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사씨남정기>



 

1회 숙녀는 관음찬을 짓고 양매는 적승연을 맺다

명나라 가정 연간 북경 순천부에 한 재상이 있었다. 성은 유요 이름은 희이니 성의백 유기의 후손이었다. 유희의 사대조가 북경에서 벼슬살이를 하였던 연고로 순천부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유희는 세종 황제를 섬겼다. 그는 문장과 재망으로 당대에 유명하여 마침내 예부상서에 올랐다. 그런데 태학사 엄숭과 뜻이 맞지 않자 늙고 병이 들었다.”는 구실로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천자는 유희의 치사를 허락하면서 특별히 태자소사의 직함을 주어 그를 존숭하였다. 그후로 소사는 조정의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사대부들은 그의 높은 절의를 우러러 숭앙하였다.

소사의 가문은 누대의 재상가로서 머물던 저택은 왕공의 그것과 같았다. 원림과 종고의 화락함은 사람들이 모두 흠앙하는 바였다. 하지만 소사는 검소하게 지내며 예법을 지켜 집안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었다.

소사에게는 누이가 한 사람 있었다. 홍로소경 두강의 아내가 되었다가 일찍이 지아비를 잃고 과거(寡居)하고 있었다. 누이에 대한 소사의 우애는 매우 돈독하였다. 소사는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사랑하면서도 또한 엄하게 가르쳤다. 아들은 이름을 연수라 하고 자를 산경이라 하였다. 소사 부부는 나이 사십이 지나서 처음으로 그를 낳았다. 그런데 미처 강보를 떠나기도 전에 모부인 최씨가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그 아들이 성장하자 용모가 관옥 같았다. 열다섯 살 때는 벌써 문장에 능숙하여 붓을 들면 그대로 긴 글을 써 내려갔다. 소사는 아들을 기특하게 여기면서도 부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였다. 유생은 열네 살 때 향시에 일등으로 합격하고 열다섯 살 때에는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때 시관은 처음에 그의 글로 장원을 삼으려 하였다. 그러다가 유생의 글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 연소함을 꺼려하여 삼등으로 내려놓았다. 마침내 그를 한림편수로 삼았다. 이윽고 유생의 명성은 일시를 풍미하였다. 동류들은 감히 그를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유생은 스스로 소를 올려 간청하였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학문도 부족합니다. 청컨대 관직을 떠나 십 년동안 독서에 전념하고자 합니다.”

천자는 그 뜻을 가상하게 여겨 조서를 내려 포장하였다.

특별히 본직을 지닌 채로 오 년 동안의 말미를 주노라. 더욱 성현의 글을 읽으며 치군의 도를 강구하다가 나이 이십이 되면 다시 조정에 서도록 하라.”

유생의 온 집안은 성은에 감격하였다. 소사는 더욱 유생을 경계하였다.

충의를 힘써 닦아 성은에 보답하라!”

 

유생은 애초 급제한 후에 아내를 얻으리라 생각하였다. 따라서 구혼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으나 그때까지는 혼인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유생이 급제하자 소사는 훌륭한 며느리를 얻으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두부인과 함께 성중의 여러 매파들을 불러 놓고 처녀가 있는 곳을 물어보았다.

여러 매파들은 손뼉을 치며 허풍을 떨었다. 칭찬하는 경우에는 청천으로 들어올리고, 비난하는 경우에는 황천으로 떨어뜨렸다. 아침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한낮에 이르러서도 결론을 얻을 수 없었다.

그들 가운데 주파라는 자가 있었다. 그녀는 나이가 가장 많았다. 유독 홀로 입을 열지 않더니 마침내 소사에게 고했다.

여러 사람들이 각기 소견에 따라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심히 공정하지 않습니다. 소인이 사실대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노야께서 만일 부귀한 형세를 구하려 하신다면, 엄승상 댁의 손녀만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어진 며느리를 고르려 하신다면, 신성현의 고 사급사 댁 처녀만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청컨대 이 두 사람 가운데서 택하시기 바랍니다.”

부귀는 본래 원하는 바가 아니란다. 오직 어진 사람을 택할 것이니라. 그런데 자네가 말한 신성의 사급사는 필시 직간하다가 적소로 가서 죽은 사담일 것이야. 그 사람은 청렴하고 정직한 선비였지. 사급사 댁이라면 의당 혼인을 맺으 만하겠구나. 다만 처녀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그것을 알 수가 없으니…….”

소인의 종매가 일찍이 사급사 댁의 시비로 들어가 그 처녀에게 젖을 먹여 길렀습니다. 또 몇 해 전에는 소인이 마침 일이 있어 그 댁에 갔다가 처녀를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처녀는 열세 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덕성은 이미 무르익은 상태였습니다. 그 자색을 논할 것 같으면 진실로 천인이 적강한 것 같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여공에서도 능치 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또한 경사도 널리 섭렵하였답니다. 그 문재는 비록 남자라 하더라도 쉽게 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은 비단 소인만이 아는 바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도 또한 모두 그러하였습니다.”

두부인이 그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우화암 여승 묘희는 계행이 매우 높고 겸하여 안목도 갖추고 있습니다. 사오 년 전에 저에게 말하기를, ‘신성현 사급사 댁의 소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조카의 혼사를 염두에 두고 자못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마침내 잊어버려 오라버님께 미쳐 말씀을 올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소사가 두부인에게 물었다.

현매가 들은 말씀과 주파가 한 이야기를 참고해 보건데 사급사 댁의 처녀는 필시 현숙한 것이야. 그렇지만 인륜대사를 허술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지. 어떻게 하면 자세하게 알 수가 있을까?”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저의 집에 당나라 때 사람이 그린 남해관음 화상이 한 축 있습니다. 제가 본래 우화암으로 보내려 하던 것이지요. 지금 묘희에게 그 그림을 주어 사급사 댁으로 가게 하겠습니다. 처녀의 글을 구하고 아울러 글씨도 손수 쓰게 한다면 가히 그 재주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묘희가 그 용모를 볼 수만 있다면 또한 저를 속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 방법이 좋기는 하겠네. 다만 문제가 몹시 어려운 것일세. 아녀자가 쉽게 지을 수 있는 글이 아니라는 말씀이야.”

능히 어려운 글을 지을 수 없다면 어떻게 재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소사는 마침내 매파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두부인은 우화암으로 사람을 보내 묘희를 불러오게 하였다. 그리고 묘희에게 사씨 댁에 가서 해야 할 말들을 가르쳐 주었다. 곧 이어서 묘희를 신성으로 보내며 관음화상을 내어 주었다. 묘희는 즉시 신성으로 가 사급사 부인에게 뵙기를 청하였다. 사급사 부인은 평소 불법을 공경하고 있었다. 묘희 또한 전부터 그 집안에 출입하던 터였다. 부인은 즉시 안으로 묘희를 불러들였다. 함께 인사를 나눈 후 사급사 부인이 묘희에게 물었다.

여러 해 동안 스님을 뵙지 못했소. 오늘은 무슨 좋은 바람이 불었기에 이곳까지 오셨을까?”

소승이 근년에 암자가 퇴락하여 정재(淨財)를 모아 중수하였습니다. 일이 바빠 여가가 없어 한동안 문후를 폐하였던 것입니다. 이제야 중수하던 역사를 마쳤습니다. 감히 부인께 보시를 청하려고 찾아왔습니다.”

불사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인들 아까워할 것이 있겠소? 다만 가난한 집이라 재물이 없어 뜻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또한 스님께서 구하려 하는 물건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가 없으니…….”

소승이 구하려는 것은 부인께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소승에게는 금옥보다도 소중한 것입니다.”

어서 말씀이나 해 보시구려.”

소승이 암자의 중수를 마치자 평소 보시하던 어느 댁에서 관음화상을 보내왔습니다. 바로 당나라 때의 명화였지요. 그런데 그 그림 위에는 명인의 제영(題詠)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한 가지 부족한 점이었습니다. 만일 소저의 시 한 수를 얻되 더욱이 친필로 써 주신다면 장차 길이 산문의 보배가 될 것입니다. 그 공덕은 칠보로 항사(恒沙)를 만드는 것보다도 나을 것입니다.”

여아가 비록 고서를 두루 읽었다고는 하나 과연 제술(製述)에 능한지 여부는 알 수가 없구려. 시험삼아 물어보기는 하겠소만…….”

부인은 즉시 시비에게 명하여 소저를 부르게 하였다.

소저가 나와서 묘희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묘희는 깜짝 놀라며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진정 관세음보살이로다. 세상에 어떻게 저와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묘희가 소저에게 물었다.

소승이 사 년 전에 소저를 뵌 적이 있습니다. 소저께서는 기억을 하시겠습니까?”

어찌 잊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부인이 소저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스님께서 멀리까지 오셔서 너의 글과 글씨를 얻고자 하시는구나. 네가 능히 지을 수 있겠느냐?”

한가한 산인(山人)들이 남에게 시문을 구하는 것으로 일을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하는 사람이나 응하는 사람에게 모두 무익한 일일 따름입니다. 하물며 시가(詩歌)를 짓는 행위는 여자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바입니다. 황공하오나 스님의 청을 따를 수 없겠습니다.”

그러자 묘희가 나섰다.

소승이 구하려는 바는 무익한 시문과는 다른 것입니다. 관음화상 한 축을 얻었기에 훌륭한 문장으로 그 공덕을 칭송하려는 것입니다. 소승이 가만히 생각하니 관세음보살은 바로 여인의 몸이십니다. 모름지기 재주가 뛰어난 여인의 글과 글씨를 얻어야만 서로 어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자 가운데서 소저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그 글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소저께서는 물리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인도 말했다.

네가 만일 재주가 부족하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야. 그러나 지을 수만 있다면 이는 무익한 시문과는 정녕 다를 것이니라.”

그제야 소저가 응낙했다.

시험삼아 문제(文題)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묘희는 종자를 시켜 한 축의 큰 족자를 펼쳐 놓게 하였다. 바다에 파도는 끝이 없는데 외로운 섬이 그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관음대사가 흰옷을 입고 머리도 빗지 않은 채 영락(瓔珞)도 없이 단지 선재동자(善才童子)와 둘이서 대나무 숲을 헤치고 앉아 있는 그림이었다. 필법이 정묘하여 참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과 같았다.

소저가 묘희에게 말했다.

내가 배운 것은 유가의 책일 뿐이라서 불가의 말씀은 잘 알지 못합니다. 비록 억지로 지어본다 하더라도 이마 스님의 눈에는 차지 않을 것입니다.”

소승이 들으니, ‘푸른 연잎과 흰 연꽃은 그 뿌리가 같고, 공자와 석씨는 모두 성인이라.’ 합니다. 소저께서 유가의 말씀으로 보살을 칭송하신다면 그 또한 하나의 기이한 일이 될 것입니다.”

소저는 손을 씻고 향불을 피웠다. 이윽고 붓을 들어 관음대사찬 백이십팔 자()를 지어 작은 해서체로 족자 위에 써 넣었다. 또 그 아래에 쓰기를 사씨정옥재배제(謝氏貞玉再拜題)’라 하였다.

묘희도 또한 문자를 아는 사람이었다. 기쁜 마음을 누를 수가 없어 사급사 부인과 소저를 향하여 무수히 사례하고 성중으로 돌아갔다.

 

그 때 유소사는 두부인과 함께 묘희가 돌아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묘희가 족자를 들고 웃음을 머금은 채 인사를 올렸다.

소사는 두부인과 동시에 묘희에게 물었다.

과연 소저를 보셨는가?”

"어찌 볼 수 없었겠습니까?“

그 용모는 어떠하던가?”

마치 족자 속의 사람과 같았습니다.”

묘희는 이어 자신이 사씨 댁에 가서 문답하였던 말들을 빠짐없이 모두 전했다.

소사는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써 보건데 사급사 댁의 딸은 단지 재모가 뛰어난 것뿐만이 아니로군. 그 덕성과 견식도 또한 진실로 남들보다 훌륭할 것이야. 지은 글은 과연 어떠한지 모르겠구려…….”

소사가 족자를 받아 대청에 걸었다. 소사가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니 필법이 정공(精工)하여 털끝만큼도 구차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찬탄하여 마지않다가 그 문장을 살펴보았다.

 

吾聞大師 古之聖女 듣건데 대사는 옛날의 성녀시니,

想像其德 如周任姒 그 덕은 상상컨대 주나라 임사로다.

關雎葛覃 婦人之事 관저와 갈담이 부녀자의 할 일이니,

孤在空山 豈其本志 공산에 홀로 있음이 어찌 그 본심이리오.

稷契輔世 夷齊餓死 직설 세상을 돕고 이제 주려 죽었으나,

非道不同 所遇之異 도가 다름 아니라 처지가 다른 까닭이로다.

吾觀遺像 衣白抱子 내가 화상을 보건데 흰옷에 아이를 안았으니,

因圖思人 吾知其槪 그림 보며 사람을 생각하여 대강을 알겠도다.

古之節婦 截髮毁體 옛날 절부가 머리 깎고 몸을 버렸으니,

離群絶世 惟取其義 인간 세상을 떠나 그 의를 취한 것이로다.

西文殘缺 流俗好異 서문이 잔결하여 세속이 기이함을 좋아하니,

傅會新奇 有害倫紀 신기한 것을 부회하여 윤기를 해치도다.

嗟惟大師 胡爲在此 아아 대사여! 어찌하여 여기 계시는가?

脩竹天寒 海波萬里 긴 대숲에 하늘 차갑고 파도도 끝이 없는데,

何以自慰 芳名百祀 어떻게 위로할까 방명을 길이 제사하리라.

我作贊文 流淚濕地 찬문 짓노라니 흐르는 눈물 땅을 적시도다.

소사는 다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다.

기특하구나! 기특해! 자고로 관음찬을 지은 자가 많이 있었지. 그러나 이처럼 정론(正論)을 말한 사람은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어. 나이 어린 여자의 식견이 이와 같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소사가 두부인에게 말했다.

내 아이의 배필을 정했네.”

그리고 유생을 불러 그 글을 보여주었다.

네가 능히 이처럼 지을 수 있겠느냐?”

유생도 또한 심복하여 마지않았다.

묘희가 두부인에게 하직을 고했다.

소승이 의당 사소저가 성례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하에 경하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소승의 스승이 남악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근래 서신을 보내 이르시기를, ‘어지러운 속세에 오래 머무르지 말고 속히 돌아와 경전을 닦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날이 밝으면 장차 남악으로 떠나려 합니다. 감히 청컨대 보살상을 모셔다가 산문에 두고자 합니다.

스님의 출행은 도를 닦으려는 것이지요. 작별하기는 비록 매우 안타까우나 어떻게 만류할 수 있겠소? 이 화상은 본래부터 스님에게 보시하려고 하던 것이었소. 어찌 아까워할 리가 있겠소!”

소사도 역시 금은을 주어 노자를 보태게 하였다.

마침내 묘희는 사례하고 길을 떠났다.

 

소사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사급사 댁에는 남자가 없지. 매파를 통해 혼사를 의논하도록 해야 하겠어.”

소사는 이윽고 주파를 보내 혼인할 뜻을 전하게 하였다.

사급사 부인이 주파를 불러 보았다. 주파는 먼저 유소사의 가문이 대대로 부귀하며 한림의 문채와 풍류가 빼어남을 칭찬하였다.

주파는 이어서 다시 말했다.

