다.

그들은 몸을 신속히 날려 바위틈에 숨었다. 적병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왜적들은 곧장 지리산 연곡으로 쳐들어갔다. 적들은 피난 나온 사람들을 남김없이 잡아 끌고갔다.

최척은 길이 막혀 거동을 할 수 없었다. 사흘이 애타게 자나갔다. 그는 적병이 물러간 다음에 연곡으로 급히 달려갔다. 연곡은 이미 생지옥이었다. 처참했다. 시체는 산골짜기마다 내동댕이쳐 있었고 유혈이 내를 이뤘다.

혈안이 되어 식솔을 찾는 그때였다. 숲속에서 신음소리가 드렸다. 소리나는 고승으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노약한 몇 사람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신음하고 있었다. 그 중 다소 성한 사람이 최척을 알아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적병이 이곳으로 쳐들어왔다네. 재화를 약탈하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지. 젊은 여자들은 섬강으로 끌고 갔다네

최척은 주먹을 불끈 쥐고 대성통곡했다. 땅을 치며 피를 토했다.

이윽고 그는 섬강으로 달려갔다. 얼마 못 가서 흩어진 시체 속에서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가서 보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시뻘건 선지피가 온 얼굴을 감싸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최척은 옷을 살펴보았다. 어딘가 낯이 익은 것만 같았다. 크게 소리쳐 불렀다.

네가 혹 춘생이 아니냐?”

춘생이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눈을 떴다. 그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다 기어드는 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오 서방님! 아씨가 적병에 잡혀갔어요. 저 저도 붙잡혀 따라가다가, 따라가지를 못하니 칼로 찔렀어요. 칼 맞은 지 한나절 만에 겨우 사 살아났으나, 등에 업힌 아기의 새 생사를 아 알......”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숨이 넘어갔다. 최척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발로는 땅을 차면서 통곡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얼마가 지나 정신이 들었다. 또 기운을 차려 섬강으로 달려갔다.

섬강으로 가 보니, 강둑에는 칼 맞은 시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연곡으로 피난왔던 사람들이었다. 최척은 더 이상 기대를 걸 수 없었다. 그는 실성하여 통곡하며 시체 속을 누볐다.

그는 마침내 자살하려고 강가로 갔다. 막 물로 뛰어들려는 찰나, 어떤 사람이 옷을 잡으며, “이 난리통에 당신같은 이가 한 사람뿐인가? 그럴수록 용기백백해야지”‘하고 말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지도 못하고, 식솔을 찾아 강둑을 사흘이나 밤낮으로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그는 기진맥진해서 옛 집으로 돌아갔다. 집은 적화에 다 타버렸다. 무너진 담장과 깨진 기왓장만이 흩어져 있었다. 한 곳엔 피난가지 못하고 적병에게 붙들려 죽은 사람의 뼈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발을 옮겨 놓을 만한 틈새가 없었다.

최척은 먹지도 지지도 못하고 금교 밑을 헤매고 다녔다. 마침내는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어느 날이었다. 헐연히 명장이 수십 기를 이끌고 서에서 나왔다. 금교 밑에 와 말을 씻고 있었다. 최척은 의병으로 진중에 있을 때, 명나라 병사를 응접하여 수작을 오랫동안 했었다. 그래서 명나라 말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최척은 집도 불타버렸고 자족마저 잃어버려 몸 하나 의탁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명장을 붙들고 명나라도 들어가 살겠다고 애원했다. 명장은 그의 말을 듣자 측은히 여겼고, 그 뜻을 동정하여 말했다.

나는 오총병의 천총 여유문이요. 내 집은 절강 요흥부에 있는데, 비록 가난하지만 먹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끼리 서로 만나 마음껏 즐기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 하오. 내 좁은 소견에만 매달려 뜻에 맞는 사람의 청을 어찌 들어주지 않으리요.”

그리고는 말 한 필을 내주었다. 그리고 진중에 함께 유하도록 했다.

최척은 용모가 준수했다. 헤아리고 생각함이 또한 깊었다. 그리고 궁마가 능숙할 뿐만 아니라 문장도 넉넉했다. 그래서 여공이 지극히 생각해 주었다. 식사도 같이했고 잠자리에도 함께 들었다.

왜적이 어느 정도 평정되자, 오총병은 군사를 이끌고 철수했다. 여공은 최척을 데리고 함께 환국했다. 그는 오총병을 떠나 고향인 요흥부로 가서 살았다.

최척의 마을에 왜적이 습격했을 때였다. 최공과 심씨는 늙고 병들어 멀리 피난 갈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적병을 패해 산골짜기에 숨어 있었다. 적병이 물러가자 골짜기를 나왔다. 이 마을 저 마을로 걸식하며 다녔다. 그러다가 연곡사에 발길이 닿았다. 그때 승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째지게 났다. 심씨가 최공을 보면서 말했다.

누구의 아이인지는 모르나 꼭 손자의 울음소리와 같군요.”

