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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부연록>

 



개성에 천마산이 있는데, 그 산이 공중에 높이 솟아 가파르므로 '천마산(天磨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산 가운데 용추(龍湫)가 있으니 그 이름을 박연(朴淵)이라 하였다. 그 못은 좁으면서도 깊어서 몇 길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이 넘쳐서 폭포가 되었는데, 그 높이가 백여 길은 되어 보였다. 경치가 맑고도 아름다워서 놀러 다니는 스님이나 나그네들이 반드시 이곳을 구경하였다.

옛날부터 이곳에 용신이 살고있다는 전설이 전기에 실려 있어서, 나라에서 세시(歲時)가 되면 커다란 소를 잡아 (용신에게) 제사지내게 하였다.

고려 때에 한생(韓生)이 살고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지어 조정에까지 알려지고 문사(文士)로 평판이 있었다. 하루는 한생이 거실에서 해가 저물 무렵에 편안히 앉아 있었는데, 홀연히 푸른 저고리를 입고 복두( )를 쓴 낭관(郎官) 두 사람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왔다. 그들이 뜨락에 엎드려 말하였다.

"박연에 계신 용왕님께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한생이 깜짝 놀라 얼굴빛이 변해지면서 말하였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길이 막혀 있는데, 어찌 서로 통할 수 있겠소? 더군다나 수부(水府)는 길이 아득하고 물결이 사나우니, 어찌 갈 수가 있겠소?"

두 사람이 말하였다.

"준마를 문 앞에다 대기시켰으니, 사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몸을 굽혀 한생의 소매를 잡고 문 밖으로 나서자, 말 한 마리가 있었다. 금안장 옥굴레에 누런 비단으로 배 띠를 둘렀으며, 날개가 돋쳐 있었다. 종자들은 모두 붉은 수건으로 이마를 싸매고 비단 바지를 입었는데, 열댓 명이나 되었다.

종자들이 한생을 부축하여 말 위에 태우자, 일산을 든 사람이 앞에서 인도하고 기생과 악공들이 뒤를 따랐다. 그 두 사람도 홀()을잡고 따라왔다. 그 말이 공중으로 올라가 날아가자, 발 아래에는 구름이 뭉게뭉게 이는 것만 보였다. 땅 아래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용궁 문 앞에 이르렀다. 말에서 내려서자 문지기들이 모두 방게 . 새우 . 자라의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늘어섰는데, 그들의 눈자위가 한 치나 되었다. 한생을 보고 모두 머리를 숙여 절하고는 의자를 내어주며 쉬라고 하였는데,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가서 아뢰자, 곧바로 푸른 옷을 입은 동자 둘이 나와서 손을 마주잡고 한생을 인도하여 안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한생이 천천히 걸어가다가 궁문을 쳐다보았더니, 현판에 '함인지문(咸仁之門)'이라 씌어 있었다.

한생이 그 문에 들어서자 용왕이 절운관(切雲冠)을 쓰고 칼을 차고 홀을 쥐고서 뜰 아래로 내려왔다. 한생을 맞이하여 섬돌을 거쳐 궁전에 올라앉기를 청하니, 수정궁 안에 있는 백옥상(白玉牀)이었다. 한생이 엎드려 굳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하토(下土)의 어리석은 백성은 초목과 한가지로 썩을 몸인데, 어찌 위엄을 헤아리지 않고 외람되게 융숭한 대접을 받겠습니까?"

용왕이 말하였다.

"오랫동안 선생의 명성을 듣다가 이제야 높으신 얼굴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용왕이 손을 내밀어 앉기를 청하였다. 한생은 서너 번 사양한 뒤에 자리로 올라갔다. 용왕은 남쪽을 향하여 칠보화상(七寶華牀)에 앉고, 한생은 서쪽을 향하여 앉으려고 하였다. 한생이 채 앉기도 전에 문지기가 아뢰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용왕이 또 문 밖으로 나가서 맞이하였다. 세 사람이 보였는데, 붉은 도포를 입고 채색 수레를 탄 그의 위의(威儀)와 시종들을 보아서 임금의 행차 같았다

 

. 용왕이 또 그들도 궁전 위로 안내하였다. 한생은 들창 아래 숨었다가 그들이 자리를 정한 뒤에 인사를 청하려 하였다. 그런데 용왕이 그들 세 사람에게 권하여 동쪽을 향하여 앉힌 뒤에 말하였다.