어느 재상인들 소사에게 혼인을 청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소사께서는 소저의 천자(天姿)가 국색(國色)이요 재덕이 출중하다.’는 소문을 들으셨답니다. 이에 소인으로 하여금 중매를 서게 한 것입니다. 소저께서는 유씨 댁의 폐백을 받는 날 바로 명부(命婦)가 되실 것입니다. 부인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부인은 매우 기뻐하였다. 그렇지만 소저와 의논하고자 하여 주파를 기다리게 하고 손수 소저의 침소로 갔다.

부인은 주파가 말한 대로 전하고 소저의 뜻을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 생각을 숨기지 말아라.”

그러자 소저가 대답했다.

소저가 들으니 유소사는 당대의 어진 재상이라 합니다. 혼인을 맺음에 불가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주파의 말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소녀가 듣건데 군자는 덕을 귀히 여기되 색을 천하게 여기며, 숙녀는 덕을 가지고 시집을 가되 색으로 지아비를 섬기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주파가 먼저 소녀의 색을 칭찬하였습니다. 소녀는 그것을 몹시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씨 댁의 부귀함은 크게 자랑하면서도 우리 선급사(先給事)의 성덕(盛德)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혹시 주파가 미천한 사람이어서 소사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한 것이 아니라면 소위 유소사가 어진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헛소문에 불과할 것입니다. 소녀는 그 댁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급사 부인은 평소 딸을 몹시 사랑하였다. 어찌 그 뜻을 어길 리가 있었겠는가?

부인은 밖으로 나가 주파에게 말했다.

소사께서는 소녀의 재색에 대해 잘못 들으셨던 것이오. 소녀는 가난한 집에서 생장하였소. 손으로 직접 방적하면서 여공(女工)이나 조금 익혔을 따름이라오. 어찌 부귀한 집안의 부인에 걸맞는 화용성식(華容盛飾)이 있을 리가 있겠소? 혼사를 맺은 후에는 필시 소문과 다르다 하여 죄를 얻을 것이오.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지요. 청컨대 그렇게 회보하여 주시기 바라오.”

주파는 그 말을 듣고 몹시 이상하게 여겼다. 이에 재삼 흔쾌한 승낙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그렇지만 부인의 말씀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파는 돌아가 그대로 소사에게 아뢰었다.

소사는 자못 불쾌하였다. 한동안 말을 하지 않더니 다시 주파에게 물었다.

애초 자네가 무엇이라 말씀을 하셨던가?”

주파는 자신이 했던 말을 빠짐없이 전했다.

그제야 소사는 깨닫고서 웃었다.

내가 일에 소활하여 자네를 제대로 가르쳐 보내지 못한 탓일세. 잠시 물러나 계시게.”

 

소사는 그 이튿날 친히 신성으로 가 지현(知縣)을 만났다. 사급사 댁과 청혼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었다.

일찍이 매파를 보내 혼인할 뜻을 전하게 했었지요. 그런데 저 댁의 대답이 이러이러하였습니다. 필시 매파가 실언을 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수고롭겠지만 선생께서 한번 사급사 댁을 방문해 주셔야만 하겠습니다.”

지현이 대답했다.

노선생께서 명하시는데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다른 말씀은 하실 것이 없습니다. 단지 선급사의 청명(淸名)을 흠모하며 또한 소저가 부덕을 갖추었다고 들었다.’는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저 댁에서 의당 허락하실 것입니다.”

삼가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지현은 마침내 아전을 사씨 댁으로 보냈다. ‘지현상공께서 장차 찾아오실 것이다.’라고 전하게 하였다. 부인은 그 행차가 혼사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객당을 청소하고 지현을 기다렸다.

이튿날 아침 지현이 도착하였다.

소저의 유모가 소공자 희랑(喜郞)을 품에 안고 나아가 지현을 영접하였다. 유모는 객당 마루로 지현을 안내하고 물었다.

주인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린 주인께서는 나이가 어려 아직 손님을 접대할 줄 무르십니다. 노야(老爺)께서 무슨 일로 이렇게 왕림하셨습니까?”

다른 일이 아니지. 어제 유소사께서 관아로 오셔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네. ‘아들 혼사 때문에 처자가 있는 집을 찾은 바가 적지 않았으나 하나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습니다. 듣건데 사급사 댁의 처자는 유한하고 요조하여 여사(女士)의 풍모가 있다 합니다. 이는 진정 내가 찾던 사람입니다. 하물며 선급사의 청명과 직절(直節)은 평소 흠앙하던 바였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매파를 보내었으나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매파가 실언하여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라고 말이지. 이제 나를 중매로 삼아 진진지호(秦晉之好)를 맺으려 하신다네. 이는 좋은 일이지. 바라건데 노부인에게 아뢰어 한 마디 승낙하신다는 말씀을 얻고자 하네.”

유모는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곧 다시 나와 부인의 말씀을 전했다.

노야께서 소녀의 혼사를 위하여 누실(陋室)로 왕림하시니 참으로 황공합니다. 말씀하신 바 유소사 댁과의 혼사는 다만 감당치 못할까 두려울 따름입니다. 어찌 명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지현은 기뻐하며 돌아가 유소사에게 편지로 통지하였다.

소사도 크게 기뻐하며 길일을 택했다.

유한림이 육례(六禮)를 갖추어 친히 신부를 맞이하였다. 사소저 위의(威儀)의 성대함과 예도(禮度)의 아름다움을 두고, 당시 진신(縉紳)들 사이에서는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2회 시는 관저 규목을 노래하고 거문고는 예상우의곡을 연주하다

유한림이 사소저와 더불어 혼인을 맺었다. 참으로 이른바 요조숙녀 군자호구의 격이었다. 반합(胖合)하는 의와 화락하는 정은 그윽하기 비할 바가 없었다. 그 이튿날 대추와 밤을 받들고 소사에게 예를 올렸다. 사흗날은 가묘로 올라가 조종 신령에게 고유하였다.

그때 친척과 빈객들이 마루에 가득하였다. 뭇사람들 모두가 소저를 응시하고는 단지 향기로운 난초가 봄바람에 흔들거리고 하얀 연꽃이 가을 물에 비치는 광경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진퇴하는 거동이 예법을 지켜 조금도 어긋하는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떠들썩하게 칭찬하며 소사를 향하여 치하를 올렸다.

예를 마치자 소사가 신부를 가까이 부르고 물었다.

내가 일찍이 신부가 지은 관음찬을 보고는 그 재정(才情)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이제 생각하니 풍월을 읊은 작품도 또한 적지는 않을 듯한데……?”

소저는 자리를 피하며 대답했다.

한묵(翰墨)을 희롱하는 일은 여자가 해야 할 바가 아닙니다. 아울러 재질이 또한 노둔하여 일찍이 지은 적이 없었습니다. 관음찬은 어머니의 명을 받고 지었던 것입니다. 누추한 글이 존람(尊覽)에 들아가리라고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진실로 한묵이 여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예로부터 현숙한 부인들이 독서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 착한 일을 본받고 악한 일을 경계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신부는 이제 우리 가문에 들어왔네. 앞으로 장부(丈夫)를 어떻게 섬기려 하는가?”

어린 시절 엄부를 여의고 편보의 과애를 받으며 성장하여 배운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자모께서 문에서 전송하면서 반드시 경계하여 지아비의 뜻을 어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따른다면 아마도 대과(大過)는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아비를 어기지 않는 것이 부도라 한다면, 지아비에게 허물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또한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뜻으로 올린 말씀은 아닙니다. 고어(古語)에 이르기를 부부의 도는 오륜을 고루 겸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비에게는 간언하는 아들이 있고, 임금에게는 간쟁하는 신하가 있습니다. 형제는 서로 정도로 권면하고, 붕우는 서로 선행을 권유합니다. 부부의 경우라 하여 어찌 유독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자고로 장부가 부인의 말을 들으면 이익은 적고 폐해가 많았습니다. 암탉이 새벽에 울고 철부(哲婦)가 나라를 기울게 하는 것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소사는 빈객들을 돌아보았다.

우리 며느리는 조대가(曹大家) 같은 사람입니다.”

이어 한림에게 말했다.

어진 아내를 얻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란다. 네가 내조할 아내를 얻었구나. 내가 다시 무엇을 염려하겠느냐?”

이윽고 시비에게 명하여 상자 속에 있던 보경(寶鏡) 한 면과 옥환(玉環) 한 쌍을 가져오게 하였다.

소사가 그것을 소저에게 하사하였다.

이것은 우리 집안에서 세전하는 구물(舊物)이니라. 신부의 명석함은 족히 거울과 같고 덕성은 가히 옥에 비길 만하지. 애오라지 정을 표하려는 것이야.”

소저는 일어나 절을 한 수 그것을 받았다.

그날 소사와 사람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여 취하도록 술을 마시다가 자리를 파했다.

소씨는 유씨 댁에 들어간 후, 구고(舅姑)는 효성을 다하여 섬기고, 비복은 은혜로운 마음으로 대했다. 제사는 정성을 기울여 받들고, 가사는 법도에 맞게 다스렸다. 금슬이 조화를 이루고 패옥 소리가 쟁쟁하였다. 규문(閨門)은 물처럼 맑고 화기가 봄날처럼 가득하였다.

 

그럭저럭 서너 해가 흘러갔다. 마침내 즐거움은 떠나가고 슬픈 일이 찾아왔다.

소사가 병을 얻어 증세가 위중하였다.

한림 부부는 밤낮으로 곁에서 시중하였다. 의대도 벗지 아니한 채 의약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기도도 올렸으나 아무런 효험을 볼 수 없었다.

소사는 자신이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내가 이제 천수를 다하였구나!”

이어 두부인을 불렀다.

나는 이제 누이와 영결하려 하네. 누이도 역시 연로하니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고 천만 보중하게. 연수는 아직 나이가 어리지. 무릇 과실을 범하거든 반드시 꾸짖으며 가르침을 베풀도록 하게.”

한림에게 말했다.

길이 선사를 받들되 가성(家聲)을 추락하게 하지 말아라. 이는 네 한 몸에 달린 일이니라. 충효를 다하고 학문에 힘써 부모를 현양하게 하거라. 네 고모의 말씀을 듣되 마치 내 말을 듣는 것처럼 하거라. 범사에 모름지기 신부와 상의하거라. 네 아내는 덕행과 식견이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 필시 너를 그른 길로 인도하지는 않을 것이니라.”

사씨에게도 말했다.

신부의 어진 성품은 내가 경복하는 바이다. 지금 특별히 부탁할 말이 없구나. 오직 잘 지내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유명(遺命)을 받았다.

그날 소사는 세상을 떠났다. 한림 부부는 망극한 슬픔 가운데 길일을 택해 도성 동쪽에 있는 선산에 장사를 지냈다.

친척과 조객들은 한림 부부의 슬퍼하는 모습과 지극한 정성을 바라보며 감동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일월은 유수처럼 흘러 삼 년의 상기(喪期)가 흘러 지나갔다.

한림은 비로소 관직에 나아갔다. 천자는 장차 그를 크게 쓰려 하였다. 한림은 자주 소()를 올려 조정의 득실을 논했다. 그런데 엄승상이 그를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러 해가 지나도 관직은 올라가지 않았다.

그 무렵 한림 부부는 나이가 모두 스물세 살이었다. 그들이 성혼한 지도 또한 십 년 가까이 흘러갔다. 하지만 아직 자녀가 없었다.

사씨는 마음 속으로 몹시 근심하면서 홀로 생각하였다.

체질이 허약하여 자녀를 생육할 수 없는가 보다.’

사씨가 조용히 한림에게 첩을 두라고 권고하였다. 한림은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 생각하여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사씨는 남몰래 매파를 시켜 양가(良家)에서 쓸 만한 사람을 고르게 하였다.

두부인이 그 말을 듣고 몹시 놀라 이내 사씨를 찾아갔다.

듣자 하니 낭자가 장부를 위해 첩을 구한다고 하던데……. 그것이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집안에 첩을 두는 것은 환난의 근본이야. 한 필 말에는 두 개의 안장이 있을 수 없고, 한 그릇 밥에는 두 개의 수저가 있을 수 없지. 비록 장부가 원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만류해야 할 것이야. 그런데 하물며 스스로 구하려 한다는 말인가?”

첩이 존문(尊門)에 들어온 지 이미 구 년이나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녀를 하나도 두지 못했습니다. 옛날 법도에 따르자면 응당 내침을 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소실(小室)을 꺼려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녀의 생육이 빠르거나 늦음은 천수에 달린 것이야. 사람들 가운데에는 간혹 서른이나 마흔 살 이후에 처음으로 자식을 낳는 경우도 있지. 낭자는 이제 겨우 스물을 넘겼어. 어찌하여 그처럼 근심을 지나치게 하는가?”

첩은 타고난 체질이 허약합니다. 나이는 아직 늙지 않았으나 혈기가 벌써 스무 살 이전과는 다릅니다. 월사(月事)도 또한 주기가 고르지 않지요. 이는 첩만이 홀로 아는 일입니다. 하물며 일처일첩(一妻一妾)은 인륜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첩에게 비록 관저(關雎)의 덕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한 세속 부녀자들의 투기하는 습속은 본받지 않을 것입니다.”

자네는 지금 내 말을 비웃고 있는 것인가? 내가 장차 사리에 맞게 이야기를 하겠네. 관저(關雎)와 규목(樛木)의 덕화는 본디 태사(太姒)가 투기하지 않은 덕 때문이었지. 그렇지만 문왕(文王)도 또한 여색을 좋아하지 않았어. 그 때문에 중첩(衆妾)들도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던 것이야. 가령 문왕이 미색에 빠져 애증(愛憎)을 고르게 하지 못했다면, 태사가 비록 투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궁중에 어찌 원망하는 소리가 없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내정(內政)은 어찌 어지럽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고금에 따라 도리가 다르지. 성인과 범인도 차이가 있는 법이야. 한갓 투기하지 않는 것만을 믿고 이남(二南)의 교화를 이루려 한다면, 이는 참으로 이른바 허명(虛名)을 탐하다 실화(實禍)를 부른다는 형세라 할 것이야.”

첩이 어찌 감히 고인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가만히 근세의 부녀자들을 살펴보면 인륜을 무시하고 성인을 모욕합니다. 구고(舅姑)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장부(丈夫)를 공경하지 않습니다. 오직 질투만을 일삼아 남의 가문을 어지럽게 하고 남의 선사(先祀)를 끊어지게 만듭니다. 첩은 진실로 그를 분하고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비록 사람이 미천하여 풍속을 교화할 수는 없으나 어찌 차마 그러한 잘못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장부가 만약 자신읨 몸을 돌보지 않고 부정한 여색에 빠진다면, 첩이 비록 노둔하나 응당 혐의를 무릅쓰고 힘써 간할 것입니다. 이는 또한 도리이기도 한 것입니다.”

두부인은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음을 깨닫고 탄식하였다.

신인(新人)이 착하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야. 그렇지 아니하여 장부의 마음이 한번 그 쪽으로 기울기라도 한다면 장차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겠는가? 낭자는 후일 반드시 내 말을 생각할 것일세.”

이윽고 두부인은 탄식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튿날 매파가 사씨를 찾아왔다.

마침 한 여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부인께서 구하려 하시는 사람보다 너무 과하지는 않을까 하여 두렵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부중(府中)에서 첩을 구하려는 목적은 상공의 호색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부인의 후사를 잇기 위한 방편일 따름이지요. 진실로 그 위인이 후일 아들을 낳는 데 문제가 없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용모와 재행이 모두 남들보다 훨씬 뛰어나답니다. 그 때문에 도리어 부인의 뜻에 맞지 않을까 하여 두려운 것입니다.”

사씨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

매파가 나를 떠보려고 하는 말이구려. 다만 어떤 사람이기에 그러시는가?”

