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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이해 / 김흥규 : 3.한국문학의 갈래 ≪ 서사적 갈래 ≫

Iumiere 2013. 4. 19. 12:38

한국문학의 이해 / 김흥규 : 3.한국문학의 갈래 ≪ 서사적 갈래 ≫





신화(神話)

신화는 그 전승 집단의 성원들에게 진실하고도 신성하다고 믿어지는 이야기이다. 특정한 종족이나 역사 집단에 의해 신성시된다는 기본 속성을 가진다. 그것은 일상적 경험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초자연적이며, 일회적 사실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 항구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전범적이고, 종족의 공동체적 기억과 이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집단적이다.

우리나라 신화에 있어서의 이러한 변동이 일단락되기까지의 신화시대는 고구려백제신라가 고대국가로서 자리를 잡은 1세기경까지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현전하는 한국 신화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인 단군, 주몽, 혁거세, 탈해, 알지, 수로 등의 건국 시조 신화는 바로 이 시대의 산물로서 문헌에 정착된 것이며, 왕건을 중심으로 한 시조 신화가 고려 건국기에 다시 형성되었다. 한편, 건국에 관련된 신화 외에는 탐라 삼성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 같은 씨족 시조 신화도 있으며, 자연부락 단위로 모셔지는 부락신에 관한 신화, 무속 신앙과 결부되어 전승되는 무속 신화도 찾아 볼 수 있다.

건국 시조 신화를 중심으로 본 한국 신화의 특징은 천손 하강형으로 요약되며, 지리적 이동의 경우에는 서에서 동으로, 북에서 남으로의 방향이 공통적으로 보인다.

 

국사고려본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고구려의 시조는 동명성제로서 그의 성은 고씨, 이름은 주몽이었다. 고주몽의 탄생과 고구려 건국의 내력은 이러하다.

북부여의 왕 해부루는 그의 재상 아란불의 꿈에서 받은 천제의 명령에 따라 그의 나라를 동부여로 옮겼다. 뒤에 부루왕이 죽고 금와 태자가 임금이 되었다.

금와가 왕위에 오른 뒤, 어느 날 그는 태백산 남쪽에 있는 우발수를 지나다가 아리따운 한 젊은 여인을 만났다. 금와왕은 그녀에게 다가가 웬 여자냐고 물었다. 왕의 물음에 여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본시 물의 신 하백의 딸입니다. 이름은 유화하고 해요. 어느 화창한 날 동생들과 함께 나들이를 갔더랬지요. 그때 풍채가 늠름한 한 남자를 만났어요. 그는 자기가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말했어요. 그는 나를 꾀어 웅신산 아래의 압록강 가에 있는 어떤 집 속으로 데리고 들어갔어요. 거기서 그는 나를 사통하고, 그리고는 훌쩍 떠나가고 영영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부모님은 나를 여간 꾸짖지 않았어요. 중매도 거치지 않고 함부로 낯선 사내에게 몸을 맡겼다고요. 그래서 나를 이곳에다 귀양 보낸 것이랍니다.”

여인 유화의 고백을 듣고 금와왕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 유화를 데리고 가서 으슥한 방 속에 가두어 두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그 으슥한 방 속으로 햇빛이 들어와 유화의 몸을 비추기 시작했다. 유화가 몸을 움직여 그 햇빛을 피하노라니 햇빛은 또 따라와 그녀의 몸을 비추곤 했다. 그러더니 유화는 마침내 잉태하게 되었고, 닷 되들이 크기 만한 알 하나를 낳았다.

금와왕은 사람이 알을 낳은 것이 꺼림직하여 그 알을 내다 버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개와 돼지들에게 그 알을 던져 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들은 통 알을 먹으려 들지 않았다. 말과 소들이 다니는 길바닥에다 내다 버려 보았다. 말과 소들도 그 알을 밟지 않고 곁으로 피해 갔다. 다시 들판에다 가져다 버렸다. 이번에는 새와 짐승들이 내려와 그 알을 날개랑 몸으로 덮어 주는 것이었다.

왕은 하는 수 없이 그 알을 도로 가져다 깨뜨려 버리려 했다. 그러나 알은 또 깨뜨려지지도 않았다. 마침내 그 알을 어미 유화에게 되돌려 주었다. 유화는 알을 포근히 감싸서 따뜻한 곳에다 보호했다.

그 알에서 껍질을 깨고 한 아기기 태어났다. 골격이며, 외모부터가 영명해 보이고 기특했다. 나이 겨우 일곱 살에 그 아이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여간 숙성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 힘으로 활이랑 화살을 만들어 곧잘 쏘아댔는데 그것이 또 백발백중이었다. 그때 동부여국에선 활 잘 쏘는 사람을 가리켜 주몽이라 불렀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을 주몽이라 지었다.

금와왕에겐 일곱 왕자가 있었다. 그들은 항상 주몽과 함께 활쏘기며 말 타기며 사냥질 등 놀이를 같이 다녔다. 일곱 왕자 중의 그 누구도 주몽의 재주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주몽을 시기해 오던 태자 대소는 드디어 왕에게 아뢰었다.

주몽은 본시 인간의 정기로 태어난 놈이 아닙니다. 만약 일찍 그를 없애버리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합니다.”

금와왕은 태자 대소의 말대로는 따르지 않았다. 왕은 주몽을 말먹이꾼으로 있게 했다.

주몽은 앞으로 필경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라 예감하고서, 그 일어날 일에 대비하여 말의 품종의 좋고 나쁨을 식별해 두었다. 그래서 품종이 썩 뛰어난 놈을 골라 일부러 먹이를 적게 주어 여위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련한 놈은 잘 먹여 살찌게 해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왕은 살찐 말을 골라 자기가 타고 여윈 놈은 주몽에게 주었다.

태자 대소 등 여러 왕자들과 금와왕의 여러 신하들은 장차 주몽을 해치기로 모의했다. 그 낌새를 알아챈 주몽이 어머니 유화 부인은 몰래 주몽에게 말했다.

이 나라 왕궁의 사람들이 장차 너를 해치려 하는구나. 너 만한 재략으로 어디 간들 뜻을 못 이루랴. 곧 이곳을 벗어나 화를 면하도록 해라.”

그때 주몽에겐 오이 등 세 사람의 충실한 부하이자 믿음직스러운 벗이 있었다. 주몽은 곧 이들 세 사람과 함께 동부여 땅을 탈출해 나왔다. 일부러 여위게 먹임으로써 자기 차지가 되게 했던 그 준마를 타고서…….

대소 태자 등 여러 왕자들과 금와왕의 여러 신하들은 주몽의 탈출을 알아채고 곧 뒤따라 말을 달려 추격해 왔다.