"마침 양계(兩界)에 계신 문사 한 분을 모셨으니, 여러분들은 서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용왕이 좌우의 사람들을 시켜 한생을 모셔오게 하였다. 한생이 빨리 나아가 절하자, 그들도 모두 머리를 숙이고 답례하였다. 한생이 윗자리에 앉기를 사양하면서 말하였다.

"존귀하신 신들께서는 귀중한 몸이지만, 저는 한갓 빈한한 선비일 뿐입니다. 그러니 어찌 높은 자리를 감당하겠습니까?"

한생이 굳이 사양하자 그들이 말하였다.

"(우리와 선생은) 음양(陰陽)의 길이 달라서 서로 통제할 권리가 없습니다. 용왕께서 위엄이 있으신 데다 사람을 보는 눈도 밝으시니, 그대는 반드시 인간세상에서 문장의 대가일 것입니다. 용왕의 명이니 거절하지 마십시오."

용왕도 말하였다.

"앉으시지요."

세 사람이 한꺼번에 자리에 앉자, 한생도 몸을 굽히며 올라가서 자리 끝에 꿇어앉았다. 용왕이 말하였다.

"편히 앉으시지요."

다들 자리에 앉아 찻잔을 한차례 돌린 뒤에 용왕이 한생에게 말하였다.

"과인은 오직 딸 하나를 두었을 뿐인데, 이미 시집 보낼 나이가 되었습니다. 장차 알맞은 사람과 혼례를 치르려고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집이 누추하여 사위를 맞이할 집도 없고, 화촉을 밝힐 만한 방도 없습니다. 그래서 따로 별당 한 채를 지어 가회각(佳會閣)이라 이름 붙일까 합니다.

공장도 이미 모았고, 목재와 석재도 다 갖추었습니다. 아직 없는 것이라고는 상량문(上樑文) 뿐입니다. 소문에 들으니 선생의 이름이 삼한(三韓)에 널리 알려졌으며 글솜씨가 백가에 으뜸이라고 하므로, 특별히 멀리서 모셔온 것입니다. 과인을 위하여 상량문을 지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두 아이가 들어왔다. 한 아이는 푸른 옥돌벼루와 상강(湘江)의 반죽(斑竹)으로 만든 붓을 받들었으며, 한 아이는 흰 명주 한 폭을 받들었다. 그들이 한생 앞에 꿇어앉아 바쳤다.

한생이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붓에 먹물을 찍어서 곧바로 상량문을 지어내었다. 그 글씨는 구름과 연기가 서로 얽힌 듯하였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삼가 생각하건대 천지 안에서는 용신이 가장 신령스럽고, 인물 사이에는 배필이 가장 중하다. 용왕께서 이미 만물을 윤택하게 하신 공로가 있으니, 어찌 복 받을 터전이 없으랴? 그러므로 '관저호구(關雎好逑)'는 만물이 조화되는 시초를 나타낸 것이며, '비룡이견(飛龍利見)'은 신령스런 변화의 자취를 나타낸 것이다.

이에 새로 아방궁(阿房宮)을 지어 아름다운 이름을 높이 붙였다. 자라를 불러 힘을 내게 하고, 조개를 모아 재목을 삼았으며, 수정과 산호로 기둥을 세웠다. 용골(龍骨)과 낭간( )으로 들보를 걸었으니, 주렴을 걷으면 산이 높이 푸르렀고, 백옥 들창을 열면 골짜기에 구름이 둘려 있다. 이곳에서 가족이 화합하여 만년토록 복을 누릴 것이며, 부부가 화락하여 금지(金枝)가 억대에 뻗치리라. (용왕께서는) 풍운(風雲)의 변화를 돕고 조화의 공덕을 나타내어, 높은 하늘에 오를 때에나 깊은 못에 있을 때에나 백성들의 목마름을 씻어주고 상제의 어진 마음을 도와주었다. 그 기세가 천지에 떨치고 위덕이 원근에 흡족하여, 검은 거북과 붉은 잉어는 뛰놀며 소리치고, 나무 귀신과 산도깨비도 차례로 와서 축하한다. 마땅히 짧은 노래를 지어 대들보에 걸어 두리라.