그래서 최공이 문을 열고 살펴보았다. 틀림없는 몽석이었다. 달려들어가 어루만지며 얼렀다. 얼마쯤 아기를 돌보다가 옆에 있는 스님에게, “이 아이를 어디서, 어떻게 데려왔습니까?”하고 물었다. 해정이란 스님이 대답했다.

소승이 쌓여 있는 시체 속에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몹시 불쌍히 여겨 데려왔소이다. 지금 아기의 부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옵니다.”

최공은, “정말 부처님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 아이가 어찌 살아났겠소하고 극구 사례했다.

그날로 최공은 손자를 데리고 불타버린 집으로 돌아왔다. 심씨와 번갈아 가면서 타다 남은 집을 수리해 겨우 비바람을 피하며 살았다.

옥영은 왜병에게 붙잡혀 왜국으로 끌려갔다. 왜병 중에 늙은 병사가 있었다. 비록 글은 배우지 못했지만 부처님을 믿어 그 마음은 자비로왔다. 그는 장사를 생업으로 했다. 그리고 배타기를 익혔다. 그래서 왜장 소서행장이 선주로 삼아 조선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 늙은 왜병은 옥영을 아껴주었다. 부인을 집으로 데려가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주어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도망치지 않으려니 여겼다. 옥영은 바다에 몸을 더져 자살하려는 직전에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배를 내어 도망치려 했으나 감시가 심해 들키곤 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옥영은 웅크리고 있다가 선잠이 들었다. 꿈결에 부처님이 나타나, “나는 만복사의 부처로다. 부인이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반드시 후일이 있을 것이다.” 하고 계시해 주었다. 옥영은 깨어나 그 꿈을 곰곰이 생각했다. 부처님을 굳게 믿어 후일이 있을 것을 기약하고는 자살하려던 뜻을 굽혔다.

이 왜인의 집에는 늙은 아내와 어린 딸이 하나 있을 뿐 아들이 없었다. 늙은 왜인은 옥영을 집에만 있게 했고 바깥 출입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옥영은 말했다.

저는 몸이 작은 데다 약골이라 병이 잦습니다. 본국에 있을 때도 장정으로 안 뽑혀 출전도 못했습니다. 단지 바느질과 밥짓는 것만 배워 다른 일은 전혀 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왜인은 더욱 가상히 여겼다 아들같이 사랑했다. 이 왜인은 언제나 배를 타고 다니며 장사를 했다 장사를 나서며 옥영을 배 안에 두고 밥을 짓게 했다. 왜인은 중국 민절지간을 왕래하며 장사했다.

그때쯤이었다. 최척은 요흥부에 여공과 함께 형제지의를 맺고 살고 있었다. 여공은 매부를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최척은 굳이 사양했다.

나는 집을 적화에 잃고 또한 노부며 약처하며 자식의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것 발상이나 복상도 못하고 있는 처지에, 어지 마음놓고 아내를 얻어 평안한 생활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뚝 잘라 거절했다 이후 여공은 두번다시 권유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이었다. 여공은 마침내 병들어 죽고 말았다. 최척은 더 이상 의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처없이 방랑의 길로 들어갔다. 각지의 명승고적을 찾아다녔다. 소상강, 송정호, 악양루, 고소대 등을 돌아보며 시를 지어 읊었다. 그는 어느새 이렇게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한세상을 보내겠다는 뜻을 굳혔다.

그러다가 해섬도사 왕용이라는 사람이 청성산에 은거하며 황금연단을 복용하여 백을 만에 승천하는 도술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장차 촉땅으로 들어가 그 도사를 찾아서 배우기를 청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때였다. 다행히도 송우란 사람을 만났다. 그의 집은 항주 용금문 안에 있었고, 경사에는 일가견을 가졌지만 공명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저서로 생업을 삼았다. 또한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성미였다. 최척은 이 사람과 사귀어 지기가 되었다.

송공은 최척이 촉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술을 마련해서 찾아왔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얼근히 취한 후였다. 손공이 최척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난세에 백일승천하는 도술을 누구인들 원치 않으리요. 그러한 이치는 고금을 통하여 없을 뿐만 아니라, 여생이 얼마나 남았다고 그런 마음을 다 먹소. 복식하기 위하여 굶주림을 참고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할 필요까지야 뭐 있소. 그래 산귀와 더불어 벗하려고 그러는가? 최공은 그러지 말고 나를 따라 배를 타세. 오월로 다니면서 비단이나 팔고 차나 팔면서 남은 여생을 보낸다면, 이 또한 달인의 업이 아니겠는가?”

최척은 듣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래서 송공을 따라 항주로 갔다. 그해는 경자년 봄이었다. 최척은 송공과 함께 상선을 타고 안남을 왕래했다.