주몽 일행은 엄수에 다다랐다. 앞을 가로막은 검푸른 강물을 건널 길이 묘연했다. 추격자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주몽은 강물을 향해 호소하였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자 물의 신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화를 피해 도망해 오는 길, 쫓는 자들은 바로 뒤에 닥치고 있는데 어쩌면 좋으랴?”

주몽의 호소가 있자마자 문득 물결 위로 무수한 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곤 스스로의 몸들을 이어 순식간에 다리를 이룩했다. 주몽 일행은 그 고기와 자라들의 다리 위를 달려 강을 건넜다.

주몽 일행이 맞은편 강 언덕에 닿자 그 고기와 자라들은 물 속으로 흩어져 가고 다리는 풀려 버렸다. 주몽 일행을 추격하던 무리들은 마침내 그 물을 건너지 못했다.

주몽 일행은 졸본주(현도군 부근임)에 이르러 그곳을 도읍으로 정했다. 미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일단 비류수 언저리에 초막을 짓고 머물러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이에 따라서 주몽은 그의 성을 고씨로 했다. 이때 주몽의 나이는 열두 살(역주 : 삼국사기에는 22세라 했다). 그가 즉위하여 왕이라 일컬은 것은 중국 한나라의 효원제 12(B. C. 37)의 일이었다. -삼국유사동명왕편 / 이동환 역

 

주몽탈해궁예작제건 등에 관한 건국 시조 신화는 서사무가로 전승되는 무조 신화와 더불어 영웅의 일생이라 지칭되는 유형적 서사구조를 가진다. 조동일김열규 교수의 연구에 따라 이를 살펴보면, 1) 고귀한 혈통을 지니고, 2) 비정상적으로 태어나, 3) 비범한 자질을 가졌으나, 4) 기아고난 등을 겪으며, 5) 구출양육자를 만나 살아나고, 6) 다시 위기를 극복하여, 7) 투쟁의 승리와 영광을 차지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서사 유형은 조선 후기의 영웅소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전설(傳說)

전설은 신화와 달리 신분과 능력에 있어서 평범한 인간 혹은 비범하다 해도 예사 사람의 차원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물들을 행위자로 한, 실제로 있었다고 믿어지거나 혹은 그러한 믿음을 요구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전설은 그 내용에 관련된 바위, 연못, 고목, 집터 따위의 개별적 증거물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에 따른 전승의 지역성을 띤다. 전설은 또한 신빙성이 어떻든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배경으로 하면서, 이야기 속의 갈등을 손쉬운 낙관적 해결책에 의존하지 않고 다루는 진지함을 보여준다. 전설이 흔히 어둡거나 비극적인 분위기를 지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의 설화문학 중에서 전설은 가장 많은 문헌 자료가 남아 있으며, 현대에 와서 수집된 것도 적지 않다.

발생 동기에 따른 분류인 설명적 전설, 역사적 전설, 신앙적 전설의 구분에 따라 한국 전설의 몇 가지 특징적 양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설명적 전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여러 사물 및 현상에 대한 민중들의 설명 욕구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특이한 지형, 자연현상, 풍습, 동식물 등 광범한 사물들의 기원이나 성질이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그리 되었노라는 이야기가 그 내용을 이룬다. 이들은 때때로 민담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으나, 대상이 되는 사물의 지역성, 개별성이 강할 경우에는 대개 전설이라 보아 틀림없다. 아직도 농어촌 곳곳에 남아있는 지명, 지형 전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역사적 전설은 전설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실제의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민중들의 기억과 구술 행위를 거치는 동안 윤색변형됨으로써 생겨나고 또 변모한다. 따라서 그것은 실제의 역사적 사실과는 많든 적든 어긋나기 마련이다. 역사적 전설은 국가적, 지방적 위난이나 사건이 있던 시기 이후에 특히 많이 생겨났으며, 이들 속에는 저명한 실제 영웅들과 더불어 미천한 신분의 평민층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신앙적 전설은 민간신앙을 기초로 한 종교적 이야기로서, 순수하게 종교적인 것에서부터 미륵 화생, 정도령 도래 등과 같이 당대 질서의 모순고통을 타파하고 새 세계를 이룩한다는 존재의 출현에 관한 전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후자의 전설들은 신라 말기, 고려 말, 조선 후기 등 사회적 불안이 고조된 시기에 많이 나타나서, 민중 봉기의 신앙적 기반 내지 유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전설이 대체로 일정한 지역성을 띤다는 점은 이미 지적한 바이지만 그 중에서도 어떤 것들은 지역적 국한성을 넘어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가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장씨네 들어오신 담에 박씨네가 인제 들어왔잖어요. 들어와가주구선 우리 박씨네가 젤 어딜 들어와 계시냐 하면 저 구멍둥이라는데 있잖어요. 여기 지도 보며는 구멍동 있죠.

근데 참 하루 인제 애기를 뱃는데요. 게깐 이거 내가 삭갈렸어(이야기 순서가 헷갈렸다는 뜻). 이제 부모가 돌아가셨어. 그래서 인제 산자릴 못 잡구서 인제 임시 이렇게 아무데나 묻어놓구 있는데 하루는 중이 와서 저 자구가자 그래요. 그래 자라 그래니깐, 봐두 벌써 상제가 다르잖어요.

, 쥔양반 상제가 아니냐?”. / “그래 난 상제다.” / “어버지 어떻게 산자리나 바루 구해썼느냐?”

그래서, “못 살다 보니깐 산자리두 구해 못 씨구 이렇게 아무데나 그냥 모시구 있다.”구 그래니깐,

그러냐.”. / “그럼 내가 산을 한 자리 본게 있으니깐 내일 상제님들이 거길 가자.”

이거예요. 게 참 밥을 싸가지구 일찍 아니 떠나자구 그래선 밥을 싸가지구 가는데, 어디냐 하면 지금 그 동면 번개터지. 저 덕밭제 동면이야 거기가.

[박치관 : 시방은 홍천군이야.] 아 그전엔 동면 덕밭젭니다. 그 동면 덕밭제라는 델 가더니 턱 지관이 하는 말이, “여기다 산을 쓰슈.” 이말야. 게 보니까 참 앞에 장군석이 서이가 돌이 서 있어유. 그래서,

알었다.”구 말야. 그래선 와가지군, 참 중들은 간 담에 신체를 모셔다 거기다 썼어요. 썼는데, 그 후루 참 태기가 있어가주구서 언낼 뜩 났는데, 이 언네 어머니가 밤에 한밤중된예 보면 언네가 땀이 촉촉이 난단 얘기야, 이상허게. 이것두……사흘째 그렇게 땀이 나거던. 게 하룻 저녁엔 아주 새우면서 이걸 봤어. 이게 왜 이렇게 땀이 나나 하구 보니깐, 이 새빨구뎅이 어린애가 바시시 일어나더니 문을 열구 나가더란 얘기예요. [조사자 : , 갓난애가요.] , 갓난언애가. 나가더니 고 앞에 가래낭기 커다만게 하나 있는데 훌쩍 날아 올라가더니, 가래낭구에 인제 오르락 내리며 인제 재줄 허는 기야. 재주를 디려 허더니 내려오더니, 들어와선 어머니 품속에 딱 들어오넌데 맨져보니 그때 땀이 나더란 얘기야. 게선 시아부지한테 얘길 한 거야.