 

들보 동쪽으로 떡을 던지네.

울긋불긋 높은 산이 저 푸른 하늘을 버티었네.

하룻밤 우뢰소리가 시냇가를 뒤흔들어도

만 길 푸른 벼랑에는 구슬빛이 영롱해라.

들보 서쪽으로 떡을 던지네.

바위 안고 도는 길에서 멧새들이 우짖네.

맑고 깊은 저 용추는 몇 길이나 되려나.

한 이랑 봄물결이 유리처럼 맑아라.

 

들보 남쪽으로 떡을 던지네.

십 라 솔숲에 푸른 노을이 비꼈구나.

굉장한 저 신궁을 그 누가 알려나.

푸른 유리 밑바닥에 그림자만 잠겼구나.

들보 북쪽으로 떡을 던지네.

아침 햇살 처음 오르니 못물이 거울 같아라.

흰 비단 삼백 길이 공중에 가로 걸려

하늘 위 은하수가 이곳에 떨어졌나.

 

들보 위로 떡을 던지네.

흰 무지개 어루만지며 창공에서 노니누나.

발해와 부상(扶桑)이 천만 리나 되지만

인간 세상 돌아보니 손바닥과 한가지일세.

 

들보 아래도 떡을 던지네.

가련해라. 봄밭에 아지랑이가 오르는구나.

신령스런 물 한 방울 이곳에서 가져다가

온 누리에 단비 삼아 뿌려들 보소.

 

바라건대 이 집을 이룩한 뒤에 화촉의 밤을 맞이하여 만복이 함께 이르고, 온갖 상서가 모여들진저. 요궁(瑤宮)과 옥전(玉殿)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찬란하고, 봉황 베개와 원앙 이불에는 즐거운 소리가 들끓게 되어, 그 덕이 나타나고 그 신령이 빛나게 될진저.

 

한생이 글을 다 써서 용왕에게 바치자, 용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이내 세 신에게 돌려 보이자, 세 신도 모두 떠들썩하게 탄복하며 칭찬하였다. 이에 용왕이 윤필연(潤筆宴)을 열자, 한생이 꿇어앉아서 말하였다.

"존귀한 신들께서 모두 모이셨는데, 아직 높으신 이름을 묻지 못하였습니다."

용왕이 말하였다.

"선생은 양계의 사람이라 응당 모를 것입니다. 첫째 분은 조강신(祖江神)이고 둘째 분은 낙하신(洛河神)이며 셋째 분은 벽란신(璧瀾神)입니다. 우리가 선생과 함께 놀아 볼까 하여 초대한 것이지요."

곧 술을 권하고 풍류를 시작하자, 미인 열댓 명이 푸른 소매를 흔들며 머리 위에 구술꽃을 꽂고 나왔다.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춤을 추면서벽담곡(碧潭曲)한 가락을 불렀는데, 그 가사는 이러하였다.

 

푸른 뫼는 창창하고

푸른 못은 출렁거리네.

흩날리는 폭포수는 우렁차게

하늘 위 은하수까지 닿았구나.

저 가운데 계신 님이여

환패(環佩) 소리 쟁쟁하여라.

그 위풍 빛나는 데다

그 모습까지 뛰어나셔라.

좋은 시절 길한 날에

봉황새까지 울음 우는데,

날아가는 듯이 좋은 집 지었으니

상서롭고도 신령스러워라.

문사를 모셔다가 상량문을 지어서

높은 덕을 노래하며 대들보를 올리네.

향내나는 술을 부어 술잔을돌리고

제비처럼 가볍게 봄볕을 밟으며 노니네.

짐승 모양 향로에선 상서로운 향내를 뿜어내고

돌 솥에선 옥 미음이 끓고 있는데,

목어(木魚)를 둥둥 치고

용적(龍笛) 불며 행진하네.

높이 앉으신 신이여

지극한 덕을 잊지 못하리라.

 

춤이 끝나자 다시 총각 열댓 명이 왼손에는 피리를 잡고 오른손에는 도( )를 들고 서로 돌아보면서 회풍곡(回風曲)한 가락을 불렀다. 그 가사는 이렇다.