하간부 사람으로 성은 교요 이름은 채란이라 합니다. 본시 사족으로서 부모가 일찍 죽었으므로 언니와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나이는 방년 열여섯입니다. 그녀 스스로 이르기를, ‘문호가 쇠하였으니 가난한 선비의 아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상의 첩이 되는 편이 좋겠어라고 한답니다. 이는 만나기 쉽지 않은 인연일 것입니다. 그 여자의 미모는 하간 지방에서 유명합니다. 그리고 비단 여공(女工)에 능할 뿐만이 아닙니다. 또한 능히 책을 읽어 고인의 행실도 본받았습니다. 부중에서 반드시 가인을 구하려 하신다면 아마도 그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씨는 몹시 기뻐하였다.

사족 여자는 천인과는 절로 다른 법이지. 내 뜻에 참으로 합당하네.”

사씨는 그 후 천천히 매파의 말을 한림에게 고했다.

그러자 한림이 말했다.

내가 소실을 두는 것은 본디 그렇게 급한 일이 아니오. 그러나 부인의 호의를 또한 어길 수가 없군요. 교씨 여자가 진실로 그와 같다면 의당 취하도록 하겠소.”

한림은 즉시 매파를 보내 그 뜻을 전하게 하였다. 그 후 날을 잡아 친척들을 부른 후 교씨를 맞이하였다.

 

교씨는 한림 부부 및 모든 친척들에게 예를 올린 후 자리에 나아가 앉았다. 뭇사람들이 교씨를 바라보았다. 그 자태가 화려하고 행동이 경첩하여 마치 해당화 한 가지가 이슬을 머금은 채 바람에 나부끼는 것 같았다. 모두가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한림과 사씨 또한 희색이 만면하였다. 그러나 오직 두부인만은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날 저녁 빈객들이 모두 돌아갔다. 시비는 교씨를 이끌고 화원의 별당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한림은 신인(新人)과 동침했다.

두부인은 그대로 머물며 사씨와 한담을 나누었다.

낭자! 비록 소실을 구하더라도 의당 근실한 여자를 구했어야 마땅하지. 그런데 지금 저런 절색가인을 구해 왔구려. 비단 낭자에게 이롭지 못할 뿐만이 아닐 것이야. 그 성행(性行)도 또한 필시 착하지는 않을 듯하네.”

여자를 취하는 데는 본디 용모를 우선할 일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만약 지나치게 추하여 장부와 친근하게 지낼 수 없다면 자녀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나라 장강은 아름다운 눈에 고운 미소를 지녔었지요. 하지만 그 덕성은 고금에 드문 바였습니다. 절색가인이라 하여 모두 악하기만 할 리가 있겠습니까?”

장강은 비록 어질었으나 자식이 없었지.”

두 사람은 마주보며 웃었다.

한림은 교씨가 거처하는 집에 이름을 붙여 백자당(百子堂)이라 하였다. 그리고 시비 납매 등 네 사람에게 명하여 시중을 들게 하였다. 집안의 하인들은 교씨를 일컬어 교낭자라 불렀다.

교씨는 총명하고 변첩(辯捷)한 여자였다. 한림의 뜻을 능히 받들었으며 더욱이 사부인을 잘 섬겼다. 그러므로 집안 사람들은 그녀를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후 반 년도 채 지나기 전에 교씨는 임신을 하였다. 한림과 사씨는 몹시 기뻐하였다.

그런데 교씨는 남아를 생산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여러 점쟁이들을 불러 놓고 물어보았다. 혹자는 남아라 하고 혹자는 여아라 하였다. 혹자는 남아면 흉하고 여아면 길하리라하였다. 마침내 교씨는 근심에 빠졌다.

그때 납매가 교씨에게 말했다.

첩의 이웃에 이십낭(李十娘)이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남쪽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평소 기이한 재주가 많아 맞추지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한번 불러 물어보시지 않겠습니까?”

교씨는 기뻐하여 즉시 십낭을 불렀다.

자네가 태중의 남녀를 알 수 있겠나?”

그렇습니다.”

십낭은 인하여 진맥을 청하였다.

여아입니다.”

교씨는 깜짝 놀랐다.

한림이 이 몸을 들인 까닭은 단지 후사를 위한 것이었지. 지금 만약 여아를 낳는다면 도리어 낳지 않는 것만도 못할 것이야.”

소인이 일찍이 이인(異人)을 만나 여아를 바꿔 남아로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여러 번 시도해 보았으나 한 번도 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낭자께서 만일 남아를 얻고자 하신다면 그 방법을 써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교씨는 크게 기뻐하였다.

진실로 시험하여 효험을 본다면 마땅히 천금으로 사례할 것일세.”

십낭은 부적과 기괴한 물건들을 많이 만들어 교씨가 거처하는 방의 이부자리 속에 숨겨 놓았다. 그리고 하직을 고했다.

후일 생남하시면 다시 찾아와 하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 달이 차자 교씨는 과연 남아를 낳았다. 아이는 미목(眉目)이 청수하고 피부가 옥과 같았다. 한림과 사씨는 기쁨을 이길 수 없었다. 사람들도 또한 경하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교씨가 아들을 낳은 후로 한림은 더욱 후하게 그녀를 대접하였다. 아이를 몹시 사랑하여 그 이름을 장주(掌珠)라 불렀다. 교씨와 사부인의 무애함도 피차 서로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 아이가 누구 뱃속에서 나왔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춘(暮春) 삼월 어느 날이었다.

화원에는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 풍경이 볼 만하였다.

한림은 마침 천자를 모시고 서원(西苑)의 연회에 참여하여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사부인이 홀로 서안(書案)에 기대고 앉아 고서(古書)를 읽고 있었다.

그때 시비 춘방(春芳)이 고했다.

화원 작은 정자에 모란이 만발하였습니다. 한번 가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부인은 즉시 책을 놓고 시비 대여섯을 거느리고 정자로 나갔다. 버드나무 그늘은 난간을 덮고 꽃향기는 옷깃에 가득하였다. 번화하고 그윽하여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부인은 시비에게 명하여 차를 달이게 하였다. 그리고 교씨를 불러 함께 춘광(春光)을 완상하려 하였다.

그때 문득 바람결에 들으니 거문고를 타는 소리가 났다. 곡조는 유장하고 소리는 구슬펐다. 마치 구슬이 옥반에서 구르고 물이 삼협으로 떨어지는 듯하였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움직이게 하는 소리였다.

부인은 듣고 나서 좌우의 시비에게 물었다.

거문고 소리 한번 기이하구나. 누가 저렇게도 능란하게 탈 수가 있을까?”

저것은 교낭자의 수어(手語)입니다.”

교씨가 음률을 안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단다. 오늘 우연히 탄 것이냐? 아니면 전부터 타던 것이냐?”

백자당은 정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부인께서 모르심이 당연할 것입니다. 낭자께서는 평소 거문고 타기를 즐겨하여 한가한 때면 문득 곡을 고르십니다. 시비 등은 일찍이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답니다.”

부인은 대화를 마친 후 다시 들어보았다. 이윽고 거문고 소리가 그쳤다. 다시 느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모두 당나라 때 사람이 지은 유명한 작품이었다.

 

待月西廂下 서쪽 행랑에서 달을 기다리다가

迎風戶半開 바람 맞으려 문을 반쯤 열었네.

拂墻花影動 울타리 흔들어 꽃 그림자 움직이니,

疑是玉人來 옥인이 오시는 길이나 아니신지.

 

水國蒹葭夜有霜 강가 갈대에 밤 서리 내리니

月寒山色共蒼蒼 달은 차갑고 산 빛 더욱 푸르네.

誰言千里自今始 천리 이별을 어느 누가 말했던가?

離夢杳如關塞長 꿈길 아득하고 관새는 먼데.

 

연이어 두 수를 노래하였다. 참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구름을 멈추게 할 만한 빼어난 재주였다. 사부인은 모두 듣고 난 후 한동안 머리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이윽고 시비 추향을 교씨에게 보내 전갈하게 하였다.

내가 마침 별다른 일이 없어 화원을 찾았다오. 낭자도 한번 이곳으로 발길을 돌려 부시지요.”

교씨는 즉시 추향과 함께 찾아왔다. 부인은 자리를 내주고 그녀와 함께 꽃을 완상하며 차를 마셨다.

사부인이 교씨에게 말했다.

낭자가 재주가 많다는 것은 내가 본디 잘 알고 있었다오. 그러나 또한 그처럼 음률에까지 정통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소. 지난번 거문고 소리를 족히 채문희(蔡文姬)의 그 독보적 명성과 비견할 만한 것이었소.”

천한 기예라 능하다 할 것은 없습니다. 부족하나마 스스로 즐길 따름입니다. 부인께서 들으시리라고는 참으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낭자의 거문고 소리는 실로 아름다웠소. 그런데 나와 낭자는 정리(情理)로는 형제와 같고 의리(義理)로는 벗과 같지요. 이제 낭자를 위해 한 가지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만…….”

부인께서 가르쳐만 주신다면 천첩에게는 다행한 일입니다.”

낭자가 타신 것은 당나라 때의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이지요. 그 곡조가 세상에서 숭상을 받고 있기는 하다오. 그러나 그 시대를 논한다면 명황(明皇)의 호화와 부귀가 극에 달했다가 끝내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만나 황제가 만리 밖으로 쫓겨갔던 때였소. 양태진(楊太眞)은 금강보(錦襁褓)라는 기롱을 면치 못하고 마침내 마외역(馬嵬驛)에서 죽임을 당하여 후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지요. 그러한 망국의 노래는 본디 취할 만한 것이 아니랍니다. 또한 낭자는 손놀림이 빠르고 가벼워 그 소리가 지나치게 슬프고 원망하는 듯하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는 있겠으나 사람의 기운을 화평하게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오. 비단 옛날 곡조이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셈이지요. 또한 낭자가 노래한 시를 살펴보건데, 앵앵(鶯鶯)은 실절(失節)한 여인이었고 설도(薛濤)는 창녀의 몸이었소. 그 시가 비록 공교롭다고는 하나 그 행실은 매우 비천하였던 것이지요. 고금의 음악이 아조(雅調)가 아닌 것이 없소. 당나라 때의 시 가운데에도 또한 노래할 만한 것이 많이 있다오. 그런데 낭자는 어찌하여 그러한 곡조를 택한 것이었소?”

교씨는 크게 부끄러워 머뭇거리다 사죄하였다.

시골 여자라서 단지 사람들이 하는 바를 본받았을 뿐입니다. 그 선악은 저 자신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부인께서 바른 도리로 가르쳐 주셨으니 첩은 응당 그 말씀을 뼈에 새겨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부인이 다시 교씨를 위로했다.

내가 낭자를 사랑하므로 이야기한 것이었소. 차후로 나에게도 과실이 있으면 낭자 또한 숨기지 말고 바로 말씀하여 주시기 바라오.”

이윽고 한가하게 놀다가 날이 저물자 자리를 파했다.

 

3회 정실은 꿈에 곰을 보고 문객은 첩을 훔치다

그 날 저녁 한림은 서원(西苑)에서 집으로 돌아가 백자당(百子堂)으로 갔다. 하지만 술에 취해 잠을 이룰 수 없어 난간에 의지하고 앉아 있었다. 마침 달빛은 대낮처럼 밝고 꽃 그림자가 창문에 가득하였다.

한림이 교씨에게 명하여 노래를 부르게 했다. 교씨는 감기가 들어 목이 아프다는 구실로 사양하였다.

한림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거문고를 대신 타보게.”

교씨는 그 명도 역시 따르려 하지 않았다. 한림이 재삼 재촉하였다. 그러자 교씨는 문득 앉은 자리가 젖을 정도로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한림은 괴이한 생각이 들었다.

자네가 내 집에 들어온 이래 지금까지 불평하는 기색을 본 적이 없었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서러워하는가?”

교씨는 대답도 하지 않고 더욱 구슬피 울었다. 한림이 굳이 그 까닭을 물었다.

마침내 교씨가 입을 열었다.

하문하시는데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상공에게 죄를 얻고, 대답을 한다면 부인에게 죄를 얻을 것인데, 대답하기도 어렵고 대답하지 않기도 어렵습니다.”

비록 매우 난처한 말을 한다 해도 내가 자네를 꾸짖지는 않을 테니 숨기지 말고 어서 말씀해 보시게.”

교씨는 그제야 눈물을 거두고 대답했다.

첩의 촌스러운 노래와 거친 곡조는 본디 군자께서 들으실 만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명을 받들고 마지못하여 못난 재주를 드러냈던 것일 따름입니다. 또한 정성을 다 기울여 상공께서 한번 웃음을 짓도록 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무슨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 부인께서 첩을 불러 놓고 책망하셨습니다. ‘상공께서 너를 취하신 까닭은 단지 후사를 위한 것일 따름이었다. 집안에 미색이 부족한 때문이 아니었어. 그런데 너는 밤낮으로 얼굴이나 다독거렸지. 또한 듣자 하니 음란한 음악으로 장부의 심지를 고혹하게 하여 선소사의 가풍을 무너뜨리고 있다 하더구나. 이는 죽어 마땅한 죄이다. 내가 우선 경고부터 해 두겠다. 네가 만일 이후로도 행실을 고히지 않는다면, 내 비록 힘은 없으나 아직도 여태후가 척부인의 손발을 자르던 칼과 벙어리로 만들던 약을 가지고 있느니라. 앞으로 각별히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첩은 본래 한미한 집안에서 자란 계집으로서 상공의 은혜를 받아 부귀 영화가 극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죽는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단지 두려운 바는 상공의 청덕이 소첩의 문제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명령을 따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림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속으로 가만히 헤아려 보았다.

저 사람은 평소 투기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지. 교씨를 매우 은혜롭게 대하고 있었어. 일찍이 교씨의 단점을 말하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었어. 아마도 교씨의 말이 실정보다 지나친 것은 아닐까?”

한림은 한동안 조용히 생각하다가 교씨를 위로하였다.

내가 자네를 취한 것은 본디 부인의 권고를 따른 일이었네. 또 부인이 일찍이 자네에게 해로운 소리를 한 적도 없었지. 이 일은 아마 비복들 가운데서 누군가가 참언을 하였기에 부인이 잠시 노하여 하신 말씀에 지나지 않을 것일세. 그러나 성품이 본시 유순하니 자네를 해치려 하지는 않을 것이야. 염려하지 말게나. 하물며 내가 있질 않나? 자네를 어떻게 해칠 수 있겠는가?”

교씨는 끝내 마음을 풀지 않은 채 다만 한림에게 사례할 따름이었다.

! 옛말에 이르기를, ‘호랑이를 그리는 데는 뼈를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사귀는 데는 마음을 알기 어렵다고 하였다. 교씨의 얼굴이 유순하고 말씨가 공손하였다. 따라서 사부인은 단지 좋은 사람으로 여겼을 따름이었다. 경계한 말씀은 오직 음란한 노래가 장부를 오도할까 염려한 것이었다. 또한 교씨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것이었다. 본디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추호도 시기하는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교씨는 문득 분한 마음을 품고 교묘한 말로 참소하여 마침내 큰 재앙의 뿌리를 양성하였다. 부부와 처첩의 사이는 진정 어려운 관계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한림은 교씨의 간계를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사부인의 본의도 역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교씨는 다시 참소를 행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납매가 교씨에게 고했다.

방금 추향에게 들으니 부인께서 회임을 하셨다 합니다.”

교씨는 깜짝 놀랐다.