큰 일 났습니다.” / “왜 그러니?” / “저 인제 한 나달 된 게 저렇게 가래남글 뛰 넘어가서 밤이면 재주를 부리구 그러니 이 어떡헙니까?” / “쥑여야 된다.”이거지.

그럼 잘못되면 역적이구 잘 됨 충신이니까 이거 안 된단 얘기야. 그러니까 팥섬을 막 지질러 놓니까 참 들썩들썩하더니, 이 놈을 쥑였어요. 아주 지지눌러 가지고 쥑였는데, 사흘만에 아 중이 찾어온 거야. 찾아오더니,

이 집이 아기 낳으니 아기 내놔라.” 이거거든. 아 그래선,

, 안 낳다.” / 구 그래니깐, / “, 그런 애기 없다.”.

빨리 내놔라.” / 이거야. / “이거 내가 데루구 갈테니깐 내놔라.”

그래서 그런 일 없대니깐 절대 꼭 났이니깐 내노라구. 그래선 노골적 얘길 했어.

이거 잘못 되면 우리 역적으루 몰려서 우리 박씨네가 죽을 거 같어서 이걸 지지눌러서 쥑였다.”.

그래니깐 아 자기 복장을 막 디려 치더래요. 분하다구 말야.

이걸 내가 데려다 꼭 키워야 되는데 어쩐 말이냐.” 그래니깐,

앞으루 둘이 또 날테니깐 이거는 꼭 날 뒀다 다과.”

게군 중은 가더란 얘기야. 그런데 기 이튿날 아 으앙 소리가 나더니 용마가 하나 와가주구선 마당에서 말야 네 무릎을 꿇곤 볶아치더래요. 그래더니 훌쩍 건너가서 그 근너 가서 엎드려 죽어서, 거기서 인제 배낭기 하나 올라 왔거던요. 그래 지끔두 거길 용의 배나무꼴이라구 그럽니다. 여기 올라가면, 구멍동 가면 예, 용의 배나무꼴이 있어요. 게 거기가 용이 엎드려 죽었는데 거기서 배이 하나 올라왔어요. 그래 용의 배나무꼴이예요. 게 우리 박씨네가 장사 또 둘 난다는 바람에 이걸 못나게 하느냐구, 아주 저 처녀 총각 죽은놈에 뫼를 파다간, 송장을 파다간 앞뒤다 콱 눌러썼어요. 게선 꼼짝을 못하죠.

-아기장수 전설/ 서대석 채록

 

몇몇 인물 전설들은 한두 토막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많은 이야기들의 군집을 형성하는 흥미로운 사례도 볼 수 있다. 박경업, 암행어사 박문수, 봉이 김선달, 동해안 지역의 김선달이라 할 수 있는 방학중이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좋은 예이다.

전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조선 후기에 와서 시정문화가 발달하면서 더욱 활발하게 유통되고, 야담류로 기록윤색되거나 소설에 편입되어 이 시기의 기록 서사문학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민담(民譚)

민담은 이야기하는 이나 듣는 이가 모두 신성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참이라고 전제할 필요도 없는, 그래서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말이지……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흥밋거리의 이야기이다. 민담의 주인공은 일상적 범인 혹은 그 이하의 인물이되, 갖가지 난관에 부딪혀도 다행스러운 계기와 도움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에 도달한다.

민담은 전설과 달리 구체적인 증거물을 가지지 않으며, 지역적 제한성을 띠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민담은 등장인물 설정과 사건 구조에서 반복이나 대립이 선명하게 도형화된 기하학적 구조를 가지는데, 이와 같은 특성 또한 그것의 강력한 전파력에 긴밀한 관련이 있다. 민담 구조의 단순성과 체계성은 전승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인간 경험의 다면적 얽힘을 명료하게 집약하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민담의 분류는 기준을 세우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라질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동물담, 본격담, 소화의 3분법에 따라 간략한 윤곽을 소개하면서 한국 민담의 사례에 언급하고자 한다.

동물담은 말 그대로 동물에 관한 이야기, 혹은 동물이 주된 행위자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이를 다시 동물유래담, 본격동물담, 동물우화로 나눈다. 이 가운데서 문학적으로 보다 흥미로운 것은 뒤의 두 가지이다. 특히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 세계의 갈등을 표현한 본격동물담 중 일부는 민담으로 머무르지 않고 조선 후기의 일부 소설에까지 차용되었다. 토끼전, 서대주전, 장끼전등이 이런 부류의 소설이다.