 

높은 언덕에 계신 님은

향초 덩굴로 옷 입으셨네.

날 저물어 물결 일렁이니

가는 무늬 비단 같아라.

바람에 나부껴 귀밑 털이 헝클어지고

구름이 피어올라 옷자락 너울거리네.

느긋하게 빙빙 돌다가

예쁘게 웃으며 마주치네.

내 입던 홑옷은 여울 위에 던져두고

내 찼던 가락지도 모래밭에 빼어 놓았네.

금잔디에 이슬 젖고

높은 산에 내가 아득한데,

높고 낮은 자 봉우리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강물 위에 푸른 소라와 비슷해라.

이따금 치는 징 소리에

나풀거리며 취해 춤추네.

강물처럼 술이 많고

언덕처럼 고기도 쌓였어라.

손님이 이미 취하셨으니

새 노래를 불러 보세나.

서로 잡고 서로 끌다가

서로 치며 껄껄 웃네.

옥술병을 두드리며 마음껏 마셨더니

맑은 흥취 다하면서 슬픈 마음이 절로 나네.

 

춤이 끝나자 용왕이 기뻐하였다. 술잔을 씻어 다시금 술을 붓고 한생에게 권하였다. 스스로 옥으로 만든 용적을 불면서수룡음(水龍吟)한 가락을 노래하여 즐거운 흥취를 도왔다. 그 가사는 이러하였다.

 

풍류소리 가운데 술잔을 돌리니

기린 모양의 향로에선 용뇌 향기를 뿜어내네.

옥피리를 비껴 쥐고 한 소리 불자

하늘 위의 푸른 구름은 씻은 듯 사라졌네.

소리가 물결치더니

가락은 풍월로 바뀌었네.

경치는 한가한 인생은 늙어 가니

살같이 빠른 광음이 애달프기만 하여라.

풍류도 꿈이려니

기쁨이 다하면 시름만 생기네.

서산이 끼인 내가 이제 막 흩어지자

동산에 둥근 달이 기쁘게도 찾아오네.

술잔을 높이 들어

푸른 하늘의 달에게 물어 보세

추한 모습 고운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아 왔던가.

술잔에 술 가득한데

옥산이 무너졌으니

그 누가 넘어뜨렸나

아름다운 우리 님을,

십 년이 다하도록 근심 걱정일랑 잊어버리고

푸른 하늘 높은 곳에 유쾌히 오르세나.

 

용왕이 노래를 마치고는 좌우를 둘러보면서 말하였다.

"우리나라의 놀음은 인간세상의 것과 같지 않으니, 그대들은 귀한 손님을 위하여 솜씨를 보이라."

그러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자칭 곽개사(郭介士)라고 하였다. 발을 들어 옆으로 걸으면서 나와 말하였다.

"저는 바위 틈에 숨어사는 선비요. 모래 구멍에 사는 한가한 사람입니다. 팔월에 바람이 맑으면 동해 바닷가에 가서 벼 까끄라기를 실어 나르고, 구월 하늘에 구름이 흩어지면 남정성(南井星)의 곁에서 빛을 머금기도 하였지요. 속은 누렇고 겉은 둥글며, 단단한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창을 가졌지요.

늘 손발을 잘려서 솥에 들어갔으며, 비록 정수리를 갈리면서도 사람을 이롭게 하였습니다. 맛과 풍류도 장사들의 얼굴을 기쁘게 하였으며, 곽삭(郭索)한 꼴로 부인들에게 웃음을 끼치기도 하였지요.

조나라 왕윤은 물속에서 (만나도) 저를 미워하였지만, 전곤은 지방에 나가 있으면서도 저를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죽어서는 필이부의 손에 들어갔지만, 한진공의 붓에 의해서 초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이러한 마당을 만나 놀게 되었으니, 마땅히 다리를 틀어 춤을 추어 보겠습니다."

곽개사는 곧 그 앞에서 갑옷을 입고 창을 잡아 쥐었으며, 침을 흘리고 눈을 부릅떴다. 눈동자를 돌리며 팔다리를 흔들더니, 재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물러서며 팔풍무(八風舞)를 추었다. 그와 같은 무리 몇십 명도 땅에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돌면서 절도 있게 춤을 추었다. 곽개사가 이내 노래를 지어 불렀다.