십 년이나 지난 후에 비로소 잉태한다는 것은 세상에 드문 일이다. 혹시 월사(月事)가 불순한 것은 아니겠느냐?”

교씨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저 사람이 만일 아들을 낳기라도 한다면 하는 자연 무색할 뿐일 것인데…….”

하지만 계책 또한 마땅히 쓸 만한 것이 없었다.

한두 달이 지나면서 부인의 태기가 확실하게 나타났다. 온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그러나 교씨만은 홀로 앙앙불락하였다.

교씨는 납매와 함께 은밀하게 음모를 꾸몄다. 마침내 낙태하게 만드는 약을 사서 부인이 복용하는 약 속에 몰래 섞어 놓았다. 그렇지만 부인은 그 약을 마시자 마자 문득 구역질을 하며 그대로 토해 버렸다. 그 계책도 성공할 수 없었다.

사부인은 달이 차자 과연 남아를 낳았다. 아이는 골격이 비상하고 신채(神彩)가 영매하였다. 한림은 크게 기뻐하여 아이의 이름을 인아(麟兒)라 하였다.

교씨는 비록 화심(禍心)을 품고 있었으나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마지못하여 부인에게 경하를 올리며 겉으로는 기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림과 사씨는 여전히 그것을 진정이라 여겼다.

인아가 점점 자라 장주와 같은 장소에서 함께 놀았다. 그런데 인아는 비록 어리기는 하였으나 기상이 탁월하였다. 장주가 한갓 아름답기만 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하루는 한림이 밖에서 집으로 들어와 상의도 벗기 전에 인아를 안고 어루만졌다.

이 아이는 이마의 골격이 기특하여 선인과 매우 닮았느니라. 훗날 반드시 우리 가문을 창성하게 할 것이야.”

그리고 다시 그 유모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각별히 잘 기르도록 하거라.”

이에 장주 유모는 장주를 안고 교씨에게 달려가 호소했다.

상공께서 유독 인아만을 어루만지며 장래를 촉망하셨습니다. 하지만 장주를 보더니 못 본 체하고 그대로 지나가셨습니다.”

마침내 유모가 슬피 울었다.

교씨는 더욱 근심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저 사람과 비교할 때 용모의 아름다움은 전혀 나은 것이 없지. 그러나 적첩(嫡妾)의 분의(分義)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어. 단지 나는 아들을 낳고 저 사람에게는 아들이 없었지. 그 때문에 내가 장부의 후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야. 그런데 이제 저 사람이 아들을 낳았어. 저 아이가 장차 이 집의 주인이 될 것이야. 내 아이는 아무 쓸데가 없게 될 것이 아닌가? 저 사람이 겉으로는 어진 체하고 있지. 하지만 화원에서 나를 책망한 말은 분명히 시기를 부린 것이었어. 하루아침에 나를 한림에게 참소한다면, 한림이 평소 저를 믿고 있으니 내 신세를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교씨는 다시 이십낭을 불러 의논하였다.

십낭은 전에 이미 교씨로부터 많은 금은을 받은 터였다. 마침내 서로 한 마음이 되어 간악한 음모와 사특한 계교를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 기미가 워낙 은밀하였다.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한림이 조정에서 귀가하였다.

마침 이부(吏部) 석낭중(席郎中)으로부터 어떤 사람을 천거하는 편지가 와 있었다.

소주(蘇州) 수재 동청(董靑)은 남방의 아름다운 선비입니다. 팔자가 기박하여 과거에는 한 번도 급제하지 못하였습니다. 집안도 본래 빈한하여 남에게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근래에는 소제(小弟)의 집에 몸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제가 지금 산서(山西)의 학관을 맡아 한동안 멀리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다시 의탁할 곳이 없는 실정입니다. 선생을 생각하니 문하에 본래 기실(記室)이 없으셨습니다. 이 사람은 필법이 정공하고 응대가 민첩합니다. 진실로 일을 부려 보시면 그 재주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천히 찾아가 인사를 올리게 하였습니다. 즉시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동청은 본래 사족의 자제였다. 부모가 일찍 죽자 악동들을 따라다니며 장기 두고 술이나 마셨다. 가산을 탕진하여 돌아갈 곳도 없었다. 이에 이리저리 떠돌다가 상경하여 벼슬아치들에게 의탁하여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뛰어난 것이 있었다. 첫째는 아름다운 용모요, 둘째는 교묘한 말솜씨요, 셋째는 잘 쓰는 글씨였다. 사대부들이 그를 처음 만나면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조금만 함께 지낼 것 같으면 때때로 자제를 꾀어 불의를 저질렀다. 때로는 불미스런 소문을 집안에 퍼뜨리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가는 곳마다 용납을 받을 수 없었다.

석낭중도 당시 그를 싫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죄상을 남들에게 드러내기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마침 외임(外任0으로 나가는 기회를 이용하여 드디어 한림에게 천거하였던 것이다.

한림은 오랫동안 궁중에서 시종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집에는 응답할 편지가 허다하게 쌓여 있었다. 문하에는 사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 마침 낭중의 편지를 받고 곧바로 동청을 만나 보았다. 동청은 과연 언변이 유수와 같았다.

한림은 크게 기뻐하여 그를 문하에 머물게 하고 서기의 소임을 맡겼다. 동청은 또한 본성이 매우 영리하여 매사에 문득 한림의 뜻을 잘 맞추었다. 그러므로 한림은 그를 크게 신임하였다. 그의 말이라면 따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윽고 사부인도 동청의 소문을 자못 많이 듣고서 한림에게 고했다.

동청은 단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누차 남의 집에서 용납을 받지 못하자 궁한 나머지 이곳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잘 살펴셔야 할 것입니다.”

나도 또한 그러한 소문을 들었소. 그러나 단지 그가 글씨를 잘 쓰기 때문에 수고를 대신하게 하려는 것뿐이오. 저 사람은 내 벗이 아니지요. 단정한가 단정치 아니한가 여부는 따져서 무엇하겠소?”

상공께서는 본디 저 사람의 벗이 아니십니다. 그렇지만 부정한 사람과 함께 지낼 것 같으면 자연히 사람의 심지가 오도(誤導)를 당하게 마련입니다. 또한 문하에 두는 것은 가도(家道)를 엄하게 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선소사(先少師)께서 살아계실 때 그러한 일을 어디 보신 적이 있었습니까?”

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다만 말세의 풍속이 남을 비방하기나 좋아하지요. 동청이 당하는 비방도 혹시 억울한 것이나 아닌지는 잘 알 수 없는 일이라오.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면 자연히 그 허실을 알 수 있을 것이오.”

교씨는 부인이 동청을 미워한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평소 한림이 동청을 신임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씨는 동청을 한 패로 만들어 외원(外援)을 삼고자 하였다. 이에 남몰래 납매로 하여금 동청과 사통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주 일을 꾸몄다.

예로부터 규문(閨門) 안에서 한번 정도(正道)를 잃으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 없는 법이다. 이십낭은 교씨를 도와 남자를 고혹하는 방술을 행하게 하였다. 그로부터 한림은 점점 교씨에게 빠져들어 정신과 생각이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사부인은 비로소 근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오직 홀로 깊이 염려할 따름이요 감히 표정이나 말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교씨가 다시 십낭에게 부탁했다.

여자의 몸으로 일단 남의 아래 사람이 되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것이야. 앞날의 화복도 또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 십낭이 나에게 기이한 방술을 베풀어주어 일찍이 효험을 보지 못한 적이 없었지. 요즈음 다시 생각하니 민간에서는 남을 저주하는 일이 종종 성행하고 있네. 십낭은 응당 그 방술을 잘 알고 있을 것이야. 나를 위해 저주를 행하여 저 두 사람을 제거해 주게. 그러면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그 은혜에 보답하는 날이 있을 것이네.”

십낭은 조용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참으로 하기 곤란한 일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한다면 그 사람은 병이 들거나 아니면 목숨을 잃거나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재상 집안에는 평소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혹시 병의 원인을 규명이라도 한다면, 첩의 생사 문제는 고사하고 이 집안에서 저들 모자와 원수가 될 사람이 낭자가 아니면 또 누가 있겠습니까? 은밀히 남에게 재앙을 끼치려 하다가 낭자 자신이 공공연하게 화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 해서는 안될 일이지요.

단지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훗날 공자께서 하찮은 병에 걸렸을 때 낭자께서도 또한 병에 걸렸다고 하면서 한동안 자리에 누워 계십시오. 아울러 저 사람이 낭자와 공자를 헤치려 한 글을 거짓으로 꾸며 놓으십시오. 그리고 무심코 그것을 발견한 것처럼 가장하십시오. 그러면 한림은 반드시 저 사람을 의심할 것입니다. 이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참소를 계속 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낭자께서 뜻을 이루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교씨는 몹시 기뻐하며 십낭에게 후한 상을 주었다. 그리고 그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몇 달이 지난 후였다. 마침 장주가 감기에 걸려 젖을 토하며 경기(驚氣)를 하였다. 한림은 서둘러 의원을 불러 병을 고치려 하였다.

그러나 교씨는 십낭이 말한 계책을 실행하고자 하여 납매에게 말했다.

지금 저주 문자를 위조하려면 반드시 부인의 필체를 모방해야만 할 것이야. 그 일은 동청이 아니면 달리 할 만한 사람이 없지. 너를 보내 그 일을 동생(董生)과 의논하도록 해야 하겠다. 그런데 동생이 혹시 내 말을 듣지 않으려 할 경우에는 도리어 헤아릴 수조차 없는 큰 재앙을 부르고 말 텐데…….”

동생(董生)은 사씨를 원망합니다. 하지만 낭자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누설할 리가 없습니다. 반드시 즐겨 따를 것입니다.”

옛날에 진황후(陳皇后)는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장문부(長門賦)를 얻은 후 황금으로 보답했었지. 이제 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면 동생의 공은 사마상여보다 배는 클 것이니라. 내가 가난하기는 하나 어찌 재물을 아까워하겠느냐? 나의 이러한 뜻을 틀림없이 전달하도록 하거라.”

교씨는 사씨의 필적을 가져다 납매에게 주었다.

그날 밤 납매는 동청을 몰래 만났다.

다음날 아침 납매는 웃음을 머금고 교씨의 침실로 갔다.

교씨는 마침 소식을 고대하던 중이라 다급하게 물었다.

일이 장차 성사될 것 같으냐?”

다행히 승낙은 받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값을 너무 지나치게 요구하는지라…….”

그 이야기는 이미 다 하지 않았느냐? 진실로 나에게 이로울 수만 있다면 어찌 보화 따위를 아까워하겠느냐?”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인하여 납매는 교씨의 귀에 대고 은밀하게 동청이 요구하는 것을 전했다. 교씨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대답은 하지 않았다.

아아! 옛날 성인이 예법을 제작하여 규문의 법도를 엄하게 하였다. 집안의 말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밖의 말은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며 음란한 소리를 물리치고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하게 하였다. 이는 모두 본원(本源)을 바르게 하고 과오를 미연에 방지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한림은 안으로 간악한 첩에게 미혹을 당하고 밖으로 부정한 사람과 교유를 하였다. 그리고 흉악한 종으로 하여금 거간하게 하였다. 마침내 추하고 더러운 일을 만들어 문호(門戶)에 욕을 끼치고 말았다. 어찌 통분한 일이 아니겠는가?

백자당은 외부와 단지 담장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화원 문의 자물쇠도 교씨가 가지고 있었다. 한림이 정침(正寢)에 들어가 머무는 날이면 교씨는 버젓이 동청과 정을 통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교활하여 그 자취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집안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것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4: 효녀는 귀녕(歸寧)을 고하고 음부(淫婦)는 도깨비짓을 하다

그때 한림은 바로 장주의 병을 근심하고 있었다. 교씨도 또한 병이 났다는 구실로 여러 날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다. 밤에는 잠꼬대까지 하였다.

한림은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느 날 납매가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바닥에서 마른 뼈다귀 한 봉지와 작은 글씨로 쓴 한 장의 글을 주워 교씨에게 바쳤다. 한림은 교씨와 함께 있다가 그것을 보았다. 한림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한동안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천천히 그 글을 읽어보았다. 곧 장주와 교씨를 저주하는 것으로서 그 내용이 몹시 흉악하고 참혹하였다.

교씨가 흐느껴 울었다.

첩이 열여섯에 상공 댁으로 들어온 이래 이미 네 해가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불순한 언동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첩의 모자를 해치려고 이와 같은 짓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림은 그 글씨의 필획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에 잠겨 말을 하지 않았다.

교씨가 물었다.

이 일을 장차 어떻게 처치하려 하십니까?”

한림은 또 묵묵히 앉아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종적을 자세히 알 수가 없네. 반드시 그 범인을 잡아내려 하다가는 아마도 죄 없는 사람까지 상하게 할 것이야. 하물며 이미 파냈으니 필시 해로운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네. 이 물건들은 불로 태워 버리게. 집안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도록...”

상공의 처치가 지당하십니다.”

한림은 납매에게 단단히 일러 놓았다.

이 일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아라!”

한림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납매가 교씨에게 말했다.

낭자께서 일을 잘못 처리하셨습니다.”

다만 상공께서 저 사람을 의심하도록 만들었을 따름이니라. 만일 끝까지 이 일을 밝혀내려 했다면 도리어 우려할 만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야. 하지만 이미 상공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느니라. 앞으로 천천히 새로운 계책을 세워 보아야지.”

한림은 저주하는 글을 보고 난 후로 내심 그 글씨가 사부인의 필적과 같다고 믿었다. 마침내 부인을 의심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났다. 그렇지만 또한 난처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이에 불에 넣어 그 자취를 없애게 했던 것이다. 한림은 홀로 생각했다.

지난번 교씨는 부인이 투기를 부린다는 말을 했었지. 그 당시 나는 그래도 그 말을 믿지 않았어. 그가 이렇게 흉악하고 참혹한 짓을 할 줄이야...처음에는 아들이 없음을 근심하여 내게 권하여 교씨를 취하게 하였지. 이제 자신이 아들을 낳자 문득 교씨 모자를 해치려 하는구나. 평소 입으로 옛 사람의 선행을 말한 것은 참으로 한무제의 인의와 같은 것이었구나!” 그로부터 한림은 사씨에 대한 정이 갑자기 떨어졌다. 다만 참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따름이었다.

그 당시 사씨의 모부인은 신성에 있었다. 그런데 병이 들어 증세가 위중하였다. 부인은 생전에 딸을 만나보려고 편지를 보냈다. 사씨는 사정이 망극하여 한림에게 고했다.

노모의 연세가 많고 병은 중하십니다. 지금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장차 종천지한이 될 것 같습니다. 시에 이르기를 언고사씨(言告師氏)하야 귀녕부모(歸寧父母)하리라하였습니다. 감히 귀녕을 상공에게 청합니다.”

악모께서 병중에 계십니다. 부인이 어찌 그 곁을 비워둘 수 있겠소? 부인 먼저 가시오. 나도 장차 문후를 올리러 가렵니다.”

사씨는 한림에게 사례하고 교씨를 불렀다.

이번에 떠나면 아마 시일이 오래 걸릴 것이오. 집안일은 다만 낭자만 믿고 다녀오겠소.”

사씨는 바로 행장을 꾸려 인아를 거느리고 신성으로 갔다. 모녀가 오래 떨어져 있다가 함께 만났다. 그 기쁨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병중의 모친을 모시자니 그 근심도 또한 깊었다. 한림도 역시 여가에 몸소 문병을 가 약물을 올렸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서 병세는 점점 위중해졌다.

