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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라는 표현

Iumiere 2013. 7. 11. 20:54

Q.

'당부'라는 말을 윗사람에게 쓰면 안 됩니까?




A.

언어 예절이 발달한 국어에서는 대화 상대나 대화 내용에 따라 달리 표현하거나 쓰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어 예절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말을 듣는 상대의 기분을 거스를 수도 있고, 때로는 시비가 일기도 합니다. 주로 경어법과 관련된 문제이지만 어감 때문에 사용에 제약을 받는 말들도 있습니다. 가장 많이 거론되기로는 "수고하십시오."라는 말일 것입니다. 윗사람에게 고생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실례이니 이 말을 윗사람에게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의례적인 인사말로 생각하고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연구원에서는 화법 표준화 사업을 하면서 "수고하십시오."라는 인사말을 윗사람에게는 쓰지 않고, 동년배나 아랫사람에게는 "먼저 가네. 수고하게."처럼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면 '당부'라는 말의 경우는 어떤지 알아보기 위하여 먼저 사전적인 뜻풀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말로 단단히 부탁함. 또는 그런 부탁. 《표준국어대사전》 

'당부'가 윗사람에게 써서는 안 될 말이라는 정보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국어사전에서 일반적으로 이러한 정보까지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좀 더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사전적 풀이로 본다면 '당부'는 부탁의 정도가 강한 경우에 쓰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탁이라면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니 상대편에서는 그만큼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부담이 되는 일을 그것도 강하게 윗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부'라는 말을 윗사람에게 쓰지 말아야 할 말이라고 보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당부'가 사용된 문맥을 조사해 보면 윗사람이 아닌 사람이 상대가 되는 경우에 주로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손들에게 "절대로 남에게 팔지 말 것"과 "돌 하나 계곡 한 구석 내 손길, 내 발자국 닿지 않은 곳이 없으니 하나도 상함이 없게 할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유홍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1》) 

개화기 이전의 글에서 사용된 '당부'의 문맥이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당부'의 이러한 쓰임은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예외로 보았던 문맥과 비슷한 문맥에서 '당부'가 쓰인 경우가 있다는 것까지도 같습니다. 

부인이 헐 일 업셔 룡을 바리고 갈시 달여 왈 이 실과를 먹고 안졌스라 하니 룡이 울며 한가지로 가자 거늘 쳐 죠흔 말노 달고 부인과 다라날  거름마다 도라보니 룡이 부모를 부르며 슈히 오라 당부는지라(《금방울전》) 

이에 비해 '부탁'에는 '당부'와 같은 제약이 없거나 휠씬 덜한 것으로 보입니다. 윗사람에게 사용하거나 '드리다'와 함께 사용한 문맥을 찾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부친에게 부탁하여 셋방을 얻어 주고 생활비까지 대 준 것도 역시 그런 정신에서였다.(황순원, 《움직이는 성》)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가능하다면 제 대신 선생님이 그 분을 한번 만나 달라는 거예요.(이병주, 《행복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