 

강과 바다에 몸을 붙여 구멍 속에 살지언정

기운을 토하면 범과도 다툰다네.

이 몸이 구척이니 나라님께도 진상하고

겨레가 열 갈래니 이름도 많다네.

거룩하신 용왕님의 기쁜 잔치에 참석하여

열 발을 구르면서 옆으로 걸어가네.

못 속에 깊이 잠겨 혼자 있기 좋아하고

강나루 등불에 놀라기도 했었지

은혜를 갚으려고 구슬 눈물을 흘렸던가?

원수를 갚으려고 창을 뽑아 들었던가?

호수 다리에 사는 거족들이야

무장공자(無腸公子)라 나를 비웃지만,

군자에게도 비할 만하니

덕이 뱃속에 차서 내장에 누렇다네.

속이 아름다워 온 사지에 통달하니

엄지발에 향이 맺혀 옥빛으로 통통해라.

오늘 저녁은 어떤 저녁이던가?

요지(瑤池)잔치에 내가 왔네.

용왕께서 노래하시자

손님들 취해 술렁이네.

황금 궁전 백옥상에

술잔을 돌려 풍류 베푸니,

피리 소리는 군산을 울리고

아홉 주발에는 신선의 술이 가득 찼네.

산귀신도 와서 더덩실 춤을 추고

물고기들도 펄떡펄떡 뛰노네.

산에는 개암나무 있고 진펄엔 씀바귀가 있으니

그리운 우리 님을 잊을 수가 없어라.

 

(그가 춤을 추면서) 왼쪽으로 돌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지며 뒤로 물러났다가 앞으로 달려가기도 하니, 자리에 가득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몸을 비틀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그의 춤이 끝나자 또 한 사람이 나섰는데, 자칭 현()선생이라고 하였다. 꼬리를 끌며 목을 빼고 기운을 뽐내다가, 눈을 부릅뜨고 앞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저는 시초(蓍草) 그늘에 숨어 지내는 자요, 연잎에서 놀던 사람입니다. 낙수(洛水)에서 등에다 글을 지고 나와 이미 하나라 우리 임금의 공로를 나타내었으며, 맑은 강물에서 그물에 잡혔지만 일찍이 송나라 원군(元君)의 계책을 이루어 주었습니다.

비록 배를 갈라서 사람을 이롭게 해주기는 하였지만, 껍질 벗기는 것은 견뎌 내기가 어렵습니다. 두공( )에 산을 새기고 동자기둥에 마름을 그렸으니, 껍질은 노나라 장공이 소중히 여겼습니다. 둘 같은 내장에다가 검은 갑옷까지 입었으니, 내 가슴에서는 장사의 기상을 토하였습니다.

노오는 바다 위에서 나를 걸터앉았으며, 모보는 강 가운데서 나를 놓아주었습니다. 살아서는 세상을 기쁘게 하는 보배가 되고, 죽어서는 좋은 길을 예언하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이제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불러 천년 장륙의 회포를 풀어 보렵니다."

현생이 그 앞에서 기운을 토하자 실오리처럼 나부껴 그 길이가 백여 척이나 되더니, 이를 들어 마시자 자취도 없이 되었다. 그리고는 그 목을 움츠려서 사지 속에 감추기도 하고, 혹은 목을 길게 빼어 머리를 흔들기도 하였다. 얼마 뒤에 앞으로 조용히 나아와 구공무(九功舞)를 추면서 혼자 나아갔다 물러났다 하더니, 이내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 가사는 이러하였다.

 

산 속 연못에 의지하여 나 홀로 지내며

호흡만으로 오래도록 살고 있네.

천년을 살면서 오색을 갖추고

열 꼬리를 흔들며 가장 신령하였네.

내 차라리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지언정

묘당(廟堂)에 간직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네.

단약(丹藥)이 아니라도 오래 살 수 있으며

도를 배우지 않아도 영과 통한다네.

천년만에 성스런 님을 만나면

상서로운 징조들이 빛나게 나타나며,

내 수족(水族)의 어른이 된지라

연산(連山) 귀장(歸藏)의 이치를 연구하였네.

문자를 지고 나오니 숫자가 있었으며

길흉을 알려 주어 계책을 이루게 하였네.

