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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작년 여름 친구에게 추천받은 책이었는데 잊고 있다가 최근 모임에서 선정하여 이번에야 읽게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어떤 주제인지 결코 쉽게 읽고 넘길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머니, 그 소중한, 그 위대한 헌신과 희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추천사에서의 말처럼 우리 모두 누구도 이 책 내용에서 어머니께 평소에 소홀하였던 죄송스러움, 다시 말하자면 '세상 모든 자식들의 원죄'를 피해갈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준 정말 소중한 사람에 대해서. 더불어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 가족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번 포스팅은 필자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구절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p.27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만이 아니라 나 좀 돌봐줘, 라는 호소가 배어 있다.'


필자 역시도 아직 어머니, 엄마라는 말을 섞어서 사용한다. 뭔가 아쉬워 부탁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어머니라고 호칭하고 평소에는 엄마, 엄마 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때 'oh my god' 이라고 하면서 신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는 '엄마야' 라고 이야기한다. 그 만큼 우리의 정서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신보다도 우리 무의식에는 엄마가 더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말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당연히 '엄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엄마라는 단어를 우리는 일생에서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을까 생각도 해본다. 


'엄마' 이름보다, 아니 오히려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엄마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p.43 너의 얘기를 가만 듣고 있던 엄마는 그 사람들은 그래도 네가 쓴 책을 읽었구나, 라고 말했다.


엄마는 글을 읽지 못한다. 소설가인 딸의 글을 읽지 못한다. 그러면서 이 부분에서 엄마는 오히려 앞을 보지 못하지만 점자를 통해서 딸의 글을 읽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 남편과 자식들, 가족들을 뒷바라지 하느라고 꽃다운 시절을 부엌에서 보내고 글자 조차도 재대로 읽지 못하는,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한 엄마의 안타까운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p.45 너는 엄마에게 너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네가 하는 일이 엄마의 삶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여겨졌다.


우리는 피곤한 하루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과, 엄마와 얼마나 대화 하는가. 식사 시간에 잠깐 얼굴을 마주치고, 그 외 시간에는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만 생각되는 엄마의 가사일, 희생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의 미안함과, 수고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얼마나 우리는 엄마에게 무심했었나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p.68 엄만 그걸 어떻게 매일매일 감당해냈을까?

엄마가 부엌을 좋아했을 것 같지 않아.

너는 엄마와 부엌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부엌이었고 부엌은 엄마였다.


생각해보자. 엄마는 부엌을 좋아했을까. 당신의 엄마는 부엌을 좋아했을까. 나아가서 엄마도 인간인데, 사람인데, 하고 싶은 일이 있을텐데. 부엌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가고 싶은 곳이 있을텐데. 내가 느끼는 많은 욕구들을 엄마도 느낄텐데. 그 모든 것들을 참아내고 하루 하루 일상이라는 소중함을 알게해주는 엄마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p.74 부엌이 감옥 같을 때는 장독대에 나가 못생긴 독 뚜겅을 하나 골라서 담벼락을 향해 힘껏 내던졌단다.


우리가 싫어하는 일을 하고싶지 않듯,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끝없는 일상을 묵묵히 이어나가는 엄마의 모습. 진작 알아주지 못해 더 미안한 마음이든다.



p.131 엄마는 장미를 사러가자고 했다.


본문에서 엄마는 촌스런 시골 아줌마, 할머니지만 누구나 그랬듯, 아름다운 소녀일 때가 있었고, 꽃다운 처녀의 모습일때가 있었다. 엄마의 순수함을, 반찬거리가 아닌 꽃을 심는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꽃집을 지나갈때면 장미 한송이라도 사다가 엄마에게 선물하면 어떨까.



p.132 근데 내 어떤 계획에도 엄마와 무엇을 함께하겠다는건 없더라. 쓸 때는 몰랐어. 엄마 잃어버리고 나서 다시 보니 그렇더라구.


왜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나서 후회하게 될까. 딸은 엄마를 잃고나서야 그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엄마가 사라지지 않았을 때는 가끔 찾아뵈지 못해도 걱정도 하지 않고 자기 할 일에 치여 살아가다가 막상 엄마가 정말로 실종되어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가족들은 절망한다. 평소에 소소한 살아가는 이야기들, 엄마와 아빠와 가족들과 나누면 살아가는 가정이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p.149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부부사이에서, 오십년이라는 세월은 그들을 더 이상 부부가 아니게 만들었다. 그저 당연히 함께 살아가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게 되었다. 글에서의 엄마는 온갖 가사일과 농사일을 그 많은 시간동안 묵묵히하며, 남편의 외도에도 가정을 지키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p.156 그때는 왜 그것이 평화롭고 복된 일이란 걸 몰랐을까.


그때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서 몰랐을까라고 하는 이야기.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세끼 밥 잘 먹고, 시간되면 잠을 자고. 아침에 되면 또 눈을 뜨고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고. 그리고 이 일상들이 쌓이고 쌓이고 결국에 인생이 되는 건데. 왜 그때는 그것이 평화롭고 복된 일이라는 걸 몰랐을까.


왜 그때는 몰랐을까. 왜 우리는 가장 소중하게 대해야 할 사람들에게 소홀할까. 오히려 바깥에 나가면 웃음지으며 이야기하다가도 집에만 오면 참아왔던 온갖 신경질을, 싫은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걸까. 너무 안타깝게 느껴진다. 



p.261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이 구절과, 이어지는 말.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이 아니다. 지금 자식인 우리가 겪은 시기를 역시 겪었던 사람이다. 인생의 선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가족을 위해서 내려놓고 헌신하는 엄마의 인생은 그 어떤 위인보다도 위대하며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p.262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 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막내 동생은 자신이 엄마가 되고나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단 몇시간만이라도 엄마를 다시 만나게되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존경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에서는 엄마가 사라져 하지 못하게 된 소중한 말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엄마, 아빠, 가족에게 꼭 하라고. 소설 속의 인물들의 절실함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한다.



p.265 그때는 그것이 행복인 줄을 몰랐다면서


작가는 엄마와 함께 했던 경험에 느낀 '행복감'에 소설을 썼다고한다. 소설의 안타까운 엄마 내용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그리고 그때 느낀 행복을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과 함께 느끼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누구에도 아직 늦은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신경숙 작가에게 전해지지는 않겠지만, 일상의 행복에 대해서 알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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