본격담은 인물의 특성과 사건 해결 방식에 따라 현실담과 공상담으로 나뉜다. 현실담은 어느 정도 경험적 현실성을 띤 이야기인데 비해, 공상담은 초현실적인 인물과 사건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전에 내외가 살았는데 안에서는 베를 짜고 남자는 장에 가 양식을 팔아 왔다. 용한 점쟁이가 장에서 법석치는 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나도 쳐 봤으면 좋겠는데, 점을 치면 복채가 비싸서 쌀을 못 사 집에도 못 가게 되었지만 점을 쳤다. 점괘가 마음이 위태롭거든 목적지까지 가지 말고 되나오라. 무섭거든 춤추라. 반가와하거든 살살 기라.’ 그 남자가 집에를 못 가고 어디를 가는가 하면 도망을 가는데 큰 강이 앞을 막아 배를 타게 되었는데 사람이 몯아야 가는데 기다리다가 사람이 차서 떠났다. 바람 불고 날이 꾸무럭해지고 돌개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힐 듯했다. 점괘 때문에 아이 무서워 못 가겠다. 돌아가자.”고 야단을 했더니, “정말 못 가겠느냐?” “아 그래도 나는 안 간다.” 할 수 없이 도로 갖다 주고 배가 중간쯤 가다가 돌개바람이 불어 휘떡 뒤집혀 그는 점쟁이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 길로 산골길로 가다 보니 집도 없고 첩첩 산중에 초입부터 해골이 쓰러 문드러져 되나오자니…… 들어갈수록 해골이 널렸다. 첫 번에 뭐가 똥그란 게 또굴또굴 굴러와서 장따구를 쳐다봉께, 키가 구십 척도 더 큰 것이, 눈은 화등잔같이 큰 것이 춤을 췄다. 그래서 무서우면 춤을 추라.’는 점괘를 생각하고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더니 차차 차차 작아져서 사람만 하게 되어, 보고 웃으며 나는 소원이 다 풀렸다. 당신 때문에 원이 풀렸다. 나는 마초귀신이나 하도 천상에서 죄를 많이 져서 구천 상제님께서 네놈 얼굴 보고 춤추는 놈 있으면 죄 풀리리라 하고 말한 다음에 춤추는 사람이 없어 한이더니 당신 때문에 원 풀었으니 당신의 소원이 무에든지 들어 주겠다.” “부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동삼밭을 가리켜 줄게…….” 하고 고개 고개 넘어 양지쪽 꼭대기 바위가 삐딱한 데 동삼밭이 있을 것이다.”해서 말대로 찾아가 뽑으니 무 같은 동삼이 한정 없이 나왔다. 하도 좋아 한 망태기 가지고 집에 갔다. 마누라가 반가와했다. 반가와하거든 살살 기라.’는 점괘 생각에 살살 기었더니 마루 밑에 시퍼런 칼을 든 괴한이 있었다. 그 사이에 다른 남자를 데리고 살려고 했던 것이었다. “아하 나 죽일라고…… 내 이 집도 내 아내도 자식도 다 줄테니 나와라.” 나오니 그 사람은 다 버리고 동삼을 팔아 서울에 와서 잘 살았다. -천냥짜리 점/ 조희웅 채록

소화는 다른 나라의 경우에 비해 우리 민단에서 훨씬 다채롭고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듯하다. 과장담, 치우담, 사기담, 모방담, 경쟁담으로 세분되는 소화의 하위 분류 가운데서도 특히 골계적 성격이 강한 앞의 세 가지가 한국 민담의 특징적 면모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지 않은가 한다. 방귀 잘 뀌는 며느리, 구두쇠 자린고비, 바보 사위, 실수하는 사돈 등 우리에게 아직도 친숙한 평민적 민담으로부터 고금소총류의 골계담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어리석음, 변덕스러움, 건망증, 실수 등 갖가지 결함에 관련된 소화들은 상당히 많은 분량에 달한다.

 



서사무가(敍事巫歌)

서사무가는 고대적 제전의 전통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라진 뒤 무속 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전승된 무속신화이자 서사시이다.

무가에는 서사무가 외에 일정한 주인공이나 사건 구조 없이 무속적 세계상과 종교적 사실을 평면적으로 기술전달하는 전술무가도 있고, 소망축원탄식 등을 주내용으로 한 서정무가도 있어서 굿의 전체 구조 안에서 기능을 분담한다. 그러나 문학적인 측면에서는 이들에 비해 서사무가가 훨씬 중요하게 취급된다.

서사무가는 일정한 주인공의 행적을 노래와 말을 섞어가며 창한다는 점에서 서사시의 일종이지만, 신의 내력을 서술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무조신화이다. 무당의 굿에서는 진행하는 거리마다 주관하는 신이 다른데, 그를 굿판에 부르고 그 신성한 능력을 밝히기 위한 것인 까닭에 서사무가를 청배무가라고도 한다. 따라서 그것은 무당에 의해 무의에서만 연창되는 전승 제한과 신성성주술성을 기본 속성으로 하나, 후대에 첨가된 민간 연희적 속성, 즉 놀이로서의 기능도 지닌다. 후자의 특징은 특히 동해안 및 중부 이남 지역에 분포된 세습무의 굿에서 많이 나타나며, 굿의 종류로 보아서는 부락 단위의 풍농굿, 풍어굿 등 축제적 성격의 굿에 현저하다.

무당은 장고, 꽹과리, , 날라리 등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와 말을 섞어 가며 서사무가를 창하는데, 그 분위기와 내용이 반드시 엄숙한 것으로 일관하지만은 않는다.

서사무가 가운데서도 가장 잘 알려진 유형인 바리공주(바리데기, 오기풀이)의 골격만을 여기에 소개한다.

 

어떤 왕국(나라 이름은 이본에 따라 다름)의 왕이 차례로 일곱 공주를 낳는다.

아들을 얻지 못하여 상심한 왕은 일곱째 딸을 내버리게 한다.

버릴 때마다 새, 짐승 따위가 아기를 보호하여, 마침내 멀리 가져다 버리도록 한다.

버려진 아기, 즉 바리공주는 석가세존 혹은 다른 초자연적 힘의 도움으로 양육된다.

(혹은 왕과 왕비)은 하늘이 내신 아기를 버린 죄로 죽을병이 든다.

점을 쳐 보니 이 병은 저승의 약물을 길어다 먹어야 낫는다고 한다.

여섯 공주 중 아무도 부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길을 가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 희망인 일곱째 공주를 찾아 데려온다.

바리공주는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저승으로 구약여행을 떠난다.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여 저승에 도달하고, 약물 구하는 데 필요한 과제를 감당해 낸다.

그 한 예로서, 서울 지역의 전승에서는 바리공주가 무장승을 만나 물 삼 년 길어주고

불 삼 년 때 주고 나무 삼 년 해주고 또 그와 결혼해서 일곱 아들을 낳는다.

오랜 인고를 견딘 끝에 바리공주는 저승의 약물을 얻어 이승으로 돌아온다.

와보니 왕은 이미 죽어서 상여를 내가는 중이다.

바리공주는 저승의 약물과 그 밖의 신비로운 물건들을 써서 부왕을 살린다.

마침내 바리공주는 이승과 저승의 길을 인도하는 무신이 된다.

 

서사무가는 개인과 집단의 평안번영을 기원하는 재수굿이나 혹은 억울하게 죽은 이의 혼령을 저승으로 보내는 오구굿 등의 여러 제의를 통해 평민사회의 종교적연희적 요구를 충족하였을 뿐 아니라, 판소리고전소설의 발생 내지 발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민요류의 노래들과도 활발한 교섭을 주고받았다.

 



판소리

판소리는 고도한 음악적 표현력을 바탕으로 삼고 익살과 재담을 풍부하게 섞어가며 지상적 차원의 사람살이를 노래하는 세속적 구비 서사시이다. 판소리는 문학적 요소인 사설재담과 더불어 다채로운 음악과 현장 연출을 필요로 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그 연행성을 중시하여 연극이라 하는 이도 있으나, 판소리 전체를 지배하는 원리는 서사적인 것이며 연극적 요소는 이에 부수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판소리에 있어서 창자의 발림(몸짓), 장면화의 경향, 그리고 창자가 작중인물에로 자주 전환되는 일 등은 물론 연극적 속성의 표현으로 이해될 만하다.