지혜가 많다 하여도 곤액은 어쩔 수 없고

능력이 많아도 못 미칠 일이 있었네.

가슴을 쪼개고 등을 지지는 것 면치 못하여

물고기와 벗삼아 자취를 감추고서,

목을 빼고 발을 들어

높은 잔치 자리에 끼여들었네.

용왕님의 조화를 축하하려고

힘차게도 붓을 뽑아 들자,

술 권하고 풍악을 베풀어

즐거움 끝이 없어라.

북을 치고 퉁소를 부니

골짜기에 숨은 규룡이 춤을 추네.

산도깨비들 모여들고

물귀신들도 모여드네.

온교(

 

溫嶠)처럼 무소뿔을 태우고

우임금의 솥으로 부끄럽게 하였네.

앞뜰에서 서로 만나 춤추고 뛰어 놀며

껄껄 웃기도 하고 손뼉도 치네.

해 저물자 바람이 일어

물고기들 뛰놀고 물결 일렁이는데,

좋은 때를 늘 얻을 수 없어

내 마음이 자못 슬퍼라.

 

노래는 끝났지만 그래도 황홀하여 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춤을 추었다. 그 몸짓을 형용할 수가 없어, 자리에 가득하였던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현선생이 놀음이 끝나자 숲속의 도꺠비와 산 속의 괴물들이 일어나서 저마다 장기를 자랑하였다. 누구는 휘파람을 불고 누구는 노래를 불렀으며,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피리를 불었다. 누구는 손뼉을 치고, 누구는 시를 외웠다. 그들이 노는 꼴은 저마다 달랐지만 소리는 같았는데, 그들이 지어 부른 노래는 이러하였다.

 

용신께서 못에 계시며

어쩌다 하늘에도 오르시네.

아아. 천만 년 동안

기나긴 복을 누리소서.

귀하신 손님맞이하니

신선처럼 의젓하여라.

새로 지은 노래를 즐기니

구슬을 꿰맨 듯하여라.

옥돌에다 깊이 새겨

천년 길이 전하리라.

군자께서 돌아가신다 하니

아름다운 이 잔치를 베풀었네.

채련곡(採蓮曲)을 노래하며

나풀나풀 춤을 추고,

두둥둥 쇠북을 두들기며

거문고 뜯어 화답하네.

뱃노래 권주가로

고래처럼 술 마시네.

예절 갖추어 놀면서도

즐거움 끝이 없어라.

 

노래가 끝나자 강하의 군장들이 꿇어앉아 시를 지어 바쳤다. 그 첫째인 조강신의 시는 이러하였다.

 

푸른 바다로 흘러드는 물은 그 형세가 쉼이 없어

힘차게 이는 물결이 가벼운 배를 띄웠어라.

구름이 흩어진 뒤에 밝은 달은 물에 잠기고

밀물이 밀려들자 건들바람 섬에 가득해라.

날이 따뜻해지자 거북과 고기들 한가롭게 나타나고

맑은 물살에 오리떼들은 제멋대로 떠다니네.

해마다 파도 속에 시달리던 이 몸인데

오늘 저녁 즐거움으로 온갖 근심이 다 녹았네.

 

둘째인 낙하신의 시는 이러하였다.

 

오색꽃 그림자가 겹자리를 덮었는데

대그릇과 피리들이 차례로 벌여 있네.

운모(雲母) 휘장 두른 곳에 노랫소리 간드러지고

수정 주렴 드리운 속에선 나풀나풀 춤을 추네.

성스런 용왕님께서 어찌 못 속에만 계시겠나?

문사는 그 전부터 자리 위의 보배로다.

어찌하면 기 끈을 얻어 지는 해를 잡아매고

아름다운 봄 햇살 속에 흠뻑 취해 지내려나.

 

셋째 벽란신의 시는 이러하였다.

 

용왕님께선 술에 취해 금상에 기대셨는데

산 비는 부슬부슬 해는 이미 석양일세.

너울너울 곱게 춤추며 비단 소매 돌아가고

맑은 노래 가느다랗게 대들보를 안고 도네.

몇 년 동안 외로웠던가. 은섬이 번득이는데

오늘에야 기쁘게도 백옥잔을 함께 드네.

흘러가는 이 세월을 아는 사람이 없느니

예나 이제나 세상일은 너무나도 바빠라.