그 무렵 산서, 산동, 하남 지방이 여러 해 동안 계속하여 흉년을 만났다. 백성들은 사방으로 이리저리 흩어졌다. 천자가 근심하여 근신 삼인에게 명하여 각기 세 방면으로 나가 백성들의 질고를 보살피게 하였다. 유한림은 산동방면으로 가라는 명을 받고 그날로 조정을 하직했다. 사부인과는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길을 떠났다.

 

한림이 한번 집을 떠나자 교씨와 동청은 더욱 꺼리는 일이 없었다. 교씨가 동청에게 말했다.

한림이 지금 마침 멀리 떠났습니다. 사씨도 오랫동안 집을 비웠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계책을 행할 수 있는 때이지요.” “나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족히 사씨를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설령 죽일 수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또한 장차 이 집에 머물지는 못하게 만들 것입니다.”

동청은 인하여 은밀히 이러이러하게 하라고 이야기했다. 교씨가 크게 기뻐하였다.

낭군의 계책은 귀신도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진평이 범중을 이간하던 계책이라 하더라도 이를 따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누가 그 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 냉진이라는 심복하는 벗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꾀가 많고 말을 잘하니 족히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사씨가 평소 가장 사랑하던 수식이나 완상하던 물건을 반드시 구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을 듯하여 걱정입니다만..”

사씨 시비 설매는 곧 납매의 종매랍니다. 그 아이 힘이라면 능히 훔쳐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교씨는 조용히 설매를 불러 미리 많은 상을 주었다. 설매는 교씨의 후의에 감동하였다. 교씨는 납매를 시켜 사부인의 수식을 훔치는 일을 설매와 상의하게 하였다. 그러자 설매가 납매에게 물었다.

부인은 수식을 상자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 방에 놓아 두었지. 비슷한 종류의 열쇠만 구할 수 있다면 훔쳐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야. 다만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 그것을 모르겠구만.”

쓸 곳은 알려고 하지도 말아라. 또한 혹시 누설하는 날에는 너와 나 두 사람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야.”

납매는 설매가 한 말을 교씨에게 전했다. 교씨는 열쇠 십여 개를 꺼내 설매에게 보여주며 비슷한 것을 고르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팔찌나 반지 등 아무것이나 가리지 말아라. 다만 얻고자 하는 것은 사씨가 가장 사랑하던 물건으로서 상공도 눈으로 익히 보시던 것이라야만 한단다.”

설매는 열쇠를 품속에 넣고 밤중에 몰래 사씨 방으로 들어갔다. 상자를 열어 놓고 옥환을 꺼냈다. 설매는 그것을 교씨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은 본래 유씨 집안에서 세전하는 구물입니다. 부인께서도 가장 애지중지하는 물건이랍니다.”

교씨는 크게 기뻐하며 다시 설매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그리고 동청과 함께 계책을 세웠다.

그때 마침 사급사 집안의 하인이 신성에서 찾아와 급사 부인의 부음을 전했다.

사공자가 나이가 어리시므로 부인께서 몸소 초상을 치르셔야 합니다. 좀더 머물다가 장례를 모신 후에 돌아오실 것입니다. 부인께서 교낭자는 노력하여 집안 일을 잘 돌보라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교씨는 납매를 보내 사부인을 조문하게 하였다.

한편 교씨는 동청과 함께 냉진에게 할 일을 가르쳐 준 후 길을 떠나게 하였다.

그 무렵 유한림은 산동지방에 도착하였다. 민간의 물정을 탐문하려고 유복차림으로 갈아입고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녔다. 어느 날 한림은 동창의 한 객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침 한 소년이 밖에서 들어와 한림에게 인사를 하더니 그 옆에 앉았다. 풍채가 준수한 소년이었다. 한림이 먼저 그 소년에게 성명을 물었다.

소년이 대답했다.

소제는 남방 사람 장진입니다. 감히 존형의 성씨도 묻고자 합니다.”

한림은 행동에 번거로운 일이나 생기지 않을까 열려하여 성명을 바꾸어 대답했다. 그리고 민간 물정을 두루 물어보았다. 그가 대답하는 말은 자세하면서도 사리에 맞았다. 한림은 그 소년이 필시 아름다운 선비리라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장형께서는 지금 어디로 가시는 중이요? 형은 비록 남방 사람이지만 말소리는 전연 서울사람 같구려.”

소제는 본디 외로운 사람으로 동서로 떠돌아다녔습니다. 두 해 동안은 서울에서 떠돌고 반 년은 신성에서 살고 있었지요. 이제 비로소 북방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는 중이랍니다.”

나도 또한 남쪽으로 가려고 하오. 며칠 함께 동행한다면 퍽이나 다행이겠소.”

두 사람은 무릎을 마주하고 잔을 주고받으며 서로 만남이 늦은 것을 한탄하였다. 그로부터 나란히 말을 타고 가다가 잠도 같은 객점에서 잤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이 속옷을 입었다. 그런데 한 쌍의 옥환이 그의 옷고름에 매달려 있었다. 한림이 어찌 자기 집안에서 세전하는 구물을 모를 리 있었겠는가? 한림은 마음속으로 몹시 놀랍고 의아하여 소년에게 물었다.

내가 어린 시절 서역 사람을 만나 옥품을 구별하는 법을 배운 적이 있었다오. 지금 장형이 차고 있는 것은 아마도 미옥인 듯하오. 어디 한번 구경이나 좀 합시다.”

소년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옥환을 풀어서 보여주었다. 한림은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옥의 빛깔과 새긴 무늬가 완연 자기 집안의 구물이었다. 더구나 검은 머리 한 줌으로 동심결까지 맺어 놓은 것이었다. 한림은 더욱 괴이하여 소년을 바라보았다.

과연 빼어난 보배올시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장형이 이미 이것을 품속에 차고 있었소. 더구나 동심결까지 매어 놓았지요. 아마 범상하게 애완하는 물건은 아닐 듯하오.”

소년은 슬픈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단지 옥환을 받아 다시 고름에 매달 따름이었다. 한림은 더욱 간절하게 물었다. 그제야 소년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소제가 북방에서 머물 때 마침 사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선물로 준 것이지요.”

한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옥환은 분명 우리 집안의 물건이야. 그런데 저 사람은 또 자신이 신성에서 왔다고 했지. 혹시 비복들이 도적질하여 저 사람에게 팔았던 것은 아닐까?”

마침내 소년과 여러 날을 같이 지내자 더욱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한림은 다시 소년과 함께 술을 취하도록 마신 후에 물어보았다.

장형이 옥환에 관한 일을 끝내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소. 이것을 어찌 벗의 도리라 할 수 있겠소?”

소년은 무슨 작정이나 한 듯이 대답하였다.

소제가 이제 형에게는 이야기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한수는 가씨녀의 향을 훔치고, 자건은 복비의 베개에 머물렀지요. 이는 모두 천고 유정한 사람들의 일이었답니다. 바라건대 형은 소제를 비웃지나 마십시오.”

내가 본래 형에게 기이한 만남이 있었음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소. 그런데 그 만났던 분은 어떤 사람이었소? 그것이 궁금하구려.”

그것만은 제발 묻지 마십시오. 물어도 소제는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형은 북방에서 그와 같이 아름다운 일이 있었소. 지금 그 사람을 버리고 남쪽으로 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소년이 탄식하였다.

호사다마요 가기난재랍니다. 옛사람이 시에서 후문에 한번 들어가니 바다처럼 깊어, 그로부터 소랑은 길 위의 사람이로다라고 읊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소제의 오늘날 정경을 말한 것이지요.”

이어 소년은 처연히 울며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한림이 말했다.

형은 참으로 다정한 사람이구려!”

그날 두 사람은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 이튿날 새벽에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한림은 동창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마침내 의심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어찌 옥환이라 하여 서로 비슷한 것이 없겠는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가 없었다. 한림은 반년 만에 국사를 마친 후 서울로 돌아가 천자에게 복명하였다. 그리고 집으로 갔다. 한림은 먼저 사부인과 마주 바라보며 곡을 한 후 각기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어 교씨와 두 아이를 불러보았다. 그때 한림은 문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색이 변하더니 사씨에게 물었다.

부인! 전에 선인으로부터 받은 옥환이 지금 어디에 있소?”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왜 물으십니까?”

의심스러운 일이 하나 있었소. 빨리 확인을 하려는 것이오.” 사씨도 역시 스스로 의아하였다. 이에 시비를 시켜 상자를 가져다가 열어보게 하였다. 다른 보물들은 다 그대로 있었으나 유독 옥환만은 보이지 않았다. 사씨는 깜짝 놀랐다. “분명히 여기에다 두었는데...지금 어찌하여 없는 것일까?”

한림은 더욱 얼굴이 변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씨가 한림에게 물었다.

상공께서 혹시 옥환의 거처를 알고 계십니까?”

부인께서 이미 남에게 주시지 않았소? 왜 도리어 나에게 묻는 것이오?”

사씨는 한림이 발끈하여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너무도 놀랐다.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때 문득 시비가 아뢰었다.

두부인의 종이 문에 당도하였습니다.”

두부인은 한림이 조정으로 돌아왔으므로 만나보려고 찾아왔던 것이다. 한림은 황망히 두부인을 맞이하여 절을 하였다. 그리고 안부도 미처 제대로 나누기 전에 급히 부인에게 고했다.

집안에 큰 일이 있었습니다. 본디 고모께 아뢰려 하던 차였습니다.”

무슨 일인가?”

한림은 동창 소년의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하였다. 이어 끝으로 말했다.

그 당시에는 혹시 서로 비슷한 물건도 있겠지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집에 있던 옥환이 없어졌습니다. 문호가 불행하여 이런 변고를 만났습니다. 응당 법대로 처리할 것이로되 감히 전단할 수 없어 이렇게 아뢰었던 것입니다.”

사씨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넋이 빠져 눈물을 비처럼 흘렸다.

첩이 평소 행실이 무상하여 상공으로 하여금 저런 의심을 품게 하였습니다. 살리든지 죽이든지 오직 상공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옛 말에 이르기를 신실한 군자여 참언을 믿지 말라하였습니다. 저 참소하는 자를 잡아다 호랑이에게 던지라고도 하였습니다. 상공 집안에 실로 참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공께서는 어찌하여 살펴보려 하지 않는 것입니까?”

두부인이 크게 노하여 한림을 꾸짖었다.

자네 스스로 보기에 총명과 견식이 선소사와 비교하면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소자가 어찌 감히 선군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소사형께서는 평소 지인지감을 가지고 계셨었지. 더욱이 세상일의 시비를 경험한 바가 매우 많으셨어. 그런데 매양 사씨를 칭찬하시되, ‘옛날 열녀라 하더라도 우리 며느리를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야하셨다네. 임종하실 때 자네를 나에게 부탁하면서 연수는 나이가 어리니 모름지기 가르침을 베풀라고 말씀하셨지. 하지만 사씨에 대해서는 경계하시는 말씀이 없었어. 사씨의 현숙함을 깊이 알고 계셨으므로 다시 권할 것이 없었던 때문이었지. 더러운 행실은 중간 이하의 사람들도 모두 미워한다네. 하물며 사씨가 그런 짓을 하였겠는가? 이 일은 집안에 악인이 있어 옥환을 훔쳐내 사씨를 모해하고자 한 것에 불과할 것이야. 그렇지 않다면 시비들 가운데서 음란한 일이 있었을 것이야. 자네가 그 진실을 엄히 조사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도리어 사씨를 의심하고 있다니...자네의 혼암이 이에 이를 줄은 참으로 미처 헤아리지 못했었네.” 한림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였다. “고모의 가르침이 지당하십니다.”

한림은 즉시 형장을 벌려 놓고 여러 시비들을 심문하였다. 그러나 죄에 가담하지 않았던 자들은 차마 거짓으로 사씨를 무함할 수 없었다. 설매도 그들 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고하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또 자백하지 않았다. 두부인도 어쩔 도리가 없었으므로 그대로 돌아갔다.

사씨는 오명을 씻을 길이 없었다. 초가에 거적을 깔고 죄인으로 자처하였다. 한림은 전후로 이미 귀에 젖도록 참언을 듣고 있던 중이었다. 끝내 사씨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로 한림은 매양 교씨와 함께 거처하였다. 교씨는 그를 매우 통쾌하게 여겼다.

 

 

5: 군자는 참언을 믿고 흉인은 아들을 죽이다.

한림은 교씨와 함께 사부인의 일을 의논하였다.

교씨가 먼저 말했다.

부인은 위인이 말을 꾸미고 명예를 좋아합니다. 매사에 스스로를 옛날 열녀에 견주어 안하무인입니다. 그러한 더러운 행실을 몸소 저질러 남들로부터 모욕을 자초하였을 리가 있겠습니까? 첩이 가만히 생각하니 두부인의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두부인께서도 또한 공평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씨는 지나칠 정도로 추켜올리고 상공은 여지없이 깎아내린다는 말씀입니다. 옛날 성현께서도 간혹 남에게 속임을 당하곤 하셨습니다. 先老爺 께서는 매우 고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부인이 문중에 들어온 후로 시간이 많이 지나기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떻게 먼 훗날의 일을 미리 아실 수 있겠습니까? 임종 당시의 말씀은 상공을 권면하고 사부인을 권유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두부인께서는 그 말씀을 빙자하여 상공으로 하여금 매사에 부인의 말을 따르게 하려고 하십니다. 어찌 편벽하다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한림이 대답했다.

사씨는 평상시 언행에 구차한 구속이 없었지, 그러므로 나도 본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지난날 내가 일찍이 의심스러운 일을 본 적이 있었어. 그 까닭에 지금 또한 저 사람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네.”

이어 한림이 다시 말했다.

저주하는 글은 실로 사씨의 필적처럼 보였네. 그렇지만 당시 생각에 집안에 쓸데없는 말이 날까 염려하였으므로 즉시 불에 태우게 하였던 것이지. 또한 자네에게도 자세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저 사람이 부녀자의 몸으로서 마음 씀씀이가 저토록 흉악하고 참혹하다니! 그로써 미루어 보건대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상공께서는 만일 이미 의심하였다면 장차 저 사람을 어떻게 하려 하십니까?”

그렇다고는 하나 지나간 일은 이미 종적을 알 수가 없지. 이번 일도 또한 사건이 명백하지 않네. 더구나 선인께서 사랑하셨던 사람이며 나는 함께 선인의 삼년상을 지냈어. 고모께서 역시 힘써 구하려 하신다네. 쫓아내는 것은 불가할 것이야. 또한 차마 하기도 어려운 일이고…….”

교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무렵 교씨가 다시 아들을 낳았다.

한림은 그 아이 이름을 鳳雛라 붙이고 이전의 두 아들처럼 사랑하였다. 그러나 시황이 嬴氏인지 呂氏인지 여부를 누가 분별할 수 있겠는가?

교씨가 동청에게 말했다.

지난번 계책이 훌륭하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림이 하는 말이 이러이러하였습니다. 풀을 뽑으면서 뿌리까지 뽑지 않는다면 뒷날에 벌어질 일을 알 수가 없는 법이지요. 사녀(謝女)가 두부인과 함께 옥환의 거처를 두루 탐문하고 있답니다. 그 사실이 누설이라도 되는 날이면 어찌 큰 화가 일어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동청이 대답했다.

두부인이 힘써 사씨를 돕고 있습니다. 그러니 낭자는 틈을 타서 교묘한 말로 이간하여 고모와 조카를 서로 불화하게 만드십시오. 두부인만 일단 소원하게 만들 수 있다면 사씨를 제거하는 일은 썩은 나무를 꺾는 것처럼 간단할 것입니다.”