판소리의 기원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호남 지방의 단골무들이 부르는 서사무가 또는 그 굿에서 유래하였으리라는 추정이 가장 유력하다. 전라도 지방의 서사무가는 장편 구비 서사시의 형식, 아니리를 섞어 부르는 구연 방법, 음악적 장단선율 구조, 창법 등 많은 부분에서 판소리와의 친근성을 보인다.

열두 마당 중에서 현재까지 창으로 전해지는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를 전승오가라 한다. 실전된 일곱 마당 가운데 배비장타령, 가루지기타령, 옹고집전, 장끼전은 사설본 혹은 소설화된 축약본이 남아 있으나, 강릉매화타령, 무숙이타령, 가짜신선타령은 단편적인 문헌 기록을 통해 그 존재 사실과 내용의 윤곽만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열두 마당의 전승이 이처럼 줄어들게 된 것은 평민적 기반 위에서 발달하여 온 판소리가 18세기 말 이후 양반부호층의 청중을 획득하면서 그들의 기호를 강하게 의식한 때문이다.

판소리 창자들은 전승적 이야기의 골격을 근간으로 삼되 그 중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을 확장부연하는 방식으로 사설과 음악을 발전시켜 나아갔기 때문에 판소리는 이야기 전체의 흥미나 구성의 긴박성보다는 각 대목의 흥미와 감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판소리는 그 나름의 독특한 서사적 구성 원리를 가지고 있다. 창과 아니리, 비장과 골계를 엇섞어 배치하여 청중들을 작중 현실에 몰입시켰다가 해방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판소리 사설은 운문과 산문이 혼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여러 계층의 청중들을 상대로 하여 적층적으로 발달한 까닭에 언어의 층위가 매우 다채롭다.

판소리에 투영된 사회의식은 평민적 세계관과 미의식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판소리에서 중세적 관념과 가치는 대체로 희극적 조롱의 대상이며, 평민적 경험에 기반한 세속적 현실주의가 삶의 근본 전망을 이룬다.

 



서사민요(敍事民謠)

일정한 인물과 사건 구조를 갖추어 노래하는 민요를 서사민요라 부른다. 서정민요가 대개 응축된 간결함을 지니는 데 비해, 서사민요는 이보다 길이가 길고 일정한 사건으로 표현되는 갈등과 그 해결을 주요 관심사로 삼는다.

서사민요는 아직까지 널리 수집정리되지 못한 상태에 있는데, 경북 지방을 대상 지역으로 삼은 한 연구(조동일, 서사민요 연구, 1970)에 의하면 여성의 길쌈 노동요로서 불리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 밖에 주로 남성들이 부르는 범벅타령, 상투 잡고 해산하는 노래등의 희극적 서사민요나 판소리, 무가 등에서 전환된 서사민요도 채집 사례가 알려져 있다.

서사민요는 일반 평민들의 생활 속에서 불리는 비전문적 노래이기 때문에 서사무가, 판소리 같은 전문적 구비 서사시나 설화, 소설 등의 산문 서사문학에 비해 내용 및 표현이 단순하다. 그러나 현실 생활에 바탕을 둔 체험적 직접성은 서사민요가 좀 더 뚜렷하다고 하겠다.

 

시집 가든 사흘만에 호망자리 둘러미고 밭매로야 가라칸다

머슴들아 머슴들아 밭매로야 가자시라

마당겉이 굳은 밫을 미겉이도 지슴 밫을 남산겉이 넓은 밫을

한골 매고 두골 매고 삼시골로 거듭 매고 저임때가 되었구나

머슴들아 머슴들아 점심 묵을 집에 가자

집이라고 들어오니 시아버지 하는 말이

번개겉이 뛰나오메 그게라상 일이라고 저임 찾어 벌어 오나

쪼바리 겉은 시어마님 쪼불시가 기나오메

고게라상 일이라고 저임 찾어 버러 오나

기가 차고 매가 차여 (녹음기 고장으로 몇 구절 탈락)

삼년 묵은 버리밥을 식기굽에 문체 주고

장을 조꼼 달라 하니 삼년 묵은 등게장을

종지 굽에 문체 주고 몽당숟가락 던제 주지

밥그럭을 가주고야 장방 우에 얹어 놓고

농문으로 열어치고 우리 아배 떠온 처매 우리 어매 눈공 처매

한폭 따여 고깔 짓고 두폭 따여 행전 짓고 시폭 따여 바랑 짓고

오랑망태 둘러미고 시금시금 시어마님 나는 가네

시금시금 시어마님 시집살이 몬해가주

나는 가네 나는 가네 가그덩 가고 말그덩 말고

새상방에 가 가주고 서방군아 서방군아

시집살이 할 수 없어 나는 가네 나는 가네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내 말 듣고 가지 마오

여야든동 가지 마소 그 시어른 맹 사는가

그 동세가 맹 사는가 내 말 듣고 가지 마소

손톱 밑에 흘 안 옇고 발톱 밑에 흘 안 옇고

앉아가주 글만 아든 저 선보가

손톱 밑에 홀로 옇고 두발로 당두거리며

기가 차게 눈물로 지우나 할 수 없이 떠나가네

동해사 절로 가여 한 대문을 열어치고 두 대문을 열어치니

늙은 중캉 젊은 중캉 동미중캉 앉었구나

동미중아 벚이중아 이내 말쌈 들어바라 내 머리를 깎어 도고

정들어를 나여 두고 머리 깎다 윈말이고 잠말 말고 깎어 도고

동미중아 머리 깎어 친정곧에 시주 가자 이내 머리 깎어 도고

한 귀때기 깎고 나니 눈물이 진동하고

두 귀때기 깎고 나니 팔월이라 윈두밭에 돌수백이 되었구나

바랑망태 짊어지고 친구중아 벚이중아

친정곧에 시주 가자 친정곧을 시주 가자

친정에 삽지끌에 들어서여

시주 왔소 동양 왔소 이 댁에 시주 왔소

어마시가 하는 말을 문을 열고 내바더 보메

삽직껄에 저 대사는 우리 딸이 건성하다

요보시오 그 말 마소 동서남북 다 댕기도 같은 사람 만석 해소

사랑문을 열어 놓고 아부지가 하는 말이

삽작 밲에 저 대사는 우리 딸이 건성하다

요보시오 그 말 마소 동서사방 다 댕기도 같은 사람 만석 해소

시누부 올캐 하는 말이 삽잭 밲에 저 중으는 시누부 건성하다

요보시오 그 말 마소 동서사방 다 댕기먼 같은 사람 만석 해소

마리 밑에 있던야 청삽살이 훌쩍훌쩍 뛰나오메

꽁지 설설 흔들메야 치매꼬리 물고 뛰고 땡게시니

개가 그카이 보고 기가 차여 흩어져여 개를 안고

대성양을 눈물지우니 그 가운데 알어채리고

어마시가 두 걸음을 뛰나와야

행전 벗어 집어치고 바랑 벗어 집어치고 고깔 벗어 집어치고

야야 야야 이 웬일고 이게 무신 모양이고

큰방을 들이가자 이게 무신 웬 말이고

정들은 어따 두고 니 일신이 이래 된노 -시집살이 노래/ 경북 영천군, 조동일 채록

 