 

짓기를 마치고 용왕에게 바치자, 용왕이 웃으면서 읽어 본 뒤에 사람을 시켜 한생에게 주었다. 한생은 이 시를 받고 꿇어앉아 읽었다. 세 번이나 거듭 읽으며 감상한 뒤에, 그 자리에서 이십 운()의 장편시를 지어 성대한 일을 노래하였다. 그 가사는 이러하였다.

 

천마산이 높이 솟아

폭포가 공중에 날아가네.

곧바로 떨어져 숲을 뚫고

급하게 흘러 큰 시내가 되었네.

물 가운데엔 달이 잠기고

못 밑바닥엔 용궁이 있어,

신기한 변화로 자취를 남기시고

하늘에 올라 공을 세우시니,

가는 안개가 자욱히 끼고

상서로운 바람이 부네.

하늘에서 분부가 중하여

청구(靑丘)에 높은 작위를 받으셨으니,

구름 타고 자신전(紫宸殿)에 조회하시고

청총마를 달리며 비를 내리시네.

황금 대궐에서 잔치를 열고

옥 뜨락에서 풍류를 베푸셨으니,

찻잔에는 노을이 뜨고

연잎에는 붉은 이슬이 젖네.

위의(威儀)도 정중하건만

예법은 더욱 높아,

의관과 문채 찬란하고

환패 소리 쟁쟁하여라.

물고기와 자라들 조회 드리고

물신령들도 모였으니,

조화가 어찌 그리 황홀하던지

숨은 덕이 더욱 깊으셔라.

북을 쳐서 꽃을 피게 하고

술잔 속에는 무지개가 있네.

천녀는 옥피리를 불고

서왕모는 거문고를 타네.

백 번 절하고 술잔을 올리며

만수무강하시라 세 번 외치네.

얼음 같은 과일에다

수정 같은 채소까지 있어,

온갖 진미에 배부르고

깊은 은혜는 뼈에 스며라.

신선의 이슬을 마신 듯

봉래산에 구경은 듯,

즐거움 다하여 헤어지려니

풍류마저 한바탕 꿈과 같아라.

 

한생이 시를 지어 바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고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용왕이 감사하면서 말하였다.

"이 시를 마땅히 금석에 새겨 우리 집의 보배로 삼겠습니다."

한생이 절하고 감사드린 뒤에 앞으로 나아가 용왕에게 아뢰었다.

"용궁의 좋은 일들은 이미 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웅장한 건물들과 넓은 강토도 둘러 볼 수가 있겠습니까?"

용왕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한생이 용왕의 허락을 받고 문 밖에 나와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는데, 오색 구름이 주위에 둘려 있는 것만 보여서 동서를 분별할 수가 없었다.

용왕이 구름을 불어 없애는 자에게 명하여 구름을 쓸어버리게 하자, 한 사람이 궁전 뜰에서 입을 오므리며 한번에 불어 버렸다. 그러자 하늘이 환하게 밝아졌는데, 산과 바위 벼랑도 없고 다만 넓은 세계가 바둑판처럼 보였는데 수십 리나 되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그 가운데 줄지어 심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었다. 둘레는 금성으로 쌓아졌으며, 그 행랑과 뜰에는 모두 푸른 유리 벽돌을 펴고 깔아서 빛과 그림자가 서로 비치었다.

용왕이 두 사람에게 명하여 한생을 이끌고 구경시키도록 하였다. 한 누각에 이르렀는데, 그 이름을 '조원지루(朝元之樓)'라고 하였다. 이 누각은 순전히 파리( )로 이루어졌고 진주와 구슬로 장식하였으며, 황금색과 푸른색으로 아로새겨졌다.

그 위에 오르자 마치 허공을 밟는 것 같았으며, 그 층이 열이나 되었다. 한생이 그 위층까지 다 올라가려고 하자 사자가 말하였다.

"여기는 용왕께서 신력(神力)으로 혼자만 오르실 뿐이고, 저희들도 또한 다 둘러보지를 못하였습니다."

이 누각의 위층이 구름 위에 솟아 있었으므로 보통 사람이 올라 갈 수는 없었다. 한생이 칠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 또 한 누각에 이르렀는데, 그 이름은 '능허지각(凌虛之閣)'이었다. 한생이 물었다.