이 항구에는 왜선 10여척이 열흘 전부터 정박하고 있었다 때는 사월이라 모두들 노곤하여 곯아떨어졌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었다. 물빛은 비단같이 아름다왔고, 바람이 자 물결은 잔잔했다. 불결소리조차 조금도 들려오지 않았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도 잠이 들어 코고는 소리는 높은데, 이따금 물새 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때 왜선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매우 구성지게 들려왔다. 최척은 홀로 선창에 기댄 채 신세타령을 했다. 모든 것을 잊으려는 듯, 품속에서 퉁소를 꺼내어 계면조 한 곡을 불면서 가슴속에 맺힌 애원한 정을 풀고 있었다.

이 피리소리에 하늘마저 근심스런 빛을 띤 듯했고, 구름과 연기조차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배 안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도 놀라 깨어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슬픈 낯빛을 지었다. 피리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대 왜선에서는 염불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염불소리 대신에 조선어로 칠언절귀를 한 수 읊기를 다하자 한숨을 휴 내쉬는 것이었다.

최척은 이 시 읊는 소리를 듣고 너무도 뜻밖이어서 들었던 퉁소마저 떨어뜨렸다. 넋을 잃은 듯,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송공이 이상히 여겨 자네는 어째서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가?”하고 거듭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연해 큰 소리로 묻자, 최척은 그 자리에 쑤러지며 기절해 버렸다. 얼마가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저 시는 내 아내가 지은 시요. 둘만이 알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오. 더우기 시 읊는 소리가 아내와 흡사하니 어찌 놀라지 않겠소. 아내가 저 배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니, 도저히 그럴 리 없지

그리고는 왜적의 습격을 당하여 가족들이 흩어진 내력을 들려주었다. 사람들은 놀라며 이상히 여겼다.

그 속에 두홍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가 젊고 용감한 반면에 좀 덤벙대는 선비였다. 그는 최척의 말을 듣자 의기를 타나내 주먹으로 뱃전을 쳤다. 분연히 일어서며, “내가 당장 가서 찾아보겠소하고 급히 서둘렀다. 송공이 만류하며, “깊은 밤에 일을 꾸몄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두려우이. 내일 아침에 정중히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오하니, 모두들 찬성했다.

그날 밤 최척은 잠 한숨 자지 못했다. 아침을 기다리며 뜬눈으로 날을 밝혔다. 이윽고 동쪽이 밝아왔다. 그는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이 배에서 내려왔다. 곧장 언덕으로 내려가 왜선으로 다가갔다. 최척은 조선어로 크게 외쳤다.

어젯밤 시를 읊은 사람은 틀림없이 조선인일 거요. 나도 조선인이오. 이 머나먼 안남까지 와서 고국 사람을 한번 만나보는 것도 이 또한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옥영은 배 안에서 퉁소 소리를 들었었다. 그것은 곧 조선의 곡조요, 또한 옛날에 귀에 익었던 소리였다. 그래서 남편이 그 배에 와 있지 않나 해서 시를 시험 삼아 읊었던 것이었다.

그때 남편이 자기를 찾는 말을 듣자, 옥영은 황망하여 몸둘 바를 몰랐다.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급히 난간을 내려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고, 소리치면서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너무나 감격해 가슴이 막혔다. 심정이 격하여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이 극적인 광경을 보느라고 양국의 뱃사람들이 담장처럼 늘어섰다. 그들은 처음에 친척이나 친구인 줄로만 알다가 급기야 부부지간이란 것을 알고는 서로 쳐다보며 큰소리로, “이상하고도 기이하도다. 이것은 하늘이 돕고 귀신이 도왔도다. 일찌기 이런 일은 보지 못했는데 정말 기쁜 일이로다.” 하며, 경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최척은 집안 소식을 물었다. 옥영은, “그때 저희들은 산중에서 도망하여 강가로 나왔어요. 시아버님과 어머님은 그때까지 무사했어요. 날은 저물고 창황중에 배를 타느라고 그만 서로 헤어지고 말았어요하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또 한 번 통곡했다. 이 정경을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송공이 왜인을 청하여 백금 세 덩이를 주며 옥영이를 사겠다고 나섰다. 왜인은 송을 내저으며 말했다.

내가 이 사람을 얻은 지 사년이나 흘렀습니다. 그 단정한 거동을 사랑하여 친자식같이 사랑했고, 침식도 함께하며 잠시도 서로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부인인 줄은 미처 몰랐소이다. 이제 이런 해후를 보고 하늘과 귀신마저 감동하거늘, 내 비록 완고하고 미련하나 어찌 목석과 같으리요. 어지 값을 받을 수가 있겠소이까?”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열 냥의 은자를 꺼내어 옥영에게 주며 말했다. “사년 동안이나 동거하다가 하루 아침에 이별하게 되니, 슬픈 심정을 참을 수 없구려. 잃었던 남편을 만리바다 밖에서 다시 만난 것은 이 세상에 일찌기 없었던 일이오. 내가 욕심을 낸다면 하늘이 벌할 것이오. 부인은 남편에게 돌아가 부디 몸조심하고 행복하게 사시오.”