서사민요가 일정한 인물과 사건 구조를 지닌 점에서 서사적 갈래의 하나로 분류되기는 하나, 그 서사성은 때때로 서정적인 것의 경계선에 근접하거나 엇걸치는 주변성을 띠기도 한다는 점이다.

길쌈 노동요 중 베틀노래같은 것은 상당히 긴 분량과 줄거리를 가지고 있어서 서사성의 역할이 지배적이라 하겠지만, 이보다 짧은 대다수의 시집살이요나, 진주낭군노래 따위는 비록 서사민요라 해도 서사적 골격의 도움 위에서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주정적으로 집약하는 주변적 서사성을 띤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고전소설(古典小說)

대체로 19세기 말까지의 우리 소설을 고전소설이라 총칭한다.

한국 고전소설이 언제, 어떤 기원으로부터 발생하였는가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시습(1435~1493)금오신화가 그 초기적 성취의 뚜렷한 결정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16세기 말경에는 이보다 전기적 성격이 적은 대신 당대의 사회적 모순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어진 국문소설 홍길동전이 허균(1569~1618)에 의해 창작되어 본격적인 소설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17세기부터는 소설의 창작이 활발해짐과 함께 상당한 규모의 독자층이 형성되었으며, 1819세기는 소설의 시대라 불릴 만큼 소설의 질적인 다양화와 양적인 팽창이 이룩되는 한편 방각본 소설 같은 상업적 출현과 세책업이 성행하였다.

고전소설을 구성인물형주제문체 등의 여러 요소에 따라 친근성이 높은 것들끼리 묶어 보면 영웅소설, 환몽소설, 역사군담소설, 판소리계 소설, 가문소설, 한문소설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영웅소설은 홍길동전에서 초기적 형태가 성립한 이후 다른 유형들보다 앞서 발달하여 17세기부터 창작되고 1819세기에도 많은 독자층의 애호 아래 성행한 소설 유형이다. 그 유형적 구조를 간추리면, 예사롭지 않게 출생하고 비범한 자질을 갖춘 고귀한 신분의 주인공이, 뜻밖의 재난으로 위기에 부딪혔다가, 구출양육자의 도움을 얻어 이를 모면하고, 힘과 지혜를 기른 뒤 마침내 세상에 다시 나아가,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영광을 쟁취한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 구조에 걸맞게 주인공들은 모두가 탁월한 재자가인이며,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와 문체는 장중엄숙한 흐름을 유지한다.

군담소설이 거의 다 영웅소설이기는 해도 영웅소설이 곧 군담소설인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영웅소설이 다 적강소설은 아니다. 유충렬전을 대표작으로 이 밖에 작품마다 부분적인 특징의 차이가 있으나, 조웅전, 금방울전, 소대성전, 장풍전, 현수문전, 숙향전등이 널리 읽힌 대표적 영웅소설이다.

다음의 장면은 유충렬전에서 모해자 정한담에게 쫓긴 유충렬 모자가 간신히 목숨을 구하여 달아나는 대목으로, 뜻밖의 위난으로 인한 비장한 분위기가 영웅소설의 전형적인 문체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부인이 창황 중의 충열의 손을 잡고 홍션을 흔들면서 단장 밋은신니 화광이 충쳔고 회신 만지니 구산갓치 인 기물 화광의 소멸니 엇지 안이 망극. 사경이 당 인젹이 고요고 다만 중문 밧기 두 군직키거늘 문으로 못 가고 단장 밋 더니 창난달빗 속으로 두로 살피보니 중중단장 안의 나갈 기리 업셔스니 다만 물 가는 수궁기 보이거늘 충열의 옷슬 잡고 그 궁기여 머리를 넛코 복지여 나올 졔 쳡쳡이 인 단장 수여로 다 지여 중문 셔니 충열이며 부인의 몸이 모진 돌의 글키여서 옥 갓탄 몸이 유혈리 낭자고 월갓치 고흔 얼골 진흑빗치 되야스니 불샹고 가련문 쳔지도 실허고 강산도 비감. 충열을 압안고 이질노 나오며 남쳔을 바고 갓업시 도망할  다다른니 엽푸 큰 뫼이 잇스되 놉기는 만장이나 고 봉 우의 오구름 사면의 어리엿거늘 자셰이 보니 이 뫼난 쳔졔든 남악 형산이라. 젼일 보던 얼골리 부인을 보고 반기난듯 두렷쳔졔당이 완연이 뵈이거늘 부인이 비회를 금치 못야 충열을 붓들고 방셩통곡난 말리, 네 이 뫼를 아난다. 칠년 젼의 이 산의 와셔 산졔고 너를 나아니 이 지경이 되야스니 네의 부친을 어가고 이런 변을 모로난고. 이 산을 보니 네 부친 본 듯. 통곡고 실푼 마엇지 다 충양. 충열이 그 말 듯고 부인의 손을 잡고 울며 왈 이 산의 산졔고 나를 나어다 말가. 젹시리 그러면 산신은 이러연유를 알연마는 산신도 무졍. 부인이 이 말 듯고 목이 메여 말를 못 거늘 충열이 위로 이윽키 진졍야 충열을 압세우고 번양수를 건너 회수 가의 다다르니 날리 임우 서산의 걸여 잇고 원촌의 젼역 나고 쳥강의 도던 물는 양유 속의 들고 쳥션의 가마구난 운간의 울어 들고 상을 바라보니 원포의 가는 돗져문 안 여 잇고 강촌의 이젹 소세우 중의 흣날엿다. 실픈 마진졍고 충열의 손을 잡고 물가의 되 건네갈 젼이 업서 날을 우러러 탄식을 마지 안이더라.

-유충렬전완판본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영웅적 주인공들의 몰락과 상승을 주요 관심사로 삼는 점에서 영웅소설은 두 가지 상이한 지향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소설 유형이라 할 수 있다. 그 한편은 중세적 사회 질서의 혼란과 세속적 관심의 증대 및 개인적 욕망의 추구라는 세속지향성이며, 다른 한편은 흔들리는 옛 질서를 회복하여 그 안에서 개인과 가문의 영광을 찾고자 하는 회고적 지향성이다.