"이 누각은 무엇 하는 곳입니까?"

"이 누각은 용왕께서 하늘에 조회하실 때에 그 의장(儀仗)을 갖추고 의관을 손질하는 곳이랍니다."

한생이 청하였다.

"그 의장을 보고 싶습니다."

사자가 한생을 인도하여 한 곳에 이르렀더니 한 물건이 있었는데, 마치 둥근 거울과 같았다. 그런데 번쩍번쩍 빛나서 눈이 어지러워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었다. 한생이 말하였다.

"이것은 무슨 물건입니까?"

"(번개를 맡은) 전모(電母)의 거울이지요."

또 북이 있었는데,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어울렸다. 한생이 이를 쳐다보려고 하자 사자가 말리면서 말하였다.

"이 북을 한번 친다면 온갖 물건이 모두 진동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레를 맡은) 뇌공의 북입니다."

또 한 물건이 있었는데 풀무 같았다. 한생이 흔들어 보려고 하자 사자가 다시 말리면서 말하였다.

"만약 한번 흔든다면 산의 바위가 다 무너지며 큰 나무들도 다 뽑히게 됩니다. 이것은 바람을 일게 하는 풀무랍니다."

또 한 물건이 있었는데 빗자루처럼 생겼고, 그 옆에는 물 항아리가 있었다. 한생이 물을 뿌려 보려고 하자 사자가 또 말리면서 말하였다.

"물을 한번 뿌리면 홍수가 나서, 산이 잠기고 언덕까지 물이 오르게 된답니다."

한생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찌 구름을 불어 내는 기구는 두지 않습니까?"

"구름은 용왕의 신력으로 되는 것이지요. 기계가 움직여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랍니다."

한생이 또 말하였다.

"뇌공(雷公)과 전모(電母)와 풍백(風伯)과 우사(雨師)는 어디에 있습니까?"

"천제(天帝)께서 그윽한 곳에 가두어 두고 돌아다지지 못하게 하였지요. 용왕께서 나오시면 곧 모여든답니다."

그 나머지 기구들은 다 알 수가 없었다. 또 기다란 행랑이 몇 리쯤 잇따라 뻗어 있었는데, 문에는 용의 모습을 새긴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한생이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사자가 말하였다.

"여기는 용왕께서 칠보(七寶)를 간직하여 두신 곳이랍니다."

한생이 한참 동안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였지만, 다 둘러볼 수는 없었다. 한생이 말하였다.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사자가 말하였다.

"그러시지요."

한생이 돌아오려고 하였더니 그 문들이 겹겹이 막혀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자에게 부탁하여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다. 한생이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서 용왕에게 감사드렸다.

"대왕의 두터우신 은덕을 입어 훌륭한 곳들을 두루 둘러보았습니다."

한생이 두 번 절하고 작별하였다. 그랬더니 용왕이 산호쟁반에다 진주 두 알과 흰 비단 두 필을 담아서 노잣돈으로 주고, 문 밖에 나와서 절하며 헤어졌다. 세 신도 함께 절하고 하직하였다. 세 신은 수레를 타고 곧바로 돌아갔다.

용왕이 다시 두 사자에게 명하여 산을 뚫고 물을 헤치는 무소뿔을 가지고 한생을 인도하게 하였다. 한 사람이 한생에게 말하였다.

"제 등에 올라타고 잠깐만 눈을 감고 계십시오."

한생이 그 말대로 하였다. 한 사람이 서각을 휘두르면서 앞에서 인도하는데, 마치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오직 바람소리와 물소리만 들렸는데, 잠시도 끊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그 소리가 그쳐서 눈을 떠보았더니, 자기 몸이 거실에 드러누워 있었다.

한생이 문 밖에 나와서 보았더니 커다란 별이 드문드문 보였다. 동방이 밝아 오고 닭이 세 홰나 쳤으니, 밤이 오경쯤 되었다. 재빨리 품속을 더듬어 보았더니 진주와 비단이 있었다. 한생은 이 물건들을 비단 상자에 잘 간직하였다. 귀한 보배로 여기면서, 남에게 보여 주지도 않았다.

그 뒤에 한생은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명산으로 들어갔다.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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