옥영은 왜인의 손을 잡고, “주인 영감님의 도움을 입어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서 남편을 만났으니, 그 베푼 은혜가 이미 깊사옵니다. 더우기 이렇게 많은 돈까지 주시니 어떻게 보답할 길을 모르겠사옵니다.”하고 치사했다. 최척도 왜인에게 극구 사례했다.

그는 옥영을 데리고 배로 돌아왔다. 이웃 배에서 모두들 찾아와 비단과 금은을 주며 축하했다. 최척과 옥영은 그 사례를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송공은 최척의 부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집 한 칸을 마련해 주었다. 그들 부부로 하여금 평안하게 살게 했다. 최척은 난중에 잃었던 아내를 찾아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만리 타국이라 의탁할 곳이 없었으며, 사방을 돌아봐도 친척 하나 없었다. 더우기 늙은 아버지와 어린 자식의 생사를 생각하여 밤낮으로 상심했다. 근심걱정이 끊어질 날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만 기원했다.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옥영은 또 아들을 낳았다. 해산을 하던 날 밤,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서, “아기를 낳으면 이번에도 등에 붉은 점이 있으리라하고 계시했다.

과연 아기의 등에는 큼직한 붉은 점이 있었다. 부부는 몽석이가 다시 태어난 듯이 여겨 몽선으로 이름지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염원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세월은 흘러만 갔다. 몽선이도 점점 자랐다. 장성하여 현부를 구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

이웃에 진가의 딸이 살고 있었다. 이름을 홍도라고 하였다. 돐이 되기도 전에 홍도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 진위경은 유총병을 따라 조선으로 출전한 뒤 소식이 없었다. 어머니는 홍도가 다 자라기도 전에 돌아갔다. 그래서 이모부 밑에서 자랐다. 장성하자, 그녀는 아버지가 이역에서 전사했음을 알고 몹시 가슴 아파했다. 얼굴도 모른 채 아버지를 잃어 더욱 상심했다.

그녀는 한 번이라도 부친이 돌아가신 나라에 가보기를 원했다. 그녀는 오래도록 맺힌 한을 품고 가슴에 소원을 새겨두었다. 그러나 아녀자의 몸이라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차였다. 조선사람 몽선이 아내를 얻으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모부에게 저는 최가의 아내가 되어 한번 동국으로 가기를 원합니다하고 의견을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모부는 그녀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 난 터에 곧 최척을 찾아갔다. 찾아온 내력을 이야기했다. 최척 부부는, “여자로서 그 뜻이 이와 같으니 매우 가상한 일입니다.”하고 마침내 홍도를 며느리로 맞이했다.

며느리를 맞이한 이듬해, 기미년이었다.

누르하치가 군사를 몰아 요양으로 쳐들어왔다. 요양은 적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요양이 적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는 대로했다. 그래서 천하의 병마를 동원하여 이를 평정하려 했다.

이때 소주인 오세영은 유격백총이 되어 출전했다. 그는 최척의 재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기를 삼아 진중으로 뽑아갔다.

출전하는 날이었다. 옥영이 떠나는 남편의 손목을 잡고 작별을 서러워하며 말했다.

첩이 박명하여 일찌기 난리를 만나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이 도와 낭군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래서 끊어진 거문고 줄을 잇고 깨진 거울을 원상태로 둥글게 해 새로운 인연을 믿었사옵니다. 더우기 늙어서 의탁할 아들까지 얻어 즐거움을 함께 나누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흐느껴 울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이나 눈물 짓다가 다시 말했다.

“...... 지난 일을 돌아보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항상 저는 이 몸이 먼저 죽어 낭군님의 은혜에 보답하여 하였사옵니다. 뜻밖에도 늘그막에 이르러 삼상의 이별을 하게 되니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이오니까. 이제 수만리 밖인 요양으로 가신다면 살아 돌아오기 어려우니, 어찌 다시 만날 기약인들 할 수 있겠습니까. 작별하는 이 마당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나이다. 그래서 낭군님께옵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없애오며, 이 첩이 주야로 겪는 괴로움을 덜까 하나이다. 부디 떠나시는 낭군님은 천만 번 몸을 보중하옵소서. 저는 이로 영결하겠어요.”

옥영은 품에 지닌 장도칼을 꺼내어 목을 찌르려 했다. 최척은 황급히 칼을 뺏으며 말했다.

하찮은 오랑캐무리가 감히 대국과 대적하였으니 자승자박이 아니겠소. 왕사가 한번 나아가면 달걀을 바위로 치는 것과 마찬가지요. 출전하는 이 사람에게 괴로움만 더할 뿐이니, 망령된 짓은 아예 하지 마오. 내가 하루속히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술잔을 기울여 축하나 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이제 몽선이도 성장해서 얼마든지 의탁할 수 있지 않소. 효성이 지극해 모친을 잘 모실 것이어늘, 다른 일도 아닌 싸움터에 나가는 이 사람에게 그런 근심은 주지 마오.”