충성과 효도라는 중세의 윤리 이념을 중시하면서도 그 내부에서는 개인의 야심, 세속적 영광, 그리고 남녀 간의 애정이 실질적인 동인이 되는 터이므로 영웅소설 역시 해체기 중세 사회의 경험과 꿈을 반영하는 소설 유형임은 부정되지 않는다.

환몽소설은 작품 수가 많지 않으나, 김만중(1637~1692)구운몽이 출현한 17세기로부터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창작되었다. 대체적 구조는 초월적 세계에서 세속의 삶을 동경하던 주인공이, 꿈을 통해 이 세상에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 파란많은 영웅적 생애를 누리고, 다시 꿈을 깨어 세속의 세계를 떠나게 된다는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짜임은 조신몽, 남가기등 한국과 중국의 옛 설화전기에 보이는 환몽담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측된다.

역사군담소설로 불리는 임경업전, 박씨전, 임진록등은 초인적 능력을 가진 영웅들의 군사적 활약상을 담은 데서 군담소설(창작군담소설)류와 비슷하다 할 수 있으며, 두 부류의 작품들 사이에는 실제로 문체와 사건 처리 방식의 영향 관계가 발견되기도 한다. 영웅소설의 주인공들이 일반적으로 가문의 영예와 개인적 공명을 추구하는 인물인 데 비해 역사군담소설의 인물들은 잔학한 외적과 간교한 지배층 모두에 맞서서 용감하게 싸운 민중영웅으로 형상화된 예가 많다.

판소리계 소설은 특정한 사건 구조의 유형성을 띠고 있지는 않으나, 판소리로부터 유래한 공통의 문체수사적 특징과 평민적 인물형 및 세계관을 보여준다.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토끼전, 배비장전, 장끼전, 옹고집전등 이 부류의 작품들은 세속의 현실을 중시하는 일원적 세계상 위에서 범용(凡庸)한 사람들의 삶이 지닌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판소리계 소설에는 초인적 능력을 가진 영웅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건 전개에 있어서도 경험적인 인과 관계가 보다 중시된다. 그 문체는 운문과 산문이 혼합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고도로 세련된 전아한 언어와 평민층의 발랄한 속어 및 재담육담(肉談)이 엇섞여 있다. 아울러, 삶의 고통에 마주선 비장함이 구수한 해학, 신랄한 풍자와 함께 공존하면서 조선 후기 사회의 생활상을 폭넓게 형상화한 점도 판소리로부터 유래한 특징이다.

판소리계 소설은 18세기 무렵 이후에 성행했고, 다른 유형에 비해 평민층의 독자를 더 많이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판소리계 소설이 발달하면서 그와 비슷하게 평민적 현실주의의 색채를 짙게 띤 이춘풍전, 삼선기, 오유란전등의 희극적 소설들이 출현하였으며,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 사회의 문제를 풍자적으로 다룬 서동지전, 서옥기등의 우화소설도 여러 종류가 창작되었다. 이들을 포괄하여 평민소설이라 부른다.

박지원(1937~1805), 이옥(1860년대~1900년대) 등의 전()과 여러 야담집의 이야기들 중 소설적 짜임을 갖춘 작품들을 간추려서 한문소설이라 보기도 하며, 특히 후자를 한문단편이라 지칭한다. 이 계열의 작품들은 한문을 해독할 만한 교양을 가진 계층에 의해 창작되고 읽혔으나, 내용은 종래의 사대부 문인들이 추구하던 정통적 한문학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상인빈옹부호관리도적기녀기인일사(逸士) 등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당대 사회의 여러 문제와 생활상을 날카롭게 형상화한 것이다.

가문소설 혹은 대작소설은 천수석, 낙천등운, 보은기우록, 현씨양웅쌍린기등 일부 연구된 작품 외에 다량의 자료들이 아직 정리되는 도중에 있다. 이들은 18세기 말, 19세기 초 무렵에 발달하기 시작하여 서울의 세책가를 매개체로 삼아 궁중의 여인들에게 많이 읽혔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길이는 무척 길어서 30, 40책을 초과하는 것이 흔하며, 명주보월빙이라는 삼부작 소설은 필사본으로 무려 235책에 달한다. 이 계열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가 권력, , 애정을 추구하는 세속적 인간형으로서, 신분은 귀족일지라도 거창한 이념에 헌신하거나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는 영웅상과는 거리가 멀다.

고전소설은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작자가 밝혀져 있지 않은데, 그 까닭은 소설 창작이 자랑할 만한 일로 여겨지지 못했던 데다가 그것을 독자적인 창조 행위로 존중하는 의식이 아직 희박하였던 때문인 듯하다. 여러 가지 증거로 보건대는 몰락 양반 및 평민 출신의 식자층에서 나온 작가가 처음에는 개인적인 흥미에 의해, 나중에는 상업적인 보급자와 관련을 맺으면서 소설을 썼던 것 같다. 일단 이루어진 작품은 유통되는 과정에서 자주 윤색개작되어 수많은 이본이 파생되었다. 독자는 양반층의 부녀자들이 많았고, 중인과 평민층에는 남성 독자들도 상당히 있었다. 이들 사이의 소설 유통을 매개한 보급자로는 전기수, 세책가, 방각본 출판이 특히 주목된다.




신소설(新小說)

고전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이미 희박해졌고, 그 대신 이 시대의 문제와 의식을 반영하는 신소설이 새로운 조류로서 1900년대 중엽에 등장하였다. ‘신소설이라는 명칭은 이들 작품을 소개하는 광고문에서 종래의 구소설과는 달리 참신한 내용과 흥미를 갖춘 소설임을 자처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신소설은 고전소설의 점진적 쇠퇴와 현대소설의 형성이라는 전이 과정의 중간적 위치에 놓인 소설 형태라 할 수 있다.

신소설의 형성에 작용한 사회적 요인으로는 개항 이후 바깥 세계의 근대 문물이 유입되고 전통적 가치 의식이 뒤흔들림으로써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점을 들 수 있다. 아울러, 조선 후기 이래 꾸준히 성장해 온 국문 해독층과 독서 대중이 19세기 말 이래의 계몽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확대되고, 기업적 성격을 지닌 근대적 출판사가 나타남으로써 새로운 소설을 수용할 만한 여건이 갖추어졌다는 점도 중요하다. 1900년대부터 다수 출현한 민간신문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독자들을 확보하는 방안의 하나로 당대적 문제와 생활을 다루는 소설을 게재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담당하는 직업적 작가들이 고전소설 작자층으로부터 나오거나 새로이 출현하게 되었다.

