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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야 비로소 보았던 그 꽃'『순간의 꽃』/ 고은 시인의 작은 시편





순간에 대한 서문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시집은 마치, 사진 작가가 사진을 찍듯이 삶의, 세상의 모습들의 순간 순간을 카메라가 아닌 말로 찍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말들, 모습들을 시인은 그의 눈으로 그것을 포착하고 메모해두었을 것이다. 그리고나서 다시 떠올리면서 썼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그냥 지나보내나. 그리고 그 순간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 역시 그냥 지나보내는 것. 아쉬운 마음이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는 없는 것.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바쁘게 지내는 하루에서 가능한 많은 순간을 기억하려 노력하는 일. 그리고 시인처럼 그런 순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그것이 고은 시인이 시집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었을까?




1.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 ‘누구’ 타인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타인의 이야기. 그 속에 ‘나’는 없었나보다. 돌아오는 길에 시인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무들에게서 ‘나’를 발견한다. 요즘 나의 하루에도 ‘나’가 있었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를 보고 있는 것, 혹은 사람은 누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부모님, 친한친구들. 내 물건들.





2.


옆자리에서 

오늘 하루 번 것을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있다.


소주 마시는

두 젊은이

벌써 지아비이고 아비로다.


- 키워드는 ‘오늘 하루 번 것‘ 그리고 ’소주‘ 인 것 같다. 돈을 번다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 우선 두 젊은이는 어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소주‘를 마신다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성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지아비이고 아비라는 것은 돈을 버는 것과 술을 마시는 것이 마치 성인식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 그러고보니 나는 언제 처음 돈을 벌었고, 언제 처음 술을 마셔보았나. 생각해본다.




3. 


여보 나 왔소.

모진 겨울 다 갔소.


아내 무덤이 조용히 웃는다.


- 아내는 죽었나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는, 그 때 남편은 아내의 묘를 찾았나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슬픔. 하지만 시간이 그를 치유했을 것이다. 화자가 무덤 앞에서 ‘여보 나 왔소.’ 라며 일상적인 표현으로 인사하는 부분에서 그렇게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고 사랑하는 이의 부재도 어느덧 익숙해져가는. 이번 세월호 참사 역시.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 지하철 참사.. 혹은 아우슈비츠처럼.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아직 정말로 사랑하여 내 한 부분이 떨어져나갔다고 생각할 만큼의 아픔을 겪어보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4.


아우슈비츠에 가서

쌓인 안경들을 보았다.

쌓인 산더미 신발들을 보았다.

돌아오는 길은

서로 다른 창 밖을 바라보았다.


- 다소 중의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누군가와 함께 아우슈비츠에 갔다가, 함께 그 아픔을 느끼고 돌아오는 길은 서로 대화하기 힘든 먹먹함에 다른 창 밖을 바라본 것 일는지, 아니면 혼자 아우슈비츠에 다녀와서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큰 충격, 아픔을 느끼고 그것을 보기 전과 같은 풍경을 달리 보였던 것 일지. 어쨌든 전자든 후자든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안타까운 역사. 가장 잔인한 것은 우리 인간.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생물은 인간. 같은 종의 동물끼리 이렇게 서로를 미워할 수 있을까.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했기에 짐작만 할 수 있었지만. 정말 미친 시대였던 것 같다.




5. 


가재야 너는 왜 그리도 복잡하니?

더듬이에다

턱다리에다

털발에다

가슴다리

베다리에다

또 무엇에다


- 가재를 두고 너는 왜 그렇게도 복잡하게 생겼느냐고 묻고 있다. 하지만 가재는 우리 사람에 비하면 훨씬 단조롭게 생기지 않았을까.




6.


눈길 산짐승 발자국 따라다가

내 발자국 돌아보았다.