드디어 행장을 수습하여 요양으로 떠나갔다. 요양에 이르러 호지 수백리까지 깊숙히 들어갔다. 명군은 조선 군마와 함께 중모채에 진을 쳤다. 주장은 적을 가볍게 보고 싸우다가 전군이 대패했다. 오랑캐들은 명군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조선 군마도 무수히 살상을 당했다.

명나라의 오유격은 패졸 10여명을 이끌고 조선 군명으로 들어가 의탁했다. 조선의 원수 강홍립은 그들을 보살펴주었다.

최척은 조선인의 덕을 보았다. 게다가 격전중에 숨어 다니다 샛길로 도망쳐 죽음만은 면할 수 있었다.

종사관 이민연은 적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래서 오랑캐에게 환심을 사기 위하여 강원수의 진지를 염탐해서 적에게 고자질했다. 오랑캐가 일시에 쳐들어왔다. 강홍립의 군사는 적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이때 살아남은 명군은 오랑캐에게 사로잡혔고, 최척도 사로잡힌 몸이 되었다.

조선인의 포로 중에는 몽석이도 끼어 있었다. 그는 고향에서 무술을 익히다 종군했다 바로 강원수의 진중에 있었다. 오랑캐들은 장졸을 분치할 때 명군과 조선인으로 나누었다. 최척은 조선인으로 행세해 몽석과 함께 갇혀 부자가 상봉했으나 서로 알아보지 못했다.

몽석은 최척이라는 사람이 조선어에 서툰 것을 알았다. 필시 명군인데 죽음이 두려워 조선의 밀정이 아닌가 해서 횡설수설했다. 전라도라거니, 충청도라거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몽석은 이에 더욱 의심이 부쩍 들었으나 그 심중을 헤아릴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서로 친숙해지고 정이 깊어갔다. 침식도 같이하고 서로의 처지를 동정하게끔 되었다. 서로 숨김이 없는 허심탄회한 사이가 되었다.

최척은 평생 겪은 사연을 숨김없이 털어놨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몽석은 얼굴빛이 여러 번 변했다. 마음이 마냥 떨렸다. 한편으로는 믿어지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의심이 부쩍 났다. 그래서 몽석은, “그렇다면 잃었던 아들의 나이가 몇이며, 신체에는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생각나십니까?”하고 불쑥 물었다. 최척은 웬일인가고 이상히 여기며 대답했다.

갑오년 10월에 나서 정유년 8월에 잃었다오. 등에는 붉은 점이 있는데, 어린아이 손바닥 만하오.”

이 말을 들은 몽석은 넋을 잃고 쓰러졌다. 이윽고 일어나며 옷을 벗고 등을 돌려대며, “저는 대인의 유체이옵니다.”했다. 최척도 이때에야 몽석이가 자기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자의 기쁨은 하늘 끝 닿는 줄을 몰랐다. 서로 얼싸안고 오랫동안 울었다. 더우기 부모가 구존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할 수 없이 기뻐했다.

포로를 감시하는 오랑캐 병사는 자주 드나들다 이런 사정을 알고는 불쌍히 여기는 빛이 완연했다. 하루는 오랑캐들이 다 나갔다. 그 늙은 오랑캐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최척을 몰래 불러내어 자리를 같이했다. 조선어로 물었다. “당신들이 우는 것이 처음과 다르니, 어떤 내력이 있소? 내 듣기 원하니 들려주시오.”

그러나 최척은 어떤 변을 당할지 몰라 망설였다. 늙은 오랑캐는 말했다. “나를 두려워하지 마오. 나는 원래 삭주의 토병이었소. 부사의 학정이 심해 견딜 수가 없어서 가족을 데리고 오랑캐 땅으로 들어와 산 지가 이미 10년이나 지났소. 오랑캐들은 솔직하고 학정이 없소.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을진대, 굳이 고초를 받으며 살것까지야 어디 있겠소. 오랑캐의 추장이 80여명의 정병을 주어 나로 하여금 포로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감하케 하고 있다오. 내가 당신들의 사정여하에 따라 비록 추장에게 문책을 당하더라도 보내줄까 하니, 숨김없이 사정을 이야기해 보오.”

그래서 최척은 마음 놓고 지나온 사연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늙은 오랑캐는 무릎을 치며 몹시 딱하게 여겼다. 백방으로 탈출구를 모색해 주겠다고 약속가지 했다.

이튿날 새벽이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큼을 탔다. 그 늙은 오랑캐는 양식을 마련해주며 떠나가도록 주선해 주었다. 자식을 시켜 샛길을 가리켜 주기까지 해서 무사히 탈출시켰다.

이래서 최척은 아들과 함께 20년 만에 고국땅을 밟게 되었다. 부친과 장모를 만날 생각으로 마음은 조급하기 작이 없었다. 남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등창까지 나 치료를 하며 은진까지 왔다. 그러나 등창이 도져서 더 이상 길을 갈 수가 없었다. 급기야 여관을 찾아들었으나 병이 더해 죽게 되었다.