나도 본디 그렇게 생각하였으므로 일찍이 한림에게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림은 아예 대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림은 두부인을 마치 부모처럼 섬기고 있어 그 뜻을 어기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 계책은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무렵 두부인은 사씨를 위하여 옥환 소식을 두루 탐문하였다. 그러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교씨의 소행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렇지만 역시 그 증거를 잡을 수 없어 입을 열기가 결코 싶지 않았다. 두부인은 마음만 태우다가 다시는 한림의 집을 왕래하지 않았다.

조금 후에 두부인의 아들 두억이 과거에 급제하여 長沙推官이 되었다. 부인은 장차 아들을 따라 임소로 가려고 출발할 날을 잡아 놓았다. 한림은 두부인 모자를 집으로 초청하였다. 큰 잔치를 열어 전별하려는 것이었다. 두부인은 그 자리에 사씨가 없는 것을 보고 하루 종일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두부인이 마침내 한림에게 말했다.

선형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로는 현질을 의지하며 지내왔지. 이제 만 리 먼 작별을 앞두고 내가 한 마디 부탁을 하려고 하네.”

한림은 무릎을 꿇고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바로 사씨 문제네. 사씨는 선형께서 사랑하던 사람으로 천성이 본래 근실하네. 그에게 죄과가 없으리라는 것은 백번이라도 보장할 수 있지. 내가 떠난 이후에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절대 그 말을 그대로 믿지 말게. 설혹 그가 잘못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경우라 하더라도 반드시 老身이게 편지를 보내 함께 의논하도록 하게. 부디 가볍게 처리하지 말게나.”

삼가 가르침대로 따르겠습니다.”

두부인이 이어서 시비를 돌아보며 물었다.

부인은 어디 계시느냐? 내가 직접 찾아가야 하겠다.”

시비가 두부인을 모시고 사씨가 머무는 곳으로 갔다. 사씨는 누추한 방에 거적을 깔고 있어 보기에도 처참하였다. 나무 비녀와 베 치마에 다북쑥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었다. 몸은 여위어 초췌한 모습으로 의복도 이기지 못할 듯 하였다. 사씨는 두부인께 절을 올린 후 사례하였다.

숙숙(叔叔)이 영귀하여 판여(板輿)가 멀리 떠나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저는 상복을 입은 사람으로서 또한 씻을 수 없는 죄명을 지고 있습니다. 지금 집으로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서도 또한 나가서 뵈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다시 존안을 대할 날이 없을 듯하여 무궁한 한으로 여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부인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왕림하셨습니다. 참으로 황공합니다.”

소사형께서 임종하실 때 한림을 내게 부탁하셨지.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네. 내가 조카를 능히 선도하지 못한 탓으로 자네를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어. 모두 내 허물일세. 그런데 내가 몇 해 전에 자네에게 했던 말이 있었지. 혹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가?”

사씨는 절을 하고 대답했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찌 잊을 날이 있겠습니까? 첩이 눈이 있으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감히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미 지난 일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야.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 자네는 불행하게도 일찍이 구고(舅姑)님을 잃고 나와 서로 의지하였지. 이제 나마저도 멀리 떠나야 할 형편이네. 아들을 따라 고을로 가는 것이 어찌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오직 자네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없다네. 집안의 형세를 가만히 살펴보건대 자네는 결코 집안에 그대로 머물 수 없을 것이야. 자네 본가도 지금 형편이 없지 그곳으로 가 의지할 수도 없을 것이야. 더구나 신성은 참소를 만났던 땅이지. 정녕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닐 것이야. 내가 다시 생각하니 장사가 비록 멀기는 하나 뱃길이 통하는 곳이지. 왕래하기에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야. 추후로 만일 말하기 곤란한 일이 벌어지거든 반드시 나에게 알리도록 하게. 그러면 내가 배를 마련한 후 자네를 기다리고 있겠네. 그곳에서 만나 함께 지내도록 하세. 그리고 천천히 사태를 살펴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자네를 참소할 수 없는 날이 찾아올 것이야.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부인의 염려가 거기에까지 이르셨다니……. 첩이 만 번을 죽는다 하더라도 그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신성에는 진실로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애초 부인에게 의탁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인께서 뜻밖에도 멀리 떠나게 되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만수(萬水) 천산(千山)의 먼 곳을 여자 몸으로 어떻게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첩의 생각으로는 구고님의 산소 아래서 가서 머물다가 일신을 마칠까 합니다.”

애처로운지고! 자네의 생각이 그러하다니 ....... 하지만 선영 아래도 역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아닐 것이야. 내가 하는 말을 모름지기 잊지 말게. 범사에 응당 참고 견디며 좋은 시절이 다시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게나. 하늘은 착한 사람을 돕는 법이야. 그대의 액운도 또한 끝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두부인은 사씨를 새삼 위로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집을 떠났다.

한림이 먼 지방으로 떠나는 두부인을 전송하였다.

그러자 교씨는 마치 눈에 꽃힌 바늘을 뽑고 등에 박힌 가시를 빼낸 듯이 기뻐하였다. 그녀는 동청과 함께 더욱 일을 꾸몄다.

동청이 교씨에게 말했다.

지금 두부인이 떠난 틈을 타 응당 나의 좋은 계책을 실행해야 할 것 입니다. 다만 낭자가 그 계책을 쓰려고 하지 않을까 하여 걱정입니다.”

동청은 소매에서 책 한권을 꺼냈다.

계책은 이 책 속에 있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것은 唐史지요. 당나라 고종은 왕황후와 무소의를 모두 사랑하였습니다. 소의가 황후를 참소하려 하였으나 틈을 얻을 수 없었답니다. 그런데 마침 소의가 딸을 낳자 용모가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황후도 그 아이를 사랑하여 때때로 찾아가 어루만지곤 하였지요.

하루는 황후가 방안에서 소의의 딸을 어루만지다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소의는 즉시 자기 딸을 눌려 죽인 후 큰소리로 통곡을 했습니다. ‘누가 내 아이를 죽였나?’ 하고 말이지요. 이에 궁인들은 힐문하였습니다. 모두 대답하기를 다른 사람은 없었고 오직 황후께서 다녀가셨습니다.’ 하는 것 이었습니다. 황후는 끝내 스스로 자신의 무죄를 발명할 수 없었지요. 고종은 황후를 폐하고 소의를 세워 황후로 삼았답니다. 그 여인이 바로 훗날의 측천황제 이었습니다. 예로부터 큰일을 이루는 사람은 작은 절의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번 장주가 아팠을 때 한림은 이미 사녀를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낭자께서 부족한 것은 아들이 아니지요. 진실로 측천황제가 행했던 계책을 쓰기만 한다면, 사녀가 비록 태임 태사 같은 덕행이 있고 소진 장의 와 같은 언변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죄가 없다는 사실을 밝힐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낭자! 더 이상 무엇을 염려할 것이 있겠습니까?”

교씨는 손으로 등청의 등을 두드렸다.

호랑이도 제 새끼를 사랑한답니다. 사람이 차마 어떻게 제 자식을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단지 당신 자식만을 사랑할 줄 아는구려, 남의 자식은 해치려 하면서.........”

낭자의 형세는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과 같습니다.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뒤에 반드시 후회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른 방도를 궁리하여 보십시오.”

그러나 동청은 밖으로 나가면서 납매에게 일렀다.

낭자는 사람이 강잉하지 못해서……. 그런데 이 계책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살아남을 방도가 없을 것이니라. 네가 적당한 틈을 타서 반드시 그 일을 해치우도록 하거라.”

그 후로는 납매는 매양 손을 쓰려 하였다. 그러나 마땅한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장주가 난간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주위에는 누구 하나 보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사부인의 시비 춘방과 설매가 화원에서 꽃놀이를 하면서 난간 아래로 지나가고 있었다. 납매는 두 사람이 조금 멀리 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즉시 장주를 눌러 죽었다. 납매는 이내 물러나 남들 모르게 설매를 설득했다.

네가 옥환을 훔쳤었지. 그 일이 만약 드러나는 날에는 부인이 반드시 너부터 죽이고 말 것이야. 네게 이제 이러이러하게 말만 한다면 화를 면하고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니라.”

설매는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때 장주 유모는 장주가 잠에서 깨어났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장주가 칠규(七竅)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유모는 깜짝 놀라 통곡하였다. 교씨도 놀랐다.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가 살펴보니 이미 목숨을 구할 수가 없었다. 교씨는 큰소리로 울부짖었으나 속으로는 그것이 동청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계책을 완수하게 하려고 급히 한림에게 고했다.

한림도 기가 막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교씨가 울다가 다시 말했다.

이는 필시 지난해 저주하던 사람의 소행일 것입니다. 비복들을 힐문하면 죄인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림은 그녀의 말에 따라 비복들을 모두 잡아들었다. 이어 형구를 크게 벌려 놓고 엄하게 심문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장주 유모가 대답하였다.

첩이 공자를 안고 난간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 잠이 드셨습니다. 그때 마침 첩에게 급한 일이 있어 공자를 자리에 눕혀 놓고 잠시 물러갔습니다. 변고는 그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첩의 죄는 죽어 마땅하나 그 밖의 다른 것은 첩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어 납매가 말했다.

첩이 우연히 문밖으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춘방과 설매가 난간 아래 서서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얼마쯤 뒤에 변고가 일어났습니다. 두 종년에게 물어보시면 죄인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설매는 첩의 종매입니다. 하지만 첩은 감히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한림은 춘방과 설매를 앞으로 끌어내게 하였다. 먼저 춘방에게 매질을 가하며 물었다. 춘방은 살이 터지고 뼈가 부셔져도 오직 한결같이 대답할 따름이었다.

설매와 함께 우연히 난간 아래로 지나갔을 뿐입니다. 변사는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설매의 대답도 처음에는 춘방의 말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그녀는 목소리를 높여 고했다.

첩은 이제 곧 죽을 것입니다. 감히 바로 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부인께서 小婢 양인에게 당부하기를, 능히 장주를 해치는 자에게는 重賞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침 공자께서 혼자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춘방과 함께 손을 쓰리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소인은 마음이 떨려 앞으로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실은 춘방이 공자를 눌려 죽였습니다.”

한림이 크게 노하여 극형을 쓰며 춘방을 심문하였다. 그러자 춘방이 설매를 꾸짖었다.

네가 부인을 팔아 죽음을 피하려 하다니……. 개돼지만도 못한 것이구나!”

춘방은 끝까지 말을 바꾸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는 형장 아래서 죽고 말았다.

교씨가 말했다.

설매는 애초 흉악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바로 고한 공이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죄를 물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춘방도 이미 죽었습니다, 하물며 남의 사주를 받고서 한 짓입니다. 그것이 어찌 춘방의 뜻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교씨는 이어 가슴을 치며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장주야! 장주야! 네 원수를 갚을 수 없다면 내가 살아서 무엇을 하겠느냐? 차라리 너를 따라 죽고 말겠다.”

교씨는 방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을 맸다. 시비가 급히 그를 말렸다. 교씨는 또다시 발을 구르며 끊임없이 울어댔다. 한림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교씨가 말했다.

투부(妬婦)가 우리 모자를 해치려 하였습니다. 그 흉악한 음모가 이미 발각당한 적이 있지요? 다시 계집종을 사주하여 이런 毒手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오늘 장주가 죽었습니다. 내일은 화가 저에게 미칠 것입니다. 제가 차라리 스스로 숨을 끊겠습니다. 누가 저를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상공께서는 이미 투부와 해로하기로 작정하고 계셨습니다. 속히 첩을 죽이시어 투부로 하여금 속이 시원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첩은 만 번을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다만 첩이 염려하는 바가 있습니다. 투부가 본래 다른 사람과 정을 통하고 있었습니다. 상공께서도 또한 다음에 그 독수를 면하지 못할까 하는 것입니다.”

교씨는 말을 마치고 다시 목을 매려 하였다.

이번에는 한림이 급히 일어나 교씨를 만류하였다. 마침내 한림은 화를 벌컥 냈다.

투부가 처음에 저주를 했을 때였다. 당시 나는 부부의 정의를 생각하여 차마 적발할 수가 없었지. 그 후 신성에서 더러운 행실을 했을 때였어. 그 당시에도 이미 단서가 드러났으나 그래도 오히려 죄를 묻지 않았지. 지금 또 이렇게 세상에 보기 드문 흉악한 짓을 다 하다니……. 이 사람을 집안에 그대로 두었다가는 조종께서 제사를 흠향하지 않으시겠지? 자손도 아마 끊어지고 말 것이야.”

한림은 교씨를 위로하였다.

오늘은 날이 이미 저물었네. 날이 밝으면 종족을 모으고 사당에 고유한 후 투부를 내칠 것이네. 그리고 자네를 책봉하여 부인으로 삼을 것이야. 쓸데없이 슬퍼하지 말게. 꽃다운 얼굴만 상하겠네.”

교씨는 눈물을 거두며 대답했다.

그와 같이 처치하시다니……. 첩의 원한이 조금 풀렸습니다. 하지만 부인의 자리야 첩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한림은 즉시 여러 종족들에게 통지하여 아침에 모두 사당 아래로 모이게 하였다.

아아! 유소사는 지하에서 일어날 수 없고 두부인도 만리나 멀리 떠났다. 누가 능히 한림의 뜻을 돌려놓을 수 있었겠는가?

여러 시비들이 사씨에게 달려가 그 전말을 고하고 통곡하였다.

그러자 사씨가 말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느니라.” 사씨는 안색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6: 조강지처(糟糠之妻)는 집에서 쫒겨나고 구고(舅姑)는 꿈속으로 현신(現身)하다

이튿날 아침 유씨 종족이 모두 모였다.

한림은 사씨의 전후 죄악과 폐출하지 않을 수 없는 정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평소 사씨의 현숙함을 잘 알고 있었다. 모두 깜짝 놀라며 한림의 말에 호응하려 하지 않았다.

한림은 재삼 그 정상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한림과 먼 일가가 아니면 낮은 항렬에 속했다. 누가 한림의 집안 일을 스스로 나서서 담당하려 했겠는가?

마침내 종족들은 모두 말했다.

