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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저자소개>


베른하르트 슐링크 (Bernhard Schlink)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 1944년 7월 6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와 만하임에서 자랐다.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75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관공서 간의 공무 협조에 관해 쓴 교수 자격 논문이 통과되었고, 이후 본,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거쳐 현재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 예시바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2010년 현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헌법 재판소 재판관도 겸임하고 있다. 1987년 추리소설 《젤프의 법》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추리소설 《고르디우스의 매듭》 《젤프의 기만》 《젤프의 살인》과 장편소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단편소설집 《사랑의 도피》, 장편소설 《귀향》 《주말》을 펴냈다. 《젤프의 법》은 1991년 독일 ZDF 방송국에서 <죽음은 친구처럼 왔다>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 방영했으며,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빌리 엘리어트>를 만든 스티븐 달드리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책소개>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그리고 나란히 누워 있기... 


케이트 윈슬렛 주연,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의 원작소설. 독일어권 소설 최초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미국에서 1백만 부 넘게 판매된 작품이다.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 이후 현대 독일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성공한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 3월 국내 영화 개봉을 앞두고 한국어판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간염에 걸린 열다섯 살 소년 미하엘은 길을 가던 중 심한 구토를 일으키고, 서른여섯 살 여인 한나의 도움을 받게 된다.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는 두 사람. 예민하고 신비스러운 연상의 여인 한나와 미하엘은 비밀스런 연인이 된다. 미하엘과 관계를 갖기 전 그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말하는 한나.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같이 누워 있기... 그것은 두 사람 만남의 의식이 된다. 


미하엘이 읽어주는 책의 수가 늘어가고 사랑이 깊어질수록 한나의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겨진 미하엘은 그녀와의 사랑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다. 그리고 8년 후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 미하엘은 법정에서 한

나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필사적으로 숨겨온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는데... 







<서평>


책소개에 나왔듯, 이 영화는 15세 소년과, 36세 여인 한나의 과거의 사랑이야기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그녀를 다시 만난 소년이었던 주인공은 법학을 공부하며 참관하던 재판장에서 그녀와 재회하게 된다. 과거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고용되어 포로수용소의 여인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던 한나가 오랜 시간이 지나 재판을 받게되고, 다소 억울한 누명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쓰며 교도소에 수감되게 되는 한나를 주인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하고 과거 그녀와 나눴던 사랑의 의식에서 책을 읽어주던 것처럼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녀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드디어 재회하게된 두 사람. 그러나 그 직전에 한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필자가 기억하는 대략적인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다뤄지는 것은 당연히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따른 '홀로코스트' 그것을 꼬집으며 이야기가 전개되어간다. 재판을 받는 '한나'는 그 당시의 자신은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당시에 살아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누구나 그러한 상황 속에 있게된다면 이성적인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은 없다. 따지고보면 한나라는 인물은 우연히 그 직장을 얻었고, 자신은 그에 주어진 일을 수행했을 뿐이다. 물론 그러한 일들이 그렇게 정당화 될 수는 없으나 다소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버리고 일본 앞에 섰다. 지금의 우리는 그들을 매국노라고 손가락질하며 비난을 한다. 하지만 우리 역시 그 시대에 그 상황에 처한다면, 정말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나라를 위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그렇기에 독립투사들의 업적이 더욱 빛나는 것이며 유관순의 만세가 더 크게 들리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중요한, 민감한 사항을 다루면서도 이 소설은 어린 소년의 사랑이야기,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잊지 못하고 주고 받는 '책 읽어주는 행위'를 통한 사랑은 많은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고, 역사적인 부분에서도 읽는 이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읽은 뒤에 긴 여운이 남았던 좋은 작품이었다.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가는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하지만 돌이켜보면 아직 그로부터 한세기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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