몽석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돌아다녔으나 침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때 명인 진위경이 숨어다니며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에 이 여관에 묵게 되었다. 그는 최척의 병이 위독함을 보고, “굉장히 위독하오. 오늘이나 넘길까 생명을 건질 수가 없을 것이오.”하며 주머니에서 침을 뽑아 등창의 고름을 땄다. 그 날로 병은 차도가 있었다. 이틀이 지났다. 지팡이를 짚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안에 들어서니 모두들 놀라 기절했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온 것만 같았다. 부자가 부둥켜안고 한바탕 흐느껴 울었다.

심씨는 딸을 잃은 후로 넋나간 사람이 되다시피 했다. 다만 몽석이만 의지하고 살다가 그마저 전쟁터에 끌려나가 소식이 없어 상심하다 못해 병상에 누운지 두어 달이 지났다. 심씨는 사위와 외손자가 함께 돌아온 후, 무엇보다 궁금한 딸의 생사를 물었다. 살아 있다는 말을 듣자 딸의 이름을 부르며 미친 듯이 울어대는데, 슬픔인지 기쁨인지 알 수 없었다.

몽석은 명인이 아버지의 죽을 목숨을 살려주자 몹시 감격했다. 그래서 함께 데려와 그 은혜를 갚으려고 했다. 어느 정도 기쁨이 가시자 명인을 불러 함께 자리를 했다. 최척이 물었다. “당신이 명나라 사람이라면 그래 집은 어디 있소?”

제 고향은 항주 용금문 안이오. 만력 25년 유도독 휘하로 종군해서 조선으로 왔었소. 전라도 순천에 와 진을 치고 있을 때였소. 하루는 적세를 염탐하러 나갔다가 주장의 뜻을 거스르고 군법을 어겼소. 밤중에 도망쳐 나왔는데,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이곳에 머물고 있소.“

최척은 그의 고향이 용금문 안이라는 말을 듣고 놀랍고 반가와, “당신의 고향에는 부모와 처자가 있소?”하고 물었다.

고향에는 아내가 있었소. 내가 출정하기 전에 한 딸을 두었소. 겨우 두 달 된 것을 더나와 소식을 모른다오.“

최척은 다시 그렇다면 딸의 이름은 알고 있소?”하고 물었다.

아이를 낳는 날, 이웃사람이 귀한 복숭아를 갖다 주어 이름을 홍도라 지었소.”

최척은 진위경의 손을 덥썩 잡고 말했다. “정녕 이상한 인연이외다. 제가 항주에 있을 때 진공의 집과 이웃해 살고 있었소. 진공의 부인은 신해년에 병들어 돌아갔다고 들었소. 홀로 남은 홍도는 이모부인 오봉림의 집에서 자라났소이다. 제 아들이 성장하여 며느리로 맞이했소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사돈지간이 만날 줄은 정녕 몰랐구려.”

이에 진공도 놀라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한편으로는 기구한 운명을 탄식하기도 했다.

내가 대구에서 박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서 의탁하고 있을 때였소. 한 노옹에게서 침술을 배워 호구지책을 삼고 살아왔소이다. 이제 사돈의 말을 들으니, 고향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소이다. 이곳에 와 같이 살겠소이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몽석이, “사장어른께서는 아버님을 살려주신 그 은혜가 깊삽고, 어머님과 동생이 제수님에게 의탁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미 한집안사람이 되었는데 무슨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하면서, 진공이 돌아와 함께 살기를 원했다 .

몽석은 어머니의 생존을 알고 밤낮으로 마음을 태웠다. 명나라로 들어가 어머니를 모셔올 일을 계획했으나, 별 신통한 방법이 없어 한갓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항주에 있는 옥영은 관군이 호병에게 전멸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니 남편은 전쟁터에서 횡사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밤낮으로 눈물이마를 날이 없었다. 죽기를 기약하고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어루만지며,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지어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후에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로다하고 일깨워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옥영은 몽선을 붙잡고 말했다. “내가 포로가 되어 끌려갈 때 빠져 죽으려 하였는데 남원 만복사의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셨다. 그 후 사년 만에 네 아버지를 안남 바다 가운데서 만나지 않았느냐. 이제 내가 죽기로 마음먹었는데, 또 그 부처님이 나타나셔서 일깨워 주는구나. 이러니 아무래도 네 아버님은 적의 칼날을 피했음이 분명하다. 만약 네 아버님이 살아 계시다면, 내 죽어도 오히려 산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무엇을 원망하리.”

몽선은 어머니를 위로하여 말했다. “요새 듣자니, 오랑캐들이 명군은 죽였으나 조선사람은 탈출했다고 해요. 아버지는 조선사람이니 틀림없이 도망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부처님의 꿈이 참으로 영험합니다. 그러하오니 어머님은 부디 살아 계서 아버님을 살아 돌아오시기를 기다리소서.”