그것은 한림이 깊이 생각해서 하실 일입니다. 우리들이 어찌 감히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림은 중론이 하나로 귀일했다 하여 크게 기뻐하였다. 이어 하인들에게 명하여 사당을 청소하고 향촉을 배설하게 하였다. 한림은 관복을 정제하였다. 그리고 여러 종족을 거느리고 향안 앞으로 나아가 사씨의 죄상을 조종 신령에게 고했다.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

 

유 가정 삼십육 년, 세차 정사 모월 모일, 효증손 한림학사 연수는 삼가 글월을 증조고 문연각태학사 문충공 부군, 증조비 부인 호씨, 조고 태상경 증이부상서 부군, 조비 부인 정씨, 현고 태자소사 예부상서 정현공 부군, 현비 부인 최씨의 신위에 밝게 고하나이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부부는 인륜의 시작이오 만복의 근원입니다. 나라의 흥망이 이에서 비롯하고 집안의 성패도 이에서 비롯합니다.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씨가 처음 문중에 들어왔을 때에는 자못 기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종사를 받드는 데서도 또한 예법을 어기는 적이 없었습니다. 무릇 사람은 시작은 본디 잘하지만 끝은 잘 맺는 경우는 드문 것입니다. 추악한 소리가 점점 귀로 들어오고 어긋난 행실이 때로 눈에 보였습니다. 그래도 부부의 대체를 생각하여 심하게 책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씨는 이에 남을 무시하고 스스로 잘난 체하여 입으로 성현의 행실을 말하였으나 몸으로는 사특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집안에 흉물을 묻어 두어 앞날의 재앙을 측량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조종의 도우심에 힘입어 필적이 드러났으니 이는 법대로 다스려야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인께서 일찍이 사랑하시던 바요 함께 삼년상을 모신 정리를 생각하여 눌러 참고 적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씨는 더욱 방자하여 기탄없이 행동하였습니다. 모친의 병을 구하려 신성에 갔을 때에는 추악한 소문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듣는 자들이 귀를 막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조금이라도 잘못 들었을까 두려워하여 더러운 행적을 그대로 집안에 묻어 두었습니다. 사씨는 잘못을 고치려 생각하지 아니하고 더욱 원망하며 독기를 내뿜었습니다. 흉악한 종을 사주하여 그 화가 강보에까지 미쳤습니다. 이를 차마 할 수 있다면 장차 무엇인들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옛날 진황후는 저주한 일이 드러나서 장문궁으로 쫓겨갔습니다. 그러자 선유는 사서에 쓰기를 황후진씨폐라 하였습니다. 조비연이 음행을 저지르고 그 아우 합덕이 허미인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사신은 말하기를 조씨란내라 하였습니다. 지금 사씨는 일신에 저 세 사람의 악행을 겸하였고 죄는 칠거의 조목을 넘어섰습니다. 진실로 조종이 흠향하지 아니하시고 후사가 끊어질까 두려워 마지못해 사씨를 쫒아내려 합니다. 소첩 교씨는 처음에 비록 육례는 갖추지는 않았으나 실로 명가의 후손으로 시를 외우고 예를 읽어 유한하고 정숙합니다. 조종의 제사를 받들게 함이 마땅하여 이제 특별히 봉하여 정실로 삼으려 합니다. 삼가 고하나이다.

 

한림이 글을 다 읽었다. 시비가 사씨를 인도하고 계단 아래로 나아갔다. 사씨는 조종 신령에게 하직하는 절을 올렸다. 마침내 사씨가 대문을 나섰다. 유씨 종족들도 모두 눈물을 뿌리며 작별을 고했다.

부인! 귀체를 보중하십시오. 후일 다시 만나뵐 때를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사씨도 인사하였다.

죄인을 멀리까지 전송하시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이번에 떠나면 어찌 다시 돌아올 기약이 있겠습니까?”

인아 유모가 인아를 품에 안고 사씨에게 다가가 하직을 고했다. 사씨는 인아를 받아 품에 안고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를 생각하지 말고 부디 새어머니를 잘 섬기거라. 장차 너를 다시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다시 탄식하였다.

엎어진 새 둥지에는 온전한 알이 없는 법이지. 어찌 너를 그대로 둘 리가 있겠느냐? 내 죄악이 중하여 너에게까지 누가 미치겠구나. 어린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다만 후생 세세에 함께 모자가 되자꾸나. 이승에서 미진한 인연을 다할 수 있게 되기바랄 뿐이란다.”

말을 마치자 눈물이 흘러 아이의 이마로 떨어졌다. 사씨는 문득 눈물을 거두고 얼굴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소사께서 세상을 버리셨을 때 내가 따라 죽지 못하였지. 자모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역시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했어. 그래 놓고도 오히려 강보의 어린 것에게 연연하고 있다니...”

사씨는 인아를 밀쳐 유모에게 건네주었다. 이내 의연하게 교자에 올라 앉았다. 그러자 인아가 큰소리로 울었다.

어머니!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나도 우리 어머니를 따라 갈 것이야.”

사씨는 교자 안에서 다시 인아를 받아 젖을 먹였다. 그리고 억지로 위로하였다.

잘 있거라! 내가 내일은 꼭 돌아오마.”

이에 하인 둘이서 교자를 메었다. 사씨는 흰 수건으로 얼굴을 감쌌다. 애초 친정에서 따라왔던 늙은 유모와 아환 한 명이 길을 따라 나섰다. 사씨는 결국 집을 떠났다.

이윽고 시비가 새 부인을 인도하고 사당으로 올라갔다. 새 부인은 구슬로 화관을 꾸미고 자수로 의상을 장식하였다. 패옥 소리가 낭낭하게 울렸다. 그 위의와 성대함은 산과 같고 바다와 같았다.

교부인이 비복들에게 명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내가 집안 살림을 주관할 것이니라. 상벌과 호령이 내 손에 달렸지. 너희들은 더욱 힘을 써야 할 것이니라.”

비복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렸다. 잠시 후 늙은 종 몇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교씨에게 고했다.

사부인께서는 죄를 짓고 쫓겨났습니다. 그렇지만 노복들이 여러 해를 어미처럼 섬겼던 분입니다. 원컨대 부인의 허락을 받고 길에 나아가 작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교씨는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

여러 비복들은 한꺼번에 통곡하면서 사씨에게 달려가 작별을 고했다. 사씨는 그들을 위해 잠시 교자를 멈추게 했다. 이어 아환을 통해 인사말을 전했다.

멀리까지 나와서 전송하다니...참으로 고맙네! 새 부인을 잘 모시게. 또한 옛사람도 때때로 생각하면서.”

그날 인근 마을에서는 사씨가 나가는 것을 구경하려고 사람들로 거리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였다.

십 년 전 유한림이 사부인을 친영할 때 이 길로 지나갔었지. 그때 딸을 둔 집안에서는 자신들의 분수를 헤아릴 줄 몰랐었지. 사씨 낭자와 같은 딸을 두기만을 모두가 바라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문득 저 지경에 이르렀다니! 창해상전이라는 말이 참으로 틀린 소리가 아니로군.”

그들은 또 서로 이야기하였다.

내가 들으니 사씨는 어진 부인으로 소사의 사랑과 한림의 경대가 세상에 비할 데 없었다 하더군. 하루아침에 저와 같이 되었다니... 그 곡직은 우리가 알 바가 아니야. 하지만 부부 사이란 참으로 어려운 관계가 아니겠는가?” 그날 천지가 어둑하고 태양은 빛을 잃었다. 급한 바람에 눈발까지 흩날렸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한림도 또한 오랫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교부(轎夫)가 무심코 신성으로 가는 남쪽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그러자 사씨는 교부에게 명하여 길을 바꾸게 하였다. 사씨는 조양문을 지나 유씨 선영 아래로 가 그곳에서 초가 몇간을 얻었다. 거친 산은 사방으로 둘러서 있었고 늙은 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아침 저녁으로 오직 바람 소리와 새 소리만이 들릴 따름이었다.

사공자가 달려가 사씨를 보고 통곡하였다.

여자가 시집에서 용납을 받지 못하면 응당 본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저께서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산중에 투신을 하셨습니까?”

본가로 가서 모친의 영연을 모시고 현제와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었겠는가? 그러나 한번 본가로 돌아가면 문득 유씨와는 인연이 끊어질 것이야. 돌아보건대 내 몸은 본래 죄를 지은 적이 없었지. 한림도 원래 현명하고 군자다운 사람이야. 비록 한때 참언을 믿기는 하였으나 뒤에 어찌 후회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한림이 나를 끝내 저버린다 하더라도 나는 일찍이 선소사에게 득죄한 적이 없었지. 소사의 산소 아래서 늙어 죽는 것이 내 소원이라네. 현제는 너무 괴이하게 여기지 말게.”

사공자는 더 이상 말릴 수 없음을 깨닫고 그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늙은 창두와 시비 한 사람을 보내 사씨의 심부름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러자 사씨가 말했다.

우리 집에는 노복이 많지 않지.”

마침내 시비는 돌려보내고 창두만 남겨 대문을 지키게 하였다. 그 지방은 바로 유씨의 종족과 노복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들은 사씨가 온 것을 보고 모두 감탄하여 종종 채소와 과일을 보냈다. 사씨는 또 남을 대신하여 바느질과 길쌈을 하면서 조금씩 그 대가를 받았다. 그리고 몸에 지니고 온 약간의 수식이 있었다. 이에 구슬을 팔아 밥을 짓고 덩굴을 뜯어 집을 수선하였다. 그 고초가 심하기는 하였으나 그런 대로 세월은 보낼 만하였다.

 

교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사씨가 선영 아래로 가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고했다.

교씨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사씨가 신성으로 가지 않고 선영 아래로 간 것은 필시 출부로 자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야.”

이에 교씨가 한림에게 말했다.

사씨는 추한 행실로 조종에 죄를 지었습니다. 어떻게 감히 유씨 선영 아래서 머물겠다는 것입니까?”

한림은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쫒겨난 후에는 동서남북 어디로 가든지 그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요. 하물며 선영 아래에는 비단 종족과 노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또한 살고 있다오. 어떻게 유독 저 사람만이 살지 못하게 할 수가 있겠소?”

교씨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다시 동청과 상의하였다. 먼저 동청이 말했다.

사녀가 선영 아래 머물려고 하는 데에는 큰 뜻이 숨어 있습니다. 첫째는 다시 신성으로 가지 않음을 통하여 스스로 옥환의 일을 발명하려는 것입니다. 둘째는 스스로 죄가 없다고 여겨 아직도 유씨 집안의 며느리로 자처하려는 것입니다. 셋째는 고을 사람들과 종족의 환심을 사서 훗날 그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선산은 바로 한림이 때때로 왕래하는 곳이랍니다. 한림이 만일 저 사람이 깊은 산중에서 외롭게 지내는 모습을 보기라도 해 보십시오. 옛날을 생각하여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근래 밖의 여론을 살펴보니 사람들의 말이 흉흉하여 사씨가 원통하다고 일컫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사씨가 선영 아래 머문다면 결국은 후일 근심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교씨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남모르게 자객을 보내 찔러 죽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안 될 일입니다. 사씨가 남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한림이 의심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나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 또한 우연한 일은 아니지요. 냉진은 본래 아내가 없는 데다가 사씨를 몹시 사모하고 있답니다. 지금 냉진으로 하여금 속임수를 써서 사씨를 취해 아내로 삼게 하겠습니다. 일단 사씨의 절행만 훼손하게 만든다면 밖의 사람들 가운데에는 더 이상 사씨가 원통하다고 일컫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한림은 더구나 사씨에 대해 마음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계책이 아닙니까?”

묘하구나! 묘해! 다만 무슨 수를 써서 사씨를 속인다는 말입니까?”

저 사람이 신성에는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른 일로 움직이게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사람을 보내 두추관의 하인이라 속이고 저 사람에게 고하기를 두추관이 경관이 되어 두부인을 모시고 상경하셨다고 하게 하겠습니다. 또한 두부인의 편지를 위조하여 함께 만나게 되기 바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저 사람은 필시 의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기꺼이 두부인에게 가려 할 것입니다. 아울러 냉진에게 일러 도중에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미리 화촉을 준비한 후 기다리고 있게 하겠습니다. 사씨가 지나갈 때 그녀를 겁박하게 하여 혼인을 맺게 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면 저 사람은 비록 날개가 있다 하더라도 냉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이다.”

교씨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계책이 묘하기는 묘합니다. 단지 사씨에게는 너무 과분한 것이지만...”

그리고 두부인의 필적을 찾아 동청에게 건네주었다. 동청은 즉시 편지 한 통을 모작하였다. 인하여 냉진을 만나 그 계책에 대해 설명하였다.

유한림의 두 부인은 모두가 절색미인이시지. 내가 이미 그 가운데 하나를 얻었다네. 이제 형이 다시 남은 하나를 차지하시게. 우리 두 사람의 풍류는 손책과 주유라 하더라도 따라올 수 없을 것이야.”

그때 사씨는 마침 정문 아래 앉아서 길쌈을 하고 있었다. 문득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여기가 유한림 부인께서 머무시는 곳이지요?”

사씨의 창두가 대답했다.

어디서 오셨소?”

성중 두홍로 댁에서 왔소.”

두노야께서는 노부인을 모시고 장사 고을로 가셨지요. 지금 그 댁에 계신 분이 누구란 말이요?”

그대는 아직도 모르고 계셨소? 우리 젊은 노야께서 처음에는 본래 장사 추관을 제수 받은 바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부에서 그 분을 외직으로 내보낼 수 없다 하여 마침내 특별히 한원직에 다시 제수하였소. 그리고 천자께서 역마로 급히 부르셨소. 노야께서는 장사로 가던 도중에 천자의 명을 받으셨던 것이지요. 어제는 대부인을 모시고 이미 성중의 댁에 도착하셨다오. 그런데 대부인께서 이 댁의 부인이 환난을 만나 여기 머물고 계신다는 말씀을 들으셨소. 크게 놀라 나를 보내 문후를 여쭙게 하셨지요. 여기 편지도 가지고 왔소.”

창두는 그 편지를 받아 사씨에게 올렸다. 아울러 그 사람이 한 이야기도 그대로 전했다.

사씨는 그 편지를 읽어보았다.

그 글에는 이별한 후의 그리움과 아들 억이 관직이 바뀌어 상경한 정황에 대해 대략 언급하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글귀도 들어 있었다.

노신이 떠난 후로 부인이 문득 그 지경에 이르렀다니...통탄할 일이야. 하지만 무슨 수가 있겠는가? 머무는 곳은 아마 불편할 듯하네. 하물며 인적이 드문 산중에 있으니 강포가 나타날까 두렵기도 하네. 내일 아침 교자를 보내 부인을 부르도록 하겠네.” 사씨는 두부인이 다시 서울로 돌아왓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쁜 나머지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물며 그 글씨가 두부인의 필체와 서로 방불하였다. 편지의 내용도 또한 전에 마주앉아 상의하던 바와 다른 것이 없었다. 사씨는 마침내 답장을 써서 찾아가 의지하겠다고 승낙하였다.

 

그날 밤 사씨는 등불 아래 홀로 앉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땅으로 온 이래 모든 일이 매우 어려웠어. 날마다 산소의 소나무를 바라보며 위안을 삼았었지. 지금 막상 떠나려 하니 더욱 가슴이 아프구나!” 사씨는 베개에 기댔다가 선잠이 들었다. 그때 문득 어떤 사람이 밖에서 들어왔다. “노야와 노부인께서 부인을 부르십니다.”

사씨가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바로 지난 날 소사가 부리던 계집종이었다. 사씨는 즉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 한 곳에 이르니 집이 있었다. 그 집의 안팎은 그윽하고 심원하였다. 시비 수십 명이 나와 사씨를 맞이하였다.

노야와 노부인께서 방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씨는 시비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소사가 앉아 있었다. 용모와 거동은 완연히 생시와 다름이 없었다. 부인도 명부의 관복을 갖추어 입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역시 용모가 매우 단정하였다. 사씨는 그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소사가 말했다.

울지 말아라. 우리 아이가 참소를 믿어 신부로 하여금 고생이 그 지경에 이르게 하였구나. 내 마음인들 어찌 하루라도 편안한 날이 있었겠느냐? 그렇지만 이승과 저승은 길이 달라 내가 신부를 도울 수 없었단다. 한편으로 천명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 또한 어찌 운명을 피할 방도가 있었겠느냐? 나는 간혹 바람과 구름을 타고 옛집에 들른 적이 있었지. 그때마다 슬픔 때문에 눈물이 솟으면 빗물에 섞여 뿌릴 따름이었단다. 지금 신부를 불러 보고자 한 것은 다른 일 때문이 아니야. 전번 편지는 위작이지 진품이 아니란다. 그 안에 위작이라는 단서가 들어있지.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니라.”

최부인이 사씨를 불러 가까이 앉게 하였다.