- 눈길의 산짐승 발자국을 왜 따라갔을까. 험한 눈길. 혹시 산짐승 발자국이 아니라 사람, 그저 내 발자국이 아니었을까. 혹은 눈길이란 인생을 의미한다고도 가정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쌓인 눈길을 보면 마치 도화지. 누군가 걸어간 길은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고 간다. 그리고 인생 역시, 태어난 순간은 도화지처럼 아무것도 없지만. 부모, 학교, 친구... 등을 거치며 태어난 순간부터 만들어져 있는 사회를 그리고 그것을 발자국이라고 생각하면 화자는 그것을 따라가다가. 뒤를 돌아본 것이다. 과연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옳은지 그른지. 이 시에서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모르겠다만. 중요한 것은 돌아본다는 것. 한 번쯤 뒤를 돌아보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7.


마당에서 눈 내리고

방 안에서 모르네.


- 마당에서 눈이 내리는데, 방 안에서는 모른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단지 얇디, 얇은 창호지 하나 붙어있을 따름이다. 옆 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며칠 동안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는 이웃에대한 무관심이 떠오른다.




8.


저 매미 울음소리

10년 혹은 15년이나

땅속에 있다 나온 울음소리라네

감사하게나.


- 매미 울음소리를 듣고 감사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생각일까. 여름만되면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었던 기억. 그리고 다가올 여름. 나는 올 여름에 매미 울음소리를 감사하게 들을 수 있을까. 




9.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


- 흔하디 흔한 풍경.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 흔하지만 최고의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와닿는 시이다. 사랑이라는게 대단한 의미가 아닐지도 모른다. 흔하디 흔한 것일지도. 자주 혼자 밥 먹는 내 모습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진 시였다.




10.


저 골목 오르막길

오순도순

거기

가난한 집의 행복이 정녕 행복이니라.




11.


할머니가 말하셨다.

아주 사소한 일

바늘에

실 꿰는 것도 온몸으로 하거라.


요즘은 바늘구멍이 안보여.




12.


전과 12범 살인강도에게

세 살 때가 있었다.

발가벗고 미쳐 날뛰는 연산군에게

네 살 때가 있었다.

쥐암쥐암 한 살 때도 있었다.




13.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시였는데, 이 시가 여기에서 나온 것을 이제 알았다. 아마 이 시집의 제목 ‘순간의 꽃’도 여기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이 시의 주제는 아마도, 올라갈 때의 길과 내려갈 때의 길이 같았을 것이지만, 올라갈 때 마음, 내려갈 때 마음 다르고 올라갈 때 보았던 시선, 내려갈 때 보았을 시선 또한 다르며 올라갈 때의 시각과 내려갈 때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 꽃은 그 사람이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두 순간 모두 같은 자리를 지켰지만 내려갈 때만 발견했다는 것은 짐작키로, 무언가 어떤 일을 시작해서, 몰두할 때. 주위 다른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났을 때, 조금의 여유가 생겼을 때. 비로소 주위에 있는 것들이 보이는 것. 화자는 그 길을 올라갈 때는 (산이라고 가정하면) 어서 산을 올라야지 라고 생각하며 산을 오르는 것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길가에 피어있는,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4.


어쩌자고 이렇게 큰 하늘인가

나는 달랑 혼자인데




15.


친구를 가져보아라.

적을 안다.

적을 가져보아라

친구를 안다.


이 무슨 장난인가.




16. 


이런 날이 있었다.

길 물어볼 사람 없어서

소나무 가지 하나

길게 뻗어나간 쪽으로 갔다.


찾던 길이었다.




17.


나는 내일의 나를 모르고 살고 있다.


술 어지간히 취한 밤

번개 쳐

그런 내가 세상에 드러나버렸다.




18.


설날 늙은 거지

마을 한 바퀴 돌다


태평성대 별것이던가.




19.


내 집 밖에 온통

내 스승이다


말똥 선생님

소똥 선생님


어린아이 주근깨 선생님




20.