초기 단계의 신소설은 민간 신문에 연재된 뒤 다시 출판사에 의해 단행본으로 발간된 때문에 자주독립, 문명개화, 풍속 개량, 신교육 예찬 등의 계몽적 주제의식과 함께 대중적 흥미에 영합하려는 상업주의적 성격도 짙게 띠었다. 최초의 신소설이라 꼽히는 이인직(1862~1919)혈의 누만세보에 연재된(1906) 것이다. 그러나 혈의 누가 전형적인 신소설로서는 가장 주목되는 최초의 작품이라 해도, 이보다 앞서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거부오해(1905), 소경과 앉은방이 문답등의 풍자적 단편이라든가, 대한일보일념홍(1906), 용함옥(1906) 등도 이 시기의 소설적 변이 양상을 밝히는 데 중요하다.

이 외에 이인직의 귀의 성, 치악산, 은세계, 이해조의 빈상설, 구마검, 자유종, 최찬식의 추월색, 김교제의 현미경, 안국선의 안의 성, 금수회의록등 다수의 신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전소설이 일반적으로 이라는 표제 아래 주인공 위주의 일대기적 서술에 치중한 데 비해, 신소설은 당대 사회의 공간적 지평을 중시하면서 어떤 문제의 발생으로부터 해결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는 문제 중심적 구성을 취하였다. 단순한 선후 관계에 따라 사건을 서술하지 않고 시간적인 역전을 때때로 사용한다든가, 발단 부분의 사건 도입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이 밖에, 과장된 묘사의 지양, 생활 언어에 가까운 문체의 사용, 당대의 문제와 경험에 대한 적극적 관심 등을 신소설의 새로운 양상으로 간추릴 수 있다.

신소설은 고전소설과의 뿌리깊은 연관도 보여준다. 전통적인 선악이분법의 인간관이 외형만을 바꾸어 문명개화=, 수구=악이라는 도식으로 잔존한다든가, 사건 전개에 우연성이 남용되고, 위기-극복-승리의 영웅소설적 유형 구조가 상당수 작품에 내재하여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주제상으로 보아 신소설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문명개화에 대한 소박한 낙관주의에 지배되고 있다. 주인공들은 위기 상황에서 흔히 일본인서양인의 도움을 받으며, 무한한 기대를 품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이와 같은 안이한 낙관주의로 인해 신소설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대한 적극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천박한 개화주의에로 전락하였으며, 이인직 등의 작품에서는 당대의 역사적 정황을 몰각한 친일적 환상을 띠기까지 하였다.

 



현대소설(現代小說)

신소설은 1910년대에도 계속 창작되었으나 1910년의 국권 상실을 전환점으로 하여 흥미 위주의 오락물로 주저앉음으로써 문학사적 의의를 거의 상실하였다. 이 무렵에 신소설의 소설사적 진전을 흡수하고 외래 문학의 영향을 수용하면서 당대의 고뇌와 풍속적 갈등을 보다 사실적으로 다루는 본격적 근대소설(현대소설)이 태동하였다. 동경 유학생회 기관지인 학지광을 통해 발표된 현상윤, 이광수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단편소설로서 주관주의적 색채가 강한데다가 문체, 구성, 성격 창조에 있어 서투른 점이 많았으나, 신소설의 안이한 계몽성과 통속적 흥미주의로부터 탈피하여 시대의 번민을 파고들어가는 데에 커다란 진전을 보였다.

이광수의 무정(1917)은 이러한 준비 단계를 거쳐 출현한 최초의 근대적 장편소설로 평가된다. 무정에는 낡은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충돌하거나 기묘하게 혼합되어 공존하고 관습적 윤리 규범과 현실이 어긋나며 이념과 욕망이 갈등하는 과도기적 삶의 양상이 여기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영채, 선형, 김장로 등 조역적인 인물은 물론, 주인공인 이형식도 이러한 분열에서 예외는 아니다. 작가는 이들과 함께 갖가지 유형의 인물을 등장시켜서 전통적 사회 구조의 붕괴와 식민지화가 아울러 진행되던 당대의 현실에서 여러 개인이 어떻게 행동하며 그것은 또한 어떤 전체적 갈등의 구조를 이루는가를 밀도 있게 형상화하였다.

31운동 이후 1920년대 중엽까지의 소설은 김동인, 전영택, 염상섭, 현진건, 나도향 등 새로운 작가들의 다수 출현에 의해 양적으로 확대되는 동시에 당대 사회의 음울한 분위기와 무력한 개인의 고뇌를 다루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1919),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1920), 묘지(1923, 뒤에 만세전으로 개제), 현진건의 빈처(1921), 운수 좋은 날(1924)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암울한 사회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행동화하지 못하는 채 끊임없는 번민과 자기소모적 회의만을 거듭하는 무용자상(無用者象)이 빈번하게 보이는 점도 이 시기의 소설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실이다.

19245년을 전환점으로 등장한 신경향파-프로 문학은 현실 사회의 모순과 궁핍상에 대한 투쟁적 인식을 강조하는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였다. 최학송의 박돌의 죽음(1925), 큰물 진 뒤(1925), 홍염(1927) 등이 선명하게 보여주듯이 이 계열의 작품들은 식민지하의 처참한 상황에서 삶의 극한에까지 몰린 빈민들이 방화, 살인 등 파국적 행동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흔히 다루었다.

1930년대 및 광복 이후의 우리 현대소설은 다양한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이광수, 1932), 상록수(심훈, 1935), 제일과 제일장(이무영, 1939) 같은 농촌소설이 있었던가 하면, 삼대(염상섭, 1931), 탁류(채만식, 1937), 태평천하(채만식, 1938) 등 가족사의 구도를 중심으로 식민지하의 부패한 삶을 추궁하여 들어간 작품들도 있었다. 이상의 날개, 종생기(1936) 등 자기분열적 내성의 기록이 충격을 일으켰던 한편에서 당대적 소재의 제약을 넘어서려는 노력으로서 현진건의 무영탑(1939) 등 역사소설이 시도되었다. 또한, 섬세한 관찰과 잘 짜여진 소설적 의장(意匠)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던가 하면, 김정한의 사하촌(1936), 항진기(1937)처럼 억눌린 사람들을 주제로 하여 비판적 현실 인식을 형상화한 작품들도 나왔다.

50년대의 황량한 터전에서 625의 상흔을 주로 다루던 우리 소설은 60년대 이후 관심 영역이 크게 다양화되고 수많은 작가들의 출현 및 출판의 발달과 함께 질적양적으로 커다란 진전을 이룩하였다.