내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신부와는 서로 만나볼 수가 없었지. 어서 고개를 들고 나의 모습을 자세하게 바라보거라. 내가 비록 구천 아래의 사람이 되었으나 매번 신부가 내 아이와 함께 사당으로 오를 때면 마음이 참으로 기뻤단다. 술은 본래 잘 마시지 못하지만 신부가 올리는 술이라면 일찍이 취하게 마시지 않은 적이 없었느니라. 그런데 지금은 교가의 음부로 하여금 나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지. 재가 차마 그것을 흠향할 수 있겠느냐? 신부가 집을 떠난 후로는 한번도 사당을 찾지 않았단다. 오직 이곳에 머물며 신부의 몸에 의지하고 있었지. 이제 신부는 또다시 멀리 떠나야 할 것이야. 그것이 천명이라고는 하나 내 마음이 어찌 슬프지 않을 리가 있겠느냐?”

사씨는 최부인의 발을 붙잡고 오열하였다.

두부인의 부름을 받았던 때문이기는 하지만 저는 성중으로 가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존구께서 그 편지가 진품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다른 곳으로는 가지 않겠습니다. 이곳에 그대로 있다가 죽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다시 멀리 떠나야 한다고 하교하신 것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사가 다시 사씨에게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란다. 그 편지는 본디 진품이 아니었지. 그러나 신부가 여전히 이곳에서 머문다면 실로 강포의 화를 만나게 될 것이야. 하물며 신부에게는 칠 년 동안의 액운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단다. 그러니 남쪽으로 오천리 밖으로 나가 화를 피하도록 하거라. 염려하지 말고 힘써 멀리 떠나가거라.”

이곳에 머물러도 환난을 면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더구나 장차 남쪽으로 간다면 어떻게 의탁할 곳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천기는 미리 누설할 수가 없는 것이야. 그렇지만 단지 한 가지만은 부탁해 놓아야 하겠구나. 지금부터 육 년이 지난 후 사월 보름날 저녁에는 반드시 백빈주 하류에 배를 대고 있다가 고초 겪는 사람을 구하도록 하거라. 이곳은 구천 아래니 신부가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란다. 빨리 돌아가거라.”

사씨는 하직을 고하고 목놓아 슬피 울었다. 그러자 유모는 부인이 꿈에 가위에 눌렸는가 보다생각하며 부인을 불러 잠을 깨웠다. 그것은 곧 하나의 꿈이었다.

사씨는 일어나 앉았다. 이내 유모를 바라보며 꿈속에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시 두부인의 편지를 들고 재삼 반복하여 읽어보았다. 하지만 이른바 위작의 단서라는 것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사씨는 마침내 그것을 깨달았다.

두홍로는 명자가 강이셨지. 두부인께서는 평소 말씀하실 때 강자를 입에 올리는 법이 없으셨어. 그런데 지금 이 편지에서는 강자를 쓰고 있구나. 이 편지는 반드시 위작일 것이야. 다만 모르겠거니와 어떤 자가 남의 필적을 이처럼 똑같이 모방할 수 있었던 것일까?”

 

잠시 후 날이 말했다. 사씨가 다시 유모에게 말했다.

소사께서는 분명히 남쪽으로 오천 리 밖으로 가라고 가르치셨다네. 꿈속에서 비록 자세하게 묻지는 못했으나 또한 백빈주에 배를 대라는 말씀도 계셨지. 이는 장사를 가리키는 것이야. 구고님의 뜻은 아마도 나로 하여금 두부인을 찾아가 의지하게 하려는 것일 듯하네. 다만 두부인께서는 지금 나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을 것이야. 또 그것으로 가는 배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장차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때 문득 창두가 와서 아뢰었다.

두홍로 댁 하인이 교자를 가지고 왔습니다.”

유모가 그 사람을 힐책하려 하였다. 그러자 사씨가 말렸다.

저 자들은 필시 강포한 무리일 것이네. 변고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야. 단지 내가 밤에 감기가 들어 일어나 움직일 수 없다고만 이르게.”

유모가 그 말을 전했다.

이른바 두홍로 댁 하인이라는 자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이윽고 억지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돌아가 동청에게 고했다. 그러자 동청이 말했다.

내 들으니 사씨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더군. 필시 답장을 보낸 후 그 진위를 의심하였을 것이야. 성중으로 사람을 보내 사실을 탐지하려고 마침내 병을 핑계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나 보구나. 저 사람이 우리들이 꾸민 일을 알게 되었다면 그 해가 또한 적지 않을 것이야.”

냉진은 사씨의 편지를 본 후로 미칠 듯이 기뻐하였다. 그러다가 이제는 다시 흥이 몹시 깨져 동청에게 말했다.

이미 일을 시작했으니 어떻게 여기서 물러날 수 있겠는가? 문장으로 공을 이룰 수 없다면 도리 없이 무력을 써야 하겠지. 나에게 의형제를 맺은 사람이 너댓 명 정도가 있는데 모두 호걸들이라네. 밤에 저 벗들과 함께 가서 사씨를 겁박하려 하네. 저 사람이 만일 순순히 따라 준다면 그것은 나의 복일 것이야. 행여 따르지 않는다면 단 칼에 찔러 죽여 형의 화근을 없애버리겠네. 그것 또한 좋지 않겠나?”

동청이 대답했다.

형의 말씀이 내 마음에 쏙 드는구려.”

사씨는 꿈속에서 구고의 말씀을 비록 분명하게 듣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어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이에 산소를 바라보며 향을 피우고 신령에게 빌어보았다.

신부가 꿈속에서 가르침을 받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선영을 떠나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자가 멀리 간다는 것도 또한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이제 점을 쳐서 의혹을 풀고자 합니다. 바라건대 구고님 신령께서는 박명한 신부를 가련하게 여기소서. 부디 효사를 보여주시어 신부로 하여금 액을 피하고 길운으로 나가게 하소서.”

사씨는 빌고 나서 돈을 던졌다. 그러자 곤괘가 변하여 귀매괘가 되었다.

그 효사는 이러하였다.

서남은 이롭고 동북은 불리하리라. 서남으로 가면 사람을 만날 것이니라.”

또 이러하였다.

훨훨 떠나가는 여인이여! 놀라지 말고 서두르지 말지어다. 항아가 월궁에 의탁하였으니 유유하여 끝내 창성할 것이로다.”

사씨는 탄식하였다.

신령의 명이로구나!”

사씨는 즉시 창두를 통주나루로 보내 남쪽으로 가는 배를 찾게 하였다. 창두가 돌아와 고했다.

통주 사람 장삼이라는 자는 본래 두홍로 댁의 종입니다. 근년에는 남방으로 왕래하면서 생강을 팔아 생업으로 삼고 있답니다. 지금 곧 배를 타고 광서지방으로 가려 하는데 길이 장사를 경유한다고 합니다.”

사씨는 크게 기뻐하였다.

두홍로 댁의 종은 우리 종과 다를 바가 없지. 이 또한 신령께서 도우신 일일 것이야.”

사씨는 즉시 노자를 장만하여 통주로 향하였다. 그리고 이웃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신성으로 간다고 하였다. 사씨는 구고의 산소 앞에 나아가 통곡하며 절을 하고 길을 떠났다.

그날 밤 냉진은 자신의 무리와 함께 사씨를 겁박하려고 찾아갔다. 그러나 초가집이 비어 있어 아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몹시 화를 내며 돌아갔다.

 

7: 회사정(懷沙亭)에서 하늘에 호소하고 황릉묘(皇陵廟)에서 옷깃을 여미다

사씨는 通州로 가서 張三의 배를 탔다. 장삼은 그 사람이 사부인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또한 장사(長沙)로 가는 길이었다. 그 때문에 도중 내내 정성을 다하여 감히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다.

사씨는 배를 타고 여러달을 여행하였다. 아침에는 바람이 불고 저녁에는 모래가 날렸다. 오나라 산은 천 겹이요 초나라 물은 만 구비 였다. 三江에 봄 기러기 지나가고 한수(漢水)에 가을 바람이 일어났다. 그 사이에 배는 벌써 호광(湖廣) 지방에 도착하였다.

사씨는 배가 장사로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조금 놓았다. 그런데 화용현에 이르자 사나운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왔다. 배는 항해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배 안의 사람들도 대부분 병이 났다. 사씨는 마침내 강 언덕 나무에 배를 매어 놓고 잠시 강 마을에 투숙하려 하였다. 초가는 산을 의지하고 사립문은 물을 향한 집이 있었다.

사씨는 아환을 보내 사립문을 두드리게 하였다.

한 소녀가 나왔다. 나이는 열너댓 살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 마치 복사꽃 한 가지가 강물에 비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부인을 맞아 마루에 앉게 하였다. 날은 이미 저문 때였다.

사씨가 그 소녀에게 물었다.

고낭(高娘)은 누구시기에 홀로 빈집을 지키고 계시는가?”

첩의 성은 임()가입니다. 아비는 일찍 죽었고 어미 변()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미는 어제 일을 보러 강을 건너갔다가 역풍을 만나 아직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소녀는 물러나 아환에게 부인의 행적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음식을 장만한 후 촛불을 켜고 저녁 밥상을 올렸다. 강촌의 좋은 술을 받고, 무창(武昌)의 살찐 물고기로 회를 쳐 놓았다. 들에서 자란 채소와 산에서 따온 과일도 모두 정결하여 먹을 만하였다.

사씨는 술과 고기는 먹지 않았다. 단지 과일과 채소만을 들며 주인에게 사례하였다.

먼 지방에서 온 길손이 폐를 끼쳐 진실로 부끄럽소.”

소녀가 대답했다. “부인은 천인이십니다. 우연히 강림하였으나 시골 마을이라 정성을 다할 수 없었습니다. 대접이 너무 설만(褻慢)하였습니다.”

사씨는 그날 밤 임씨 소녀 집에서 잤다. 이튿날도 역시 바람이 불어 마침내 사흘 동안을 그곳에서 유숙하였다. 소녀는 더욱 곡진하게 정성을 다하였다.

사씨는 출발을 앞두고 행낭에 남아 있던 가락지를 꺼냈다. 그것을 소녀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 물건은 하찮은 것이요. 원컨대 옥수에 끼기 바라오. 서로 잊지나 않게 되기를 바라겠소.”

부인은 노자가 부족하실 것입니다. 감히 사양하겠습니다.”

장사가 멀리 남지 않았소. 그것을 남겨둔들 쓸 데가 어디 있겠소?”

소녀는 비로소 가락지를 조심스럽게 받아 손가락에 끼었다. 그리고 서로 눈물을 뿌리며 작별하였다.

 

사씨가 다시 길을 떠난후 며칠 만에 늙은 창두가 병으로 죽었다. 사씨는 몹시 슬퍼하면서 장삼하게 명하여 강가 언덕에 시신을 묻게 하였다.

사씨는 일행 가운데 사내종이 없어 매우 난처하였다. 이에 시험삼아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남았는가 물어보았다. 장삼이 대답했다.

모레쯤에는 장사에 닿을 것입니다.”

사씨는 매우 기뻤다. 바람은 순하고 배는 빨라 동정호 어귀를 지나 악양루 아래로 나아갔다. 그곳은 바로 옛날 전국시대의 초나라 땅이었다.

()임금이 남방으로 순수(巡狩)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하셨다. 두 왕비 아황과 여영은 따라갈수가 없었으므로 상강(湘江) 물가에서 눈물을 뿌렸다. 그 눈물이 피로 변하여 대나무 숲을 덮었다. 이른바 소상 반죽이 그것이다.

그 후 초나라의 어진 신하 굴원은 회왕을 섬기며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 그러나 소인의 참소를 받자 이소경을 짓고 물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나라 가의는 낙양의 재자(才子)였다. 그런데 당시 대신에게 미움을 사서 장사로 추방을 당하였다. 그도 이곳에 이르러 글을 지어 물에 던져 굴원을 조상하였다.

저들 네 사람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매양 구의산 기슭에 구름이 일거나 소상강에 밤비가 내리거나 동정호에 달이 밝거나 황릉묘에서 두견이 슬피 울거나 하면 , 비록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처연하게 눈물을 흘리며 크게 탄식을 발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참으로 이른바 천고 단장의 땅이었던 것이다.

사씨는 몸을 바르게 닦고 행실을 깨끗하게 하여 군자를 섬겼다. 그러나 참소으 고통을 겪으며 일신이 떠돌다가 그곳에 이르렀다. 우리의 고인을 조상하고 구부려 신세를 생각하였다. 어찌 슬프지 않았겠는가? 사씨는 밤이 다하도록 근심에 싸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때 남북을 왕래하는 상인들의 배가 좌우에 매여 있었다. 밤이 고요하여 사씨는 사람들이 주고 받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 장사 사람들은 운수가 사나왔어. 교역을 잘 못하였단 말이야.”

곁에 있던 뱃사람이 물었다. “무슨 말씀인가?”

지난해의 두추관은 청렴하여 옥사를 잘 다스렸지. 백성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네. 이제 불행하게도 그를 잃고 말았어. 신임 추관은 단지 금은만을 사랑한다네. 옥사의 시비곡직은 가리려 하지 않고……. 그러니 교역을 잘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날로 보건댜 두추관은 이미 장사를 떠난 것이로군. 그가 경관이 되었다는 소리는 거의 믿을 만한 것이었구나.!”

날이 밝자 사씨는 장삼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게 하였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 두노야께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순안어사(巡按御使)가 조정에 아뢰어 성도(成都) 지부(知府)로 발탁하셨습니다. 지난달에 이미 임지로 부임하셨다고 합니다. 신임 추관은 절강 사람으로 성이 유씨라고 합니다.

사씨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나의 궁박한 처지가 결국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니……. 하늘이 필시 나를 죽이러 하는 것이로구나!”

사씨가 장삼에게 말했다. “내가 장사로 간다 하더라도 누구를 만날 수가 있겠느냐? 자네는 지금 우리 세 사람을 이곳에 그대로 내려놓고 길을 떠나게.”

장사로 가겠다는 말씀은 실로 다시 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소인도 또한 갈 길이 급합니다. 다만 부인께서는 이제부터 어디로 가시겠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묻지 말게나.”

마침내 장삼은 물가의 촌가를 하나 구하고 세 사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사씨에게 하직을 고한 후 배를 저어 길을 떠났다.

유모와 아환이 울면서 말했다.

노자는 이미 바닥이 났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의탁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부인! 장차 어쩌면 좋겠습니까?”

사씨가 말했다.

내가 눈은 있으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지. 행실은 남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였네. 스스로 곤욕을 불러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것이야. 어찌 죽음인들 두려워하겠느냐?”

그리고 다시 말했다.

내 마음이 답답하니 고향 땅이라도 한번 바라보고 싶구나. 나를 부축하여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사씨는 마침내 뒷산으로 올라갔다. 깎아지른 듯한 언덕이 강을 굽어보는 곳이었다. 거친 띠와 어지러운 대나무 숲 사이로 옛날 정자가 하나 나타났다. 사씨는 가까이 다가가서 정자를 바라보았다. 회사정(懷沙亭)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었다. 곧 후대 사람들이

'한국어 > 한국어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한림전> 작자 및 연대 미상  (0) 2013.10.24
<정수경전> 작자미상  (1) 2013.10.24
홍세태 <김영철전>  (1) 2013.10.24
조위한 <최척전>  (0) 2013.10.24
조성기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  (0) 2013.10.24
권필 <위경천전>  (0) 2013.10.24
김시습 <이생규장전>  (0) 2013.10.24
임제 <원생몽유록>  (0) 2013.10.24
신광한 <하생기우전>  (0) 2013.10.24
김시습 <용궁부연록>  (0) 2013.10.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