그러자 옥영은 기운을 차리고 말했다. “오랑캐의 소굴이 조선과 인접해 있지 않느냐. 네 아버님이 도망쳤다면, 그 형세를 보아 조선땅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어찌 만릿길을 건너와 처자를 찾을 수 있겠느냐. 나는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다 죽는 한이 있어도 돌아가겠다. 창주로 가다가 국경이나 넘어서 죽는다면, 선영에 묻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면 이역 만리에서 헤매는 귀신은 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 월조는 남쪽에 집을 짓고 호마는 북쪽을 향해 운다 하니, 이제 죽을 날을 앞두고 더욱 고향이 그리워지는구나.”

몽선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자중하소서하며 위로했다. 옥영은 말을 이었다. “외로운 시아버님, 어머님이며, 어린 아들을 왜란에 모두 잃고 그 생사조차 알지 못하니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구나. 요새 상인들의 말을 들으니, 왜적이 잡아간 조선사람을 본국으로 돌려보낸다더구나. 이 날이 사실이라면 어찌 한 사람이라도 살아 돌아오지 않았겠느냐. 네 조부와 부친이 비록 이역땅에서 죽어 백골이 비바람에 굴러다니는 것은 차지하고라도, 선을 누가 돌보겠느냐. 원근 친척들이 난리에 다 죽었다 한들, 어찌 한 사람도 살아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고국으로 돌아가자꾸나.”

? 고국으로 돌아간다니요?‘

그렇다. 너는 배를 사서 준비해라. 여기서 조선까지는 수로로 수천 리나 되지만 순풍에 돛만 달면 한 달이 못 되어 고국 바닷가에 닿을 것이다. 이미 내 마음은 결정됐다.”

이에 몽선은 울며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어머님은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닿기만 한다면야 그 얼마나 다행이겠어요. 그렇다고 만리 창파 험한 바다를 작은 배로는 건널 수 없어요. 풍파하며 교룡과 상어의 습격을 예측할 수 없나이다.

더구나 해적들이 도처에서 떼지어 출몰하니, 어복에 장사 지내기 심상입니다. 어찌하여 생사도 확실히 모르는 아버님만을 생각하셔 이런 결정을 내리셨어요. 자식이 비록 어리석으나 큰일을 앞두고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홍도가 옆에서 남편의 말을 막으며, “너무 어머님을 탓하지 마셔요. 어머님의 마음은 이미 결정됐으니 아무 말씀도 마셔요. 비록 수화나 해적을 만난다 하더라도 능히 면할 수 있을 거예요.”하고 말했다.

옥영은 며느리의 말을 듣고 나서 말했다. “수로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내 일찌기 많은 경험을 얻었다. 일본에 잡혀 있을 때다. 장사하는 주인을 따라 봄이면 민경지방으로, 가을에는 유구로 다니며 배를 탔다. 산 같은 파도 속에서도 헤어났고 조수의 흐름도 알 수 있다. 선박의 안위며 풍파, 험난도 내가 다 해낼 것이다. 아무리 불행한 일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어찌 벗어날 방편이 없겠느냐.”

이어서 조선옷과 일본 옷을 만들었다. 며느리로 하여금 양국의 언어를 배우도록 했다. 그리고 지남철은 없어서 안 되는 것이니 꼭 마련하도록 해라. 떠날 날은 정해졌으니, 내 뜻을 어기지 말아라했다.

몽선은 어머니 앞을 물러 나오자 아내를 책망했다. “어머님은 여생을 돌보지 않고 만 번 죽을 곳으로만 가시려고 하시니...... 돌아가신 아버님은 그만이거니와, 살아 있는 어머님마저 어느 땅에 묻고 싶어서 찬성하는 거요? 어찌 생각이 그리도 깊지 못하오.”

어머님은 지성으로 계획하신 것입니다. 말로만 다툴 수는 없는 것 아니어요. 이제 만류한다 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될까봐 찬성했어요. 순순히 따라 나서는 것이 좋아요. 제 근심스런 심정이야 오죽 하겠어요.”

수일 후였다. 옥영 일행은 배를 띄워 조선을 향해 떠났다. 며칠을 가다가 산 같은 파도를 만나 한 무인도에 표착하게 되었다. 이 무인도에 해적이 나타나 금은보화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옥영이 나서서 중국말로, “우리는 명나라 사람인데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왔다가 풍파를 만나 이 지경이 되었으니 무슨 보화를 가졌겠습니까?”하면서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해적들도 사정을 살피다가 다만 배만 빼앗아 저희 배 뒤에 달고 사라졌다.

해적들이 사라지자 옥영은 눈물을 거두면서 말했다. “필시 저놈들은 해랑적이 분명하다. 내가 알기로는, 저놈들은 중국과 조선 사이를 출몰하면서 약탈만 할 뿐 죽이지를 않는다구나. 내가 아들의 말을 듣지 않고 무모하게 나왔다가, 하늘이 돕지 않아 끝내 이런 낭패를 당했구나. 배마저 잃었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몽선은, “어머님, 이럴 때일수록 용기를 가지셔야 합니다.”하고 위로했다. 그러나 옥영은 저 넓은 바다를 날아갈 수도 없고 뗏목으로 갈 수도 없으니, 단지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죽는 것은 아까울게 없으나, 아들과 며느리가 나 때문에 죽게 되었으니 이것이 한이로다.”하면서 며느리를 붙들고 통곡했다. 그 울음이 어찌나 처절했던지 바위 언덕을 떨치고 굽이치는 물경에 닿으니, 바다도 슬퍼하고 귀신도 신음하는 것 같았다.