소말리아에 가서

너희들의 자본주의를 보아라

너희들의 사회주의를 보아라

주린 아이들의 눈을 보아라


- 앞에서 나온 가난한 집의 행복이 정말 행복이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다가왔다. 소말리아에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가 그런 이데올로기가 무슨 소용이랴. 당장 마실 물이 없고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데 말이다. 자본주의고 사회주의고 전부 가진 자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 시였다. 내가 아직 자본주의고 사회주의고 별 신경쓰지 않는 것도 당장 내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고, 마음적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21. 


저 어마어마한 회장님 댁

거지에게는 절망이고

도둑에게는 희망이다.




22.


내일 나는 서울 인사동에서

대구의 이동순을 만날 것이다.


내일 나는 공도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치고

저녁때는 읽다 만 몽골문화사를 읽을 것이다.


내일 나는 오늘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칠 것이다.


추운 배추밭처럼

이런 예정들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내일이란 벌써 오늘이다.




23.


나는 고향에서

고국에서

아주 멀리 떠난 사람을 존경한다.


혼자서 시조가 되는 삶만이

다른 삶을 모방하지 않는다.


스무 살 고주몽




24. 


자비라는 건

정이야.


정 없이

도 있다고?


그런 도 깨쳐 무슨 좀도둑질하려나.




25. 


사람들은 이야기함으로써

사람이다.


어이 나비 타이 신사!

그래 졸지 말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좀 해보아.




26.


시베리아 혹한만을 말하지 말자.

시베리아 폭염 속 

썩어버린 잉어가시 하얗게 빛나더라.


-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나보다. 시베리아의 폭염이랴. 철원에서 군 생활 할 때 뭣모르던 이등병 시절 가을 겨울을 겪다보니 이 동네는 여름에도 춥겠지라는 생각. 하지만 막상 찾아온 여름은 남부지방보다 더 더웠다. 추위도 더위도 극단적인 신기한 곳. 철원도 그러한데 그 보다 더 추운 영하 40-70도에 육박하는 겨울을 지난 뒤의 폭염이라면 그 지방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다.  




27.


지난여름 탱크가 지나간 자리에

올가을 구절초 꽃 피어났네




28.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누구와 만나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솜구름 널린 하늘이더라




+

토론에서 함께 나누어본 이야기들


1) 글을 말 하듯이 써야겠다. 

- 평소 말하는 어투로. 그랬을 때 더 자연스러운 글쓰기가 될 것 같다.


2)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자연, 그것들을 모두 신성시 해야한다.


3) 고은 시인의 간결한 시

- 요약이 더 어려운 것 같다. 그 안에 특별한 의미를 담는 것.


4) 덧붙이려고만 하는 우리와 달리, 

- 간결하게 요약하는 고은 시인의 문체. 간결하게 본질에 다가서는


5) 아는 만큼 보인다. 경험한 만큼 느껴진다.


6) 영화와 시

- 친절한 영화, 설명해주는. 여운을 주는 영화나 시 보다는

임팩트 있는 것들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모습.


7) 파리 여행이 아름다운 이유는, 내일 떠나야하기 때문에.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 나무가 생각한다고, 인격을 부여해야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랬을 때, 모든 것들이 나를 바라보고 나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면,

덜 외로울 것 같아. 혼자더라도. 나를 기다리는 나의 것. 내 것.



'공감'


- 사람 뿐 아니라 나무나 무덤, 풀 등... 자연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 그것들의 입장에서의 우리들, 세상의 모습


- 시를 공부하는 것도 공감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닐까?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 보았다.




4월 30일

저 서운산 연둧빛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


- 대자연 앞에서 덧없는 한낱 인간의 감정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 조금은 닮고 싶다.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찾아내는 그의 눈. 아니 어쩌면 그 작은 것, 흔하디 흔한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소중하고 큰, 그것들이 본질이 아닐까.




2014년 5월 5일 화요일

 광주에서

Youth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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