옥영은 절벽으로 올라가 바다로 몸을 던지며 했다. 이때 아들, 며느리가 붙들고 늘어져 뜻을 이루지 못하자, 몽선에게 말했다. “너희가 나를 죽지 못하게 하니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양식도 사날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양식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단 말이냐. 그럴 바에야 일찌감치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

양식이 떨어진 뒤에 죽어도 늦지 않습니다. 사는 데까지 살아봅시다. 그새 어떤 도움이 생길지 알 수 있나요?“

몽선은 어머님을 부축하여 바위산을 내려왔다. 바위틈에서 웅크리고 잤다. 날이 밝았다. 옥영이 며느리에게 말했다. “개나 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없어 잠시 조는 사이였다. 부처님이 또 나타나 전과 같이 일러주시니 정말 이상하구나.”

세 사람은 함께 염불을 외며,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저희를 돌보아주옵소서. 저희를 보살펴주옵소서!”하고 기원했다.

이틀이 지났다. 저 먼 수평선에서 한 돛단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몽선이 놀라며, “저런 배는 아직 본 적이 없으니 걱정이 됩니다.”하니, 옥영이보고 말했다.

어디? 우리는 이제 살았구나. 저 배는 조선배가 틀림없다.”

모두 한복으로 급히 갈아 입었다. 언덕으로 올라가 옷을 벗어 흔들었다. 배가 가까이 다가와 닻을 내렸다. 뱃사람이 나서며, “당신들은 어떤 사람들이오? 이 고도에 살고 있소?”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옥영이 조선말로 대답했다.

우리는 본래 한양의 사족이었어요. 나주로 내려가다가 졸지에 풍파를 만나 배가 전복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고 우리만 정신을 차려 부서진 판자조각을 타고 여기까지 표류해 왔습니다.”

뱃사람들은 듣고 불쌍히 여겼다. 밧줄을 내려 배에다 태워주며, “이 배는 통제사의 무역선이요. 갈 길이 정해져 한양으로는 갈 수 없소.”했다. 마침내 순천에 이르러 정박했다. 세 사람을 뭍으로 내리게 했다.

때는 경신년이었다. 옥영은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지름길을 따라 대엿새 만에 남원에 이르렀다. 마을이 왜적에게 불타 없어졌으니 많이 변화했으리라 짐작이 들었다. 옛집을 찾아보려고 만복사를 찾아나섰다. 금교에 성곽을 바라고니 옛날이나 다름이 없었다.

옥영은 아들을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집이 바로 너의 아버님의 옛 집이란다. 지금은 누가 들어가 살고 있는지는 모르나, 찾아가 하룻밤 신세지면서 자세히 물어보자꾸나.”

어느덧 옛집 앞에 당도했다. 최척은 버드나무 밑에서 사람들과 담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옥영이 그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바로 남편이었다. 모자, 며느리가 일시에 달려들며 울음이 터졌다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었다. 최척도 곧 알아보고 대성통곡하며 말했다. “몽석 어멈이 돌아오다니,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몽석은 이 말을 듣자 달려나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님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온 가족이 상봉하는 그 광경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서로 붙들고 늘어지며 방으로 들어갔다. 심씨는 병이 깊어 정신이 없다가 딸이 살아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기절했다. 옥영이 끌어 안고 갖은 정성을 다하니 얼마 후에 깨어났다. 최척은 진공을 불러, “오늘에야 온 가족이 상봉을 하는구려하면서 홍도를 불러 인사시켰다. 죽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상봉했으니, 고금 천하에 다시 이와 같이 신기하고 극적인 일이 있을 수 없었다.

이 소문은 일시에 사방으로 퍼졌다. 구경꾼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더구나 험난을 뚫고 나온 옥영과 홍도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무릎을 치며 찬탄해 마지않았다. 다투어 가며 그런 이야기를 이웃과 이웃으로 전하는 것이었다. 옥영이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가족에 노을이 있게 된 것은 오로지 부처님의 음덕이옵니다. 이제 와서 보니, 만복사가 황폐해지고 부처도 파괴되어 없어져서 의지하고 불공을 드릴 곳조차 없습니다. 우리가 어찌 그냥 앉아만 있으리까.”

이래서 음식을 갖추어 폐사로 올라갔다. 주위를 깨끗이 하고 지성껏 제를 올렸다.

이후로 최척과 옥영은 위로는 부모를 받들고 아래로는 자녀를 돌보면서, 남원부 동쪽에 있는 옛집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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